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286화 (286/375)

286화

한수호가 아카데미에 나타난 건, 개강일이 무려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

그사이 최지혁을 비롯해 친구들 모두 한수호가 모습을 보이지 않아 수없이 연락을 취했지만,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한수호는 개강 후 삼 일째 수업에도 다소 늦게 참석했다.

담당 교수인 지평학은 한수호로부터 이미 연락을 받아 자초지종을 들었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수호가 강의실에 나타났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굉장히 격렬했다.

지평학 교수는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의를 환기했고,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수호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었다.

“자, 이제 속 시원하게 말해봐. 도대체 어디서 뭘 했고, 이제서야 출석한 이유가 뭐야?”

한수호는 강의실 내에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중 최지혁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한수호를 닦달하는 중이었다.

“임무 수업 좀 하다가 스승님 집에서 쭉 머물렀어.”

“스승님 집? 거기가 어딘데 전화 통화도 안 되냐?”

“거기 통화권 이탈 지역 맞아.”

한수호가 웃으며 대답하자 양소혜의 두툼한 손이 한수호의 어깨를 꾹 짓눌렀다.

“너, 몸 상태가 왜 이래? 스승님들하고 지내면서 무슨 지옥 훈련이라도 받은 거야?”

양소혜는 한수호의 얼굴이 다소 수척해졌다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

물론 그 이유는 지난 이틀간 약탈[1]을 사용한 후유증 때문이었지만, 딱히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고위급 게이트에 들어가려면 나도 준비를 해야지.”

“…. 고위급 게이트?”

이하윤이 고위급 게이트라는 말에 뭔가 안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스승님들께서 대한맹 쪽에 의뢰를 받으셨더라고. 땅끝 마을에 있는 1급 게이트 폐쇄 작전을 이끌어 달라고 말이야.”

한수호의 담담한 말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땅끝 마을에 있는 1급 게이트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트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것으로, 궁급 마공사가 아니라면 들어가봐야 헛되이 목숨만 잃게 될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

한수호는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까 봐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최근 땅끝 마을 게이트 너머의 상황이 굉장히 불안하게 흐르고 있고, 대규모 상위 몬스터들의 이동까지 감지되어 그곳을 폐쇄하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말이다.

이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틀 전, 구천승을 죽음에서 구해준 다음 한수호는 거의 하루 동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만 하루가 지나서 정신은 차렸지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아카데미 개강일에 맞춰 서울에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횡경도에 하루를 더 머물며 몸을 추스렸는데, 그사이 비돈귀살의 비밀 연락처로 대한맹의 연락이 왔던 것이다.

놀랍게도 연락한 장본인은 대한맹의 맹주인 서한광이었다.

그는 비돈귀살에게 대한맹의 특수 요원 20명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 목적은 땅끝 마을의 1급 게이트 폐쇄에 있었다.

최근, 세계 전역에 발생해 있는 게이트들이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하면서 게이트를 넘어와 민간인들을 해치는 사례가 크게 급증하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마공사들이 몬스터 처리와 민간 구조에 나서는 실정이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믿을 수 있는 고위 마공사들은 더욱 찾기 힘든 상황.

서한광은 대법원 게이트에서 큰 믿음을 주었던 비돈귀살을 가장 중요한 게이트 폐쇄 임무의 책임자로 낙점한 것이다.

“3, 4급도 아니고 1급을? 대한맹에 그 정도로 인재가 없는…. 아니, 이건 그냥 한 말이니까 오해는 마라.”

양소혜가 말을 하다 아차 싶어 제 입을 급히 막았다.

“얼마 전에 두 스승님들 모두 궁급에 오르셨어. 그러니 1급이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한수호가 하얗게 웃으며 별것 아닌 듯 말하자 양소혜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건 그런데…. 거기에 왜 네가 껴? 스승이 궁급이라고, 너도 궁급이 되는 건 아니잖아?”

이번엔 장한설이 한수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알기로, 한수호의 실력이 출중하긴 해도 궁급에 비빌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한수호는 그런 장한설을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의 쌍둥이 동생 한설아.

그녀가 기억을 잃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긴 했어도,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사실을 밝히고 기억을 되찾아 주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의 신분을 밝힌다면 이프리트의 또 다른 표적이 될 뿐이기에 참아야 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난 강하다.”

