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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98화 (198/375)

198화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회귀에서는 미래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산과 김명중은 물론이요, 발자크와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회귀했다.

그 회귀자들은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이산과 김명중은 그들을 찾아 힘을 합칠 계획이라고 했다.

‘그들이 회귀했다는 시점과 내가 죽음을 당했을 때의 시기가 완전히 일치해.’

한수호는 이 두 번째 회귀가 자신 때문에 발생했다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회귀가 이루어진 시점이 한수호가 이대성의 손에 죽음을 당했던 시점과 완벽하게 겹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왜 그들의 기억까지 그대로 남겨진 거지? 나와 같이 회귀했던 이대성은 회귀 전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잖아?’

한수호는 수개월 전 자신이 직접 목숨을 취한 이대성을 떠올리며 깊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지금의 세상엔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회귀자들이 꽤나 많았다.

한수호를 비롯해, 이산과 김명중이 그러했고, 김명중과 함께 결전을 준비하던 수뇌부 인물 다섯 명까지 치면 여덟 명이나 된다.

‘그중엔 나스타샤라는 여인도 있다고 했지?’

나스타샤.

올해 8월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게 되는 미국인 마공사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한수호가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 나스타샤는 2051년 8월에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2058년도에 김명중과 함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걸까?

‘설마,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2051년에 죽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면, 세 번째 회귀가 있었다거나.’

후자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나스타샤가 2051년 8월에 죽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좀 더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그녀가 2058년도에도 살아있을 수 있으며,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회귀할 수 있었을 테니까.

‘누군가 나스타샤를 죽이려 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던 모양이구나. 그 사실이 알려지면 또다시 암살당할까 봐 죽은 척했던 것이고.’

한수호는 상황을 대충 그려볼 수 있었다.

나스타샤를 죽이려 했던 자들은 분명 이프리트와 연관이 있을 터.

다만 그들이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스타샤를 먼저 죽이려 했냐는 것이다.

이산이나 김명중보다 먼저 죽여야 했을 만큼 그녀가 더욱 중요한 인물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

‘나스타샤의 특성은 투시였던 걸로 아는데….’

나스타샤의 특성인 투시는, 단순히 사물을 관통하는 능력이 아니다.

투시를 사용하는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경우엔, 그 사람의 미래까지도 투시로 살펴보는 게 가능했다.

얼핏 듣기엔 대단해 보이지만 그래 봐야 한 달에서 1년 정도를 매우 단편적인 정보로만 알아내는 것이라 이프리트에서 1순위 타겟으로 삼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한수호는 나스타샤라는 인물이 8월에 한국을 방문하게 될 테니, 그때 그녀에게 접근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회귀.

그리고 그 회귀 속에서 미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덟 명.

김명중은 회귀한 인물 중에는 이프리트의 수뇌부가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이프리트의 수장이 회귀까지 한 인물이었다면, 이산이나 김명중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 말을 100% 신뢰할 수 없었다.

과연 회귀가 일어난 게 단 두 번뿐일까?

이산이 회귀하기 전부터 이미 회귀한 인물이 있었던 거라면?

그자가 모든 걸 알고 미래를 바꿔 이프리트의 수장이 된 것이라면?

이산이나 김명중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변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냥 놔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가능성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수호의 생각에, 이프리트의 수장은 백진성이나 혈마 신유, 또는 새한교의 교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어쩌면 그들 셋 모두 이산보다 먼저 회귀한 인물일지도 모르고.’

이런 가정을 세운다면, 한수호가 지닌 미래 지식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회귀자들이 계속해서 미래를 바꾸고 있어서 한수호가 겪었던 미래마저 나비효과가 되어 하나둘 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젠 내가 겪은 미래의 경험조차 완전히 믿을 수가 없겠어.’

한수호는 자신이 아는 미래 정보를 너무 의지하다간 크게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다.

대신 김명중과 함께 회귀했다는 마공사 네 명의 정체를 확인해서 그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행했는지 파악해 보기로 했다.

‘일단은 체질 개선부터 마무리 지어야겠지.’

한수호는 심호흡을 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장 체질 개선 특성을 발동시켰다.

>>두 번째 체질개선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4,000의 마나가 소비되며, 12시간의 수면이 필요합니다. 진행하겠습니까? YES/NO

‘마나력 4천이라….’

김명중과의 전투로 인해 거의 3천이나 되는 마나력을 소비했기에 체질 개선을 실행하기 위한 마나력이 부족했다.

한수호는 감았던 눈을 뜨고, 베터리 코어를 꺼내 소비된 마나를 채워 넣었다.

단숨에 4천의 마나가 꽉 채워지자 다시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과연 이번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체질 개선을 실행한 한수호.

꽉 감은 눈앞에 가로로 하얀 줄 하나가 그어진 순간, 한수호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모든 것이 깜깜하던 세상에 빛이 스며들었다.

가장 먼저 숲이 나타났고, 한수호의 주변으로 몇 구의 시체가 널브러진 모습이 보였다.

‘여긴…?’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다.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1분 1초도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토록 믿고 있었던 친구이자, 함께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전우인 이대성의 참모습을 알게 된 그날.

한수호는 이대성의 칼날에 팔 한쪽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이대성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웃음은 한수호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마수보다도 흉측한 것이었다.

“지옥에서 또 보자, 새꺄.”

한수호는 뱀 같은 미소를 그리고 있는 이대성을 향해 남은 한 손의 중지를 힘껏 치켜세우며 피식 웃었다. 아니, 웃으려고 노력했다.

푸욱

검이 가슴을 파고든다.

차가운 검날이 살거죽을 뚫고 심장으로 파고드는 느낌은 너무도 섬뜩하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이상하다.

