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한수호의 압박은 무시무시했다.
주먹 한 방에 멀리 튕겨 나간 김명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든 한수호는 이번엔 그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뻗어냈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을 만큼 무섭게 빠른 속도.
김명중은 와장창 부서져 나간 방어막 위로 다시 한번 중첩으로 부동강막을 사용했다.
더불어 그의 무기인 혼마백도를 휘둘러 한수호의 공격을 최대한 방어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충파.’
한수호는 김명중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기에 바로 ‘충파’를 사용했다.
꽈앙!
한수호의 단단한 주먹이 몇 배나 두터워진 부동강막 위를 후려쳤다.
하지만 아무런 충격파가 일어나지 않았다.
김명중은 자신의 부동강막이 한수호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고 생각했고, 혼마백도를 쥔 손에 무려 2천이 넘는 마나를 쓸어 담았다.
바로 그 순간,
후웅
두터운 부동강막을 뚫고 막대한 힘이 밀려들었다.
그 힘은 이제 막 종 베기에 들어간 혼마백도를 거칠게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앙!
반경 100미터나 되는 거대한 대공동이 들썩일 정도의 커다란 폭발.
그 직후, 한 사람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날았다.
그는 김명중이었다.
한수호의 충파가 부동강막을 관통해 김명중의 검에 직접 타격을 가한 것.
차라리 도를 쥔 손을 놓았다면 무기만 날아가고 말았으련만, 억지로 도를 거머쥐었던 탓에 손아귀가 찢기고 몸 내부까지 진탕되고 말았다.
“크아악! 죽여 버리겠다!”
분기탱천한 김명중은 허공에서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은 뒤, 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그리고 더욱 더 강력한 불길을 일으키는 혼마백도를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꽈앙. 꽈과광! 꽈아앙!
혼마백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바닥이 퍽퍽 깨져나갔고, 공간이 찢기며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수호에게 적중되는 공격은 단 하나도 없었다.
가볍게 몸을 휙휙 비틀었을 뿐인데 김명중의 모든 공격이 빗나가고 있었다.
한수호의 눈은 김명중의 움직임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강한 힘으로, 어느 정도의 빠르기로 공격이 날아들지 너무 뻔하게 보였다.
‘이 자…. 회귀한 이후로 전투 경험을 쌓기보단, 마나력을 올리는 데에만 집중했구나.’
김명중의 전투 패턴을 보고 나니,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김명중이 어떤 방법을 써서 회귀할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회귀 전에 너무나 강력한 적을 마주한 탓에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강적.
그런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압도적인 마나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회귀한 이후, 마나력을 높일 방법을 찾았던 것이고, 그 방법이 바로 ‘마나 회로’를 몸에 각인하는 것이었을 터.
마나 회로를 몸에 각인시킴으로써 아스루나 세계에 가득 찬 마나를 끊임없이 빨아들여 그렇게나 높은 마나를 축적해 낼 수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마나력을 무턱대고 높여봐야 비슷한 수준에서나 큰 힘을 발휘할 뿐.
지금처럼 자신보다 전투 경험이 많고, 수많은 실전을 통해 완벽하게 마나 회로를 이해하고 있는 한수호 같은 적을 만나게 되면, 말 그대로 깡통 마공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마나는 많지만, 그 마나를 최상의 상태로 사용해야 할 육체가 미달이니 지금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델링그라는 마화기에 더욱 눈독을 들이는 것일지도.
‘실전에서는 이하이가 더 강할 거 같은데.’
한수호 본인이 너무 빠르게 강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김명중의 전투 능력은 기대에 너무 못 미쳤다.
회귀한 이후에 사업을 확장하고, 재력을 축적하는 데만 신경을 써서일까?
김명중의 실전 능력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더 싸워봐야 시간 낭비겠어.’
한수호는 마무리를 위해 마나 압축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수호가 뒤로 살짝 물러나며 어깨를 젖히자 어째서인지 김명중도 뒤로 훌쩍 물러난다.
한수호는 의아해하면서도 딱히 경계하지 않은 채 뒤로 당긴 주먹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키이이이잉
주먹 앞에 야구공만 한 빛의 구체가 응집되더니 빠르게 크기를 줄여갔다.
단 1초 만에 쌀알 크기로 줄어든 빛의 구체.
콰지지지지직
한수호의 주먹에서 엄청난 양의 뇌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한수호가 사용한 마나 압축법은 무려 3배짜리.
대략 1,200에 달하는 마나를 담았으니, 3,600의 파괴력을 뿜어낼 것이다.
한수호는 이 공격에 김명중이 최소한 정신을 잃고 쓰러질 거라고 확신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앙!
