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대략 5분 전쯤.
한수호는 기지개를 쭉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24시간이나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도 전혀 불편한 곳이 없었고, 머리와 몸은 너무 가볍기만 하다.
캬르릉!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고니가 후다닥 뛰어들어와 한수호의 품에 안겼다.
“밖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 웬일로 이리 격하게 반겨 준대?”
한수호가 농담식으로 한마디 하자, 라라의 음성이 방안으로 흘러들었다.
“두 시간쯤 전에 이하이라는 여자가 찾아왔었어요.”
방문을 좀 더 활짝 열어젖힌 라라는 살짝 삐진 듯한 표정이었다.
“이하이? 그 여자가 왜?”
“저야 모르죠.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면서 집에 들어오려고 하길래 제가 막았어요. 가까운 사인가 봐요?”
“하나도 안 가까워. 어쨌든 잘 막았네. 그래서 그다음은?”
한수호가 이하이와 가깝지 않다고 말하자 라라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 이상한 여자가 1시간 안에 여길 꼭 떠나야 한다고 경고하던데요? 자신이 시간을 끌 테니 반드시 여길 떠나야 된다고 호들갑이더라고요.”
“흐음….”
라라의 말만 들어서는 무슨 상황인지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 컨테이너 하우스를 위험하게 할 상황이 곧 펼쳐지게 될 거라는 것.
“일단 알았으니까 잠시만 조용히 해줄래?”
캬릉.
고니가 먼저 대답하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한수호는 아직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체질 개선 2단계를 실행한 지 24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과연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이하이에 관한 사항은 뒤로 미루고, 결과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느낌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긴 한데….’
한수호는 우선 자신의 신체 수치부터 점검했다.
[머리] : 275
[왼팔] : 261
[오른팔] : 261
[가슴] : 415(+104)
*[마나] : 4,056(+687)
[배] : 261
[왼발] : 262
[오른발] : 262
‘조금씩 오르긴 했네?’
수면에 들기 전보다 모든 신체 항목이 5에서 7 정도 상승했다.
역시나 체질 개선 2단계는 신체 외적인 수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모양.
이번엔 신체 내적인 항목의 수치를 확인해 볼 차례였다.
[심장] : 14
[폐] : 14
[위] : 14
[시각] : 14
[청각] : 14
[후각] : 14
‘어?’
수치가 전부 2씩 올랐다.
포인트로 따져보면 120NP가 늘어난 셈.
꽤나 큰 상승이긴 했지만, 체질 개선 2단계의 효과라고 보기엔 뭔가 아쉬움이 많은 결과였다.
혹시나 싶어 정신, 감지, 면역, 초감각 수치도 확인해 봤는데, 그 항목들은 아예 변화가 없었다.
‘설마 이게 끝이라고?’
체질 개선 1단계를 겪고 나서 느꼈던 희열에 비하면, 뭔가 허무할 정도의 평범한 결과치.
한수호는 살짝 실망한 기색이 되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몸에 힘을 주었다. 바로 그때.
삐링
>>체질 개선 2단계의 결과로 육체의 한계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체질 개선 2단계의 결과로 내성 12종의 효율이 20%씩 상승합니다.
>>육체의 능력치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적 기능이 추가됩니다.
느닷없이 떠오른 메시지.
한수호는 침대에서 내려오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한계치 증가? 게다가 내성 상승까지?’
방금 전까지 실망했던 기분이 단숨에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 기쁨은 시야 왼쪽 상단에 갑자기 떠오른 세 개의 아이콘을 보자 더욱 커졌다.
한수호의 시야가 게임 화면을 보듯 변화했다.
왼쪽 상단엔 작은 크기의 아이콘 세 개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라 있었는데, 첫 번째는 졸라맨처럼 생긴 아이콘이 몸을 살짝 웅크린 채 힘을 끌어모으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번째 아이콘은 졸라맨이 무릎을 꿇고 기어가는 모습이었고, 세 번째 아이콘은 사람의 머리에 뇌의 형태가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수호는 게임 하듯 첫 번째 아이콘을 누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순간, 한수호의 시야로 흐릿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신체 외적 능력] : 300/999
[신체 내적 능력] : 14/99
[마나] : 4,056(+687)/99,999
[육체 한계치] : 1/2
숫자들을 본 한수호는 이것이 나타내는 바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신체 수치 7개 항목이 한 가지 정보로 함축된 건가? 거기다 최대치까지 볼 수 있게 됐는데?’
신체 외적 능력 7개 항목과 신체 내적 능력 6개 항목이 평균치로 간단히 표시되었고, 마나력만 별도였다.
개조 특성을 쓰면 예전처럼 자세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시야 한켠에 있는 아이콘을 선택함으로써 아주 쉽게 능력치 확인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각 능력의 최대치까지 정확히 표시되고 있어서 더욱 명약관화하게 볼 수가 있었다.
‘육체 한계치는 뭘까?’
2중에 1을 사용 중이라고 표시되고 있는 ‘육체 한계치’ 항목.
아무래도 이것이 체질 개선 2단계를 이룩하면서 얻게 된 새로운 능력인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알기 어려웠다.
한수호는 무릎을 꿇은 모습의 두 번째 아이콘을 선택해 봤다.
그러자 총 12개의 내성 항목이 떠오르며 항목별 효율이 퍼센트로 표시되었다.
[고통+47%][노화+27%][감속+25%][미끄러짐+22%]
[불+31%][물+31%][번개+36%][독+21%]
[두통+24%][구토+23%][숙취+27%][간지러움+21%]
‘와우….’
한수호는 감탄성을 흘렸다.
