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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77화 (277/375)

277화

구천승은 한수호가 뿜어낸 벼락의 힘을 쳐낸 손을 내려다봤다.

마치 손을 용광로 속에 넣었다 뺀 것처럼 화끈하다.

‘단순히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벼락을 쏟아낼 수 있다니….’

이미 오래전, 뇌정의 힘을 흡수했던 구천승으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뇌정의 힘이 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제대로 컨트롤 해 봐라.”

구천승이 부드럽게 한마디 하자, 잠시 당황했던 한수호가 마음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폭주 기관차처럼 마구 날뛰고 있는 심장을 차분하게 진정시키고, 온몸 가득히 차 있는 강인한 힘을 최대한 부드럽게 다스리려 했다.

10초가 지나고, 30초가 흘렀을 때.

드디어 한수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뇌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즉시 자신의 능력치 정보를 다시 확인한 한수호.

[신체외적능력] : 400/999

[신체내적능력] : 50/99

[마나] : 12,020(+1,080)/99999

[육체한계치] : 0/4

신체 능력치가 400으로 뚝 떨어졌고, 육체한계치는 처음보는 숫자인 0으로 바뀌었다.

‘0도 있었어?’

한계치가 0이라는 건 현재는 그 어떤 힘도 몸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

또한 신체 능력치가 400이라고 해서 실제로 능력이 400으로 떨어진 건 아니었다.

억지로 뇌정의 힘을 찍어 누르고 있어서 400의 수치로 보이는 것일 뿐, 진짜는 888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너,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갑자기 구천승이 크게 놀란 듯 소리쳐 물었다.

“네? 뭘요?”

“지금 네 몸에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느냐?”

“예?”

한수호는 이제야 육체한계치 0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존재감마저 지워지는 상태가 바로 육체한계치 0인 것이다.

“알면 알수록 괴물 같은 놈이로구나. 뇌정의 힘이 날뛰지 못하게 제어하라고 했더니, 아예 존재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다니. 암살자로 전직하면 딱이겠구나.”

“그것도 나쁘진 않겠는데요?”

한수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히죽 웃어 보였다.

“어쨌든, 이제 뇌신기를 본격적으로 익힐 기본 준비가 된 것 같군. 뇌정의 효과가 좋긴 좋구나.”

“그러니까…. 스승님도 회귀 전에 저와 똑같은 뇌정을 섭취했던 거죠?”

한수호가 묻자 구천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하지만 난 5일이나 지나서야 흡수를 끝낼 수 있었지. 그런데 넌 단 이틀 만에 그걸 해냈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널 보면 천재라고 자부하던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강우진에 비해선 부족하다면서요.”

“아니.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구나. 넌 내가 만난 사람 중에…. 후. 아니다.”

구천승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수호는 듣지 않아도 다음 말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강우진을 상대로 한 의문의 1승을 거둔 한수호.

뿌듯한 마음이 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만은 금물이다…라고 말하고 싶으나, 너한테는 해당이 안 될 것 같아 속으로만 삼키마.”

“이미 말씀해 놓고 뭘 속으로 삼켜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제 뇌신기를 실전에 써보도록 하자꾸나. 최후의 비기인 ‘뇌강’까지 익히려면 최선을 다해야 할게다.”

구천승은 얼른 말머리를 돌리며 뇌신기의 실전으로 넘어갔다.

뇌신기는 크게 세 가지 초식과 마지막 최후비기로 나뉘었다.

초식 하나하나를 살펴보자면,

1초식은 섬뢰(閃雷)로, 그저 몸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뇌전을 사방으로 마구 뿜어내 주변 3미터 내에 존재하는 모든 걸 파괴해 버린다.

2초식은 낙뢰(落雷)였는데, 수십 미터 떨어진 곳의 사물 또는 장소에 수백만 볼트에 달하는 벼락을 때려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는 기술이었다.

3초식은 폭뢰(爆雷)였다.

이 초식은 상대의 신체 부위를 단숨에 폭발시킬 정도로 강력하지만, 신체에 반드시 닿아야만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신체 접촉이라는 제한이 있는 반면, 위력은 가히 최강이라 볼 수 있었다.

마지막은 바로 최후 비기 뇌강이었다.

뇌강은 간접 타격이 가능하면서도 폭뢰와 유사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기술에 당하면 뇌와 육체를 이어주는 신경계에 교란이 발생하여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을 점점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다만, 이 뇌강을 사용하게 되면 사용자의 방어력이 2초 동안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낮아지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대일 대결에선 이 뇌강이야말로 최강.

