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이상윤]
-나이: 32세
-현 위치: 특정 불가
-보유 특성: 매화 십삼수
-가족 관계: *****
-추가정보: 이프리트 소속의 진급 마공사. 8급 게이트의 마나폭발을 조작하기 위한 임무 수행 중, 몬스터 봇에게 사망
한수호는 서해에 위치한 선유도의 한 펜션 안에서 사기환이 알려준 정보를 확인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줄이야….’
월이 4호 게이트에서 나올 때 손에 들고 나온 건 다름 아닌 이프리트 소속의 마공사 머리였다.
월의 말에 따르면, 살이 범이와 함께 게이트 안에서 신나게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세 명의 가면인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짜고짜 월 등을 공격했는데, 인간을 상대로는 싸워본 적이 없었던 월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하기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월은 머지않아 이들이 쓰고 있는 가면이 바로 한수호의 적인 이프리트의 상징적인 물건이라는 사실 깨달았다.
그리고 살이, 범이와 힘을 합쳐 세 가면인을 몰살시켰다.
그 와중에 월은 상당한 부상을 당한 살이와 범이를 먼저 게이트 밖으로 돌려보낸 뒤, 가면인들 중 가장 강했던 자의 머리를 잘라 들고나온 것이었다.
한수호는 월의 설명을 전해 들은 뒤, 곧바로 전투 영역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기환에게 연락해, 월이 들고 나온 머리통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 결과 얻은 정보가 방금 전의 내용이었다.
한수호는 이프리트가 황도13궁의 고위 간부들 여럿을 잃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쥐죽은 듯 조용히 상황을 지켜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 벌써부터 이프리트의 인물들이 마나폭발을 유도하기 위해 움직이 시작했다.
‘나도 조심해야겠는데?’
이프리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황도13궁의 간부들에 대한 복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당시, 적상산에서 간부급 인원 11명 중 살아서 도망친 자는 단 네 명.
한수호와 구천승의 손에 7명이나 몰살당했으니 어찌 분하지 않을까.
한수호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겠지만, 구천승은 어디를 가도 존재감을 보이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터.
‘스승님이 내 전투 영역에 머무르고 계신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구나.’
놈들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아직 이프리트와 전면전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꽃잎 열개의 가면인의 정체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그들이 과연 어디에까지 파고들어 있는지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
그리고 한수호에겐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뿔뿔히 흩어진 가족을 찾아야 했으며, 횡경도에서 출현할 게이트를 찾아가 쇼크이터 특성을 얻어야 했다.
또한 8월에서 10월로 미루어진 미국 소속의 궁급 마공사 나스타샤의 방문에도 대비해야 했으며,
‘강우진…. 그자를 다시 만나면 이번엔 기억을 완벽하게 훔쳐내야 해.’
한수호는 아카데미가 개강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적상산에서는 약탈[2]의 쿨타임 때문에 강우진을 어쩔 수 없이 보내줘야 했다.
때문에 개강 후, 아카데미에서 강우진을 만나면 더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그의 기억을 뒤져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하늘이 날 돕는 건가? 급한 일부터 처리하라고 나스타샤의 한국 방문 일정이 미뤄질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미국에서 주목받는 중요 마공사이자 회귀자이기도 한 나스타샤.
그녀는 원래 8월 초 한국에 방문했다가 공항에서 테러를 당한다.
소문과 달리, 실제로는 목숨을 잃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 테러 사건으로 희생당한 마공사와 일반인 숫자가 2백이 넘는다.
그 희생자 중엔 김재우의 연인, 윤재희도 포함되어 있었고.
‘재희 누나가 스스로 자폭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해.’
한수호는 윤재희가 이프리트의 조종을 받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년 1월엔 한남동 게이트를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가서 그곳에 등장하게 될 약탈[3]를 먼저 얻어내야 했다.
‘할 일이 태산이네….’
한수호는 앞으로의 계획을 차분하게 떠올리다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해의 고요한 밤바다를 바라봤다.
회귀 전에는 그저 맹목적으로 악인을 뿌리뽑고, 세상을 공포로 물들이는 게이트 속 몬스터들을 소멸시키는 일에만 매진했었다.
그러다보니 지금처럼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밤바다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밤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프리트가 이런 평화로움을 앗아가는 일은 결코 벌어지게 만들 수 없어!’
한수호는 다시 한번 굳게 결심했다.
