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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83화 (283/375)

283화

한수호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인벤토리에서 뇌격창을 꺼내 손에 쥐었다.

손바닥에 꽉 차는 그립감.

한수호는 불쑥 솟아오른 기둥의 중심 구멍으로 뇌격창을 꽂아 넣었다.

뇌격창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멍에 쏙 들어갔다.

처음 몇 센티만 집어넣자마자 바로 뇌격창이 구멍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알아서 흘러 들어갔다.

우우우웅

한수호의 허리 높이인 기둥이 잠시 진동을 일으키는 듯하더니, 한수호의 눈앞으로 네모난 사각형의 홀로그램 창이 둥실 떠올랐다.

[캡슐 오픈 / 뇌신의 눈물 / 보상 꾸러미 수령]

뜬금없이 떠오른 창에는 세 개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셋 모두 선택이 가능한 건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택지만 나타나서 의문이 가득이다.

세 개를 다 선택할 수 있는 거면, 순서대로 하나씩 선택해서 결과를 보면 되지만, 만약 그게 아닐 경우엔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신중할 필요가 있겠어.’

한수호는 후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매우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렇게 1분여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한수호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뇌신의 눈물로 가자.’

한수호가 뇌신의 눈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마음속으로는 캡슐을 열어 아스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가 쓰고 있는 가면이 자신의 것과 동일한지, 그리고 정말 아스가 죽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날 수도 있기에 아예 확실하게 보상부터 수령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가운데에 끼어있는 뇌신의 눈물은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뭔지도 알 수 없었고, 느낌상 마나력이 상당량 담겨있는 마나코어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그래서 한수호의 선택은 뇌신의 눈물이었다.

증명의 탑 꼭대기 층.

99층에서 드레이크를 잡고 얻은 것이 ‘뇌격창’인 이상, 100층에서는 그보다 더 값진 것이 보상으로 나올 거라는 게 한수호의 예상이었다.

‘값질수록 원래 평범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이것이 한수호가 뇌신의 눈물을 선택하려는 진짜 이유였다.

한수호가 가운데 항목을 선택한 순간,

스르르….

‘캡슐 오픈’과 ‘보상 꾸러미 수령’ 항목이 가루가 되듯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뇌신의 눈물’ 항목만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

쿠릉

아스의 시체가 들어있는 캡슐이 바닥으로 훅 꺼져 사라진 대신, 그 자리로 새로운 원형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건 정확히 한수호의 가슴팍 높이였다.

원형 기둥 상단에는 네모난 유리관이 있었고, 그 안에는 다이아몬드 모양을 한 손톱 크기의 새하얀 보석이 담겨 있었다.

한수호는 개조 특성을 이용해 보석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뇌신의 눈물]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한수호의 눈이 커졌다.

‘정보를 알 수 없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개조 특성을 사용해 목표의 정보를 읽어내지 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직접 꺼내서 보면 정보가 보이려나?’

한수호는 유리관을 열어 보석을 집어 들었다.

>>뇌신의 눈물을 획득하였습니다.

>>눈물이 채워질 그릇에 넣어주세요.

정보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의미의 메시지만 떠올랐다.

‘그릇이라….’

한수호는 뇌신의 눈물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형태며 모양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건 다름 아닌 ‘뇌격창’이었다.

바로 뇌격창을 끼워 넣은 기둥 쪽으로 간 한수호는 끝부분만 살짝 돌출되어 있는 뇌격창을 잡아 천천히 꺼냈다.

스르릉

부드럽게 뇌격창이 빠져나왔을 때, 두 개의 원기둥이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수호는 원기둥에는 관심을 끄고 손에 쥔 뇌격창과 뇌신의 눈물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수호의 생각이 맞았다.

뇌격장 중심부에 뇌신의 눈물과 똑같이 생긴 홈이 파여 있었다.

‘뇌격창이 뇌신의 눈물을 담는 그릇이구나!’

확신에 찬 한수호는 주저할 것 없이 뇌신의 눈물을 그 홈에 끼워 넣었다.

찰칵!

마치 자석처럼 뇌신의 눈물을 빨아들인 뇌격창.

순간, 뇌격창 전체가 눈부시게 밝은 빛을 폭발하듯 뿜어냈다.

