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206화 (206/375)

206화

거대한 티라우론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잘린 단면에서는 불길이 확 치솟아 오르더니 머리를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한수호는 머리를 잃은 티라우론의 몸통마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생존한 학생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 목숨을 잃은 학생은 어쩔 수 없었지만, 살아남은 학생들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게 해야 했다.

그래서 학생들을 한 명씩 붙잡아 안개의 바다 위쪽으로 휙휙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한수호의 손에 허공으로 날려진 여덞 명의 학생들.

그들은 안개의 바다 위로 튕겨지듯 날아올랐다가 안개가 닿지 않는 관중석 위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쨌든…. 살았다!”

학생들은 아직 공포와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시야가 확보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안개의 바닷속에서 계단을 오르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수호를 바라봤다.

짙은 남색의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눈 아래로는 크고 두터운 마스크를 써서 용모를 알아볼 수 없는 사내.

그가 저벅저벅 계단을 올라오자 학생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당장 여길 떠나라.”

한수호의 무감정한 음성에 학생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하지만 학생 대표인 태범이가 아직 저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한수호가 반문하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다섯이나 죽었다. 너희들이 여기에 있어 봐야 아무 쓸모도 없어. 오히려 짐이 되면 모를까.”

“….”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지만 방금 전에 이미 현실을 마주해 봤기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알았으면, 당장 꺼져.”

한수호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몸을 돌렸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머뭇거리고만 있을 뿐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에 한수호는 작게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5초 후에도 그곳에 있는 녀석은 내가 저 안개 속으로 집어 던져 주겠다.”

차갑게 뱉어진 말에 학생들이 흠칫 놀랐고, 곧바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5. 4. 3….”

3까지 셋을 때,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공돔 밖을 향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직 안개에 휩싸이지 않은 출입구를 통해 마공돔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한수호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어렵구나, 어려워.”

작게 중얼거린 한수호는 안개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중앙의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감각을 좀 더 다듬어 보니, 또 다른 중대형 몬스터 한 마리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포위망을 뚫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사이 몬스터들 숫자가 또 늘었어.’

방금 죽인 티라우론을 빼고도 열여섯 마리나 되는 몬스터가 안개 속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사이 여섯 마리나 늘어난 것이다.

다행히 추가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지만 여기서 몬스터가 더 늘어나게 된다면, 분명 추가적인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한수호는 게이트 안에 들어가 직접 게이트 폐쇄를 시도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방금 전, 게이트가 생성되는 순간 한수호는 개조 특성을 이용해 게이트의 정보를 빠르게 파악했었다.

그 정보를 잘만 이용하면, 이 게이트를 폐쇄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급 던전 ‘안개의 미궁’]

-보유 포인트: 100,000LP

-위험도: ★★★★★★★☆☆☆

-아스루나 대륙의 ?급의 크리스탈 골렘 사툴란의 미궁입니다.

-사툴란의 열쇠가 등장하여, 수백 년 동안 잠겨져 있던 미궁이 드디어 열렸습니다.

-미궁의 주인, 사툴란을 쓰러뜨리면 아스의 신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발자크가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포인트를 흡수하면 던전의 위험도가 상승하여 클리어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포인트를 흡수하겠습니까? YES/NO

던전의 등급은 물음표.

하지만 게이트 입구를 통해 티라우론이 등장했으니 최소 3급 이상이다.

위험도를 나타내는 검은 별의 숫자는 일곱 개.

한수호로서는 처음 보는 난이도였다.

‘사툴란이라는 골렘이 보스라는 거겠지.’

그런데, 이 던전이 갑자기 열리게 된 이유가 ‘사툴란의 열쇠’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그 말은, 누군가가 그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고, 그자가 고의로 이곳에 안개의 미궁과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어버렸다는 뜻이었으니까.

‘대체 누가…?’

마공돔에 있던 누군가가 미궁의 열쇠를 지니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필이면 이곳에 미궁 게이트가 열렸다는 건, 다분히 의도된 행동일 터.

무엇을 노리고 이 일을 벌였는지가 관건이었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게이트의 정보에는 사툴란을 쓰러뜨리면 아스의 신물을 얻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게이트 정보에 나온 아스가 내가 아는 그 아스가 맞다면 아스의 신물이라는 게 어쩌면 나샬일지도 모르겠는데?’

