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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53화 (253/375)

253화

협곡의 끝에서 나타난 존재는 검은 후드를 푹 눌러쓴 로브의 사내였다.

180을 조금 넘는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닌 사내.

그의 얼굴은 후드에 완벽하게 가려진 상태라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수호의 초월적인 시력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로브의 후드 속에 감춰진 사내의 얼굴을 본 한수호는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가면? 게다가 꽃잎이 열두 개나 그려져 있잖아?’

로브 사내는 한수호가 가장 증오하는 가면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수호의 눈빛에 스친 경악의 감정을 느낀 것일까?

로브 사내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놀랍군. 침묵의 협곡을 극악 난이로도 도전해서 최종 시험까지 도착하는 인간이 나올 줄이야.”

로브 사내의 말에 한수호는 영상에서 봤던 가면인도 지금의 난이도까지는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내의 목소리가 굉장히 특이하다.

남자와 여자가 섞인 듯하면서, 웅웅 울리고 있어 성별을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최종 보스가 인간 형태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한수호는 사내의 5미터 앞까지 다가가며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했다.

“각설하고….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내 이름은 아스. 아스루나에 세워진 인간의 문명을 대마왕 발자크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대영웅이자 최강의 전사다.”

뭔가 굉장히 몸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말투다.

한수호로서는 제 입으로 절대 저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신, 시스템이 만들어낸 A.I 같은 존재로군? 그런데 센스가 영 아닌데? 하필이면 아스루나 고대의 영웅, 아스의 이름을 따오다니.”

한수호는 상대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해 냈다.

눈앞의 로브 사내는 누가 창조했는지 모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A.I가 분명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진짜 아스는 아니라는 얘기.

그저 이 침묵의 협곡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기 위한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었다.

“비슷하지만, 똑같지도 않다.”

“나와 이런 대화가 가능한 걸로 보아하니 평범한 A.I는 아닌 것 같고.”

“절대 평범할 수가 없지. 그대가 지금 내 정보를 훑어보고 있듯이, 나 역시 그대의 정보를 고스란히 읽어내고 있으니까.”

“…. 뭐?”

한수호는 크게 놀랐다.

아스라는 이름을 지닌 저 존재는 한수호가 상대의 정보를 샅샅이 훑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놀랄 건 없다. 나한테도 그대가 가진 능력과 비슷한 힘이 있을 뿐이니까.”

“그럼 당신과 내 힘의 차이가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겠네.”

한수호는 아스의 능력치가 495나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놀라웠다.

아스의 평균 신체 능력치는 495.

한수호도 이곳에 와서야 간신히 441까지 올랐는데, 눈앞의 상대는 이미 495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특성을 침묵시키는 제약이 한수호에게만 통하는 거라면 아스는 특성을 활용하여 얼마든지 능력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후후후. 날 상대로 그런 협박이라니. 당차고, 재밌는 인간이로군. 하지만, 도전자여. 그대는 그대가 지닌 그 거대한 힘이 진정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한 걸 왜 묻지? 내 스스로 얻은 능력을 가지고 내 한계치를 높인 것인데, 그게 왜 내 능력이 아니라는 거지?”

한수호는 아스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A.I라서 한수호가 괴인혈과 광폭화 특성으로 999라는 굉장한 능력치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래서 마음대로 지껄이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한수호는 자신의 능력치가 온갖 고생을 하며 힘들게 얻어낸 힘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 이런. 오해를 했군. 난 그대에게 이 시련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려는 것뿐이다.”

“…?”

한수호는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시련의 진짜 목적.

그건 ‘순수한 육체의 힘’이었다.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괴인혈과 광폭화 특성으로 인해 상승한 능력치는 ‘순수한 힘’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게 된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한수호는 급히 자신의 능력치 정보를 다시 확인해 봤다.

[신체외적능력] : 441/999

[신체내적능력] : 21/99

[마나] : 7,450(+780)/99999

[육체한계치] : 2/3

능력치가 다시 뚝 떨어져 있었다.

