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4급 던전 ‘침묵의 협곡’]
-보유 포인트: 100,000LP
-위험도: ★★★★★★☆☆☆☆
-각성자의 무덤, 침묵의 협곡입니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세요.
-시험의 결과에 따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발자크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포인트를 흡수하면 던전의 위험도가 상승하여 클리어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포인트를 흡수하겠습니까? YES/NO
게이트 앞에 선 한수호는 게이트 정보를 살피며 턱을 긁적거렸다.
‘각성자의 무덤이라….’
침묵, 협곡, 무덤.
불길한 단어가 세 개나 겹치는 던전이다.
게다가 이 안에서 뭔가 시험을 치르게 되는 모양인데, 이런 류의 던전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조유현은 이런 게이트를 열 수 있는 큐브를 대체 어디서 얻은 거야?’
과연 회귀자답다고 해야 할까?
회귀 전의 삶에서는 이산과 함께 발자크에 대항했던 중심 인물이었다고 하니 알고 있는 미래 정보가 상당했을 터.
아마도 그 정보를 토대로 여러 가지 특수한 물건들을 가로챌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 이 게이트를 내가 이동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자.’
괴인혈 특성을 이용해 수인화 하지 않으면 안 될 가능성이 99.9%지만 0.1%의 가능성도 확인은 해 봐야 했다.
한수호는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크기의 게이트 가장자리로 손을 뻗었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커다란 거울 같은 게이트.
한수호는 게이트에 손이 닿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전투 영역 밖으로 이동해볼 생각이었다.
‘지금이다!’
손이 닿은 순간 전투 영역을 해제한 한수호.
찰나에 시야가 암전했다가 다시 빛이 느껴졌을 때, 한수호는 실험이 실패했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지금 한수호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과 그 사이에 위태롭게 존재하는 브이자 모양의 협곡이었으니까.
한수호가 이곳이 폐교가 아닌 던전의 내부라는 걸 인지한 순간,
>>침묵의 협곡에 들어오신 당신에게 환영 인사를 전합니다.
>>협곡 안에는 당신을 위한 맞춤형 시험의 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세요.
>>협곡에 발을 디디는 순간, 시험이 시작됩니다.
한수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시지를 보니 당장이라도 시험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사령마를 지배하고 있던 조유현이 죽었으니 지금쯤은 이병선 요원과 다른 마공사들도 폐교의 지하 공간에 도착해 있을 터.
너무 장시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이상한 오해를 사기에 딱이었다.
‘일단 현장부터 정리하고 나중에 도전해 보자.’
한수호는 으스스한 귀기를 흘리는 침묵의 협곡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는 푸른 물결을 찰랑이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 * *
풀썩
철푸덕
징그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달라붙던 사령마들이 갑자기 바닥에 엎어졌다.
놈들과 지긋지긋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병선은 흠칫 놀라며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사령마들을 노려봤다.
그렇게 십여 초가 흘렀을 때,
“팀장님. 함정은 아닌 것 같은데요?”
김명우가 이마에서 흐르는 핏물을 훔치며 이병선에게 말했다.
“후아아…. 이제야 좀 살겠네.”
최일선도 녹초가 된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이병선은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쓰러진 사령마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들고 있던 무기로 사령마의 목 부근을 쿡쿡 찔렀다.
검이 5센티나 박혀 들었는데도 사령마는 꿈쩍을 안 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완벽한 상황 종료였다.
“최일선. 넌 이놈들 다 엎어놓고 등 뒤로 포박해 둬. 난 김명우하고 같이 이놈들 조종하는 새끼 잡으러 간다.”
“알겠습니다. 일단, 특무부 상황 처리반도 호출할까요?”
“대구 지부에 남은 요원 다 오라고 해. 엠뷸런스랑 경찰도 부르고.”
이병선은 어렴풋이 현재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사령마들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는 시체에 불과하다.
그런 시체들이 갑자기 행동력을 잃고 쓰러졌다는 건, 놈들을 조종하던 주체가 아주 먼 곳으로 도망쳤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다는 걸 의미했다.
“여긴 저한테 맡겨놓고 먼저 가보세요. 장태산 학생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사령마가 이꼴이 되었으니 한숨은 돌렸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서두르긴 해야겠지. 아까 그 큰 소음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군. 무사해야 할 텐데…. 일단 가자, 명우야.”
이병선은 뒷일은 최일선에게 맡기고 김명우와 함께 빌런의 아지트를 향해 달려갔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자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중앙엔 여러 개의 발자국이 남아 있어서 추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시 100여미터를 지나자 새빨간 고깃덩이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지저분한 통로에 도착했다.
“장태산 학생을 쫓던 사령마들이 여기서 죽은 것 같습니다.”
“다행히 장태산 학생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은데….”
여기까진 무사했는지 몰라도, 이 다음이 걱정이었다.
저 앞을 보니, 두꺼운 철문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저곳이군.”
딱 봐도 박살난 철문 안쪽이 사령마를 조종하던 빌런의 아지트인 것 같았다.
