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신체외적능력] : 385/999
[마나] : 6,230/99999
능력치가 엄청났다.
신체능력치만 봐도 한수호와의 차이가 100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마나력은 구천승이나 문천득과 거의 비슷한 수준.
이런 엄청난 존재를 사령마로 부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제 능력을 보고 놀라신 건가요?
가련이 귀신같이 한수호의 마음을 읽어냈다.
“너,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해?”
-물론이죠. 절 소환해 주시면 바로 보여드릴게요.
“그럼 또 마나력 5천을 날려야 하는 거냐?”
한수호가 흠칫 놀라며 묻자 가련이 호홋 소리를 내며 웃었다.
-지금은 아니에요. 다음부턴 소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나력이 소모되겠지만요. 아, 그리고 제가 봉인된 이 양초를 중심으로 반경 10미터 안에서는 제 스스로 몸을 구현시킬 수 있답니다. 다만, 마나력 소모량이 커서 오래 있을 수 없을 뿐이죠.
사령마는 쓸모가 많았다.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스스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곳에 가족이 머무는 동안 얼마든지 가족을 지켜줄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알았으니까, 한번 보여줘 봐.”
한수호는 사령마 가련을 현실에 구현시켰다.
화르르륵
촛불의 불꽃이 확 일어나는 듯하더니, 키 162센티에 고등학생 교복을 걸친 가련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거실에 나타났다.
가련은 한수호를 향해 다소곳이 인사를 건넸다.
“사령마, 가련. 주인님께 인사드립니다.”
“….어? 어…. 그래.”
한수호는 살짝 당황했다.
교복 차림의 황가련에게 주인님 소리를 듣게 되니 자신이 꼭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사령마 가련일 뿐입니다. 주인님이 알고 계시는 황가련이 아니에요. 그러니 조금도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한수호의 속마음을 눈치챈 가련의 말이었다.
“크흠. 알았다. 아무튼…. 지금 그 상태가 현실 구현 상태라는 거지?”
“네, 주인님. 제가 현실에 한 번 구현되면 마나력이 50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은 쭉 머물 수 있어요. 평범한 심부름 정도만 수행한다면 초당 1의 마나력이 소모되지만, 전투에 돌입한다면 초당 10 정도의 마나력이 소모된답니다.”
가련의 설명에 한수호는 빠르게 계산했다.
“별일이 없으면 100분 정도고, 전투에 투입되면 10분 정도밖에 머물지 못한다는 거군.”
“비슷해요. 단, 전투 시에 어떤 능력을 쓰느냐에 따라 10분보다 더 일찍 역소환 될 수 있고요.”
“대충 알겠어. 앞으로 잘 부탁한다, 가련.”
한수호는 가련에게 손을 내밀었고, 가련은 그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저 또한 잘 부탁드릴게요.”
한수호와 가련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을 그렸다.
* * *
2호 게이트에 들어간 구천승은 6시간이 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게이트 안에 먼저 들어간 방태식과 강우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들을 찾아간 것이었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죽치고 기다려봐야 아무 소용도 없고.’
한수호는 더 기다리고 있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해 바로 전투 영역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차피 게이트를 다시 나오게 되면 전투 영역에서 안전하게 있을 테니 걱정할 것도 없지 뭐.’
2호 게이트의 출입구가 한수호의 전투 영역 안에 있는 만큼, 그들이 게이트를 벗어나면 그 전투 영역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밖으로 나온 한수호는 다시 적상산 정상 부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12시가 넘어간 상태라 사위는 어둡고 적막했다.
당연히 산 근처엔 인기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극도로 발달한 시력을 이용해 아무렇지 않게 산을 내려온 한수호.
그는 가장 처음 만난 도로에서 자신의 SUV 차량을 꺼내 운전대를 잡았다.
한수호가 향한 곳은 무주군.
이제 와서 살아남은 황도13궁의 잔당들을 뒤쫓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들의 세력 절반을 궤멸시킨 이상, 당분간 그들이 설치고 다닐 일은 없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무주군에 도착한 한수호는 시설이 괜찮은 모텔을 찾아 투숙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침이 올 때까지 푹 쉬기로 했다.
상처회복 특성 덕분에 상처는 거의 다 나은 상태였지만, 어제부터 지금까지 내내 전투를 반복해온 터라 심리적 피로감이 상당했다.