괴인혈 2단계에 광폭화까지 사용한 결과로 999까지 치고 올라갔던 신체 수치가 본래의 441로 내려와 버린 것.

마나도 1만 아래로 떨어졌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한수호는 이 현상을 만들어낸 자가 아스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그대와 난 공평해졌다.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건 너무 일방적이잖아!”

한수호가 화를 냈지만, 아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거린 그는 자세를 슬쩍 낮추고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대가 날 이긴다면,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귀한 것들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가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한수호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피식 웃어 버렸다.

“누가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 치사한 시스템이로구만. 뭐,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을 타내고야 말겠다!”

한수호는 잡생각을 버렸다.

눈앞의 존재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존재이지만, 고대의 아스루나에서는 최강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자.

그런 자를 상대로 쓸데없는 생각에 휩싸여 당황해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한수호도 자세를 낮추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자,

우두둑

근육과 뼈가 비틀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스가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데 튀어 나갈 때의 모습만 찰나적으로 보였을 뿐, 그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꽈앙!

왼쪽 측면에서 나타난 아스의 돌려차기가 한수호의 왼팔에 막혔다.

눈에서 이채를 발하는 아스.

그는 손과 발을 이용해 폭발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꽝! 꽈광!

꽈과과과광!

두 사람의 손과 발이 부딪칠 때마다 폭발하듯 굉음이 터져 나왔다.

평균 능력치 495를 지닌 아스와 평균 능력치 441의 한수호가 벌이는 육탄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살벌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두 사람의 능력치에는 분명, 평균치 54라는 큰 차이가 있거늘 어떻게 한수호는 백중지세의 싸움을 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스와의 싸움이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이해한 한수호는 곧바로 남아있던 NP 모두를 능력치에 배분했다.

혹시나 싶어 280NP를 남겨놨었고, 그 포인트 전부를 7개 항목 중 왼손에 몰빵해 버린 것.

한수호가 그렇게 한 건 아스의 능력치가 분배되어 있는 형태가 조금 기형적이기 때문이었다.

[머리] : 555

[왼팔] : 450

[오른팔] : 450

[가슴] : 660

*[마나] : 8,213

[배] : 450

[왼발] : 450

[오른발] : 450

아스의 능력치는 머리와 가슴 쪽이 특별하게 높았다.

특히 가슴 수치가 660이나 되고 있어서 그 수치를 뚫고 타격을 입히려면 한수호의 능력치가 660을 넘겨야 했다.

하지만 한수호가 지닌 포인트 여유량은 280.

이걸 7개 항목에 모두 똑같이 배분하면 평균치 40이 오를 뿐이다.

그래봐야 한수호의 능력치 평균은 481 수준이니 660을 넘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몰빵이었다.

한수호의 왼손 능력치는 420.

여기에 280을 몰빵해 버리는 700까지 급상승했다.

평균치로 따지면 똑같이 481이었지만, 왼손의 수치만은 700이었다.

그래서 한수호는 아스와의 전투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수호가 노리는 건 단 한 번의 기회였다.

한수호는 아스의 신체 능력치가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지만, 아스는 한수호의 능력치를 종합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지금 한수호의 왼손 수치가 700까지 올라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테니 한 번의 기회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 싸움에 심취하라고!’

한수호는 아스가 전투에 심취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전투가 6분을 넘어서던 어느 순간,

쾅!

아스의 주먹이 한수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 충격에 10미터나 튕겨나가 바닥에 처박힌 한수호.

하지만 곧바로 바닥을 박찬 그는 아스의 몸통에 뒤돌려 차기를 때려 박았다.

퍼억!

“크흡!”

아스가 허리를 굽히며 답답한 신음을 흘렸을 때, 한수호는 기회다 싶어 왼손으로 최후의 일격을 박아넣으려 했다.

하지만, 아스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가슴으로 파고들 다음 공격을 막기 위해 두 팔로 몸통을 보호했다.

대신 머리가 비었다.