하지만 대규모 전투에서 이 뇌강을 잘못 사용했다간 허점을 내보이게 되어 제삼자의 공격에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다.

한수호는 섬뢰, 낙뢰, 폭뢰 삼초식에 이어 최후비기 뇌강까지 전수를 받았을 때,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뇌강을 사용한 직후에 초감각을 사용하면 내 방어력이 사라지는 시간을 0.2초까지 당길 수 있겠는데?’

한수호의 초감각은 세상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자신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빨라지게 만든다.

즉, 초감각 수치 1을 소모하면서 10배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한수호의 육체에 흐르는 시간도 10배 빠르다는 뜻이 된다.

그럼 뇌강 사용 직후 2초간 발생하는 방어력 하락 현상은 실제 현실에선 0.2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한수호는 구천승과는 달리 뇌강을 사용한 후의 패널티에 그다지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놈아.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딴청이냐!”

혼자만 생각에 빠져 피식거리는 한수호에게 구천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집중하겠습니다.”

“또 엉뚱한데 신경 쓰는 모습이 보이면, 그땐 말로 안 끝난다.”

“네네.”

“이놈! 대답은 한 번만 하거라!”

“아, 네….”

움찔한 한수호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자 구천승은 혀를 끌끌 차다가 다시 뇌신기 강의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50일에 근접하는 방학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날짜상으로는 8월 28일.

아카데미 개강이 이제 코앞이었다.

‘드디어 횡경도에 갈 때가 된 건가?’

한수호는 명상을 마치고 눈을 번쩍 떴다.

그가 있는 곳은 진입차단벽의 중심이었고,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구천승과 함께 지낸 지도 벌써 44일.

그동안 한수호는 하루의 절반은 전투영역 안에서 구천승과 함께 수련을 하며 지냈고, 나머지 절반은 방방곡곡을 떠돌며 의뢰 임무를 수행했다.

모두 단독임무였기에 파티를 이루는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 마주치는 일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총 5개의 임무를 완벽하게 마친 한수호.

그러는 동안에도 구천승의 조언에 따라 국가에서 거의 관리하지 않고 있는 8, 9급 게이트와 던전을 찾아갔다.

그리고 5개나 되는 게이트와 2개의 던전을 전투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모든 게이트나 던전은 아무리 8, 9급이라고 해도 최소한 한 개 분대가 방어 초소를 차려 지키고 있었지만, 한수호의 은밀한 움직임은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았다.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법처럼 게이트가 사라진 걸 보고는 크게 경악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사건이 핫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거창 서경병원 게이트,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다.]

[사라진 합천대야성 던전은 과연 폐쇄된 것일까?]

[벌써 네 번째 증발. 사라지는 게이트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건 대체 무엇인가!]

[폭풍전야와 같은 게이트 증발 사태! 정부는 왜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가?]

전국 곳곳에서 게이트가 사라지자 세상이 난리가 났다.

이제 정말로 아마겟돈이 왔다느니, 진정한 아포칼립스의 시작이라느니 하는 말까지 떠돌 정도.

하지만 그 누구도 게이트가 어째서, 왜, 무슨 목적을 위해 사라지고 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한수호와 구천승뿐이었으니까.

한수호는 게이트 보관창고로 향하는 통로에 들어섰다.

항상 이 통로에 들어서면 월이 공사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지만, 이젠 전처럼 큰 소음은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르게 되면서 게이트 보관창고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구천승이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구천승은 건축에 상당한 전문가였고, 월을 교육해 가며 세상에 다시 없을 거대하고 튼튼한 폐쇄 건물을 거의 완성시켰다.

게이트 보관 창고는 작은 도시에 가까울 정도로 거대했다.

사방이 특별 강화 합금으로 막혀있는 게이트 보관창고.

그 건축물의 테두리에는 20미터 간격으로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창고에 설치된 게이트 수는 총 9개였다.

한수호는 직경 2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보관 창고를 둘러보다가 4호 게이트 앞에서 서성거리는 구천승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은 어디 가고 왜 스승님께서 여길 지키고 계시는 겁니까?”

“음. 왔느냐? 다른 게 아니라, 오늘따라 월 이 녀석이 게이트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안에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녀석들, 또 몬스터 사냥에 나섰어요?”

