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마공 아카데미 학생들끼리의 토너먼트는 다음 날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차 예선전으로 736명의 승리자가 나왔고, 이튿날에는 그 736명이 2차 예선전을 치르게 되었다.
2차 예선전에서도 타임어택 승부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한수호의 시합이 초반에 있었는데, 그의 상대는 부산 아카데미 학생이었다.
한수호는 이번에도 전날과 똑같이 염동파쇄기로 상대를 짓눌러 버림으로써 간단하게 승리를 따냈다.
시합 시간은 45초.
어제 있었던 최단 시간보다 3초를 더 앞당긴 기록이었다.
한수호의 시합이 끝나자 모든 학생이 무섭게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어떡하든 45초에서 단 1초라도 줄여보겠다며 무리를 하는 학생들까지 나타났다.
그렇다 보니 너무 무리를 하게 되어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었다.
총 4시간에 걸쳐 치러진 2차 예선전.
한수호의 친구들을 비롯해 제주 아카데미 학생들과 이대성의 무리까지 한수호가 만들어낸 기록을 깨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2차 예선전이 마무리되는 시간까지도 45초의 벽을 넘는 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들 1차 예선전을 이기고 올라온, 나름 강자에 속한 학생들이었기에 전처럼 쉽게 패배하고 물러서는 학생이 거의 없었던 것.
그만큼 한수호가 세운 45초의 기록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2차 예선전은 막을 내렸다.
오후 12시.
모든 학생에겐 1시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챙겨 먹은 한수호는 3차 예선전을 준비하며 마공돔 바깥쪽의 잔디밭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 한수호를 향해 한 무리의 학생들이 거침없이 다가섰다.
한수호는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작부터 그들이 자신에게 접근해 올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대성….’
그 학생 무리는 충주 아카데미의 자랑인 이대성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좀 비키지?”
충주 아카데미 학생임을 알리는 ‘삼족오’ 모양의 마크를 가슴에 단 학생 중, 가장 덩치가 작은 학생이 나섰다.
그 학생의 앞을 가로막고 선 인물은 다름 아닌 양소혜.
“우리한테 볼 일이 있으면 예의부터 좀 갖추지?”
충주 쪽 학생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양소혜가 큰 덩치를 앞세워 으르렁거렸다.
“너희들한테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장태산하고 할 말이 있는 것뿐이다.”
“할 말이 있으면 직접 나서라고 해. 괜히 쫄따구 부려먹지 말고.”
양소혜는 작은 덩치의 학생, 신명호에게 말하는 듯했지만 시선은 그 뒤에 서 있는 이대성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몇 미터 뒤쪽에 있던 이대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안. 내가 아는 녀석인가 싶어서 와 본 거니까 그렇게 경계할 거까진 없어. 다들 반갑다. 난 이대성이라고 한다.”
이대성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음을 머금은 채 양소혜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대성? 그럼 네가 그 서령 그룹의 후계자인 이자성 부맹주의 아들?”
양소혜도 이대성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바로 알아봤다.
이대성의 손을 잡고 악수를 마친 양소혜.
그녀는 잘생긴 데다가 바로 잘못을 시인하는 수더분한 성격인 이대성에게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여긴 내 친구들이야. 여기 까탈스럽게 생긴 녀석은 최지혁이고, 예쁘고 강인해 보이는 여자애는 장한설, 그 옆의 작고 귀여운 아이는 이하윤이라고 해. 머리카락 때문에 좀 음침해 보이는 녀석은 신소이. 그 옆에 붙어서 눈치 보고 있는 녀석은 백윤후고.”
친구들의 특징을 잘 잡아 설명해 주자 이대성과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한결 분위기가 가벼워지자 이대성은 한수호 앞으로 좀 더 다가섰다.
“네가 장태산이지? 네 시합은 인상 깊게 잘 봤다. 염동력 계열의 특성을 가지고 있나 봐? 대단하던데.”
마치 처음 본 것처럼 하는 말에 한수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네 특성도 만만치 않게 대단해 보이던데. 강화 계열 특성이겠지?”
한수호는 이대성의 특성이 ‘신체 강화’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앞에 서 있는 이대성이 회귀 전의 그 이대성이 확실한 이상, 신체 강화 특성과 더불어 남의 특성을 빼앗는 특별한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나에 대해서 잘 아나 봐? 어제, 오늘 시합에서는 내 특성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도 알아보는 걸 보니….”
