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오전 7시 14분.
한수호는 정확한 시간에 눈을 떴다.
그리고 무심결에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순간,
퍽
저도 모르게 몸이 붕 날아올라 천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아우, 씨.”
바닥에 내려선 한수호는 벌게진 이마를 쓰다듬으며 방금 자신이 겪은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뭐지? 왜 내가 천장까지 튕겨 오른 건데? 설마?’
한수호는 급히 자신의 신체수치를 개조 특성으로 자세히 살폈다.
[머리] : 206
[왼팔] : 201
[오른팔] : 201
[가슴] : 331(+74)
*[마나] : 3,531(+522)
[배] : 203
[왼발] : 205
[오른발] : 205
한수호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내가 잘못 봤나?’
하지만 다시 봐도 신체 수치는 그대로였다.
평균 수치 220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치들.
마나력은 드디어 4천을 넘겼다.
체질개선 한 번으로 모든 수치가 이렇게까지 증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신체 수치가 이렇게나 높아졌는데도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는 거잖아?’
한수호는 체질개선 특성의 설명창 하단부를 지긋이 노려봤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한 번 더 체질개선을 사용하면 얼마나 더 오른다는 거야?’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저절로 몸이 떨린다.
대단하다 못해 무섭다.
각인 적합도 88%가 적용된 특성이 이 정도면, 체질개선 특성을 원판으로 소유한 진무현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까?
단언컨데, 지금 진무현의 체질개선 단계는 아직 1단계다.
어쩌면 1단계의 기회 2번 중 한 번 밖에 진행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진무현의 마나력은 800을 조금 넘긴 상태.
그렇다면 첫 번째 체질개선밖에 진행할 수 없는 마력이었다.
>>두 번째 체질개선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1,500의 마나가 소비되며, 6시간의 수면이 필요합니다. 진행하겠습니까? YES/NO
지금 보는 것처럼 두 번째로 체질개선을 하려면 무려 1,500이나 되는 마나력이 필요했으니까.
‘수면 시간이 줄어든 대신, 소모 마나력이 두 배 가까이 뛰어버렸어.’
물론, 한수호한테는 두 번째 체질개선을 진행할 마나력이 충분했다.
다만, 그걸 진행할 수면 시간이 부족할 따름.
‘두 번째는 오늘 밤에 해야겠다. 일단 등교부터 하고.’
한수호는 가벼운 마음이 되어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면서 일일 미션을 확인한 한수호는 의외의 내용에 움찔하고 말았다.
[오늘의 미션]
-펀치력 테스트기로 1,000,000점 넘기기
-제한조건: 특성 사용 금지, 능력치 조정 금지
-획득 포인트: 10NP / 1,000LP
마치 한수호의 신체 수치가 증가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 미션.
예전에, 광폭화 5단계를 적용해 오른팔 수치가 240까지 오른 상태에서 2할의 힘으로 21만이 나왔으니, 전력을 다하면 백만을 간신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미션에는 ‘특성을 사용하지 않고’라는 제한이 걸려있다.
그럼 맨몸으로 백만을 넘기라는 말인데, 현재 한수호의 팔 능력치는 좌우 모두 201.
특성을 쓰지 않고서는 전력을 다한다 해도 백만이 될까 말까다.
‘두 번째 체질개선을 써서 미션을 완수하라는 건가?’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한조건이 없었다면 월이 만든 펀치력 테스트기의 점수 백만을 넘기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백만을 넘기려면 테스트기를 상대로 정말 죽어라 주먹질만 해야 할 판.
‘오늘 손 아작 나겠네. 어휴.’
한숨밖에 안 나온다.
그렇다고 두 번째 체질개선을 사용해서 능력치를 상승시킨 다음 미션을 수행하려니 왠지 자존심이 긁히는 기분이다.
‘미션도 일단 저녁에 도전해야겠네.’
한수호는 그렇게 미션을 뒤로 미루고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다.
* * *
오전 수업이 끝나기 직전, 지평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공지를 내렸다.
“2주 뒤에 기말 평가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기말 평가는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게이트에서 진행하지 않고, 교내에서 간단히 토너먼트로 진행한다. 단, 4강에 든 학생들은 다른 아카데미 1학년 생들과도 경합을 벌이게 될 것이니 그리 알도록.”
교수의 말에 양소혜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4강에 든 학생들이 경합에 나선다는 얘긴가요?”
“맞다. 그러니 서울 본교의 명예를 걸고 그 경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잘 알겠지?”
지평학은 ‘난 너희를 믿는다.’는 신뢰 가득한 얼굴로 한수호를 비롯해 장한설, 이하윤, 최지혁 등을 돌아봤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오후 수업은 특별히 내가 마나의 응축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마. 쓸데없이 마나를 펑펑 써대지 않고, 적은 마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강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기대해도 좋다.”