이때의 기억을 떠오를 때면 항상 느껴지는 낯선 감각.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야 하는데,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전해져야 하건만 검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한수호는 늘 그랬듯이 이 알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가슴을 내려다본다.

이대성이 굳게 쥐고 있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검 한 자루.

그 검의 끝이 가슴을 1센티 정도 파고든 상태로 멈춰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대성도 마치 마네킹처럼 딱 멈춰서 움직이질 않는다.

시간이 멈춰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만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이 검을 밀어내도 내가 죽는 건 늘 변하지 않았었지.’

한수호는 벌써 수백 번도 넘게 경험한 꿈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꿈속의 자신은 부질없는 동작을 늘 반복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꿈속의 한수호는 손을 뻗어 이대성의 검을 밀어냈다.

가슴에 박혀 들었던 검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자 그제야 약간의 고통이 밀려든다.

“으윽….”

고통은 있지만 그저 따끔한 정도다.

검은 가슴팍에서 고작 10센티 정도 멀어진 상태로 다시 멈췄다. 그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단단히 고정되어 더 이상은 밀어낼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이제 자신의 눈앞에 떠오를 익숙한 메시지를 기다렸다.

히든피스가 충족되었다며 광폭화 특성의 파이널 이팩트가 잠시 해제되고, 봉인되었던 개조 특성이 해금된다는 메시지.

그런데, 이날 따라 한수호의 시야에 비친 이대성의 얼굴이 유난히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매서운 눈매와 살짝 비틀린 입꼬리를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늘 거만하게 내려다보던 이대성.

‘네 녀석은 고작 내가 지닌 광폭화 특성을 얻겠다고, 전우를 배신하고 날 배신했던 것이냐?’

한수호는 아직까지도 이대성이 왜 이런 미친 짓거리를 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프리트라는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이대성이 혹 그들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죽인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김명중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그 생각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김명중은 말했다.

이프리트에 속해 있는 마공사들 중 이대성이라는 이름의 특무부 요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게다가 마공 특무부에 숨어든 이프리트의 첩자들은 악몽급 게이트가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자크의 손에 대부분 살해당했다고 말이다.

그것이 최초의 회귀자라고 볼 수 있는 이산이 본 미래였으며, 김명중이 전해 들은 원래의 미래였다.

그렇기에 지금은 이대성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대체 왜…. 내 광폭화 특성을 얻어서 뭘 하려고 그런 짓을 벌인 거지?’

한수호는 평상시 꿈을 꾸던 때와는 다르게 이대성을 무섭게 노려봤다.

그의 표정에서라도 자신을 배신한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다.

바로 그때, 전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한수호의 시선을 끌었다.

눈앞으로 히든피스 어쩌고 하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그 메시지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상처가… 없어?’

검을 쥐고 흉측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이대성.

그의 이마에 있어야 할 상처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한수호는 꿈속에서조차 고개를 흔들며 이대성의 이마를 다시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지금은 상처가 다시 보인다.

방금 상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건 한수호의 착각인 걸까?

하지만, 한수호는 그것이 착각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을 깔아보고 있는 이대성의 얼굴과 그보다 훨씬 젊은 열아홉 청년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성의 본가가 위치한 충주시.

그곳에서 마주했던 열아홉 살 이대성의 얼굴이 스물여섯의 이대성과 겹쳐진 것이다.

한수호는 똑똑히 기억한다.

이대성의 이마에 있던 상처는 그가 아홉 살 때, 그를 납치하려는 괴한의 손을 피해 도망치다가 생긴 상처라는 것을.

괴한의 손속이 하도 악독해서 이마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고,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해 이대성은 늘 앞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녔었다.

그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더불어 한수호 자신이 이대성의 본가인 충주를 찾아가 어린 그를 죽일 때 그 상처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아홉 살에 상처를 입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으니 열아홉의 이대성에게도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없었다.

이대성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시체를 뒤집어 얼굴을 살폈을 때도 이마의 상처를 봤다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럴 수가…!’

늦어도 너무 늦게 사실을 깨달았다.

한수호는 자신이 죽인 어린 이대성이 미래의 그 이대성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에 상처에 대한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녀석이 내가 아는 그 이대성이 아니었다고?’

온몸으로 소름이 돋는다.

자신의 손에 죽은 열아홉의 청년.

그가 이대성이 아니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대성이 두 명일 리는 없다.

이대성은 서령 그룹의 회장 이재춘의 손자였고, 대한맹의 부맹주인 이자성의 아들이다.

그 어디에서도 이재춘의 손자가 둘이라는 소린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마에 상처가 있는 진짜 이대성과 한수호가 수개월 전에 죽인 이대성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 다른 이대성이 있었다니!’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자신이 다른 이대성을 죽인 거라면, 진짜 이대성은 버젓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친우를 배신하고, 전우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배신자 이대성은 아직 죽지 않은 것이리라.

‘그럼 진짜 이대성은 미래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그것뿐일까?

99%의 확률로 이대성은 다른 사람의 특성을 빼앗을 수 있는 특성까지 여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설마…. 이대성이 마지막 살의 열쇠?’

이산과 김명중마저 아직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마지막 세 번째 살의 열쇠.

그가 이대성이라면 좀 더 그럴듯한 상황을 그려낼 수 있었다.

‘만약…. 이프리트의 수장이 이재춘이나 부맹주 이자성이라면?’

그러면 맞춰지지 않았던 퍼즐 조각들이 대부분 맞아 떨어진다.

한수호는 자신의 꿈속에서 떠올린 이 생각에 상당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이 죽인 자가 다른 이대성이며, 진짜 이대성은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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