“서령의 황태자 이대성을 못 알아보면 쓰나.”
“하하하. 이제 보니 날 아는 게 아니라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잘 아는 거였네. 하긴,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내 이름이 여기저기에 알려질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잘 아네.”
한수호는 웃는 낯이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경기장 위에서 마주하면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한 승부를 겨뤘으면 좋겠다. 그 말을 하고 싶어 온 거다.”
이대성이 웃으며 한수호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빤히 내려다보던 한수호.
당장이라도 저 손을 잘라내 버리고 이대성의 목을 날리고 싶었지만, 한수호는 그런 심정을 꾹 누르고 손을 맞잡았다.
“나도 잘 부탁한다.”
“물론이지.”
이대성은 한수호의 손을 강하게 잡아 쥐었다가 힘을 풀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눈인사를 나누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그런 이대성의 머릿속은 지금 꽤나 복잡해진 상태였다.
‘한수호…. 저놈은 회귀 전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건가?’
이대성은 방금 한수호의 손을 잡음으로써 그가 지닌 능력이 얼마나 되고, 어떤 심리 상태인지를 바로 파악해 낼 수 있었다.
그건 이대성이 11살에 이름 모를 마공사를 죽이고 약탈해 낸 ‘상대 분석’이라는 특성 덕분이었다.
>>접촉을 통해 상대의 능력을 분석합니다.
>>분석결과
- 마나력: 732
- 심리 상태: 시합에서 이대성을 만나도 자신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음
최소 2초 이상의 접촉만 있으면 얼마든지 상대의 능력과 심리를 알아낼 수 있는 특성, 상대분석.
그 결과에 나온 한수호의 마나력은 진급 중간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심리 분석에 나온 결과도 예상외다.
장태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수호가 회귀 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자신을 알아보고 분노에 휩싸이는 것이 정상.
그런데, 한수호는 시합에서 마주했을 때의 승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내 특성이 잘못된 결과를 내놓았을 리는 없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한수호가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가 자신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비돈귀살이 한수호를 양아들로 삼았기 때문에 그저 귀살 장한구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유대룡의 양자가 아니라 장한구의 양자가 되다니. 내가 아는 미래와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몰랐는걸?’
이대성은 한 번 더 한수호를 힐끔 돌아봤다가 고개를 휘휘 젓기 시작했다.
‘뭐 하러 이런 고민을 해? 위협이 될 만한 놈들은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인 것을.’
이대성은 9살 때로 회귀한 이후, 자신이 직접 죽여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말았다.
나이가 어리다고 우습게 봤던 수많은 마공사들이 이대성의 암습에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고, 그들이 지녔던 특성들은 고스란히 이대성의 것이 되었다.
이대성이 가진 특성의 개수는 무려 23가지.
전투형 특성 11가지에 방어형 특성 6가지, 거기다 보조형이 6가지나 된다.
특성의 숫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예정이니, 그 무엇도 거칠 게 없었다.
‘조만간 네 놈의 특성도 꼭 빼앗아 주마, 한수호!’
이대성은 2058년도에 한수호의 특성 광폭화를 차지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었다.
그래서 어떡하든 한수호를 다시 찾아내 그 특성을 빼앗고자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한수호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이 되어서야 한수호가 회귀 전의 신분 대신 장태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한수호를 찾았으니 놈을 죽이고 광폭화 특성을 빼앗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문제는 단 하나.
이대성이 아는 미래와 달라진 것이 너무 많아진 지금, 과연 한수호가 광폭화 특성을 똑같이 각성했냐는 것이다.
시합에서 한수호가 보여준 기술은 염동력에 가까웠다.
회귀 전의 한수호에겐 그런 염동력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광폭화가 없다면 놈의 염동력 특성을 빼앗아 버리면 되겠지.’
이대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아카데미 학생들이 머무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 * *
‘왜 갑자기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
한수호는 되돌아가는 이대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방금 악수를 했을 때, 그의 눈앞에 시스템의 경고 문구가 떠올랐었다.
>>경고!
>>접촉한 상대로부터 불손한 의도가 전해집니다.
>>’상대 분석’ 특성이 당신의 정보를 분석하려고 합니다.
>>이에 따른 당신의 대처를 선택해 주세요.
