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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75화 (275/375)

275화

예티거들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수호의 손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이는 쇄혼과 돌파 특성을 한꺼번에 사용한 결과였다.

온몸을 쇄혼으로 둘러싼 뒤, 광속에 준하는 속도로 예티거들의 몸을 육탄으로 들이받음으로써 생겨난 위력은 끔찍하고 잔혹했다.

한수호가 번쩍번쩍할 때마다 예티거들이 펑펑 터져 죽어버리니, 결국 그 광경을 본 라이쿤들마저 도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전투에 지친 방태식과 강우진을 어떡하든 잡아먹으려는 라이쿤들이 아직 10마리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예티거를 몰살시킨 한수호가 고개를 돌려 눈을 번뜩이자,

깨갱!

컹커겅!

그 즉시 꼬리를 말고 숲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싸움도 참 요란스럽게 하는구나.”

한쪽으로 물러나 있던 구천승이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을 하자 한수호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요란한 만큼 장사도 잘된다는 거 모르십니까?”

한수호는 진작에 뇌정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뒤였고, 지금은 예티거들의 심장을 뽑아 하나하나 챙기는 중이었다.

괴인혈의 진화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몬스터의 심장이 필요했기 때문.

“마나가 부족하지도 않은 녀석이 심장은 챙겨서 뭐 하게?”

“만사는 불여튼튼 아니겠습니까?”

“쯧. 됐으니 그만하고 이제 여길 좀 떠나자. 난 체질상 지구 외의 장소에 오래 있는 게 영 싫단 말이지.”

구천승은 한수호를 도와 몇몇 예티거들의 심장을 뽑아 한수호에게 건넸다.

“그렇게 여기 있는 게 싫다면서 왜 아직 머물고 계시는 건데요?”

“왜냐고? 게이트가 닫혀서 통과할 수가 없는데, 어찌 나가라는 거냐?”

“게이트가 닫혔다고요?”

한수호가 놀란 음성으로 묻자 구천승이 좀 전까지의 이곳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한수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띠었다.

“제가 올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아까는 왜 그랬을까요? 혹시, 이곳의 게이트는 시간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구조인가요?”

한수호가 질문을 던졌지만, 구천승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이 게이트는 한 번도 출입구가 닫힌 적이 없다. 그때도…. 크흠. 어쨌든, 이제라도 게이트가 활성화되었으니 우리 세계로 돌아가자꾸나.”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어르신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뭐든 말해보거라.”

“저희가 게이트를 통해 건너가게 될 곳은 아시다시피 제 개인적인 장소라….”

한수호가 뒷말을 살짝 흐리자 구천승이 피식 웃음을 그렸다.

“네 말은 방노사와 강우진의 눈이라도 가려달라는 뜻이냐?”

과연 구천승은 눈치가 빨랐다.

한수호의 말 몇 마디만으로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어 어렵다고.”

구천승은 바로 방태식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근처에서 나뒹구는 라이쿤 사체에서 껍질을 북 찢어냈다.

그걸 뇌의 힘으로 바짝 말려버린 뒤 두 조각으로 나눠 방태식에게 넘겼다.

“방 노사. 우릴 지구로 데려다줄 녀석이 우리한테 숨기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오. 그러니 게이트를 통과할 때 이걸로 눈을 가려주시겠소?”

가감 없이 담백하게 하는 말에 방태식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협조하겠습니다.”

방태식은 흔쾌히 허락했지만, 강우진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상태로 한수호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제 갑시다.”

구천승은 강우진의 상태를 돌봐줄 생각이 없는지 매정하게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 * *

모텔 방으로 돌아온 한수호.

그의 옆에는 라이쿤의 껍질로 눈을 가린 방태식과 강우진이 서 있었다.

“가리개는 벗으셔도 되지만, 눈은 아직 뜨지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네.”

한수호는 두 사람을 모텔 방 밖으로 안내했고, 복도를 한참 걸어가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섰다.

“딱 3초 뒤에 눈을 뜨면 됩니다.”

한수호는 그 말만 하고 떠나려고 했다. 그때, 방태식이 한수호를 붙잡았다.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묻겠네. 동굴에서 나와 함께 있던 녀석은…. 어찌 되었나?”