한수호도 그 빛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2초가 지났을 때,

우우우우웅

뇌격창이 심하게 진동을 일으켰고, 방금 빨아들였던 뇌신의 눈물을 밖으로 천천히 토해냈다.

그런데, 다시 모습을 드러낸 뇌신의 눈물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크기와 모양은 똑같았지만, 새하얀 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반타블랙으로 꽉 차 있었다.

그것도 표면엔 알수없는 작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힌 채로.

‘특성석!’

뇌신의 눈물은 특성석이었다.

그것도 뇌격창과 한 세트로 합쳤을 때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특별한 특성석.

한수호는 반타블랙의 특성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눈앞엔 방금 전까진 볼 수 없었던 뇌신의 눈물이 지닌 정보가 떠올라 있었으니까.

[특성석]

-보유 포인트: 2,000,000LP

-0티어의 특성을 품고 있는 특별한 특성석입니다.

-특성, ‘쇼크이터’가 새겨져 있습니다.

>>특성을 흡수하고 포인트를 획득하겠습니까? YES/NO

드디어 쇼크이터가 손에 들어왔다.

별것 아닌 줄 알았던 뇌신의 눈물이 바로 쇼크이터를 품고 있는 특성석이었던 것.

한수호는 쇼크이터 특성석을 바라보며 왜 회귀 전에는 강지훈이 여기서 쇼크이터를 얻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자가 통과한 건, 99층까지였구나.’

99층과 100층 사이에 존재하는 계단.

그 계단은 자신의 마나력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삼패창 강지훈은 99층에서 뇌격창까지 얻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계단을 끝내 오르지 못했던 것이고, 그래서 쇼크이터는 영영 잠들게 되었던 것이리라.

‘나조차도 이곳 어딘가에 쇼크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끝까지 계단을 오르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겠지.’

한수호는 침묵의 협곡에서 보상으로 쇼크이터의 정보를 미리 알아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쇼크이터가 담긴 특성석을 한 손에 꽉 쥔 한수호는 눈앞의 정보창에서 YES를 선택했다.

선택과 동시에 특성석은 과자처럼 바스러졌다.

그리고 표면에 새겨져 있던 글자들이 마법의 끈이 되어 한수호의 몸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슈아아아아아아

온몸을 칭칭 휘감고 있던 마법의 끈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한수호의 머리가 갑자기 뒤로 확 젖혀졌다. 동시에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

한수호의 입에서 새하얀 빛이 기둥처럼 뿜어져 나왔다.

수 초간 그 상태로 모든 빛을 토해내던 한수호.

빛은 빠르게 축소되더니 반짝 빛을 내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한수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당황한 듯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환영이었나?’

다행히 몸에 이상이 있는 곳은 없다.

하지만 방금 한수호가 본 장면은 너무도 사실 같았다.

거대한 암흑의 존재와 마주 선 자신.

암흑의 존재는 한수호를 향해 거대한 화염포를 발사했고, 그 화염포에 휩쓸린 모든 것이 깨끗하게 지워져 버렸었다.

마지막으로 한수호에게 직격한 화염포.

그런데 그 화염포는 한수호의 몸에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한수호의 몸은 화염포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였고, 모든 힘을 소진한 암흑의 존재는 결국 수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검을 내리쳤다.

검에 비해 너무나도 작았던 한수호였지만, 그의 몸은 검의 힘마저 흡수해 버렸다.

검은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한수호가 정신을 차린 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그 암흑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

한수호는 이미 그 암흑의 존재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강우진의 기억을 훑었을 때 마지막 순간에 찰나적으로 스치듯 보였던 것이 바로 암흑의 존재였다.

‘아무래도 방금 내가 본 건 아스가 남긴 기억의 조각이었나 본데?’

아스는 발자크를 쓰러뜨리고 검은 섬에 놈을 봉인한 대영웅이었다.

그의 기억에 남겨진 암흑의 존재라면?

당연히 발자크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암흑의 존재가 정말 발자크라고 가정했을 때, 강우진의 기억에서 등장한 것 또한 발자크라는 말이 되며, 그럼 강우진은 이미 발자크를 대면했다는 뜻이 된다.

‘역시, 강우진이 활의 열쇠를 가장한 살의 열쇠였구나.’

한수호는 이제 강우진의 진짜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특성부터 살펴볼까?’