지평학은 그렇게 말하고는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바로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식당으로 향했다.
“최소한 8강에는 들어야 상위권인데, 이거 쉽지 않겠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양소혜가 툴툴거리자 장한설이 묻는다.
“8강이 뭐니? 4강에 들어서 다른 아카데미 애들하고 맞장 한번 떠야지?”
“태산이랑, 한설이 너, 거기에 백윤후랑 이하윤까지 있는데 내가 무슨 수로 4강에 오르냐?”
양소혜의 말에 최지혁이 슥 끼어들었다.
“왜 난 빼는데?”
“너? 넌 내 밥이고.”
“훗. 양소혜. 네가 그렇게 자만심에 빠져 있을 동안, 난 피땀을 흘리며 수련에 임했다. 이번 토너먼트에선 아마도 내가 다크호스일걸?”
“이야. 넌, 네 입으로 그런 소리가 나오냐? 다크호스는 무슨…. 조랑말도 안되는 녀석이.”
“조, 조랑말? 이거 어이가 없네. 못 믿겠으면 오후에 한판 붙어 보던가.”
“됐거든. 내가 너랑 뭐 하러 붙어?’
양소혜와 최지혁이 아웅다웅 하고 있는 동안 일행들은 모두 식당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A반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뷔페식이 이들을 반겨주자, 양소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한 얼굴이 되어 빈 접시를 들고 음식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엿한 친구가 된 백윤후도 이들과 어울려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한수호 옆에 바짝 붙어 앉는 것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다행히 친구들은 한 테이블에 같이 앉아만 있을 뿐, 기말 평가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백윤후가 한수호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왜?”
“너,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내가 말한 그 감시…. 머시기 그거. 어떻게 따돌렸어?”
한수호는 백윤후가 마나력이 늘어난 것에 대해 물어보려나 싶었는데 다른 걸 묻자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그건 나중에 말하자.”
“야. 어제 아버지가 엄청 화를…. 크흐흠.”
백윤후가 말을 하다 말고 괜히 헛기침을 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신소이가 백윤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
신소이의 음침해 보이는 얼굴엔 뭔가 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아하하! 아버지가 니들을 왜 집에 초대도 안 하냐고 화를 내시더라고. 그래서 그런 거야. 다른 거 없어.”
변명하듯 둘러대는 백윤후.
그제야 신소이가 아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백윤후, 네 아빠가 우릴 초대해?”
장한설이 그 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질문을 던졌다.
“어? 어…. 언제 한번 집에 다 데려오래. 최고급 음식을 대접해 주겠다고 약속하시더라고.”
백윤후가 엉뚱한 스노우볼을 굴리고 말았다.
얼떨결에 나온 거짓말이 사실로 박제되는 순간이었다.
“오우. 그럼 우리야 땡큐지. 우리가 언제 정의국 국장이신 백윤후 아버지의 식사 초대를 받겠냐? 이번 주말 어때? 콜?”
이번엔 양소혜까지 나서서 친구들을 선동했다.
“너, 너무 서두를 건 없을 거 같아. 다음 주나, 뭐…. 아! 기말 평가 끝나고가 딱 좋겠다. 그때가 되면 아버지도 크게 바쁘지 않을 거거든.”
“난 이번 주가 딱 좋은데…. 아쉽지만, 뭐 어쩌겠어. 그럼 기말 평가 끝나고 약속한 거다? 여기 있는 모두 한 명도 빠지기 없기. 특히, 너 장태산. 또 빠지면 알아서 해라.”
양소혜의 협박성 말에 한수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괜히 말을 꺼낸 백윤후를 노려봤다.
식사가 끝난 후, 한수호는 백윤후와 잠시 따로 시간을 가졌다.
“넌 인마, 애들 다 있는 데서 그런 말을 왜 꺼내서 일을 꼬이게 만드냐?”
“너무 궁금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아버지가 아주 화가 단단히 났더라고. 일요일 아침부터 네 녀석 행방을 완전히 놓쳤다면서 일을 뭐 그 따위로 하냐고 소리치고 난리더라고. 너, 대체 흔적을 어떻게 지운 건데?”
백윤후가 궁금한 건 이거였다.
백진성이 한수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조치를 취해 놨는데, 그게 일요일부터 아무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백진성은 수하들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이고.
“다 방법이 있지. 네가 감시가 있다고 알려준 덕분에 혹시 모를 다른 감시까지 싸그리 피할 수 있게 만들었거든.”
사실 한수호는 일요일 오전에 잠진도로 떠나기 전, 약간의 LP를 이용해 자신을 향한 모든 추적을 방해할 방법을 마련해 냈다.
그 방법은 바로 ‘단단한 후드티’의 2차 개조였다.
한수호는 여러 용도를 위해 개조를 해 놨던 후드티에 두 가지 기능을 추가했다.
