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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66화 (266/375)

266화

“전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한수호가 구천승의 말을 거절했다.

“…. 뭐? 이유가 뭐냐?”

“첫째, 저는 이 동굴에 남아서 저 녀석을 보살필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둘째, 저와 어르신, 그리고 저 안드로이드까지 힘을 합쳐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면 얼마든지 여길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건 안 된다. 강우진을 혼자 남겨놓고 우리만 도망칠 수는 없어.”

구천승은 정신을 잃은 강우진을 착잡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놈도 황도13궁의 신도입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녀석은 나쁜 마음으로 그곳에 몸담고 있는 것이 아니야. 너도 지금은 알아냈겠지만, 황도13궁에는 극우와 극좌가 있지. 그중 극우파는 황도13궁의 본래 취지인 인류의 존속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다. 강우진은 바로 그 극우파의 소속인 것이고.”

“강우진이 백진성의 제자라는 것도 아십니까? 백진성은 박새한의 형이자 쌍어궁의 궁주입니다!”

한수호의 언성이 사뭇 높아졌다.

구천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우진에 대한 믿음이 너무도 깊었다.

회귀 전에, 그렇게 믿었던 친우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면서 어찌 강우진에게만 이리 관대한 걸까?

“…. 내가 저 녀석을 알고 지낸 지는 벌써 5년이 넘었다. 녀석의 자질이 너무도 훌륭했고, 됨됨이 또한 그릇되지 않다는 걸 알아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 그동안 내가 그리 모질게 대했음에도 저 녀석은 끝까지 인내하고 진심으로 날 대하더구나. 그 행동과 마음엔 거짓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한수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구천승이 강우진에게 이런 유대감을 가질 정도로 가까울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5년이나 지켜봤다니.

‘강우진을 제자로 삼으려고 했던 거구나!’

한수호는 구천승이 제자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다가 이곳 적상산 근처에서 인연을 만나 눌러앉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연이 다름 아닌 강우진이었을 줄이야.

“오늘 이곳으로 강우진을 부른 것도 나다. 방노사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마지막으로 시험을 해 보려고 했지. 그러니 저 녀석을 무사히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도 내 의무다.”

“제자로 점찍어 뒀던 거군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강우진도 함께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네가 도와다오. 그 보답은 얼마든지 해 주마.”

구천승은 은원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자신 때문에 강우진이 이리 큰 부상을 입었으니 반드시 살려 보내겠다고 결심한 것.

그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한수호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부탁조의 말까지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한수호.

지금 그에게 무엇이 이득인지는 빠르게 계산이 끝났다.

“제가 보답으로 무엇을 요구한다 해도 상관없습니까?”

“내가 할 수 있고,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 거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어르신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지요.”

한수호의 시원한 대답에 구천승은 오히려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고민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결정이 빨라서 좋군. 그럼 부탁하마.”

구천승은 더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기에 동굴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방태식에게 입구를 확실하게 봉쇄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천승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방태식은 안드로이드 황윤성을 앞에 세우고 좌우로 직사각 형태의 큐브 두 개를 내려놓았다.

큐브는 곧바로 철컥 소리를 내며 형태를 변형시켰다.

촤르르르르륵

두 대의 작은 전투 병기가 머리 대신 커다란 미니건을 휘돌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한수호는 정신을 잃은 강우진 쪽으로 다가서다가 한마디 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으면, 황윤성의 머리에 심어 놓은 제약을 푸는 게 좋을 겁니다.”

“…!”

방태식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로서는 한수호의 정체가 무언지 전혀 모른다.

그저 구천승과 묘한 인연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한수호는 안드로이드로 재탄생한 황윤성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저 밖에 있는 어린 여자애가 황윤성의 여동생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뭐라고? 밖에 황윤성의 여동생이 있다고? 설마…?”

“이름은 황가련. 하룻밤 사이에 부모와 오빠까지 모두 잃게 되면서 염의 마녀로 다시 태어난 불쌍한 아이지요.”

“허어….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니.”