한수호는 아스라는 이름을 안다.

그가 가진 강력한 무기인 라그나로크가 바로 아스의 무기였으니까.

아스의 무기는 파괴검이라는 명칭이 있지만, 아스루나 세계에서는 ‘라그나로크’라고 불렸다.

이는 라라가 확인해 준 것이니 틀릴 리가 없었다.

총 네 개의 무기로 이루어진 파괴검 라그나로크.

라뮬, 그랑, 나샬, 로크 중에서 한수호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건 나샬 하나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의 신물이라는 말에서 ‘나샬’일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반드시 던전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생겨버린 건가?’

한수호는 아스의 파괴검 세트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나샬을 얻기 위해서라도 안개의 미궁 속에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이 주변부터 정리하고.’

한수호는 안개 속으로 다시 뛰어들 채비를 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20미터 이상의 두께로 마공돔 경기장을 꽉 채우고 있는 안개의 바다.

그 안에서는 지금 열여섯 마리의 중대형 몬스터들과 마공사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대충 가늠해 보니 2분이 지날 때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2분 내로 전멸시키고 게이트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겠군.’

한수호가 그런 계획을 세울 때였다.

쉬이이익

마공돔 천장 쪽에서 작은 뭔가가 빛처럼 날아들었다.

한수호의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든 하얀 무엇.

한수호는 그것이 무언지 이미 알고 있기에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캬릉!

그건 고니였다.

예상보다 다소 늦어진 건, 짙은 안개의 바다를 뚫기 위해서였을 터.

차르륵. 철컥, 철컥!

허공에서 수천 조각으로 분해되었다가 재결합 된 고니는 어느새 한수호의 얼굴에 달라붙어 안면 마스크 형태로 변신해 있었다.

“너까지 왔으니 이제 두려울 게 없겠다. 가자, 고니!”

한수호는 호기롭게 외치며 바닥을 힘껏 박찼다.

* * *

[어르신. 딱 네 마리만 처리해 주세요. 대신 2분 내로 끝내야 합니다!]

김무성은 느닷없이 들려온 마나전음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 음성이 한수호의 것임을 금방 알아보고는 사방으로 마나전음을 날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만, 알았다.]

김무성은 한수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들을 수 있게 마나전음을 퍼트린 것이다.

근처에 있던 교수들이 김무성의 마나전음을 듣고 무슨 소린지 의구심을 가졌지만, 제 코가 석 자인 터라 길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쿠워어어어억!

코뿔소의 머리에 고릴라의 신체를 가진 9미터짜리 몬스터 코세러스의 괴성은 근거리에 있던 교수들의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게다가 코세러스의 좌우에는 전갈 형태를 한 스콜로가 쉭쉭 소리를 내는 꼬리를 흔들고 있어서 더욱 위협적이었다.

가장 무서운 건, 교수들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유령 같은 팬텀리퍼였다.

총 네 마리.

김무성과 세 명의 교수가 맡고 있는 놈들이 사실상 게이트를 나온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놈들이었다.

“내가 팬텀리퍼를 처치할 테니 나머지를 맡아주게나.”

한수호의 말을 믿기로 한 김무성은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세 교수가 코세러스와 스콜로의 어그로를 끌어 주는 동안 가장 골칫거리인 팬텀리퍼를 먼저 처치하기로.

팬텀리퍼가 처리되면 나머지를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죠!”

“어서 시작합시다!”

세 교수의 대답에 김무성은 몸 안에서 휘돌고 있는 마나력을 근육으로 잔뜩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쿠드득

김무성의 근육 밀도가 한순간 크게 증가하면서 그의 육체 또한 몇 배로 단단해졌다.

마치 나이 든 노인이 한계에 이르는 운동으로 온몸을 돌덩이처럼 만든 것 같은 모습.

김무성은 한수호에게 이미 전수한 근밀도강화법을 자신의 몸에 직접 사용한 것이다.

꽝!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폭탄이 터진 듯한 폭음이 터지 순간,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너희들은 교수님들과 협력해서 여섯 마리를 확실하게 처리해 줘. 반드시 2분 내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한수호의 마나전음은 이번에도 큰 역할을 했다.