“…. 동생과 함께 잘 묻어주었습니다.”

“그…렇군. 결국, 그렇게 된 거군. 후….”

방태식의 표정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드리워졌다.

“떠나야 할 사람을 억지로 세상에 붙잡아 놓는 게 항상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수호는 진작에 죽었어야 할 황윤성을 안드로이드로 개조해 되살려 놓은 걸 지적하고 있었다.

“나라고 어찌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서로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죽어버린 가족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네. 어쨌든, 자네가 잘 묻어주었다니 대신 감사의 인사를 하겠네.”

“이미 그들에게 인사는 받았습니다. 그럼 이만.”

한수호는 알수없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삥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학생. 이제 그만 가지.”

방태식은 이미 눈을 뜨고 한수호가 사라진 모텔 복도를 멍하니 바라보는 강우진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런데…. 노사님.”

강우진은 이제야 제정신을 차렸는지 눈에 총기가 되돌아 왔다.

“왜 그러나?”

방태식의 반문에 강우진은 화상을 흉측하게 변한 얼굴로 주변을 쭉 둘러봤다. 그리고 대단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방태식을 돌아봤다.

“아무리 봐도, 여긴 적상산 정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 음?”

그러고 보니 놀라운 일이었다.

분명 게이트가 열린 장소는 적상산 정상 근처의 동굴 깊숙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와 마주한 것은 이름 모를 모텔의 복도였다.

게이트의 출입구는 오직 하나다.

지금껏 A라는 지점에서 게이트를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무조건 다시 A 지점으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상식이 완전히 깨졌다.

방태식은 침을 꿀꺽 삼키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강우진을 잡아끌었다.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간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 나갔고, 모텔 밖 거리로 나섰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상태라 거리는 적막했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사방에서 번쩍거리고 있어 이곳이 적상산이 절대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긴…?”

방태식이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리자, 바로 뒤따라 나온 강우진이 어느 한 곳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한마디 했다.

“여기가 무주라고?”

강우진이 빤히 바라보는 곳엔 신호등 위에 커다란 표지판이 달려 있었는데, 거기엔 ‘무주IC 5.2km’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 * *

한수호가 모텔 방으로 돌아와 다시 전투 영역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어허. 거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첨단 로봇이라면서 건축의 건 자도 모르고 있는 것이냐?”

구천승이 월을 상대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월은 당신과 말하면 안 된다…요.”

“무슨 언어장애라도 있냐? 안 된다요는 또 뭐야? 그건 그렇고, 이 장소를 추가적으로 확장하려면, 그곳엔 마감 처리를 하면 안 된다 이거다.”

“주인이 정한 경계선은 이곳까지다…요. 당신이 지적해도 바꿀 수 없다…요.”

“허어. 이 답답한 깡통 로봇을 봤나!”

구천승은 월의 이상한 말투와 고집스러움에 답답한 듯 제 가슴을 쳤다.

그때 한수호가 나타나자 바로 한수호를 향해 한소리 질렀다.

“어째, 로봇까지 지 주인을 닮아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구나!”

“낯선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참견을 하니까 그러는 거죠.”

“내가 낯선 사람이다? 내가 널 후계자로 삼은 이상, 더는 낯선 사람이 될 수 없을 텐데?”

구천승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한수호를 노려봤다.

그러자 한수호는 가면을 벗으며 씨익 웃었다.

“바로 재교육에 들어가겠습니다, 스승님.”

한수호가 금방 저자세로 나오자 그제야 구천승의 표정이 풀렸다.

“오냐. 알아서 잘하리라 믿으마. 방 노사와 우진이는 잘 보내줬고?”

“물론입니다. 적상산이 아니라 무주인 걸 알면 좀 많이 놀라긴 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느냐? 게이트를 자신의 아공간으로 옮길 수 있는 괴상망측한 능력을 지닌 놈이 있을 거라고 말이야.”

구천승은 아직 10% 정도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게이트 보관소의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통 새하얀색으로 가득한 세상.

하늘도, 바닥도 모조리 하얗기만 하다.

도무지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장소.

