176화
“약소하지만 목숨을 구해준 보답이에요.”
임향기가 가장 먼저 특성석을 건넸다.
그녀의 특성인 ‘유도저격’이 새겨져 있는 특성석을 받아든 한수호는 싱긋 웃으며 미리 준비한 얼음불 특성석을 넘겼다.
“이걸 익혀서 더 강한 마공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네? 이건 뭐예요?”
임향기는 물론 이윤철과 다른 대원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특성을 새긴 특성석입니다. 제 적합도가 괜찮아서 효율은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이러면 우리가 보답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받은 게 되지 않나? 은인의 특성을 이리 쉽게 얻을 수는 없네.”
이윤철은 곧이곧대로 인물답게 한수호의 호의를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수호의 뜻은 명확했다.
“아까 말씀하셨죠? 미래에 위험이 닥칠 거라고요. 그러려면 한 명이라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내 거, 네 거 구분하면서 자기 밥그릇만 챙기다간 위험을 막지 못할 테니까요.”
한수호로서 가장 범용적인 특성을 넘겨주는 것이지만, 말로는 조금 더 멋지게 포장했다.
어차피 안 줘도 될 것을 주는 건데, 좀 더 고마움을 느끼게 말한다 해서 안 될 건 없지 않은가.
그의 말이 통했는지 모두가 감격에 겨운 표정이 되었다.
이윤철은 바로 한수호의 손을 덥석 잡아 쥐고는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한수호야말로 미래의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인물이라면서 무조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하겠다고 굳게 약속까지 했다.
임향기와 최민우도 다르지 않았다.
평생 한 가지 특성만 가지고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목숨을 구명받은 것도 모자라 새로운 특성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진무현 또한 진지한 얼굴이 되어 한수호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었다.
한수호는 네 개의 특성석을 받고, 네 개의 특성석을 나눠줬다.
네 사람 모두 한수호가 새겨넣은 얼음불 특성을 곧바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은 크리스마스에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은 아이와 다름없었다.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사실은 내가 받은 게 더 큰데도….’
이들의 반응을 보게 되니 인챈트 스톤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적당한 방법이 떠올랐다.
내 특성은 절대 줄 수 없다는 아집은 잠시 접어두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특성을 나눠주는 게 정답이었다.
물론 아무나가 아니다.
스승 부부를 비롯해 김무성과 최지혁, 그리고 다른 친구들까지 당연히 사람을 가려가면서 특성석을 줄 생각이었다.
한수호는 뿌듯한 마음이 되어 국수대 4인방에게 받은 특성석을 하나씩 확인했다.
[특성석]
-보유 포인트: 5,000LP
-국가수호대 침투5조의 임향기가 각성한 특성, ‘유도저격’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성을 흡수하고 포인트를 획득하겠습니까? YES/NO
마공사가 직접 특성을 새겨넣은 특성석임에도 포인트가 있다.
‘꿩 먹고 알 먹고네. 그런데, 유도저격이라…. 얼마나 다운그레이드 되었을까?’
임향기의 각인 적합도는 37%.
원본 특성에 비해 37%의 효율밖에 안 될 것이라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다.
한수호는 특성석을 손에 쥔 채 YES를 선택했다.
그 즉시 새까만 특성석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글자가 튀어나오더니 한수호의 손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글자들은 심장을 휘감으며 스며들었고, 한수호의 몸 전체를 환한 빛으로 빛나게 했다.
한수호가 몸이 붕 떠오르는 고양감을 느끼는 순간,
콰자작
특성석이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들.
>>특성을 획득합니다.
>>특성: 유도저격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획득 포인트: 5,000LP
한수호는 새로 얻은 유도저격 특성이 어떤 것인지 빠르게 확인했다.
[특성: 유도저격]
-사용자의 마나가 담긴 물체를 이용해 원거리에 위치한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합니다.
-한 번 지정한 목표에 적중할 때까지 모든 장애물을 피할 수 있습니다.
