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백진성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구진철이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부러 강씨호왕가의 적호대에게 여의도 게이트의 정보를 흘려 강우진을 이곳으로 불러들였고,
그를 미끼 삼아 송지문과 권열, 유재형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오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유대룡까지 이 자리에 불러냈다.
처음부터 구진철이 지닌 아티팩트로는 한수호가 꽁꽁 숨기고 있는 진짜 정체를 밝혀내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룡이 나타난 이상 더 이상 정체를 숨기는 건 어렵다.
그 이유는 유대룡이 지닌 특성, ‘심연의 눈’에 있었다.
심연의 눈.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우주의 끝까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게 해 주는 특성이었다.
유대룡이 이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세 명.
유대룡의 두 번째 부인과 첫째 아들 유재형, 그리고 백진성 그 자신뿐이었다.
‘자, 유대룡! 너의 그 눈으로 저 건방진 녀석의 진짜 정체를 밝혀내 봐라!’
백진성은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유대룡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수호 또한 유대룡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유대룡의 눈빛은 깊고 강했다.
회귀 전의 한수호를 특별한 마공사 요원으로 키워주었던 그 유대룡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
한수호는 유대룡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스승으로서, 그리고 양부모로서 믿고 따랐던 과거가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들끓었다.
‘여전히 건강해 보시네요.’
확실히 유대룡은 포스가 남달랐다.
비록 사왕오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한수호는 유대룡이 사왕, 혹은 그 이상으로 강한 마공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유대룡은 자신의 강함을 내보이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 뜻도 없이 그저 바라 보기만 해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강렬한 이미지를 지닌 탓에 굳이 마나까지 끌어올려 자신의 강함을 어필할 필요가 없었다.
한수호는 과연 유대룡의 신체 능력이 얼마로 표시될지를 궁금해하며 개조 특성으로 정보를 훑었다.
[머리] : 240
[왼팔] : 220
[오른팔] : 220
[가슴] : 250
*[마나] : 2,100
[배] : 230
[왼발] : 240
[오른발] : 240
한수호의 눈앞으로 떠오른 유대룡의 신체 수치.
이를 본 한수호는 알 수 없는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수치가 이상한데?’
첫째로, 7개 항목의 숫자들이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끝자리가 모두 0으로 끝나는 것도 이상하고, 그 대단한 유대룡의 신체 능력치에 물음표가 붙지 않은 것도 뭔가 어색했다.
둘째로, 유대룡의 왼팔 수치가 너무 낮다.
한수호가 아는 유대룡은 왼손잡이였고, 그 왼손으로 뿜어내는 화산신권은 50센티 두께의 쇠도 꿰뚫어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왼팔과 오른팔의 수치가 220으로 동일하게 표시된다?
게다가 모든 신체 항목 수치 중에서 가장 낮다.
‘아저씨도 능력치를 숨기는 아티팩트를 소지하고 있는 걸까?’
워낙 많은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들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일부러 숨기려는 걸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대룡의 능력치가 이렇게 이상하게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괜히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자. 아저씨가 심연의 눈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 이상, 언제 내 정보를 읽어낼지 모르는 일이니까.’
사실 이것이 한수호가 유대룡과의 만남을 계속 미루었던 이유였다.
한수호가 회귀하기 전, 유대룡은 세 개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왼손으로만 펼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으나 그 위력만큼은 압도적으로 강력한 ‘화산신권’이 첫 번째다.
이 화산신권은 유대룡이 특무부 현역 요원이었을 때, 게이트 안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었다.
두 번째는 심연의 눈이라는 특성인데, 이 특성을 사용하면 아무리 강력한 프로텍트가 걸려있다 하더라도 상대의 정보를 캐낼 수가 있었다.
유대룡의 마지막 세 번째 특성은 ‘버닝소울’.
이 특성이 바로 지금의 유대룡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었다.
버닝소울은 자신의 영혼을 촛불의 심지로 삼아 활활 불태움으로써, 그에 반하는 강력한 힘을 끌어내는 특성이었다.
영혼을 불태워 얻어내는 힘.