이병선과 김명우는 언제든 반격할 수 있게 긴장을 유지한 채 뻥 뚫린 입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안쪽이 너무도 조용했다.
두 사람이 박살난 철문 안쪽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엄청난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폐허.
최소 5층은 되어 보이는 건물 한쪽이 지하까지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싱크홀처럼 뻥 뚫린 천장으로 화창한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고 있었다.
“이게 뭔…?”
“전쟁이라도 난 것 같군.”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전투를 겪어 왔던 이병우였지만, 현실에서 이런 풍경을 보는 건 무척이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적어도 4급 이상의 고위급 게이트가 아무런 대비 없이 발생하여 게이트 안에서 대형 몬스터들이 튀어나왔을 때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장태산부터 찾아!”
이병선의 외침에 김명우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병우도 어떡하든 한수호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생존자를 찾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산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빌런의 흔적이라도 있다면, 놈의 뒤를 쫓아 가겠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팀장님. 아무래도 사달이 난 것 같은데요.”
김명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병선을 바라봤다.
“아직 포기하지 마라. 본부에 계신 선배님 말에 따르면 장태산은 보통 학생이 아니라고 했으니,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이병선은 한수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특무부 선배인 김재우가 했던 말처럼, 장태산이라는 학생이 천재적인 마공사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수색을 시작한 지 5분이 지나도 그 어떤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사령마의 시체들을 수습한 최일우가 합류했고, 그의 연락을 받은 특무부 요원들과 경찰, 그리고 구급대원들까지 모두 현장에 도착했다.
폐교 주변엔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졌으며, 수많은 요원들이 폐교 곳곳을 철저하게 수색했다.
그럼에도 딱히 쓸 만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한수호의 흔적뿐만이 아니라, 빌런이 어디로 도망쳤는지조차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병선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들어내며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파고들어 누군가 깔려있지 않은지 철저히 뒤지고 다녔다.
“팀장님. 이제 그만 하시는게….”
김명우는 이병선이 무리하는 것 같자 오히려 말리려 했다.
“장태산은 죽지 않았을 거다. 내 느낌이 그래. 이렇게 쉽게 죽을 놈이 절대 아니었다!”
이병선은 붉어진 눈을 더욱 부릅뜨며 계속해서 잔해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최일선까지 나서서 말렸다.
“살아있다고 해도, 이곳엔 없을 겁니다. 어쩌면, 빌런에게 붙잡혀 끌려간 걸 수도 있고요. 그러니 이곳 상황부터 마무리 짓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니야. 분명 근처에 있다. 너희들은 안 느껴져? 장태산의 기운이 여전히 이 주변에 머무르고 있단…. 엇!”
말을 하던 이병선의 표정이 갑자기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이미 몇 번을 뒤져봤던 건물 잔해의 한복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김명우와 최일선도 이병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두꺼운 건물 잔해의 틈 사이로 뻗어 나온 길쭉한 팔 하나.
팔목에 팔찌 형태의 특이한 쇠고랑을 차고 있는 팔은 이병선 쪽으로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갑자기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 모습은 꼭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인사하는 듯 \했다.
“장태산!”
이병선이 크게 외치며 손이 솟아 나온 쪽으로 달려갔다.
그 뒤로 김명우와 최일선까지 따라붙었다.
“장태산! 거기, 장태산 맞지?”
이병선은 좌우로 흔들리는 손을 꽉 움켜쥐며 소리쳐 물었다.
“…. 맞긴 한데요. 우선 돌덩이부터 치워주면 안 될까요?”
틈새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한수호의 것이었다.
“여기 생존자가 있다! 다들 여기로 와서 이 돌덩이들 좀 치우란 말이다!”
이병선은 죽은 자식이 살아돌아온 것마냥 기뻐하며 구급대원들을 닥달했다.
이병선 같은 마공사들은 인간을 초월하는 강한 힘을 가졌지만, 건물 잔해에 깔린 생존자를 구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자칫 힘으로 잔해를 치워냈다가, 그나마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아래에 깔린 생존자의 목숨이 위험했다.
구급대원들은 잔해 밑에 있는 생존자를 확인하고는 바로 주변의 구조부터 살폈다.
그리고 안전한 위치의 돌덩이들부터 하나하나 치워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흘렀을 때, 드디어 사람 하나가 빠져나올 만한 구멍이 생겼다.
구급대원들은 그 구멍을 통해 사람 하나를 재빠르게 꺼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상처는 없으시고요?”
구급대원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생환해온 사람에게 물었다.
“아, 네. 다친 곳은 없는데 좀 많이 피곤하네요.”
하얀 가루를 분처럼 덕지덕지 바른 사람은 바로 한수호였다.
그는 머리를 털고 고개를 흔들어 먼지를 떨궈내려 했다.
하지만 땀 때문인지 먼지는 쉽게 털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웃음을 그려보였다.
“살아서 돌아오지 말 걸 그랬나봐요? 다들 표정들이 영….”
