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뇌격창.
이 무기는 삼패창 강지훈이 횡경도 게이트에서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거의 끝판왕 급의 무기였다.
회귀 전의 강지훈은 이 뇌격창을 얻은 이후로 사왕과 동급의 강자로 인정받았고, 악몽급 게이트를 세상에서 없애버릴 영웅 중 하나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그 뇌격창이 탑의 100층이 아니라 99층에서 등장할 줄이야.
‘영웅의 관을 여는 열쇠는 또 뭐지?’
대충 생각해 보면, 뇌격창이 있어야만 열 수 있는 어떤 기관 장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 기관 장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이걸 봉이 아니라 창으로 부르는 걸까?’
한수호는 50센티 길이에 지름 4센티 정도의 막대기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다 막대를 손에 쥔 상태로 마나를 주입했다.
스으으으
처음 일, 이백 수준으로는 아무 반응도 없다. 하지만, 500의 마나를 주입한 순간,
파칭!
막대의 양쪽 끝에서 뭔가 팍 튀어나왔다.
한쪽에선 50센티 길이의 또 다른 막대가. 다른 한쪽에선 50센티의 막대에 30센티 되는 창날이 튀어나온 것.
한수호는 이제야 왜 이 무기를 뇌격창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총 180센티의 기다란 창.
뇌격창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무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쏠리게 만드는 멋들어짐을 가지고 있었다.
한수호는 뇌격창을 쥐고 두어 번 휘둘러봤다.
콰지직. 콰지지지직!
뇌격창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벼락이 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사툴란은 창에서 뿜어지는 벼락에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금속으로 된 검은 육체에 벼락 문양이 깊숙하게 새겨져 버렸다.
한수호는 황급히 멈추고 뇌격창을 다시 막대 형태로 되돌렸다.
‘순수한 힘만 따지면 진.용마검을 빼고 최강인데?’
라그나로크의 4대 검들도.
마화기 중의 하나인 미소마궁도 이 뇌격창에 비하면 위력적인 면에서 밀리는 감이 있었다.
진.용마검에는 살짝 부족했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뇌격창에 비할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니 강지훈이 단시간 내에 그런 강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거로구나.’
이 뇌격창만 있으면, 아무리 평범한 마공사라도 영웅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이건 챙겨 넣고.’
지금 당장 뇌격창으로 뭘 할 건 없으니 우선은 인벤토리에 넣어두기로 했다.
손에서 뇌격창을 치워버린 한수호.
반으로 갈라진 심장 앞에선 그는 눈살을 찌푸린 상태로 심장 한쪽을 조심스레 입으로 베어 물었다.
결코 좋을 수가 없는 감각이 느껴지며 비릿한 혈향과 심장 근육의 질김이 입안 한가득 전해졌다.
‘으…. 이번엔 더 이상하잖아?’
이번엔 유난히 느낌이 이상했다.
비위가 상하는 건 아닌데,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수호는 억지로 그런 느낌을 참아내며 크게 베어 문 심장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바로 그 순간, 한수호의 머릿속으로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엥-
한수호의 눈까지 번쩍 떠졌다.
눈에서는 총천연색의 빛이 불타듯 뿜어져 나왔고, 옷은 찢어질 것처럼 마구 펄럭거렸다.
푸하아아아아악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오는 황적색의 강렬한 기운.
머리카락까지 하늘로 솟구쳐 올라 마구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수호의 피부에도 변화가 생겼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던 피부 위로 붉은 테두리를 가진 황금빛 비늘이 돋아나 파르르 떨렸다.
한수호의 온몸은 순식간에 황금빛 비늘로 뒤덮였다.
얼굴에도 비늘이 돋아나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한수호는 몸에서 마치 불을 뿜어내는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괴인혈 3단계를 이룬 사람이 갖게 되는 자연발경의 효과라는 걸 한수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엄청나잖아!’
정말 어마어마했다.
지금 상태라면 눈앞에 산이 있다 해도 어렵지 않게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수호는 현 상태의 능력치 정보를 확인했다.