방태식은 지소연이 황가련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현장을 떠난 직후에 그곳에 도착했었다.

원래는 황가련까지 구해내려 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간신히 황윤성만 안드로이드로 되살릴 수 있었다.

다만, 황윤성이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 너무도 큰 충격에 빠질 것이기에 그날 이전의 기억을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다.

그래서 지금의 황윤성은 방태식 외에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백지 상태가 된 것이었다.

“결정은 알아서 하시죠.”

한수호는 담담히 말하고는 강우진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흉측한 화상으로 뒤덮인 그를 빤히 내려다봤다.

‘강우진…. 대체 정체가 뭘까?’

한수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이곳으로 도망치기 직전에 챙겨두었던 염마갑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염마갑은 반손가락 장갑으로, 완벽한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장갑의 원래 주인은 한수호의 엄마인 이태희다.

10년 전, 이태희는 지리산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도 염마갑을 손에 착용하고 있었고, 한수호는 그걸 잊지 않았다.

‘강우진은 어머니가 계신 곳을 알고 있겠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아까 강우진이 자신을 방해했을 때, 사정 따윈 봐주지 않고 죽여버렸을 것이다.

한수호는 강우진으로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 알아봐야 할 사실이 있었기에 그의 목숨 줄을 붙여 놓은 것이다.

‘난 너 같은 류의 인간은 믿지 않아.’

구천승이 강우진을 5년이나 지켜보다가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한수호 또한 강우진에 대한 판단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머니와 한별이에 대한 정보만 알아내면 다음에 만날 때, 넌 내 손에 죽을 거다.’

한수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강우진의 가슴에 손을 살짝 얹었다.

그리고 눈앞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약탈 대상이 존재합니다. 상대의 상처를 약탈하여 관련 내성을 획득하겠습니까? YES/NO

강우진이 기절한 순간부터 쭉 눈앞에 떠 있는 문구들.

한수호가 구천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구천승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는 약탈[2]를 써서 강우진의 육체를 빼앗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천승이 자리를 뜬 지금을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대상이 기절한 상태여서는 약탈[2]를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강우진을 깨우기 위해 약탈[1]부터 사용해 상처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네가 가진 모든 기억을 빼앗아 주겠다!’

한수호는 눈앞의 메시지에서 YES를 선택했다. 순간,

투웅!

한수호의 몸이 한차례 크게 흔들리더니 강우진의 몸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손으로 빨려들었다.

‘크으으…. 역시나 엄청나구나.’

약탈[1]은 상대가 가진 고통까지 고스란히 흡수된다.

한수호는 그렇게나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이 고통을 견디는 게 너무도 힘들었다.

신음은 흘릴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방태식이 황윤성의 몸에 알 수 없는 조작을 가하고 있는 중이어서, 소리를 내면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한수호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 때,

>>내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내성을 한가지 선택하세요.(노화/불/고통/번개)

약탈[1]의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통 내성이 60%나 되는데도 이 정도 고통이 전해지고 있다는 건, 내성이 낮았다면 강우진처럼 정신을 잃고도 남았으리라.

한수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통’ 내성을 선택했다.

선택과 동시에 시야 한편에 떠 있던 내성 그래프 중, 고통에 해당하는 막대가 22%나 쑥 올라갔다.

‘고통 내성이 82%나 된다고?’

그래서 그런지 좀 전까지만 해도 끔찍하게 느껴지던 고통의 정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으으으….”

약탈 특성 덕분에 상처가 조금 완화된 덕에 강우진이 정신을 차렸다.

한수호는 강우진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기 전에 약탈[2]를 사용했다.

피이잉-

눈앞으로 붉은빛이 쭉 그어진 순간,

‘커헉!’

한수호는 너무도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놓을 뻔했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아 눈을 뜬 한수호.

그의 눈에는 동굴의 천장이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다.

‘약탈에 성공했구나.’

어렵게 시선을 돌려보니 가면을 쓴 자신이 옆으로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방태식이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황윤성의 기계 몸을 조작하고 있었다.