김명중이 바닥을 박차고 높이 날아올랐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한수호를 노려보는 김명중.
그가 이를 뿌드득 갈며 혼마백도를 두 손으로 마주 잡고 소리쳤다.
“모든 건 네 놈이 자초한 거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대애애애애앵
거대한 범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일더니, 김명중의 머리 위쪽으로 최소 30미터는 될 것 같은 황금 불상이 홀연히 나타났다.
합장하는 부처의 모습을 닮은 황금 불상은 한수호를 향해 담담한 눈빛을 흘려보내며 오른손을 떼어, 아래로 쭉 뻗어냈다.
손바닥 크기만 5미터가 넘는 거대 불상의 손이 한수호를 짓이겨 버릴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밀어닥쳤다.
그 손바닥 중심에는 김명중의 혼마백도가 심어져 있었다.
마치 황금 불상의 손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김명중이 온몸을 내던지며 화염의 백도를 내리긋는 모습은 한수호로서도 처음 보는 엄청난 장관이었다.
콰우우우우우우
공기를 가르며 날아드는 황금 불상의 손바닥.
그리고 그 손바닥의 중심에서 사람 키만 한 불길을 토해내는 백도를 든 김명중.
한수호는 상대의 엄청난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나를 한껏 압축시켜놓은 주먹을 비스듬히 뻗어냈다.
황금 불상의 손바닥에 비하면 턱없이 작기만 한 주먹에서 수십 줄기의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주먹과 손바닥.
쌀알처럼 작은 빛의 구체와 화염을 폭사하는 2미터 크기의 혼마백도.
두 개의 힘이 허공에서 그대로 마주쳤다.
꽈앙!
짧고 강렬한 충격음.
한순간 모든 것이 정지한 듯,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허공에서 정확히 마주친 한수호의 주먹과 불상의 손바닥.
숨죽이는 시간이 정확히 3초가 흘렀을 때,
터엉!
놀랍게도 작은 주먹이 거대한 손바닥을 위로 튕겨 냈다. 하지만,
콰우우우우
튕겨 나간 손바닥 뒤로 또 다른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그건 황금 불상의 왼손이었다.
방금 전보다 더 강한 힘을 품고 날아드는 손바닥을 향해 한수호는 다시 한번 주먹을 뻗어냈다. 그리고,
쿠아아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 튕겨 나간 건 한수호였다.
3,600에 달하는 마나를 실어 날린 공격이었는데도 황금 불상의 손바닥이 오히려 한수호의 주먹을 밀어내 버렸다.
‘몇 초 만에 마나를 이렇게나 증폭시켰다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첫 번째 부딪침에서는 한수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런데 두 번째 손바닥이 날아들 때는 한수호보다 강력한 마나를 담고 있었다.
한수호는 머뭇거리지 않고 2차, 3차의 공격을 이어갔다.
콰광! 콰가강!
충격이 계속될수록 황금 불상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이대로는 얼마 안 가 한수호가 완전히 밀려버릴 상황.
한수호는 어쩔 수 없이 마나 압축법을 4배로 높여야 했다.
푸슈아아악
4,800에 달하는 마나가 온몸으로 뿜어지자 그의 몸은 용암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수호는 그 상태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황금 불상의 손바닥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쩌엉-
한수호의 주먹은 수면 위에 떨어지는 돌덩이처럼 강력한 마나 파동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콰과과과과과과
주변 공기마저 불태워 버리며 불상의 손바닥을 날려버린 한수호.
순식간에 황금 불상의 왼손이 지워지듯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황금 불상은 물러나지 않고 다시 오른손바닥을 뻗어냈다.
허공에서 다시 마주치는 주먹과 손바닥.
꽈아아아아앙!
이번에 튕겨 나간 건 또 다시 한수호였다.
무려 4,800의 마나가 담긴 공격을 황금 불상이 또 한 번 막아낸 것이다.
‘이게 대체…?’
한수호는 막강한 반탄력에 뒷걸음질 치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빠르게 현 상황을 분석한 한수호.
그의 머릿속으로 김명중이 펼쳐낸 황금 불상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또렷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군. 저자의 특성은 강한 상대일수록 더 빛을 발하는 능력이었어.’
김명중의 특성, 황금 불상.
이 특성은 한 번이라도 공격을 주고받으면, 상대가 지닌 마나의 수준을 파악해 그에 준하는 힘을 끌어낼 수 있는 놀라운 효과를 지녔다.
처음 한 번은 밀릴지언정, 두 번째부터는 오히려 상대의 힘을 넘어서는 반격을 가하는 게 가능한 것이 바로 김명중의 특성인 것이다.