한수호는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김재우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장태산입니다. 새한교의 본거지는 처리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무사하니까 걱정 마시고, 새한교를 철저하게 분쇄해 버리세요. 며칠 뒤, 서울에서 뵙죠.]
문자를 발송하고, 곧장 사기환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형! 내일 만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하루 쉬고 모레 보자. 그럼 다시 연락할게!]
사기환에게까지 연락을 마친 한수호는 공법폰을 꺼놓고, 곧바로 취침에 들었다.
그렇게 약 8시간이 지나서야, 한수호는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10시 40분.
오랜만에 차고 넘칠 정도로 숙면을 취한 한수호는 가벼운 몸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지금 쯤이면 다들 전투 영역으로 돌아와 있겠지?’
구천승이 2호 게이트에 들어간 시간부터 계산해 보면, 15시간에 가깝다.
이 시간이면 구천승이 방태식과 강우진을 데리고 전투 영역으로 귀환하기에 충분했다.
‘가기 전에 미션부터 해 볼까나?’
한수호에겐 하루 일과나 다름없는 일일미션.
오늘의 미션 내용을 확인하던 한수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오늘의 미션]
-1회 타격으로 50톤의 위력을 만들어내기
-획득 포인트: 100NP / 10,000LP
*개조 최종단계 적용으로 일일미션 획득 포인트가 2배 상승합니다.
‘일일 미션으로 100NP나 줘?’
정말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스승부부와 함께 섬에서 지낼 때까지만 해도 일일 미션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0.5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200배인 100NP를 받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개조 2단계와 3단계 능력치를 높이라고 아주 팍팍 밀어주는구만.’
2단계 수치는 10NP에 1을 올릴 수 있고, 3단계 수치는 100NP에 1이다.
이 비율을 감안하면 100NP도 큰 수치는 아니었지만, 1단계도 아직 999를 채우지 못한 상태이기에 100이라는 숫자는 보통 큰게 아니었다.
‘신체 능력 평균치를 999까지 올리려면 적어도 3,500NP는 있어야 겠구나.’
한수호의 현재 평균치는 481.
총 7개 항목을 모두 999로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 3,500NP가 필요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일일미션만 잘 완수하면 되겠는데?’
지금 350NP를 보유하고 있으니 31일만 지나면 거의 3,500NP가 만들어 진다.
그러면 광폭화나 괴인혈을 사용하지 않아도 999 최고치를 찍을 수 있었다.
‘신체 능력치 한계가 999가 맞다면 말이지.’
지금은 999가 한계로 되어 있지만, 이것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수호는 짧게 생각을 마치고 곧장 전투 영역으로 이동해 버렸다.
슈우욱-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수호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빛마저 굴곡시키는 아공간을 찰나지간에 통과해버린 한수호.
그는 이미 검은색의 특수 합금으로 이루어진 진입차단벽 안에 도착해 있었다.
마치 거대한 복싱경기장 안에 단 한 명의 관중도 없이 혼자 서 있는 듯한 기분.
한수호는 이 진입차단벽의 유일한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얼굴과 지문, 음성으로만 열리는 문을 통해 통로로 들어간 한수호는 길게 이어진 통로의 끝에서 월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은 집에서 쉬고 계시냐?”
당연하다는 듯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 아무도?”
뭔가 이상했다.
구천승 같은 강자가 2급 게이트 안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방태식이나 강우진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감이 무뎌졌나? 나쁜 예감은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초감각이 13까지 오른 이후로는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엔 꼭 전조가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전조현상이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들어가 봐야겠구나.’
한수호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미션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수련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쪽 구석에 놓인 펀치력 테스트키 앞에 섰다.
진입차단벽보다도 강력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합금이 검은빛을 번들거리며 한수호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테스트기가 체크할 수 있는 최대 위력은 100톤까지.
오늘 미션은 50톤이었으니 큰 문제가 없었다.
‘대충 4할 정도의 힘이면 충분하겠지?’
한수호는 오른 주먹을 꽉 말아쥐며 주먹에 마나력을 끌어모았다.
거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마나압축법까지 사용했다.
피이이이이잉-
주먹 앞으로 빛의 무리가 모여들던 어느 순간,
터엉
한수호가 한 발을 크게 내디디며 테스트기의 중심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쩌엉!
짧고 굵은 타격음이 수련장 전체로 크게 울려퍼졌다.