방금 전까지 교수 여덟 명과 한수호의 친구들이 여섯 마리의 중대형 몬스터들과 한곳에서 뒤섞여 큰 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수호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어 한쪽으로 몰아버리며 마나전음을 날려주니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단숨에 몬스터들을 포위한 형국이 되었고, 장한설 등은 교수들과 짝을 이루어 여섯 마리를 각개격파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금방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한수호는 나머지 여섯 마리의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냈다.

‘저 자식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여섯 마리의 몬스터들은 두 마리씩 세 무리로 흩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놈들을 상대하는 학생들 또한 세 패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

이대성과 친구들은 게이트 우측에서 두 마리 몬스터를 가뿐하게 상대하고 있었고, 우태범과 김유진은 게이트 코앞에서 몬스터들과 대치 중이었다.

진무현은 게이트 뒤쪽에 있었는데, 그는 혼자서 두 마리 중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도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한수호는 빠르게 상황을 훑어보고는 이대성에게 가장 먼저 마나전음을 날렸다.

[1분 30초 내로 해치워. 안 그럼 몬스터가 더 늘어날 거다.]

한수호의 마나전음을 듣자마자 이대성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음성의 주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한수호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마시지!”

이대성은 한수호의 말을 그대로 무시해 버렸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기에 한수호는 실망한 기색도 없이 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 마나전음을 보낸 사람은 우태범이었다.

[너희 둘이 1분 20초 안에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으면 게이트를 폐쇄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번에는 그의 말이 유효했는지, 우태범이 김유진을 향해 소리쳤다.

“유진아! 딱 30초만 한 놈 맡아줘! 아무래도 이놈들 처리하고 직접 게이트 안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우태범은 한수호가 말한 기회가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파악해 냈다.

“응, 알았어!”

김유진도 우태범의 뜻을 단번에 이해하고 납작한 악어 형태의 몬스터 크로커힐 한 마리의 어그로를 끌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 덕에 또 다른 크로커힐과 일대일로 마주할 수 있게 된 우태범.

그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는 한수호에게 한소리 외쳤다.

“충주 아카데미 쪽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놈들을 믿지 마라!”

우태범은 그렇게 외치더니 크로커힐의 정면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크로커힐이 입을 쩍 벌리며 우태범을 씹어먹으려는 순간,

쩌어엉!

우태범의 양손과 양발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크로커힐의 송곳 같은 이빨을 아무렇지 않게 튕뎌냈다.

파란 빛을 내는 손과 발이 어찌나 단단한지 이를 물어버린 크로커힐의 이빨이 우수수 부러져 나갈 정도.

우태범은 그 상태로 몸을 손과 팔을 쭉 펼쳐 크로커힐의 입을 아래위로 확 찢어내 버렸다.

이건 우태범의 특성 중 하나인 ‘경질화’ 능력이었다.

아직은 특성의 단계가 높지 않아 전신 경질화까지는 이룰 수 없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웬만한 창칼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수 있었다.

한수호는 우태범의 특성이 경질화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훌륭한 기술이군.]

한수호는 그 말을 남긴 채 진무현 쪽으로 달려갔다.

진무현은 두 마리 몬스터를 상대로 움직임에 여유가 있을 뿐이지, 그렇다고 두 마리를 쓰러뜨릴 정도로 압도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한수호에게 받은 ‘얼음불’ 특성이 없었다면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를 만큼 매 순간이 위험한 상태였다.

그때, 한수호가 높에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내리꽂히며 주먹에 쇄혼 특성을 주입시켰다.

[이건 내가 맡죠.]

마나전음이 진무현의 머릿속을 파고든 그 순간,

콰직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린 한수호가 주먹으로 오우거의 머리를 터트리고, 두 발로 어깨를 짓눌러 무릎을 박살 내 버렸다.

오우거도 이 안개 속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기에 한수호가 날아드는 걸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

한수호가 6미터 크기의 오우거 한 마리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진무현 역시 기회를 틈타 혼천일격을 사용했다.

쿠아아아악!

어마무시한 마나 폭풍이 폭발적으로 뿜어지며 오우거의 상체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쿠웅

두 마리 오우거의 거구가 바닥에 쓰러지며 큰 진동을 일으켰다.

한수호는 주먹을 뻗는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무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사이, 더 강해졌군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한마디를 주고받을 때였다.

“아악!”

게이트 근처에서 크로커힐의 어그로를 끌고 있던 김유진이 갑작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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