* * *
8월 31일 오전 8시.
한수호는 중고 보트를 구매해 횡경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보트 안에는 한수호 말고도 구천승이 타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한가득이었다.
원래는 한수호가 횡경도에 다녀오는 동안 편안히 전투 영역에 머물거나 보관 창고에 있는 게이트 중 하나에 나들이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한수호가 한 말에 모든 걸 제쳐 놓고 동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제 양부모님들께서 스승님을 위해 신선한 해산물을 잔뜩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구천승은 해산물이라면 껌뻑 죽는 해산물 마니아였기 때문.
한수호는 해산물로 구천승의 동행을 승낙받아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트를 운전하고 있었다.
‘어우야…. 이젠 평범하게 보이는 게 오히려 힘드네.’
지금 한수호는 능력치를 최대한 억제하느라 오히려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보를 엿보는 특성이나 아티팩트를 지닌 자가 본다면 한수호의 능력치는 궁급 마공사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신체외적능력] : 200/999
[신체내적능력] : 55/99
[마나] : 2,210(+1,160)/99999
[육체한계치] : 1/4
신체 능력치의 평균을 200으로 낮춰놓고, 마나력 또한 2천 수준까지 내렸다.
그 이상 낮추는 건 한수호로서도 불가능했다.
한수호의 실제 능력치는 이미 951이나 되었고, 마나력은 1만4천을 넘었으니까.
“야, 이 녀석아. 뭐 하러 실력을 감추려고 그리 애를 쓰는 거냐? 널 지금까지 키워준 양부모님을 속이려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구나.”
구천승이 한마디 하자 한수호는 눈을 빛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양부모님을 속이려는 게 아니라 게이트 안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를 누군가를 조심하는 것뿐입니다.”
한수호가 경계하는 자는 바로 일패창 강지훈.
내일 새벽, 소횡경도에서 발생하는 게이트 안에서 뇌격창이라는 희대의 무기를 손에 넣게 되는 인물이었다.
또한 오패라고 불리는 영웅들 중, 가장 사왕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씨호왕가의 가주이기도 했다.
그가 게이트에서 뇌격창을 손에 넣게 된다는 건, 그도 이곳에 나타난다는 걸 의미했기에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다.
“조심하는 게 목적이라면 오히려 더 너의 강함을 돋보이게 해서 접근을 못 하게 해야지, 실력을 왜 숨겨?”
“그자가 겁을 먹고 먼저 도망쳐 버리면, 저만 손해니까요.”
“일패창 강지훈이 도망을 친다? 하하하.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강지훈은 우직한 자다. 수많은 마공가문 중에서도 으뜸인 강씨호왕가를 이끄는 그가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구천승은 강지훈에 대해서 잘 아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강우진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 그의 가문에 대한 것도 꽤나 자세히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스승께선 강씨호왕가의 인물들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들 또한 황도13궁과 이프리트 깊숙이 발을 들이고 있는 적이라 판단했을 뿐입니다.”
“허어. 내 이미 말했지 않느냐? 강우진은 황도13궁의 극우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절대 인류에 해를 끼칠 인물이 아니라고. 회귀 전에도 녀석과 녀석의 가문은 발자크의 발호를 막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가진 명경지수 특성은 절대 속일 수가 없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구천승이 답답하다는 듯, 특성에 대한 것까지 언급하자 한수호가 고개를 반쯤 돌리며 말했다.
“스승님은 명경지수 특성이 완벽하다고 믿으십니까?”
“…. 뭐라고?”
얼핏 듣기엔 굉장히 도전적인 말.
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한수호는 적상산에서 구천승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명경지수 특성은 상대가 자신을 향해 품고 있는 속마음을 비춰주기만 할 뿐, 상대가 제삼자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강우진이 스승님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있어도, 그가 저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요.”
“네 말은 강우진이 내 특성에 대한 걸 이미 알고 날 속이고 있다는 것이냐?”
구천승의 표정은 굉장히 심각해져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만약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정말 엄청난 후폭풍이 불 만한 일이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심증은 있습니다.”
“그 심증의 근거는?”
“혹시, 미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일곱 개의 열쇠에 대해 아십니까?”
한수호의 말에 구천승이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 또한 회귀자였고, 마공전뇌 이산과 함께 정해진 인류의 미래를 바꿔보고자 수많은 노력을 해 왔기에 일곱 개의 열쇠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곱개의 열쇠가 강우진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저는 일곱개의 열쇠 중 여섯 번째 열쇠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열쇠를? 마지막 살의 열쇠와 마지막 활의 열쇠 중 누구를 아는 것이냐?”