그 강력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한수호의 광폭화 특성보다도 훨씬 강력했고, 시간적인 제한도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영혼을 불태운다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이 특성을 사용할 경우엔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질 수가 있어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한수호도 유대룡이 버닝소울 특성을 사용하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한수호는 유대룡이 지닌 심연의 눈 때문에라도 가급적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유대룡의 등장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상당한 놀라움을 선사했다.
특무부 본부장인 유대룡이 정의국 국장인 백진성의 저택에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일까?
이 두 사람이 서로 집을 왕래할 정도로 가깝다는 정보는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 학생들이 백국장이 말한 그 아이들인가?”
유대룡이 형형한 눈빛으로 한수호와 친구들을 쭉 훑었다.
“하하하. 마침 잘 왔네, 유 본부장. 젊은 영웅들의 탄생을 그 무엇보다도 최고의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자네라면, 분명 기뻐할 거라 생각했지. 어떤가? 직접 보니 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겠지?”
“확실히…. 다르군.”
유대룡의 시선이 장한설에게서 잠시 멈췄다가 한수호 쪽으로 이동했다.
한수호는 유대룡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그런 한수호가 의외였는지 유대룡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한수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청명한 기운이 신체 능력을 스캔하려고 합니다.
>>저항 방법을 결정해 주세요.
-50% 저항
-30% 저항
-10% 저항
높은 정신력 수치 덕분에 떠오른 경고 문구들.
그런데 구진철이 아티팩트를 이용해 스캔하려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불온한 기운이 아닌 청명한 기운으로 표시되었고, 저항 비율도 50%부터가 시작이었다.
확실히 유대룡이 사용하는 심연의 눈은 완전히 막아내는 게 불가능한 모양.
한수호는 하는 수 없이 최고치인 50% 저항을 선택해야 했다.
현재 한수호의 신체 수치는 평균 341.
여기서 50%의 수치만 유대룡에게 전달될 테니 170가량의 수치로 보일 터.
‘백진성이 알게 되면 놀라 자빠지겠군.’
유대룡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아마도 백진성이 유대룡의 특성을 이용하기 위함 이리라.
한수호는 백진성과 유대룡이 대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한수호를 바라보던 유대룡의 시선에 흠칫 놀라는 빛이 찰나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신체 수치 평균 170에, 2천이 넘는 마나력 수치를 확인했을 테니 크게 놀라는 건 당연했다.
아카데미 1학년생에 불과한 한수호의 능력치가 궁급을 훌쩍 넘어서 있으니 어찌 담담할 수 있을까.
“학생은 이름이 어떻게 되지?”
유대룡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수호에게 물었다.
“장태산입니다.”
“장태산…? 혹시, 비돈귀살의 양자라는 그 학생이 바로 학생인가?”
특무부의 본부장이어서일까?
유대룡은 한낱 1학년생에 불과한 한수호의 내력까지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두 분은 제 스승님이시자 저를 거두어주신 부모님이시죠.”
“호오. 비돈귀살께서 말년에 정말 훌륭한 자식을 거두셨구나. 너같은 학생은 내 평생 처음 본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유대룡은 한수호의 능력치를 확인하고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유대룡이 확인한 한수호의 능력치는 고작 50%에 불과하며, 그것도 전력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수치라는 사실을.
“자네가 놀라는 걸 보니 정말 대단한 자질을 가진 학생인가 보군. 거기 서서 뭐 하는가? 어서 이리 오게나. 함께 식사하면서 편하게 대화나 나눠봄세.”
백진성의 제안에 유대룡은 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백진성이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 * *
유대룡이 합석한 지 30분이 지났다.
백진성의 능수능란한 대화법 덕분에 분위기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한수호의 친구들은 아무 부담 없이 평소 궁금하던 것들을 쉼없이 물어봤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백진성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보게, 유 본부장.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자네를 초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네.”
안 그래도 학생들을 대접하는 자리에 자신을 불러낸 이유가 궁금했던 유대룡은 백진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특무부 본부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날 불러낸 것이니 응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네. 이유가 부족하다 싶으면, 내 귀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비용을 청구할 것이야.”
“하하하. 이런, 야박한 친구를 봤나? 알고 지낸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날 위해 몇 시간 할애하는 것도 못 해주는가?”