-특성 단계: 1단계(1/3)
-1단계 효과: 특성을 발휘하면, 사용자의 시력이 원래 시력을 기준으로 최대 4배까지 증가하며, 1킬로미터 밖의 목표물을 저격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2초
-2단계 업그레이트 포인트: 50,000LP
생각보다 특성 효과가 꽤나 준수하다.
각인 적합도가 낮아서 그다지 쓸모는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뚜껑을 까보니 구성이 꽤나 알차다.
‘내 시력을 기준으로 4배라면 엄청난 건데?’
현재 한수호는 스스로의 힘으로 시각 수치를 10까지 높인 상태라 사물을 6배율로 확대해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4배면 정말 엄청난 시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젠 맨눈으로 달 표면도 볼 수 있겠네.’
한수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아무튼, 유도저격은 직접 나서지 않고도 멀리서 적을 잡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특성이었다.
다음은 최민우에게 받은 특성석이었다.
충파가 새겨진 특성석을 쥐고 흡수를 선택하자,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며 특성석의 문자들이 심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특성을 획득합니다.
>>특성: 충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획득 포인트: 7,000LP
충파 특성은 유도저격보다 2천 포인트나 높았다.
바로 특성에 대한 설명을 확인한 한수호는 조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특성: 충파]
-강력한 진동파를 실은 타격으로 상대의 방어막, 또는 장애물을 관통하여 강한 충격을 입힙니다.
-특성 단계: 1단계(1/5)
-1단계 효과: 외피 방어막을 1초 동안 형성하여 본인의 마나력에 해당하는 공격을 무조건 막아냅니다.
-쿨타임 5초
-2단계 업그레이트 포인트: 80,000LP
방어막, 또는 장애물을 관통하여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지 않다.
또한 방어 효과가 5초밖에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 자신의 마나력에 정비례한다는 점도 그냥 그랬다.
‘특성으로 위력을 엄청 뻥튀기 시킨 공격이 날아들면 충파를 써도 못 막는다는 거잖아?’
살짝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굳이 얼음불을 써서 불의 장막이나 얼음벽을 세울 필요가 없어졌으니 실망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한수호가 세 번째로 집어 든 것은 이윤철의 무기소환이 새겨진 특성석.
‘요건 먹음직스럽단 말이지.’
한수호는 조금 기대하는 마음으로 특성석을 흡수했다.
특성석이 깨지고, 문자가 스며들며, 온몸에서 빛이 뿜어진 순간, 그의 눈앞으로 특성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건 포인트가 1만이나 되네?’
특성석 흡수로 포인트까지 짭짤하게 늘고 있어 절로 흥이 난다.
한수호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무기소환 특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봤다.
[특성: 무기소환]
-가로, 세로, 높이가 1M인 아공간에 무기물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특성을 발휘하면, 원하는 위치로 아공간 속에 든 물체 한 가지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아공간류 아티팩트를 흡수하여 공간의 크기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구현 가능 거리: 1미터
-쿨타임 1초
내용을 보니 상당히 괜찮다.
아공간 관통 장갑이나 다른 아공간 주머니처럼 별도의 매개체가 없어도 아무 때나, 어디에서건 아공간을 쓸 수 있는 특성이다.
게다가 아공간류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공간 확장까지 가능하다니.
한수호는 당장 코스트 25짜리 소용량 아공간 주머니를 흡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뒤로 미뤘다.
이제 저들을 데리고 전투 영역을 나가야 할 시간이라 진무현이 준 특성석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혼천일격 대신에 어떤 특성을 새긴 걸까?’
궁금증을 느끼며 특성석을 손에 쥔 순간,
[특성석]
-보유 포인트: 100,000LP
-국가수호대 침투5조의 진무현이 각성한 특성, ‘체질개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성을 흡수하고 포인트를 획득하겠습니까? YES/NO
특성석의 정보를 확인한 한수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체질개선? 포인트가 10만이나 된다고?’
이게 뭔가 싶었다.
약탈[2]를 특성석으로 얻었을 때 얻은 포인트가 5만인데, 체질개선은 10만이다.
포인트가 높을수록 희귀한 특성이라고 생각하면, 이 체질개선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특성인 걸까?