한수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20일 전, 한수호가 계속해서 게이트를 이곳으로 가지고 오자 월이 게이트에 점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슨 마음에 결심이라도 했는지 한수호에게 당당히 몬스터 사냥을 요구했다.

월 자신을 포함해 살이와 범이 모두, 그동안 공사만 하며 고생을 했으니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게이트에 들어가 전투를 즐길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한수호는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

지금 월의 마나력은 거의 궁급에 이르렀고, 살이와 범이도 진급을 진작에 넘어선 터라 8, 9급 게이트 안에서는 위험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몬스터 사냥을 하면서 심장을 취해 마나력을 코어에 축적시키면, 더욱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뒤로 월과 살이, 범이는 이틀에 한 번씩 꼬박꼬박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 사냥을 즐기고 왔다.

매번 피범벅이 되어 돌아왔지만, 녀석들이 상처를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주 가끔, 살이와 범이의 외골격 한두 군데가 찌그러지는 일은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망가지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좀 문제가 생긴 듯했다.

“게이트에 들어간 지 벌써 6시간이 넘었다. 다른 때보다 1시간이나 더 지났어.”

“그럼 같이 들어가 볼까요?”

슬쩍 구천승의 의중을 떠봤지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깟 몬스터 봇 놈들이 뭐라고 이 구천승이 이리 안절부절못하는지…. 됐으니, 네 볼일이나 보거라. 시간 되면 알아서 나오겠지.”

구천승은 마음을 정했는지 몸을 돌려 보관창고의 유일한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수호는 지금 구천승이 왜 저러는지 잘 안다.

오래전, 믿었던 친우에게 배신당해 죽을 뻔한 일을 겪은 이후로 구천승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젠 ‘명경지수’ 특성을 통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인간관계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방태식에게 도움을 받은 일과 강우진의 진솔한 마음에 더 고마움을 가지게 된 것이기도 했고.

월과 살이, 범이도 구천승에겐 비슷한 존재였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절대 거짓을 말하는 경우가 없으며, 배신할 걱정조차 할 필요가 없는 몬스터 봇들.

그들과 44일을 함께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정이 든 것이다.

“스승님. 제가 여기에 온 건 스승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입니다.”

“나한테?”

걸음을 멈춘 구천승이 한수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곧 개강입니다. 오늘은 8월 28일이고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

구천승은 한수호과 왜 날짜를 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2051년 9월 1일.

이날 횡경도라는 곳에 던전형 게이트가 열리게 되며, 그 안에 0티어 특성인 ‘쇼크이터’가 등장한다.

구천승을 완전히 믿게 된 한수호는 그 사실을 이미 자세히 알려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랜만에 저와 함께 밖으로 나들이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구천승은 44일이 지나는 동안, 처음 며칠을 빼고는 이 전투영역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이곳은 먹을 곳과 쉴 곳, 그리고 그 어떤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 편안한 장소였기에 세상 모든 걸 의심하는 성격인 구천승이 지내기엔 안성맞춤이었으니까.

“비돈귀살 부부가 그 섬에 산다고 했지?”

“네. 소횡경도와 연결되어 있는 횡경도에 살고 계시죠. 며칠 전에 연락해서 30일쯤 들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래도 비돈귀살이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구나.”

“제가 스승으로 모신 이상, 그분들도 편히 대해주실 겁니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7년 전, 비돈귀살 부부와 처음 만났을 때 시작부터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비돈마마 주태란은 날 보는 게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게다.”

구천승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구천승의 별호는 ‘한울뇌왕’.

뇌왕이라고 불리우는 구천승과 벽력권을 사용하는 주태란은 물과 기름의 관계일 수밖에.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그 미친 돼지가 달라질 리…. 크흠. 미안하다. 말이 헛나왔구나.”

구천승은 주태란을 상당히 못마땅히 여겼지만, 한수호를 봐서 최대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는 중이었다.

“아직 이틀 더 시간이 있으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시간이 다 되어서 먼저 나가봐야 할 것 같네요.”

“뭐? 네가 나가면 게이트가 닫힐 텐데, 월 녀석들은 어쩌라고?”

“그건 걱정 마세요. 저기 녀석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한수호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게이트 앞에는 뭔가 커다란 물체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온몸에 흙먼지와 알 수 없는 액체를 뒤집어 그건 살이와 범이였다.

그리고 2초 후, 자그마한 체구의 월이 게이트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의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머리통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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