한수호의 임팩트있는 말에 모두가 움찔했다.

지금까지 한수호가 제 입으로 자신의 실력이 어떻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

“그 말, 증명할 수 있냐?”

백윤후였다.

지금껏 가만히 한수호의 말을 듣고만 있던 백윤후는 전보다 더욱 깊어진 눈빛을 띄며 한수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잠시 그 시선을 받으며 뭔가를 생각하던 한수호.

마음에 결정을 내렸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함께 가자. 내 강함을. 나와 너희들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줄게.”

자부심을 넘어 오만하게 들릴 정도의 말에 친구들은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한수호가 한마디를 덧붙이자 당황함은 금방 사라지고 진지함이 가득해졌다.

“난 오늘부로 휴학계를 낼 거고, 너희들이 그런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내 일격을 막아봐.”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강의동 옆에 붙어있는 실습동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실습동은 축구장만큼이나 큰 공간이었다.

총 4개의 결투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한수호는 가장 큰 결투대의 중앙에 홀로 서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일격을 제대로 막아낸다면, 난 결정을 되돌리겠다. 특성을 사용해도 좋고, 어떤 아티팩트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어떻게 보면 뻔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자신감 있는 말에 친구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이들 중 한수호의 실력이 가장 출중하다는 건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일격도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약하진 않았다.

가장 성격이 급한 양소혜가 결투대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난 네가 휴학까지 하면서 게이트 폐쇄 임무에 뛰어드는 걸 이해할 수 없어. 요즘 게이트가 불안정해지긴 했어도 우리 같은 학생들까지 투입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건 아니야. 그러니 내가 네 일격을 막아내고, 네 결정을 되돌려주지.”

양소혜는 두 손을 팡팡 치고는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예전에 한수호가 준 ‘너클팽’까지 손에 끼웠다.

그런 양소혜를 바라보던 한수호는 왼손을 슥 들어올리더니 덤벼보라며 까딱거렸다.

건방짐의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행동에 양소혜가 인상을 팍 일그러뜨렸다.

“이 자식이 어디서 음식을 잘못 쳐먹었나! 네가 날 도발해? 아주 작살을 내주겠어!”

양소혜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친 순간,

후우우우웅

그녀의 몸 주변으로 얇은 청색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양소혜의 특성은 괴력.

예전엔 단순히 근육의 힘만을 강화하는데 그쳤다면, 이젠 근육만이 아니라 몸 주변으로 마나장막이 쳐짐으로써 공격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높이는 게 가능해졌다.

지금의 양소혜는 철골도 쉽게 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의 소유자였다.

‘평균수치 94라…. 많이 성장했구나, 양소혜.’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60대 언저리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니 더 분발해서 실력을 키워 인류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한수호는 주먹을 살짝 거머쥐었다.

그리고 양소혜가 바닥을 쿵 찍으며 달려든 순간,

츠팟!

한수호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뻐어어어어억!

양소혜가 두 손으로 몸을 보호한 채 총알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우당탕탕…

양소혜는 바닥을 거칠게 나뒹굴었다.

그녀의 괴력 특성은 한수호의 일격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양소혜는 한수호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실로 압도적인 실력 차이.

한수호는 아무런 특성도, 기술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능력치를 낮춰놓은 상태였기에 지금의 일격은 진짜 능력의 2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상황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수호가 양소혜를 상대로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너 이 자식, 너무하잖아!”

장한설이 바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양소혜는 한 방에 나가떨어지며 기절한 상태였고, 장한설이 마사지를 해 주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크으…. 저 자식 주먹 한 번 엄청 매운데?”

“넌 일단 쉬고 있어. 이건 내가 해결하겠어.”

장한설이 무척이나 화난 얼굴로 양소혜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신소이와 이하윤이 다가왔다. 양소혜는 그녀들과 함께 결투대 밖으로 나갔다.

“야, 장태산! 너 친구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우리가 너 휴학하는거 말릴까 봐? 아니면, 네가 대한맹 맹주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장한설은 양소혜 대신 한수호 앞에 나섰다.

하지만 한수호는 아무말 없이 손을 내밀어 까딱거리기만 했다.

그가 친구들을 이렇게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의 한계점을 알고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생존하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야한다.’

한수호는 10년이나 잃어버렸던 동생을 다시 잃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를 보호해 줄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기에 스스로 강해질 기회를 주어야 했다.