한수호는 이미 자신의 소유가 된 특성 쇼크이터의 정보를 훑기 시작했다.

[특성: 쇼크이터(최종)]

-0티어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특성입니다.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직.간접적인 충격을 흡수율에 따라 빨아들입니다.

-흡수된 충격은 2중첩하여 축적 후, 반탄이 가능합니다.

-충격 흡수율은 기본 20%이며, 육체한계치에 정비례합니다.

-특성 소지자의 예상 흡수율: 80%

-쿨타임: 5분

침묵의 협곡에서 확인했던 정보와 거의 일치했다.

차이가 있다면, 흡수율뿐.

‘내 육체한계치가 4까지 올랐으니 80%로 오를 수 있다는 얘기고.’

괴인혈 3단계를 쓰면 한계치가 5까지 상승하니 100%도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쇼크이터는 처음 획득하는 순간부터 이미 최종 형태의 특성이었다.

더 이상 진화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는 의미.

한수호는 쇼크이터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지를 생각하며 혼자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그때였다.

우르르릉

갑자기 공간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으로 또 메시지가 떠올랐다.

>>증명의 탑은 이제 다음 영웅을 기다리며 봉인에 들어갑니다.

>>자신을 증명한 당신께 영광이 깃들기를….

마치 가르침을 주는듯한 말투.

한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잠깐 기다리라고 소리칠 뻔했다.

억지로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을 때,

파앗-

한수호의 주변 공간이 확 일그러졌다가 빠르게 형형색색으로 들어찼다.

‘여긴…’

증명의 탑이 세워져 있는 외딴섬이었다.

까마득한 높이의 탑은 이미 절반쯤 사라진 뒤였다.

‘이 탑이 봉인되면 언제 다시 열리는 걸까?’

한수호가 그런 의문을 품는 사이, 탑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크워어?”

100층 계단에서 사라졌던 사툴란이 어느새 한수호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그런데 한수호가 사라진 탑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슥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한수호의 등을 툭 하고 쳤다. 그 순간,

꽈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툴란의 팔 한 짝이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어깨를 제외한 팔 전체가 산산이 조각나 허공으로 흩뿌려졌고, 사툴란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수십 미터 뒤로 뒷걸음질 쳤다.

“크…웍? 크어억!”

사툴란은 도대체 왜 자신을 공격했냐고 되묻는 듯했다.

그 소리에 한수호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날 건드려? 건드리긴.”

한수호는 내 잘못 없다는 투로 말하고는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사툴란은 불쌍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뒤따랐다.

그런 사툴란의 뒤쪽으로는 방금 박살 난 팔의 조각들이 스물스물거리며 사툴란을 향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 * *

게이트 밖.

구천승은 이미 5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어디에서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자 슬슬 마음을 놓고 있었다.

딴에는 강지훈이 이곳에 등장할 거라 생각해 그를 만나 모든 사실을 확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년 전, 지리산에 벌어진 한철형 가족 실종 사건의 전말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네가 진짜 배신자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구천승은 악(惡)인이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서 이렇게 분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친우라고 여겼던 강지훈이 입신양명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멸망을 위해 친우들을 배신한 것이 사실이라면 구천승에겐 이보다 더 분통하고 화가 나는 일이 없었다.

오래전 한 번 같은 일을 겪었던 구천승이기에 강지훈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너무 오래 걸리는구나.’

구천승으로서도 이 횡경도 게이트 안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몬스터가 출몰하는지는 잘 모른다.

회귀 전의 그 또한, 횡경도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강지훈이 공략하여 ‘뇌격창’이라는 고대의 무기를 얻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들어가 봐야 하나?’

벌써 해가 뜰 시간이라서 강지훈이 이곳에 나타날 확률은 더욱 낮아진 상태.

구천승은 모처럼 얻은 후계자를 도와주려고 게이트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피잉-

구천승의 감각에 적의 암습이 명확히 잡혀 들었다.

‘암습?’

암습을 허용할 거리까지 적이 다가왔음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 구천승.

하지만 과연 최강의 마공사답게, 소리 없이 날아든 공격을 가벼운 머리 운동만으로 회피해버렸다.

콰앙!

구천승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간 뭔가가 뒤쪽에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통째로 폭발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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