이렇게나 다양한 내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제 알았고, 자신이 다른 항목에 비해 독이나 간지러움에 취약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쨌든 무려 12개나 되는 내성이 모두 20%씩 상승한 상태여서 웬만한 디버프 공격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세 번째 아이콘은 감각적인 능력과 관련된 거겠지?’
세 번째 항목인 뇌 아이콘을 선택해 보니, 예상대로 무형의 능력이 수치화되어 떠올랐다.
[정신+17][감지+11][면역+11][초감각+10]
편해도 너무 편하다.
이젠 굳이 개조 특성을 사용해 신체 해부도를 띄울 필요 없이, 시야에 있는 아이콘을 슬쩍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든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능력이 없어진 것도 아니라서, 좀 더 세부적인 정보가 필요할 땐 언제든 개조 특성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수호는 이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슬쩍 체질 개선 특성의 설명창을 살펴봤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필요 마나력: 4,000
-3단계 업그레이드 포인트: 3,000,000LP
이런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도 아직 한 번의 개선 기회가 더 남아 있었다.
‘3단계로 업그레이드하려면 3백만 LP가 필요하다라…. 당분간은 2단계로 만족해야겠구나.’
마음 같아서는 던전을 돌면서 포인트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 3백만 LP를 채우고 싶었지만, 일단 이쯤에서 얻은 것들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아직 2단계 체질 개선을 사용할 기회가 한 번 더 남아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체질 개선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4,000의 마나가 소비되며, 12시간의 수면이 필요합니다. 진행하겠습니까? YES/NO
메시지에 따르면 지금 당장이라도 2단계 체질 개선을 한 번 더 발동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하이가 이곳까지 찾아와서 전하라고 한 말이 신경 쓰였다.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수는 없지.’
한수호는 대충 세수만 하고는 거실로 나가 시원하게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때, 라라가 슬그머니 다가서며 말했다.
“저기, 오라버니.”
라라의 뜬금없는 호칭에 한수호는 하마터면 입에 담고 있던 음료수를 뿜어낼 뻔했다.
“갑자기 웬 오라버니?”
“저한테 장씨 성과 비돈귀살이라는 양부모를 주셨으니 오라버니 맞잖아요.”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어…. 아무래도 이하이라는 여자가 가져온 문제가 지금 시작되는 것 같아서요.”
라라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감지 수치가 11이나 되는 한수호보다 라라의 감각이 한발 더 빨랐다.
한수호는 이제야 자신의 하우스 근처로 모여드는 차량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총 여섯 대.
먼저 다섯 대의 차량이 근처에 멈춰 섰고, 차 안에서 상당한 숫자의 마공사가 우르르 나와 주변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죄다 진급이군.’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진급의 마공사였다.
직접 눈으로 본다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었지만, 굳이 창문을 열어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잠시 후, 또 다른 차량 한 대가 접근했다.
그 차량 안에서는 더욱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궁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차 안에 탄 사람들 중 둘은 궁급이 확실했고, 다른 하나는 궁급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을 지녔다.
“두 사람만 빼고 전부 강화인간인 것 같아요.”
라라는 정보를 읽는 특성을 가진 것도 아닌데, 상대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강화인간들을 만들어낸 장본인까지 등장했나 보군.”
“역시, 오라버니도 느끼셨군요?”
“후…. 오늘도 상당히 피곤해지겠어.”
한수호는 작게 중얼거리다가 인벤토리에서 후드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나 회로를 살짝 개조해 후드티의 컬러와 형태를 변경시켰다.
지난번, 지소연과의 전투 때 여러 사람들에게 보인 옷이라 그냥 입고 있으면 눈에 확 띌 것 같았다.
한수호는 변경된 후드티를 걸치고, 허리엔 라뮬검을 착용했다.
“저들과 한바탕 붙는 건가요?”
라라는 한수호가 전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괜히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우릴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으니, 대응할 준비 정도는 해야겠지.”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라라가 주먹을 뚜둑거리며 묻자 한수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알겠어요. 죽지는 않겠지만, 죽여달라고 애원할 정도의 고통은 선사해 줄게요.”
“미리 말하는데, 쓸데없이 이상한 노래 같은 거 불러서 정신 산만하게는 하지 마라. 괜히 그 능력 썼다가는 네 정체까지 탄로 날 수 있으니까.”
“물론이에요.”
라라는 근 일주일 동안 집에만 갇혀 지냈던 답답함을 이 기회에 확실히 풀어낼 생각이었다.
딱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
세이렌의 여왕인 라라에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쿵 소리가 울리더니 이하이가 공터에 떨어져 내렸고, 낯선 침입자들과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으로 마나 파동이 일어나더니 모든 소리가 차단되어 버렸다.
“침묵 마법이 걸려있는 아티팩트가 사용된 거예요.”
“대화 좀 엿들으려고 했는데, 침묵 마법이라니. 거참 아쉽네.’
한수호가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라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음파 쪽 관련해서는 제가 한 능력 한다는 거 잊으셨어요?”
라라는 컨테이너의 벽을 사이에 두고 이하이와 침입자들이 모여 있는 쪽을 향해 똑바로 섰다. 그리고, 입을 동그랗게 말아 숨을 훅 불어냈다. 순간,
지잉-
도넛처럼 생긴 공기의 파동이 컨테이너의 벽을 통과해 밖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한수호는 그들의 대화를 모두 다 들을 수 있었다.
메디컬 게이트의 CEO인 김명중이 활의 열쇠와 사의 열쇠에 대해 떠들어 대는 말들과 이하이가 미래에 대해 따지듯 던지는 말들.
그들의 대화 속에서 한수호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김명중이 겪었다는 미래가 이산이 본 미래와 다르다는 기이한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