“말 돌릴 생각 말고, 어서 말해보게. 날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는 뭔가?”
유대룡이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자 백진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영웅들이 될 걸세. 그 어느 때보다도 충분한 자질을 지녔고, 성취 또한 대단하지.”
백진성은 한수호와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칭찬을 거듭했다.
“하지만, 아직은 완성된 게 아니라네. 자질도, 성취도 뛰어나지만 경험으로 축적된 노하우가 부족하다 이걸세.”
“자네 말은…. 내 노하우를 이 학생들에게 전수해 줘라, 뭐 이런 건가?”
유대룡은 백전노장답게 백진성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내 입으로 친구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하네만, 대한민국에서 자네만큼 실전 경험이 많고, 효과적인 전투 노하우를 지닌 마공사는 없다고 보네. 그 노하우가 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해만 진다면, 앞으로 이 학생들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네. 어떤가,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나? 날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말일세!”
백진성은 진지한 얼굴로 ‘미래’라는 단어를 크게 강조했다.
그 말에는 진정성이 가득 담겨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속에 큰 울림이 일게 만들었다.
장한설도, 양소혜도, 최지혁도, 신소이도.
모두 백진성의 말에 감동한 듯 보였다.
하지만 단 세 사람만은 별 반응이 없었다.
백윤후는 백진성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비웃는 중이었고, 이하윤은 성격 자체가 남의 말에 쉽게 감동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한수호야 백진성이 황도13궁의, 그것도 궁주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는 걸 알기에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라…. 무던해진 내 가슴마저 떨리게 만드는 말이로군. 사실, 자네의 말이 아니어도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선배 마공사로서 꼭 필요한 일이니 그리하려고 했네.”
“오, 그게 사실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오늘 이 자리를 만든 보람이 느껴지는구만. 참 다행이야.”
“어째 자네가 더 좋아하는 것 같군. 자네 같은 사람이 정의국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우리나라의 홍복일세. 하하하!”
유대룡이 백진성을 칭찬하며 호탕하게 웃자 장내는 다시 웃음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희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무부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는 유대룡 본부장님께 한 수 배울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문의 영광일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최선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다들 감정이 북받치는지 뭔가를 배우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진성…. 당신이 노린 것이 이것이었나?’
한수호는 백진성이 왜 유대룡을 이곳에 불러들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대룡은 사왕오패의 사왕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강력한 존재.
그런 유대룡이 젊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손수 지도해 주겠다고 한다면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유대룡은 누군가를 지도할 때,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대충하는 법이 없기로 유명하다.
단 한 수를 가르치더라도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지도받는 사람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면 크게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유대룡에게 뭔가를 가르침 받기 위해서는 절대 실력을 숨길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게 하려고 작정을 했군.’
거기다 유대룡은 이미 한수호가 궁급의 실력자라는 걸 심연의 눈으로 파악한 뒤였으니,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 분명했다.
비록 진짜 능력의 50%밖에 들키지 않았다고는 해도, 유대룡이 진심으로 가르치려고 들면 한수호도 대충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대충했다가는 아저씨가 단번에 알아차릴 텐데?’
유대룡은 상대의 마나가 가진 분위기까지 읽어낼 수 있는 실력자였기에 대충해서는 절대 속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진심으로 상대했다가는 백진성이 곧바로 꼬리를 말고 자신의 정체를 더욱 꽁꽁 숨길 것이기에 조심해야 했다.
‘어떡해야 하나….’
한수호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중, 아까 이곳에 나타났던 강우진과 송지문, 권열 등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아직 근처에 있다면, 그들을 엮어서 자신이 직접 유대룡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 일이 없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수호는 바로 감각의 파동을 펼쳐냈고, 멀지 않은 곳에 강우진 등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야외 수련장 같은 곳인가?’
강우진 등이 있는 곳은 테니스장 네 개 정도 크기의 공터였다.
이곳 정원과는 3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공터 주변이 두꺼운 담벼락으로 둘러쳐져 있고, 각종 무기까지 거치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수련장 같았다.
강우진과 송지문, 권열 등은 그곳에서 팽팽한 기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다가가서 톡 건드려 주기만 해도 바로 폭발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한수호는 그들을 이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