‘빨리 강우진의 기억을 뒤져야 해.’

너무도 극심한 고통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다가는 한수호도 정신을 잃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본래의 몸을 되찾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한수호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며 강우진의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보이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아버지 강지훈으로부터 높은 강도로 훈련받던 기억들도 스쳐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강우진의 기억 속에서 한 여인의 모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꽤나 단아하고, 아름다우며, 조용한 성품을 지닌 중년 여인.

그녀는 늘 어린아이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인과 아이의 모습은 흐릿했지만, 여인이 손에 차고 있는 검은빛의 장갑만큼은 매우 뚜렷하게 보였다.

‘염마갑!’

한수호는 염마갑을 알아봄으로써, 흐릿한 여인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인 이태희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더불어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는 다름 아닌 동생 한별이라는 사실까지도 깨달았다.

‘어머니도, 한별이도 모두 강지훈과 연관되어 있었구나!’

강우진이 두 사람을 본 것이 정확히 어느 장소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강우진의 기억 속에는 분명히 이태희와 한별이가 존재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억을 찾아내면….’

거의 다 왔다.

강우진의 기억을 조금만 더 뒤져보면 정확한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꽝!

동굴 밖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지더니,

빠지지지지직-

소리만으로도 몸에 전율이 이는 강력한 뇌전이 사방을 휘저었다.

폭음은 점점 더 강력해졌다.

꽈과광!

“아아악!”

“크헉!”

꽈지지지지지직!

이젠 비명까지 터져 나왔고, 뇌전음은 동굴 안으로까지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한수호.

그는 이를 악물고 강우진의 기억을 뒤졌고, 이해하기 힘든 장면 하나를 찾아냈다.

그 장면을 자세히 살피려는 그때였다.

“저리 꺼져!”

살마 문천득의 음성이 동굴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미니건의 미친듯한 총성이 동굴에 가득 찼다.

콰르르르르르르륵!

투르르르르륵!

단 몇 초 사이에 두 대의 미니건에서 쏟아져 나간 총알은 수백 발이 넘을 듯했다.

거기다 황윤성의 공격까지 이어졌다.

휘웅

공간을 가르는 묵직한 파고음.

그리고 이어진 폭발적인 굉음!

꽈아앙!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있던 강우진과 한수호의 몸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희뿌연 연기를 꿰뚫고 한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굵은 눈썹을 치켜뜬 채, 쓰러져 있는 한수호의 머리에 검을 박아넣으려는 자는 바로 문천득이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빨랐기에 한수호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

바로 그 순간,

촤르르르르륵! 터엉!

한수호의 온몸을 검은 갑주가 뱀처럼 휘감더니 순식간에 용갑을 두른 기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타캉!

문천득의 검이 용갑에 튕겨져 나갔다.

찰나의 순간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온 한수호.

용갑을 두른 그가 튕기듯 날아오르며 문천득의 얼굴에 일권을 내질렀다.

“그냥 곱게 죽어줬으면, 더 이상 험한 꼴은 안 봤을 텐데 멍청한 놈이로구나!”

문천득이 눈에서 살광을 뿜어냈다.

쩌엉!

검과 주먹이 허공에서 맞부딪치자 동굴이 무너질 듯 큰 폭발이 일었다.

그때였다.

동굴 입구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안으로 날아들었고, 그 그림자는 문천득을 향해 손을 쭉 뻗어냈다.

콰지지지지지직!

시퍼런 뇌전을 온몸에 두른 구천승이 쭉 뻗은 손에서 벼락이 튀어나왔다.

문천득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옆으로 뒤틀며 재차 검을 휘둘렀고, 벼락은 검극을 세차게 후려쳤다.

꽈아아아아앙!

빠지지직! 빠직!

검과 벼락의 충돌.

뇌전을 품은 강력한 충격파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그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일어났다.

치이이이이잉-

동굴의 끝자락에서 눈부신 빛무리가 이는 듯하더니,

콰드드득

공간이 갈라지며, 그곳에 균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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