이런 엄청난 공간을 오직 한수호 혼자만 이용할 수 있고, 그곳으로 게이트까지 옮겨버릴 수 있다니.

이런 건 구천승도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

구천승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주의를 주자 한수호가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구에 이런 아공간 능력을 지독하게 증오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는 걸 아느냐?”

“…. 혈마 신유를 말하시는 겁니까?”

“잘 아는구나. 놈이 왜 혈마라는 별칭을 얻었는지를 안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아공간 능력을 사용하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할 게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입니까?”

“살마 문천득도 상대하기 힘든 작자이지.”

구천승은 혈마 신유에 대해 말하면서부터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어르신에 비하면요?”

“내가 그자와 맞붙는다면, 49%의 확률로 내가 패한다.”

“49%요?”

그렇다면 승률이 51%라는 것이니 아주 미세한 차이로 구천승이 더 강하다는 뜻.

하지만 그렇기에 한수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수호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강한 인물이 바로 구천승이다.

그가 진짜로 마음만 먹는다면 문천득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구천승조차 승리를 확실히 장담할 수 없는 상대가 있었다니.

“그가 용서 못 할 악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행을 베푸는 선인 또한 아니지. 아공간 능력을 헛되이 쓰거나, 그로 인해 스스로 제어력을 잃은 자들은 반드시 죽이고 마는 작자라 특히 조심해야 한다.”

혈마 신유.

그가 혈마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그의 특기가 바로 혈령술이기 때문이었다.

혈령술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상관없이 그 누구의 피라도 마음대로 사용하여 전투에 이용할 수 있었다.

피로 만들어진 혈인을 만들어 낸다거나, 피로 만들어 낸 화살인 혈시, 피로 이루어진 탄환인 혈구탄 등등.

피만 있으면 무엇이든 부수고, 자르고, 분쇄할 수 있는 궁급의 마공사가 바로 신유인 것이다.

한수호는 회귀 전에도 신유라는 인물을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신유, 그자는 자신도 아공간 능력을 가졌으면서 왜 그리 아공간 능력자를 증오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공간 능력자가 그 힘에 대한 제어력을 잃으면 세상이 붕괴되기라도 한답니까?”

한수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고, 구천승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작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지.”

“그러면 큰 이유는 뭡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구천승.

그는 건축 자재가 쌓인 곳에 엉덩이를 붙이며 천천히 입을 뗐다.

“그도 나처럼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이어지는 구천승의 말은 한수호로서도 뜻밖의 내용이었다.

혈마 신유.

그의 아내는 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아공간 능력자의 힘에 의해 알 수 없는 공간으로 튕겼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아공간 능력자가 바로 신유의 여동생이었다.

신유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친동생을 붙잡아 고문까지 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신유의 동생은 능력에 잠식되면서 이성을 잃고 말았다.

결국 신유의 여동생은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그로 인해 신유의 아내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고.

“모두 가족과 관련된 아픔을 지니고 있군요.”

구천승도, 신유도, 그리고 한수호 그 자신도.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어떤 이유에서든 가족을 억울하게 잃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더 악착같이 살게 되면서 강함을 취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 아공간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거라.”

그 말에 한수호가 움찔했다.

“설마, 나 말고 이 아공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더 있는 것이냐?”

“…. 뭐, 그렇게 됐네요.”

한수호는 이 전투 영역에 세 명을 더 데려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국가수호대의 요원들이라 함부로 이 능력에 대해 퍼뜨리고 다닐 인물들은 아니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니 어쩔 수 없다만, 더는 숫자를 늘리지 않길 바라마.”

“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구천승은 한숨 섞인 대답을 하고는 한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요?”

“뭐 생각나는 거 없느냐?”

“생각… 아!”

한수호는 아차 싶어 구천승 앞에 똑바로 섰다. 그리고,

“제자 장태산이 한울뇌왕 구천승 어르신께 정식으로 인사 올립….”

“그만. 그런 형식적인 인사는 필요 없다.”

“네? 그럼 뭘…”

한수호는 아리송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에 싸인해라.”

구천승이 코를 만지작거리다가 품에서 꺼내든 건, 다름 아닌 계약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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