“살아 있었구나, 장태산!”
이병선이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한수호를 덥썩 끌어 안았다.
“죽을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이 자식!”
이병선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모습에 한수호는 차마 떼어내지 못하고 잠시 안긴 채로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자신이 파묻혀 있던 구덩이를 바라봤다.
‘귀환 장소까지 건물 잔해에 파묻혔을 줄이야….’
한수호는 이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투 영역을 해지하고 현실로 귀환한 순간, 크게 놀라고 말았다.
전투 영역으로 진입하기 직전엔 빈 공간이었던 장소가 귀환 시에는 사방이 돌덩이로 완전히 폐쇄된 곳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
한수호가 전투 영역에 있는 동안, 폐교가 더 크게 무너져 지하 공간 대부분을 휩쓸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귀환 장소엔 좁은 틈이 존재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 장소마저 돌무더기로 메워져 있었다면, 한수호는 귀환과 동시에 돌덩이들과 한몸이 되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다음부턴 전투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귀환 장소의 안전성부터 꼭 확인해 봐야겠네.’
한수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잘못을 머릿속에 꼭꼭 새겨넣었다.
원래 한수호는 자신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즉시로, 주변을 꽉 메우고 있는 돌덩이들을 다 박살 내버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곧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고, 손을 틈으로 뻗어내 구조되길 기다리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이병선과 동료 마공사들이 있다는 걸 알아챈 한수호는 일부러 마나를 흘려 이병선이 알아보길 유도했다.
예상대로 이병선의 감각은 남다르게 잘 벼려져 있어서, 금방 한수호의 신호를 알아봤다.
‘그래도 이 분들은 마음이 순수하시구나.’
한수호는 이병선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을 걱정하며 주고받는 대화를 모두 들었고, 그것이 결코 위선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걱정시켜서 죄송합니다. 죽는 줄 알았는데…. 어찌 어찌 살았네요.”
하얀 분을 바른 것 같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한수호.
이병선은 그런 한수호를 번쩍 들어서 옆에 놓인 들것에 올려놨다.
한수호가 어 하는 사이 그는 김명우와 최일선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엠뷸런스로 옮겨졌다.
엠뷸런스 안까지 좇아 들어온 이병선은 한수호의 온몸을 들쳐보며 몇 번이고 다른 상처가 없는지를 살폈다.
“두 번 다시는 선배들을 두고 혼자서 적의 이목을 끄는 짓은 하지 말아라. 어린 녀석이 겁도 없이 그게 뭔 짓이냐?”
이병선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네.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 괜한 영웅심은 결국 자기 명을 재촉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오늘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한수호가 농담조로 꺼낸 말에 이병선은 그제야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면 됐다. 그보다, 놈은…. 그 지랄 맞은 사령마들을 조종하던 빌런 놈은 어떻게 됐지?”
“끌려갔습니다.”
“끌려…가? 누구한테? 어디로?”
한수호는 자신이 직접 죽여버렸지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공의 인물을 만들기로 했다.
또한 이 기회를 이용해 특무부에 숨어든 이프리트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가면인이었어요. 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땐, 계란처럼 생긴 하얀 가면을 쓴 자가 그 괴물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고요. 가면인 이마엔 꽃잎 다섯 장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가면인이 그 괴물 같은 놈을 어딘가로 끌고 가더군요. 전 괜히 근처에 다가갔다가 덩달아 끌려가고 말았던 거고요.”
“가면인? 꽃잎이 그려져 있다고? 대체 어디서 그런 자가….”
“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가면인도, 빌런 놈도 실력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둘 다 궁급을 넘어서는 것 같았어요.”
“역시…. 예상대로구나. 나도 빌런 녀석이 궁급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래서 네가 위험하다고 느낀 거고. 아무튼, 살아줘서 고맙다.”
이병선은 한수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덕분입니다. 하지만, 저만 살아서 죄송하네요. 그런데…. 다른 희생자들은 되돌아오지 못하는 거죠?”
사령마는 죽은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조종하는 주체가 죽었다 해도 다시 살아날 수가 없었다.
한수호도 그걸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병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빌런 놈은 가면인한테 죽은 모양이다만, 희생자들은 이미 죽은 상태여서 우리도 어쩔 수가 없구나.”
“빌런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제가 방해만 된 것 같습니다.”
“아니다. 네가 무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런, 내가 아픈 사람을 데리고 시간을 너무 끌었구나. 우선 병원에 가서 푹 쉬거라. 여긴 우리들한테 맡기고.”
“네, 선배님. 그럼 전 세 분만 믿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한수호는 정말 푹 좀 쉬고 싶었다.
일단은 형식상으로라도 병원에 갔다가, 바로 숙소로 잡아둔 모텔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모텔에서 푹 쉬면서 새로 얻은 특성석을 흡수하고, 게이트를 이동시키는 방법까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이병선이 엠뷸런스에서 내리자 차문이 닫혔다.
부르르릉
엠뷸런스는 그대로 현장을 떠나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