[신체외적능력] : 999/999
[신체내적능력] : 80/99
[마나] : 21,840(+1,160)/99999
[육체한계치] : 2/5
많은 것이 변했다.
능력치가 999를 찍은 건 둘째치고, 내적인 능력치 또한 80까지 올랐다.
마나는 단숨에 2만을 넘겼으며, 육체한계치 또한 5단계로 늘어났다.
‘이게 진짜 초인이구나.’
한수호는 자신이 진정한 초인의 반열에 들어섰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능력치가 늘어난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강함.
그것이 가슴과 머리에서 동시에 전해지고 있었다.
한수호는 여전히 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괴인혈’ 특성에 대한 정보를 살폈다.
[특성: 괴인혈(최종)]
-마나력 2,400을 소모하여 육체를 수인화합니다.
-1단계: 수인화로 2배까지 능력 증폭. 사용자에 따라 수인화 형태가 달라집니다.
-2단계: 수인화, 인간화가 자유로워집니다. 인간 상태에서도 수인화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3단계: 용마족으로 변이합니다.
-수인화 상태에서는 마나와의 친화도가 80% 증가하여, 동일한 마나로 40% 상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마나수치가 1만 이하인 경우, 사용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특성 이름에 ‘최종’이라는 단어가 붙었고, 진화와 관련된 내용이 전부 사라졌다.
‘지금 내 상태가 용마족의 모습인가 보구나?’
괴인혈 3단계는 ‘용마족’으로의 변이였다.
그래서 피부에 비늘이 돋아난 것이다.
‘설마, 날개도 있는 건 아니겠….’
한수호가 생각을 함과 동시에,
부욱
옷이 찢겨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 뒤에서 새하얀 날개가 돋아나 좌우로 확 펼쳐졌다.
날개 한쪽 길이만 거의 2미터.
한수호는 정말 날개까지 생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턱이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싶어 날개를 움직여 보니,
펄럭. 펄럭.
마치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편하게 제어가 가능했다.
황금빛 비늘로 된 피부에, 새하얀 날개를 지니고,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에 의해 옷과 머리카락이 마구 치솟고 있는 모습.
누가 지금의 한수호를 본다면, 신이 강림했다고 난리를 치고도 남았으리라.
한수호는 자신이 봐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그 웃음소리에 멀찍이 물러나 있던 사툴란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수호의 날개를 툭툭 건드리며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콰득.
뜬금없이 사툴란의 등 뒤에서도 날개가 솟아났다.
한수호 것보다 훨씬 더 큰, 금속으로 된 한 쌍의 날개.
사툴란은 자신의 등에 돋아난 날개를 펄럭여 보더니 흐뭇한 웃음을 그려 보였다.
“야, 툴란. 쇳덩이로 된 날개로 날 수는 있겠냐? 괜히 흉내 내지 말고 마지막 층에 오르기나 하자.”
한수호가 무시하듯 하는 말에 사툴란이 발을 쿵 하고 굴렀다. 그리고,
휘우웅
사툴란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쇠로 된 날개였지만 그 날개가 펄럭이자 정말로 날아오른 것이다.
그 광경에 한수호는 어이없어하다가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녀석, 관심을 가져주면 더 관종짓을 할 것 같아.’
한수호는 사툴란의 흉내 내기를 관종짓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 * *
‘이거 뭔데?’
계단을 오르던 한수호는 멈춰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약 100여 개 정도 되는 계단이 아래로 쭉 펼쳐져 있다.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보니 계단 20여 개만 더 오르면 다음 층이다.
하지만,
‘왜 저 위에 도착을 못 하는 거지?’
벌써 5분째 계단을 오르고 있음에도 도무지 계단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수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아래로 내려가 봤다.
10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드레이크의 사체가 있는 99층에 바로 도착했다.
‘내려가는 건 되네?’
한수호는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다음 층까지 20여개의 계단을 남겨놓은 상황이 되면, 더 이상 올라가지지가 않았다.