-추적방지 기능이 있습니다.
-자동 세척기능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기능을 추가하게 되면서 ‘다용도 후드티’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후드티를 입음으로써 백진성의 감시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이런 내용을 백윤후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넌 참 비밀이 많은 녀석이야. 누군가가 문제를 내면 언제든, 어느 때든 그 해답을 후딱 찾아낸단 말이지.”
“그게 내 특기니까. 그보다, 너 마나력에 대해선 안 묻냐?”
한수호가 슬쩍 말을 돌리자 백윤후가 툴툴거린다.
“하룻밤 사이에 마나력이 오르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내 덕분에 명실상부한 궁급에 올랐는데, 감사의 인사도 없어?”
한수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재 백윤후의 마나력은 순수 스탯만으로 714였고, 한수호의 가슴에 박힌 생명 코어의 마나력 522를 합치면 무려 1200이 넘었으니까.
하지만 백윤후의 이 마나력은 한수호와는 조금 시스템이 달랐다.
한수호는 본인의 마나력과 생명 코어의 마나력을 모두 자신의 의지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지만, 백윤후는 달랐다.
생명 코어의 마나력은 백윤후 본인의 마나력이 모두 소진된 이후에야 활성화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궁급이라 볼 수 없었다.
“그래, 아주 미치게 고맙다. 네 덕분에 내 생명줄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럼 네가 벌인 일이나 마무리 잘해라.”
한수호는 백윤후가 거짓말로 나불댄 초대 이야기를 실제로 진행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정말 애들 초대해?”
“응. 생각해 보니까, 백진성의 의도를 가장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게 딱인 것 같거든. 어차피 날 초대했으니 응해주는 게 도리고. 안그래?”
한수호는 오중현과 백진성이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직접 호랑이 굴에 들어가 진위를 파악해 볼 생각이었다.
“친구들을 방패막이로 쓰려는 거군.”
“아무리 백진성이라고 해도 이패궁의 제자인 이하윤과 귀부암왕의 딸인 장한설이 있는 자리에서까지 허튼짓은 못할 테니까.”
“뭐, 그렇긴 하다만….”
“그러니까 확실하게 준비해. 기말 평가가 끝나는 주말에 다 같이 너희 집으로 초대받아 들어갈 수 있게 말이야.”
“그래. 어떡하든 해 보마.”
백윤후는 한수호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게 틀린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백윤후가 걱정하는 건, 백진성이라는 인물의 철두철미함과 강력한 무력이 생각보다 더욱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거.”
한수호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특성을 새겨 넣은 인챈트 스톤 하나를 꺼냈다.
“그거 뭔데? 가만…. 어? 이거!”
백윤후가 한발 늦게 특성석을 알아보고 크게 놀라워했다.
“이거 가져가서 익혀. 네놈 몸을 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다. 대신, 함부로 쓰진 마라.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때 쓰는 걸 추천하지.”
한수호가 백윤후에게 건네준 특성석에는 ‘쇄혼’이 새겨져 있었다.
백윤후의 알맹이가 도플갱어라서 어차피 쉽게 죽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목이 잘리면 기나긴 동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상황만은 피해야 했다.
쇄혼은 비교적 약한 몸을 가진 백윤후에게 딱인 특성이었다.
쇄혼은 특성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특정 부분의 신체, 혹은 전체를 강화시켜 주기 때문에 방어에도 효과가 매우 좋았다.
“이런 걸 막 줘도 되냐? 내가 너 배신하면 어쩌려고?”
“배신? 그걸 조금이라도 의심했으면 애초에 너한테 백윤후의 몸뚱이를 넘기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여기, 이곳에 네 모든 게 담겨 있는데 과연 배신할 수 있을까?”
한수호가 생명 코어가 박힌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하는 말에 백윤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도플갱어로 수백 년을 살면서 너 같은 놈은 정말 처음 봤다. 생명 코어 때문이 아니라, 네놈이 뭔 짓을 할지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라도 배신은 못 하겠다.”
“오케이.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야”
“그래도 너만 손해인 거 같은데…. 내가 따로 해 줄 건 없냐?”
“흠. 뭐, 굳이 뭔가를 해 주고 싶으면….”
한수호는 이번엔 아무 특성도 새겨지지 않은 인챈트 스톤을 꺼냈다.
그걸 백윤후에게 넘기며 씨익 미소를 그리는 한수호.
“여기에 네 특성이나 각인해봐.”
“내 특성을?”
“하기 싫으면 말고. 내가 워낙 강제로 뭘 요구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야.”
“흐음…. 여기에 특성 새겨주는 거야 어렵지는 않지. 단지…. 네가 어떤 스타일의 특성을 원하는지 몰라서 그런다.”
“…응? 내가 원하는 스타일?”
이번엔 한수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백윤후의 말은 한수호가 원하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 특성을 새겨줄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