테스트기 위에 달린 전광판에 숫자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도도도도도도도
[60,472kg]
숫자는 60톤을 살짝 넘은 상태에서 멈춰 섰다.
‘예스!’
한 방에 일일미션이 해결됐다.
마나압축법으로 힘을 두 배로 높인 결과였으니, 4할의 힘으로는 약 30톤의 위력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순수한 내 힘만으로는 거의 100톤까지 위력을 낼 수 있겠군.’
한수호는 자신의 힘을 대충 가늠해 보고는 다시 게이트 보관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월. 나도 저 게이트 안에 들어갈 거니까 나 없는 동안에 혹시 어르신이 나오면 잘 설명해 드려.”
“알았다.”
월의 든든한 대답에 만족한 한수호.
그는 고니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품에 끌어안은 상태로 2호 게이트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 * *
투웅-
구천승은 푸른 빛을 내는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가 그대로 튕겨나오고 말았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똑같았다.
이놈의 게이트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뇌왕. 아무래도 이 게이트도 비활성화 된 것 같습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방태식이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했다.
“미치겠군. 게이트가 비활성화 되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오?”
구천승은 7시간이나 지나서야 방태식과 강우진을 찾아냈고, 그들과 함께 게이트 출입구로 되돌아왔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게이트는 푸른빛을 내기만 할 뿐, 표면의 출렁임이 멈춘 상태였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려 했었다.
그런데, 통과가 불가능했다.
방태식도, 강우진도, 구천승도.
셋 중 그 누구도 게이트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게이트 내에 존재하는 다른 게이트를 찾아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 게이트도 다를게 없었다.
게이트는 그 누구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구 선배님. 어쩌면 제가 이 뇌정(雷晶)을 가져와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위 위에 힘겹게 앉아 있던 강우진의 말이었다.
그는 지금 얼굴 전체로 붕대를 감고 있었다.
구천승과 방태식이 온갖 방법으로 그의 얼굴을 치료하려 하였으나, 상처가 얼마나 지독한지 전혀 나아지지를 않았다.
얼굴 가득 흐르던 피와 고름은 사라졌지만, 흉측한 상처와 고통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이유는 아니다. 아무튼,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막힌 듯하니 쉴 만한 장소를 찾아 보도록 하지.”
구천승은 오래전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서 지리를 상당히 잘 아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들에게 알릴 수는 없기에 모르는 척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찾아간 곳은 커다란 바위가 집처럼 차곡차곡 쌓인 장소였다.
주변 시야가 탁 트여있어서 몬스터가 접근해 오면 쉽게 발견해 낼 수 있었고, 그들 자신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게 가려지는 곳이라 휴식을 취하기에 딱이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은 세 사람.
강우진은 조심스럽게 ‘뇌정’을 구천승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감당할 만한 물건이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구 선배님에게 어울리는 물건인 것 같고요.”
뇌정은 번개 모양을 한 투명한 돌맹이였다.
워낙 투명해서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였는데, 뇌정의 안에는 마치 벼락이 몰아치는 듯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는 강우진이 우연히 얻은 것으로, 이 게이트에서 특별한 시험을 거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너에겐 미안하구나. 이건 이미 주인이 있는 거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이해하거라.”
구천승은 강우진이 내미는 뇌정을 덥썩 받아 챙겼다.
그 행동에 강우진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걸 정말 가져간다고? 내가 힘들게 얻은 보상인데?’
강우진은 뇌정을 내밀어도 구천승이 오히려 거부할 줄 알았다.
그는 구천승이 자신을 후계자 점찍었기 때문에 적상산으로 불러들였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뇌정을 내놓는 척하면, 자신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이 어긋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많이 서운한가 보구나.”
구천승도 강우진의 속마음을 느꼈는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께 서운함이라니요. 구 선배님께 백번 천번 절을 해도 모자랄 겁니다.”
“절이라….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없는데 어찌 절을 받겠느냐. 그건 되었다. 대신, 이걸 주마. 네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여기까지다.”
구천승은 강우진이 구배지례를 빗대어 절이라는 말을 꺼냈음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한수호에게 보여주었던 특성석을 꺼내 강우진에게 넘겼다.
“이건…?”
“너라면 이것만으로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다.”
어찌된 일인지, 강우진을 바라보는 구천승의 눈빛이 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뭔가 아련한 마음으로 자식을 대하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마지못해 줄 것을 주고 관계를 정리하려는 듯한 냉정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