한수호는 이를 꽉 깨물고는 주먹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적이 강할수록 강해지는 특성이라…. 과연 내 힘의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의외로 해법은 간단했다.
아무리 상대의 강할수록 그만큼 강해지는 특성이라고 해도, 그 한계가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법.
한수호는 김명중의 특성이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끊임없이 힘을 높여 보기로 했다.
간단히 마나 압축법을 다섯 배, 여섯 배로 계속 높여가면 되겠지만, 현재 한수호가 펼칠 수 있는 마나 압축법은 네 배가 최대.
잠시 어떡할지를 고민하던 한수호는 금방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방법밖에 없겠군.’
한수호에겐 마나 압축법 다섯 배보다 더욱 강력한 한 수가 있었다.
광폭화 5단계.
현재의 능력을 단숨에 두 배로 높여주는 특성.
게다가 조금 무리를 한다면 거기서 다시 두 배의 힘을 높이는 것도 가능했다.
우드드득
광폭화를 발동시킨 순간, 한수호의 몸이 찰나적으로 부풀었다가 빠르게 정상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에, 한수호의 모든 신체 능력은 두 배로 확 치솟아 올라 있었다.
마나력도 최대치인 4천에서 8천 이상으로 크게 상승했다.
후우우우우웅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지면이 진동했고, 공기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구 날뛰며 사방으로 폭풍을 일으켰다.
푸쉬쉬쉬쉬쉭
차가운 물 속에 수천 도로 달구어진 쇳덩이가 떨어진 것처럼 공간이 들끓기 시작했다.
“장태산.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내 강림불을 깨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김명중은 자신의 특성인 ‘파황강림불’을 굳게 믿고 있었다.
마지막 5단계 업그레이드를 코앞에 두고 있는 파황강림불.
마나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간신히 4단계까지 올린 이 특성은 한계치를 넘는 힘이 아닌 이상은 그 어떤 공격에도 뚫리지 않기에 무적에 가까운 효과를 지녔다.
하지만, 한계치 이상의 힘에 노출되게 되면 무적 효과가 깨지게 되고, 오히려 특성 단계가 퇴보해 버리는 무서운 페널티가 있었다.
‘저 녀석의 힘이 강림불의 한계치를 넘는 일은 없겠지.’
김명중이 불러낸 강림불의 한계치는 그가 지닌 최대 마나력의 두 배까지였다.
그의 현재 마나력은 3,671.
그렇다는 건, 김명중의 강림불이 7,300에 달하는 마나력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이었고, 그에 준하는 힘을 적에게 되돌려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명중은 파황강림불의 힘으로 한수호를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후아아아아악
한수호가 뽑아든 검에서 자신의 혼마백도를 능가하는 불길이 뿜어지는 걸 본 순간, 불길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한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주변 공기마저 마구 들끓게 하는 것을 보니 온몸에 소름까지 돋는다.
‘설마…?’
아주 미미하게 싹튼 의구심.
고개를 들어 올린 김명중은 장엄한 모습으로 자신의 등 뒤에 서있는 황금 불상을 바라보고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와라, 장태산!”
김명중은 호기롭게 외쳤고, 한수호는 그에 대한 답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쾅!
발로 바닥을 찍는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로 커다란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거대한 철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진 것만 같은 놀라운 광경.
한수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김명중은 한수호를 놓쳤지만, 강림불은 놓치지 않았다.
살며시 미소 띤 얼굴로 눈동자만 움직여 한수호가 어디에 있는지를 즉시 찾아냈다.
우르르르릉
마치 우레가 내려치는 소리.
황금 불상이 허리를 힘차게 비틀며 왼쪽 하단부를 향해 거대한 손바닥을 찍어 내렸다.
그때, 손바닥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 한수호가 두 손으로 라뮬검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촤앙-
짧고 간결한 수직 베기.
검이 공간을 베어낸 순간, 초승달 모양의 화염이 쏘아지듯 확 뿜어졌다.
김명중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공격을 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훗. 그 정도로는 내 강림불에 아무 상처도 줄 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직
초승달 화염이 황금 불상의 손을 갈라버렸고,
콰드드드드득
팔을 반으로 가른 뒤, 몸통과 얼굴까지 쪼개버렸다.
그리고 아직 입조차 닫지 못하고 있는 김명중의 얼굴 바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콰앙!
반월의 화염은 그러고도 모자라 진입차단벽의 초강력 합금마저 박살 내고 대공동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푸스스스스슷
황금 불상이 가루로 화해 사라지고 있었다.
김명중은 넋이 나간 채 반쯤 입을 벌리고 있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이럴 수가….”
한수호는 그런 김명중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라뮬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