“이게 끝까지 열받게 하네? 오늘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 주겠어!”

장한설은 화가 치솟는지 허리띠를 풀러 마나를 주입시켰다.

차르르르륵. 티잉!

흐물거리던 허리띠가 꼿꼿하게 세워지더니 기다란 장검이 되었다.

예전에 대한식도락에서 벌어졌던 몬스터들과의 전투 이후, 이 검을 꺼내든 건 처음이었다.

그런 장한설을 바라보는 한수호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까딱까딱

한수호가 다시 한번 손을 까딱거리자 장한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간다!”

터엉-

장한설은 양아버지로부터 배운 용음진기를 잔뜩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녀를 지금까지 키워준 사람은 귀부암왕이라고 불리는 장현오였다.

세상은 그의 특기가 암습과 기습, 잠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의 진짜 능력은 끝없이 차갑고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용음진기에 있었다.

용음진기는 장현오의 가문인 용음문의 비기였다.

이 비기는 여성에게 가장 어울리는 힘이었지만, 남자인 장현오는 특이체질이었기에 이 용음진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 장한설을 딸로 들이게 되면서 그녀에게 용음진기를 전수했었다.

하지만 장현오는 장한설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 조건을 지키기 전까지는 용음진기를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맹세까지 받아냈다.

장현오가 내세운 조건은 바로 사자도왕 송혁의 아들 송지문과의 혼약이었고.

얼마전 장현오는 그 조건을 철회했다.

그래서 이젠 장한설이 원하면 언제든지 용음진기를 사용할 수가 있게된 것.

과연 용음진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콰과과과과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검의 날카로운 기세가 당장이라도 한수호의 온몸에 상처를 만들어 낼 것 같았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한수호가 미세한 움직임 만으로 장한설의 모든 공격을 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한수호는 그런 와중에도 장한설을 향해 여유롭게 마나전음을 날리는 중이었다.

[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렸다.]

[각도가 어긋났잖아!]

[동작이 너무 크다고!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움직이란 말이다.]

마치 스승이라도 된 것처럼.

오히려 장현오보다도 검술에 더 고수인 것처럼.

한수호는 장한설의 모든 움직임에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처음엔 장한설도 자신을 그냥 놀리기 위해 한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한수호의 지적이 너무도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지적은 스승이자 아버지인 장현오조차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었다.

‘대체 뭐지, 이 녀석은?’

장한설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성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장한설.

그런 장한설이었지만 한수호를 만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내에게 관심이라는 걸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관심은 이성 간의 그런 관심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쭉 알고 지낸 소꿉친구와 같은 친근함이 있었다.

그래서 쉽게 장난을 칠 수 있었고, 스스럼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수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친오빠를 대하는 듯 묘하게 바뀌어갔다.

그 감정은 선배인 권열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두 사람.

권열과 한수호는 장한설에게 가족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자신은 한수호에게 이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대했는데, 정작 한수호는 그 어떤 결정에 대해서도 일말의 논의도 없었으니까.

친구인 양소혜를 이렇게 거칠게 대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장한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한수호의 무관심한 태도에 있었다.

‘대체 왜 스치지도 못하는 건데!’

장한설은 어느새 한수호의 지적에 맞춰 움직임을 바꾸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호의 몸에는 조금의 상처도 입힐 수 없었다.

[정신 차려! 적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딴 생각을 할 셈이냐!]

한수호의 호통소리.

장한설은 움찔했다가 이를 꽉 깨물었다.

“네가 이것까지 받아내면 나도 널 인정해 주지!”

장한설은 용음진기를 거둬들이며 자신의 특성을 발동시켰다.

푸하아아악!

검에서 새하얀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한수호는 그 빛을 본 순간 눈을 반짝였다.

‘능력치가 140까지 오른다고?’

검을 쥔 장한설의 오른손 수치가 140까지 상승했다.

이 정도 수치라면 궁급 마공사와 일전을 겨뤄볼 정도.

한수호는 장한설이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게 되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더욱 큰 성장을 할 수 있게 작은 도움을 주자.’

한수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가락 끝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피이이이잉-

검지 손가락 끝에 맺혀든 손톱만 한 마나.

마나압축법으로 마나의 밀도를 크게 높인 한수호는 장한설이 휘두르는 검격의 틈새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