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사왕오패의 위명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대단했다.
그들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사패극 오희창도 미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궁급 마공사 네다섯 명은 한꺼번에 상대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사패극 오희창.
그가 자신의 독문무기인 극(戟)을 이용해 펼쳐내는 극명신공은 근접 전투만큼은 검이나 도 보다도 훨씬 무섭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른 마공사들처럼 광역 효과나 원거리 공격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한 점에 집약되는 위력 하나는 가히 최강.
방금 한수호가 부서진 가면 너머로 본 얼굴은 바로 그 오희창의 것이었다.
‘사패극 오희창이 천갈궁주라고?’
한수호의 머리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은 방태식을 쫓아가서 보이지 않았지만, 이 회의실에는 천갈궁의 소궁주도 분명히 함께 있었다.
그렇다는 건 놈의 정체 역시 오희창과 깊은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의였다.
‘놈은 당연히 오희창의 아들, 오준하겠군.’
한수호는 오씨 부자의 정체를 알아냄과 동시에 몇 가지 의문점을 풀어낼 수 있었다.
그저 빌런들의 집합체에 불과한 황도13궁이 어찌 그리 대단한 위세를 가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황도13궁을 휘하에 거느렸다는 이유만으로 이프리트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말이다.
이젠 모든 게 이해된다.
사왕오패 중 한 명이 천갈궁주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의미.
사자도왕 송혁과 태극검왕 서한광, 그리고 한울뇌왕 구천승과 귀부암왕 장현오까지.
그들 모두 이프리트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한수호가 천갈궁주의 정체에 적잖이 놀라고 있던 그때였다.
콰광! 쾅쾅!
세 방향에서 한수호를 향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침착함을 되찾은 박새한과 지금껏 별말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두 가면인이었다.
박새한은 흡사 용포와 같은 로브를 걸친 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옷소매를 휘둘러 칼날 같은 기운을 뿜어냈다.
가면인 중 하나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검을 뽑아 단순한 찌르기를 펼쳤는데, 검에 깃든 검은 기운엔 엄청난 독기운이 담겨 있었다.
‘당채룡이군.’
이미 한차례 손을 섞어 봤기 때문에 당채룡의 독공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세 번째 가면인은 기다란 창을 사용했다.
그런데 창이 굉장히 낭창낭창하여 기이한 각도로 꺾여져 날아들었다.
한수호가 어디로도 피할 수 없도록 빈틈없는 방향으로 파고드는 세 명의 가면인들.
한수호는 그들의 공격이 거의 닿을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벼락처럼 움직였다.
꽝!
그가 서있던 자리가 폭발하듯 터져나간 순간,
퍼벅! 퍽!
세 곳에서 동시에 타격음이 들리더니, 두 가면인이 탄환처럼 튕겨져 나갔다.
당채룡은 회의실 천장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곤두박질 쳤고, 창을 쓰는 가면인은 반대쪽 출입구까지 날아가 거칠게 나뒹굴었다.
멀쩡하게 서 있는 건 박새한뿐.
한수호는 4할의 힘이 담긴 주먹을 맨몸으로 막아낸 박새한을 가만히 바라봤다.
‘타격감이 없어?’
마치 스펀지로 된 벽을 친 것 같은 느낌.
한수호가 박새한을 빤히 바라보던 그때,
“크윽!”
굳건하게 서 있던 박새한이 핏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모두 여길 빠져 나가시오!”
박새한의 음성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한게, 이미 궁급을 넘어 파급의 경지까지 오른 그였기에 누군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사내는 그런 박새한의 자부심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자신들과 똑같은 가면을 쓴, 그것도 꽃잎이 무려 12개가 새겨진 가면인이 등장할 줄이야.
‘이프로드(lord)만큼이나 강한 자다!’
침입자에게서 느껴지는 강함은 황도13궁과 새한교 모두를 아우르는 존재, ‘이프로드’에 버금갔다.
적은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새한교의 본거지가 황도13궁 극좌파의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강한 적이었다.
그래서 박새한은 자신이 시간을 끌기로 했다.
스스로를 희생해 동료들을 구한다?
그런 고귀한 뜻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놈을 풀어놓으려면 방해자가 없어야 하니까.’
박새한은 자신의 비밀 무기를 이곳에 풀어놓을 생각이었고, 그러려면 방해가 되는 자들이 없어야 했다.
“박교주! 설마, 당신…?”