위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도, 남은 계단 수는 여전히 똑같았다.
‘젠장. 이거 단순한 계단이 아닌가본데?’
내려가는 건 문제 없지만,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 계단.
한수호는 계단을 오르는 대신 한 번에 남은 계단을 건너 뛰기로 했다.
파박
단숨에 뛰어오른 한수호가 바닥에 내려섰을 때,
“아, 씨….”
분명 계단 수십 개를 한 번에 건너뛰었는데도 남아있는 계단은 24개였다.
‘나보고 올라오지 말라는거야, 뭐야?’
계단 위에 서서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수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래위로 끄덕이더니,
짝!
자기 뺨을 제 손으로 세차게 때려버렸다.
“가즈아!”
한수호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남은 계단 24개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리고, 서서히 마나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몸에서 뿜어지는 마나의 기운이 강해진 순간이었다.
분명 24개였던 계단이 25계로 늘어나고 다시 26개로, 또 27개로 점점 늘어났다.
100층 고지는 점점 한수호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역시.’
한수호는 바로 마나와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슈욱!
몸 밖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던 마나의 기운이 촛불처럼 훅 꺼져버리자 남은 계단의 숫자가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27개가 25개로, 다시 23개로, 17개로….
몸 밖으로 뿜어지는 마나의 기운이 줄어들수록, 계단도 사라지고 있었다.
‘더… 좀 더!’
한수호는 자신의 마나력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뿜어지는 미세한 마나마저 철저히 제어하여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럴수록 계단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마침내.
‘됐다!’
한수호가 서 있는 곳에서 더 이상은 계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군. 내가 내 마나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만 엉뚱한 계단이 나타나지 않는 거였어.’
한수호는 이 마법의 계단이 가진 신비한 힘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다.
더 이상은 위로 향하는 계단이 없어졌기에, 한수호는 바로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슈욱-
주변 풍경이 갑자기 확 바뀌더니 회색만이 존재하는 광활한 공간만이 남겨졌다.
계단도, 뒤를 따르던 사툴란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 보이는 이 회색 공간의 끝에 캡슐처럼 생긴 뭔가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한수호는 그 캡슐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캡슐 쪽으로 다가갈 때마다, 한수호는 뭔가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고.
낯설지만 모르는 존재가 아닌 듯한 기묘한 누군가의 기운.
한수호는 그 기운이 저 앞의 캡슐 안에 있는 존재가 흘리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50미터.
30미터.
10미터.
캡슐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10미터.
하지만 한수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캡슐에 들어있는 것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
시체.
절대 살아있을 수가 없는, 완전히 죽어있는 자.
한수호는 투명한 뚜껑으로 되어 있는 캡슐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손이 닿을 정도까지 접근했을 때,
한수호는 캡슐 안에 들어있는 시체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스…?’
한수호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존재.
아스루나의 세계에서 최강의 존재였으며, 발자크를 봉인한 대영웅 아스.
비록 새하얀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어 용모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만 봐도 그가 침묵의 협곡에서 마주했던 아스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아스의 시체가 있다고?’
한수호는 아스가 쓰고 있는 가면을 살펴봤다.
침묵의 협곡에서 보상으로 받았던 ‘유일의 마스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꽃잎 열두 개짜리 가면.
심지어 가면이 지니고 있는 정보 또한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과연 아스는 어떻게 생긴 인물일까?’
문뜩 떠오른 의문.
그때, 한수호가 지나친 장소의 바닥에서 1미터 높이의 둥근 원형 기둥이 솟아올랐다.
기둥을 살펴보니 중앙에 4센티 크기의 동그란 구멍이 나 있다.
놀랍게도 그 구멍은 한수호가 조금 전에 얻은 무언가와 무척이나 흡사한 형태였다.
‘뇌격창 막대하고 크기며 모양이 너무 똑같은데?’
구멍은 그곳에 뇌격창을 집어넣으라고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