1)정신 수치 2를 소모하여 정보 방어벽을 설치한다. YES/NO
2)정신 수치 3을 소모하여 역 정보를 흘린다. YES/NO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대가 자신을 향해 특성을 사용했다는 경고가 등장했고, 그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도 묻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수호는 얼떨떨했지만, 전혀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 수치는 17이나 되기 때문.
‘방어벽으로 정보 유출을 막아버리면 오히려 의심을 하겠지?’
한수호는 그런 이유로 두 번째 대처법을 선택했다.
>>역 정보로 다음의 내용을 유출합니다.
-도플갱어의 생명 코어 마나력: 732
-시합에서 이대성을 만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평범한 생각.
시스템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친절했다.
매번 지극히 부분적인 내용만 알려주더니, 이번엔 꽤나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어쨌든 잘못된 정보를 긁어간 이대성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제 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남겨진 한수호는 왜 갑자기 이런 메시지가 등장하게 된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체질 개선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육체의 한계치가 3까지 오르게 되면서 새로 얻은 능력인가?’
어떻게 쓰는 수치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니 그 수치가 새로운 능력의 바탕이 되는 거라 생각되었다.
비접촉인 상태에서는 상대가 어떤 특성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접촉 중인 상태에선 상대가 사용하는 특성까지 알아낼 수 있는 능력.
게다가 그에 맞는 대처법까지 적절하게 제공해 주는 안내 문구라니.
한수호는 이 능력을 제대로 이용한다면 전투 중에도 상대가 사용하는 특성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이대성은 나한테 회귀 전의 기억이 없다고 생각할 테지? 이건 좋은 기회가 되겠어.’
한수호가 아는 이대성이라면,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죽이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회귀 전에도 자신의 광폭화 특성을 빼앗고자 죽이려고 했던 만큼, 이번에도 그 특성을 노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직접 움직여 자신에게 접근을 해야 할 터.
한수호는 일부러 이대성에게 자신을 죽일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죽인 이대성은 대체 누구인 거지?’
문뜩 떠오르는 궁금증.
올해 2월에 한수호는 이대성의 집이 있는 충주까지 찾아가 녀석의 숨통을 끊어버렸었다.
그런데 그 이대성과 완전히 똑같은, 아니 이 이대성이야말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대성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인물이 다시 등장했다.
‘내가 죽인 이대성이 가짜고, 이 녀석이 진짜인가?’
아니면, 한수호가 회귀 전부터 알고 있던 이대성이 애초부터 가짜였다는 말인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한수호는 뭔가를 떠올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말았다.
‘설마, 그때의 그 학생이….?’
이대성의 숨통을 끊어놨던 현장에서 마주쳤던 한 학생.
이대성에게 붙잡혀 온갖 멸시와 고통을 받고 있었던 박현이라는 학생이 문뜩 떠오른 것이다.
한수호는 그 학생을 마주했을 때, 묘한 기시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었다.
낯설지 않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던 박현.
그 박현의 눈빛과 지금 본 이대성의 눈빛이 신기하게도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한수호는 이대성의 신체 능력 수치를 다시 한번 훑었다.
이대성의 신체 수치는 실로 놀랍다.
평균수치 130에 마나력은 1200을 넘고 있다.
비슷한 또래 중에서는 백윤후를 제외하고는 거의 탑에 속할 정도로 수치가 높다.
그리고, 매우 특이한 사실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 : 162
머리 수치가 유독 높게 나온다.
‘그때 만났던 박현이라는 녀석도 머리 수치만 유난히 높았었지.’
한수호는 그때의 기억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엔 그저 머리가 단단해서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이대성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견됨으로써 그가 박현과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대성의 뒤를 따르는 학생들도 그때 폐자재 창고에서 마주쳤었던 이대성의 똘마니들 그대로였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니 어떻게 된 것인지 대충 윤곽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대성의 죽음이 지역 신문에서조차 다뤄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거군.’
서령 그룹 회장의 손자이자 대한맹 부맹주의 아들이 죽었는데 그 어떤 메스컴에서도 그의 죽음을 다루지 않았던 이유.
그건 죽은 이대성 대신, 다른 인물이 이대성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한수호의 손에 죽은 이대성을 따르던 똘마니들조차 속아 넘어갈 정도로 완벽한 변신.
한수호는 저 이대성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인물이 창고에서 만났던 박현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