구천승이 아는 열쇠는 다섯 명.
그런데 한수호는 여섯 번째 열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하니 의문이 들 수밖에.
“그가 살의 열쇠인지, 활의 열쇠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활의 열쇠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누구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스승님에게 묻지요. 마공전뇌 이산, 그분이 말씀하신 마지막 활의 열쇠는 어떤 인물입니까?”
오히려 구천승에게 질문을 던지는 한수호.
구천승은 괘씸한 제자 녀석이라고 투덜거리다가 한수호의 질문에 답했다.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으며, 한 손에는 검은색의 반손가락 장갑을 낀 젊은 청년이라고 했지. 오래전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권존 김무성 어르신과 잘 아는 인물이라고도 했고.”
구천승의 말은 한수호가 조유현의 영상에서 본 내용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수호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인벤토리에서 검은색 장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건 한수호가 강우진에게서 빼앗은 염마갑이었다.
“이걸 가지고 있던 자가 누구인지 아시겠죠?”
“그건 강우진, 그 녀석의….”
말을 하던 구천승의 눈이 확 커졌다.
검은색 반손가락 장갑과 얼굴의 화상.
마지막 활의 열쇠에 해당하는 인물이 가진 두 가지 조건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그랬군. 강우진, 그 녀석이 마지막 활의 열쇠였구나!”
구천승이 놀란 듯 한마디 했으나 한수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는 활의 열쇠가 아닙니다. 아니, 열쇠가 아닐 수도 있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한수호는 구천승에게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설명했다.
한수호가 확실히 정체를 알고 있는 자는 마지막 살의 열쇠로 여겨지는 인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살의 열쇠가 아니라 활의 열쇠라는 것.
조유현의 영상에서 우태범은 오직 화상의 사내만을 목표로 움직였기에 그가 인류의 멸망을 바라고 있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강우진이 바로 그 화상의 사내일까?
확률적으로는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몇 가지 불확실한 요소가 있었다.
회귀 전의 세상에서 한수호는 강우진의 얼굴에 화상을 입힌 적이 없었고, 강우진과 권존 김무성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회귀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일에 한수호가 끼어 있었다.
강우진의 얼굴에 화상을 입힌 것도.
강우진이 가지고 있던 염마갑을 빼앗은 것도.
우태범이 가졌어야 할 나샬을 먼저 차지한 것도.
김무성에게 인정받아 그의 비밀 기술들을 습득한 것도 모두 한수호였다.
어쩌면 그로 인해 네 번째 활의 열쇠와 세 번째 살의 열쇠는 아예 출현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한수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구천승.
그도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인상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이건 내 생각이다만….”
구천승이 말꼬리를 늘이며 한수호를 가만히 바라본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활과 살의 열쇠가 해야 할 역할 모두를 네가 대신 차지한 게 아닌가 싶구나.”
활과 살의 열쇠를 대신하는 자.
구천승은 한수호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네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세상은 멸망의 길을 갈수도, 아니면 희망의 길을 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설마요…?”
한수호는 구천승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자신이 끼어들어 회귀 전에 발생했던 일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야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한수호를 바라보는 구천승의 눈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눈빛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제가 멸망의 길을 걷는다면, 절 없애실 생각이시군요?”
“물론이지. 이 구천승의 후계자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걸 어찌 내 눈으로 지켜볼 수 있겠느냐.”
“스승님은 제가 어떤 길을 걷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한수호의 질문에 구천승이 한 발 한 발 힘주어 다가섰다.
하지만 잔잔한 바다였기에 보트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구천승이 다가와도 그저 가만히 보트 운전대를 잡고 있던 한수호.
그의 어깨 위로 구천승의 팔 하나가 둘러졌다.
“제자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게 인도해 주는 것이 스승의 역할 아니겠느냐? 그러니 넌 아무 걱정 말고 네가 원하는 길을 걷도록 하거라.”
구천승의 말에 한수호는 살짝 긴장했던 마음을 완전히 풀어낼 수 있었다.
히죽 웃고 있는 구천승을 바라보던 한수호는 진심을 담아 마주 웃어 주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말은 필요없었다.
한수호의 두 마디 말에 구천승은 더욱 환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