한수호는 바로 특성 흡수를 시작했다.
고양감이 차오르고, 글자가 가슴으로 스며든 순간,
콰자작
여지없이 특성석이 깨져나가며 눈앞으로 흡수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수호는 곧바로 새로 생성된 체질개선 특성의 정보를 살펴봤다.
[특성: 체질개선]
-특성 사용자의 신체를 스캔하여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전투에 적합한 최상의 상태로 개선합니다.
-특성 단계: 1단계(1/3)
-1단계 효과: 사용자의 몸에서 피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막힌 혈도를 모두 뚫어줍니다.
-사용 가능 횟수: 2회
-필요 마나력: 800
-2단계 업그레이트 포인트: 1,000,000LP
보자마자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특성이다.
이건 단순한 체질개선이 아니라 전투에 맞게 신체를 탈바꿈시키는 가히, 환골탈태에 가까운 특성인 것이다.
게다가 이게 1단계라면, 2단계, 3단계로 업그레이드되었을 때는 과연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개조 특성을 지닌 한수호에게 이 체질개선은 가장 시너지 효과가 큰 특성이라 볼 수 있었다.
크게 들뜬 한수호는 바로 체질개선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특성을 사용하려 하자,
>>체질개선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800의 마나가 소비되며, 12시간의 수면이 필요합니다. 진행하겠습니까? YES/NO
지금 이걸 실행하게 되면 큰일 날 상황이었다.
‘일단, 집에 가서 해야겠네.’
어쩔 수 없이 이것도 뒤로 미룬 한수호는 흥분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임향기는 새로 얻은 얼음불 특성을 벌써 연습하기 시작했고, 이윤철은 최민우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진무현은 한수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한수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에 진무현은 환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수호는 이제야 진무현이 짧은 시간에 이토록 강한 마공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체질개선으로 몸을 환골탈태시켰으니 순식간에 강해진 거겠지.’
진무현만 봐도 이 체질개선 특성이 얼마나 사기급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제 여길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한수호가 입을 열자 네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준비가 되었네. 혹, 무기가 필요하면 말하게. 내 아공간에 아직 여유가 많아서 쓸 만한 무기들이 잔뜩 있으니 말이야.”
이윤철은 한쪽 눈까지 찡끗해 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무기소환 특성이 쓸 만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적합도 40%에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짜리 아공간이 나왔으니, 원본 특성으로는 최소 2미터 이상의 아공간을 쓸 수 있는 거겠지?’
이윤철이 살짝 부럽긴 했지만, 한수호에겐 코스트 400에 64칸의 슬롯이 있는 아공간 아티팩트가 있으니 괜찮았다.
한수호는 이윤철의 제안을 살짝 거절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전투보다는 포위를 뚫고 빠져나가는 게 우선입니다. 여길 벗어나자마자 북동쪽으로 빠져나가야 하고, 황금교 부근에서 차량을 이용해 도망칠 겁니다. 나중에 당황하는 일 없게, 국수대 본부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미리 알려주세요.”
“흐음. 우리 국수대 본부는 남산에 위치한다네. 그쪽을 목표로 삼으면 되네.”
“남산이군요. 알겠습니다. 그 근처까지는 제가 모셔드리는 걸로 하죠. 그럼 모두 여기 올 때처럼 서로의 몸을 붙잡은 채로 준비하세요. 팀장님은 제 어깨를 잡으셔야 합니다.”
한수호의 말에 의문을 다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후미에서 진무현이 최민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최민우는 임향기의, 임향기는 이윤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이윤철이 한수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준비됐네.”
“그럼 갑니다. 셋, 둘, 하나!”
푸슛
다섯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진입 차단벽 돔의 한쪽에서 월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그리고 한수호를 비롯한 낯선 방문인들이 모두 사라진 걸 확인한 뒤, 뒤쪽으로 손짓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범이, 살이. 너희들 빨리빨리 못 움직여? 그렇게 굼떠서 언제 작업 끝마치겠냐? 앙! 내가 꼭 성질을 내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겠어! 동작 봐라!”
월이 눈이 아닌 입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