가면의 절반이 박살난 채로 쓰러져 있던 오희창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러자 다른 가면인들도 박새한을 향해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곳을 떠날 생각을 굳힌 듯, 주춤주춤 반대쪽 출입구 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가면 아래로 피를 흘리는 당채룡도, 갈비뼈가 나갔는지 상체를 웅크리고 있는 창을 든 가면인도, 그리고 지금껏 말없이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한 쌍의 가면인도 모두 도망칠 기색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당장 여기를 벗어나시오. 이 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오!”
“하지만….”
“어찌 우리만 빠져나갈 수 있겠소!”
다들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발했지만, 이미 그들의 몸은 출입구에 거의 닿아 있었다.
그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속으로 비웃던 박새한은 더욱 비장한 얼굴로 한수호의 앞을 막아섰다.
“이곳을 나가자마자 폐쇄 장치를 가동하시오. 난 상관하지 말고.”
박새한의 말은 자신이 혼자 남아 적과 함께 동귀어진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가면인들이 그럴 수 없다고 뭐라 말하려는 그때, 지금껏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던 한수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게 마음대로 될까?”
한수호는 일부러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내가 있는 이상, 누구도 해칠 수 없을 거다.”
박새한이 영웅이라도 된 듯 한마디 하자, 한수호는 큭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사이비 교주가 갑자기 히어로로 변신이라도 하셨나?”
“긴 말은 필요 없….”
박새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꽝!
한수호가 자리를 박차고 날아갔다.
그가 향한 곳은 반대쪽 출입구를 막 빠져나가려는 가면인들이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촤앙!
검은색 바닥에서 갑자기 투명한 벽이 확 치솟아 올라 한수호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한수호는 그 투명한 막이 박새한의 손짓에 의해 생겨난 것임을 바로 파악했다.
그래서 5할의 힘을 실어 정면의 막을 향해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후웅
육중한 파공음을 흘리며 주먹이 투명막을 후려친 순간,
푸석
좀 전과 똑같이 스펀지를 친 듯한 느낌이 나더니 주먹에 실린 힘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건…?’
한수호는 눈쌀을 찌푸리며 자신의 주먹이 반쯤 파고든 투명막을 노려봤다.
[제로 월(wall)]
-특성 공의 영역으로 만들어진 충격 흡수의 벽입니다.
특성, 공의 영역.
이건 박새한의 특성이 분명했다.
좀 전에도 한수호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냈던 박새한.
그는 아무리 강한 충격이라도 대부분을 흡수해 버리는 공의 영역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하지만, 공의 영역 특성으로 흡수할 수 있는 힘은 ‘대부분’이지 100%가 아니었다.
쩌적-
완전하게 흡수해 내지 못한 힘에 의해 투명막에 균열이 쫙 생겨났고,
쿠르르릉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지금 안 가면 다시는 기회가 없소!”
박새한이 소리치자, 그 외침에 가면인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바람처럼 출입구 밖으로 빠져나간 사람들.
한수호는 생각보다 강력한 박새한의 특성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잘못하다간 황도13궁의 중심 인물들을 죄다 놓칠 판.
한수호가 이를 뿌드득 갈며 투명막에 박힌 주먹에 6할의 힘을 집중시키자,
쩌저정!
균열이 더욱 크게 확장되더니,
콰앙!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그대로 투명막을 부숴버리며 달려 나가려던 한수호.
그의 앞을 또 다른 투명막이 가로막았다.
한수호는 두 번째 투명막도 간단히 박살 내며 출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번엔 투명막이 아닌 뭔가가 한수호의 진로를 방해했다.
투둑. 투르르르….
한수호 앞으로 굴러온 둥그런 무엇.
그건 반쯤 썩어 문드러진 사람의 머리였다.
피눈물을 머금은 눈은 완전히 돌아가 있었고, 코는 뭉개져 뼈까지 들여다보였다.
턱 하관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입의 절반이 뜯겨 나가 이빨과 턱 근육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며, 머리뼈는 반 이상이 드러나 흉측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머리 하나.
한수호는 그 머리통을 본 순간 크게 놀라고 말았다.
한수호의 눈앞에 떠오른 정보창이 머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이라 실험체 F-28]
-키이라로 개조된 특별한 시체입니다.
-키이라 유지 시간은 5분입니다.
-일회용입니다.