한수호는 방향을 바꾸어 아스의 머리를 향해 오른손 어퍼컷을 날렸다.

후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섬뜩해서일까?

아스는 왼손으로 한수호의 오른 주먹을 막아내며 머리를 보호했다.

뻐어어어억!

왼손으로 방어했음에도 충격이 만만치 않았는지 아스의 상체가 위로 붕 떠올랐다.

한수호가 다음 공격을 이어나가려는 찰나, 아스가 허공에 뜬 상태에서 온몸으로 마나를 방출시켰다.

푸하아아아악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한수호의 접근을 차단시켰다. 그리고 허공을 박차며 한수호를 향해 무섭게 날아들었다.

“이제 3분 남았다. 후후후.”

아스는 가면 속에서 한수호를 비웃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공격은 조금의 빈틈도 없이 한수호를 몰아붙였다.

꽈광! 콰과과광!

온몸에 작렬하는 아스의 파상 공격.

한수호가 김무광으로부터 근밀도압축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아스의 공격에 맞은 부위가 모조리 터져나갔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한수호는 자신의 힘을 믿고 아스의 공격에 맞불을 놓았다.

두 대를 맞으면 적어도 한 대는 받아치는 무식한 전법.

그렇게 다시 2분이 지나갔을 때, 한수호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투성이.

근밀도압축법으로 근육의 강도를 크게 높였음에도 아스의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제 1분이다. 비록 날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견뎌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칭찬이다.”

아스는 이미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한수호의 능력을 칭찬해 주며 살짝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아직 승부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아스가 빈틈을 내보이길 끝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빈틈을 지금 막 발견했다.

좀 전까지는 공격이 이어지는 간격이 0.2초 이상으로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간격이 0.5초까지 벌어졌다.

아스의 마음이 느슨해졌다는 증거.

그걸 찾아낸 한수호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을 때였다.

콰앙!

한수호가 진각을 밟아 땅을 뒤흔들었다.

그 충격이 아스의 다리를 타고 몸에 전달되기 까지 걸린 시간은 0.2초.

아차 싶은 아스가 급히 균형을 잡으려 몸을 띄워 올렸고, 곧장 반격에 나서려 했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반응이 미세하게 느렸다.

한수호는 그 짧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파앗-

아스의 반격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한수호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반 박자 정도 빠른 움직임에 아스가 크게 놀란 그 순간,

“네 칭찬은 필요 없거든?”

한수호가 히죽 웃으며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왼손을 아스의 가슴팍에 꽂아 넣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왼손에서 뿜어진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사방을 찬란한 빛으로 휘감아 버렸다.

아스는 어떡하든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양손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한수호의 왼 주먹은 그의 두 팔마저 박살 내 버렸다.

콰드득!

주먹은 두 팔을 부러뜨리고 그대로 가슴에 작렬했다.

아스는 가슴에 박혀 드는 주먹의 충격에 피 분수를 뿜어내고 말았다.

허공에서 미사일처럼 바닥으로 쑤셔 박힌 아스.

그는 땅속 깊숙이 파고든 채 꼼짝을 하지 못했다.

입에서는 검붉은 핏물을 꾸역꾸역 흘려내는 아스의 가슴팍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쿠르륵…. 젠장할 노릇… 이군. 쿨럭!”

아스가 투덜거리며 핏덩이를 울컥 토해냈다.

그 옆에 내려선 한수호는 아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방심해준 덕분이랄까.”

짧게 한마디 내뱉은 한수호는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스는 바닥에 처박힌 채로 고개만 살짝 돌려 한수호를 바라봤다.

로브의 후드는 찢겨 나간 상태라 꽃잎 열두 개의 가면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축하…한다. 이로써 최초로 침묵의 협곡 최고 난도를 이겨낸 인간이 나왔구나. 부디, 그 힘을 아스루나와 지구를 위해 사용해 주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아스의 형체가 가루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엔 아스가 남긴 꽃잎 열두 개짜리의 가면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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