-마나력: 10,010
무려 1만의 마나력을 가진 키이라였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사악하기 그지없는데다가 그냥 무시하고 갈 만큼 가벼운 존재 또한 아니었다.
그때, 머리통의 눈동자가 휘룩 돌아가더니 정상적인 자리로 돌아왔다.
정확히 한수호를 노려보고 있는 키이라의 눈.
한수호는 두고 볼 것도 없이 그대로 달려들며 머리통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키이라가 본 모습을 되찾기 전에 해치워 버릴 셈.
하지만, 키이라가 입을 적 벌린 순간,
쮸아아아아앙
시퍼런 광선이 뿜어져 한수호의 주먹을 강타했다.
콰과과과과과과
키이라의 광선이 지닌 힘은 한수호의 주먹을 뒤로 밀어낼 정도로 강력했다.
허나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한수호가 주먹에 담긴 힘을 7할로 높이자 마자,
콰직
주먹이 그대로 광선을 튕겨내며 키이라의 입안에 쑤셔 박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드드득. 콰지직!
키이라의 머리가 순식간에 변이를 일으켰다.
머리통의 절단면 아래로 두 개의 다리가 불쑥 튀어나왔고, 몸통이 쏟아지듯 흘러내렸으며, 네 개의 팔까지 쏟아냈다.
단 1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새한교의 회의실에는 어느새 5미터나 되는 거대한 괴생명체와, 그 생명체의 입에 주먹을 쑤셔박고 있는 한수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괴물의 입에 팔이 물린 것처럼 보인다.
한수호는 공중에 붕 뜬 상태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우주 괴물의 형상을 지닌 키이라를 한차례 훑어봤다.
‘지독한 놈들…. 인간의 시체를 실험체로 삼아 이런 괴물까지 만들어 내다니.’
아카데미 선배였던 유재형은 M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나마 살아있는 상태에서 괴물화 했지만, 눈앞의 이 괴물은 질적으로 달랐다.
이미 생명이 남아있지 않은 시체마저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온갖 실험을 하여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끔찍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수호는 거대한 키이라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괴물의 입에 박힌 팔에 마나력을 밀어 넣었다. 순간
파칭-
진작부터 손목에 차고 있던 용마검 팔찌가 검붉은 빛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재조합되어 기다란 검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부디 극락왕생하길.”
한수호는 작게 중얼거리며 진.용마검을 꽉 움켜쥔 채 아래로 힘차게 그어내렸다.
쫘아아아아악!
키이라의 입부터 몸통까지 일자로 쭉 갈라졌다.
아무리 키이라가 1만이 넘는 마나력을 가졌다고 하나, 지금의 한수호가 지닌 힘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수호는 그 엄청난 힘을 펑펑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응축시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있었기에 순간적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후두두둑
키이라의 갈라진 몸통에서 찢겨 나간 장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키이라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한수호는 그 사체를 짓이기듯 밟아가며 출입구로 향했다.
그가 회의실 출입구를 나섰을 때,
꽈르르르릉!
건물 전체가 울릴 정도의 굉음과 흔들림이 일어났다.
한수호가 키이라에게 잠시 붙들린 사이, 박새한이 이곳을 빠져나가 폐쇄 장치를 가동시킨 모양.
꽈앙! 쾅! 쾅쾅쾅!
육중한 바위가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과 소음이 사방에 가득했다.
한수호는 회의실을 나와 지상으로 나가는 통로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엄청난 두께의 금속 벽이 내려와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셨군.’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회의실에 남아있던 가면인 여섯은 모두 때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가 너무나도 궁금했기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고, 그로 인해 도망칠 기회를 주고 말았던 것.
게다가 생각 이상으로 적들의 육체는 강했다.
평범한 마공사였으면 한수호의 첫 번째 공격이 있었을 때, 모두 목숨을 잃고도 남았다.
하지만 가벼운 부상으로 끝났을 정도로 그들의 몸은 강인했다.
‘적이 도망칠 여유를 내어 주다니…. 내가 너무 오만했구나.’
한수호는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금속 벽을 향해 손을 뻗어냈다.
‘내 앞을 가로 막는다면….’
속으로 중얼거린 한수호는 앞을 향해 활짝 펴고 있던 손을 콱 움켜쥐었다. 순간,
콰드득!
30센티 이상의 두꺼운 금속벽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지며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모조리 박살 내주마.’
지금 한수호가 펼친 기술은 다름 아닌 ‘공간조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