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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88화 (288/375)

288화

한수호는 열아홉의 어린 나이였지만, 실제로는 36년을 살아왔기에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 아카데미 내에서 지평학이 지소연을 바라보는 눈빛에 아련함이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아챘고, 남몰래 두 사람의 연관성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 구천승을 스승으로 모신 이후로, 김무성과 지소연의 과거를 알 수 있었다.

김무성과 지소연은 원래 연인 사이였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워낙 많다 보니 세상에 떳떳하게 밝힐 수가 없었다.

구천승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워낙 입이 무거웠던 구천승이라 누구에게도 둘 사이의 일을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건 20년 전에 있었던 오래된 과거일 뿐이었다.

김무성은 미국 특무부와 관계가 틀어져 종적을 감추게 되면서 연인이었던 지소연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지소연은 점차 살인귀로 변하게 된 것이다.

김무성을 찾아 사방을 헤매고 다니면서 미국 특무부 요원을 만나는 족족 목숨을 취했다.

그러는 과정 중에 요마의 핵을 섭취하게 되었고, 흡정귀화 되어 요마로 변한 것이다.

때문에 김무성은 지소연이 그렇게 변하게 된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자책하고 있었다.

미국 특무부의 추적을 간신히 피하고 지평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교수로 정착한 이후, 다시 지소연을 찾았을 땐 이미 늦었다.

김무성의 모습으로 지소연 앞에 나설 수 없었던 그는 멀리서나마 그녀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번 지소연이 아카데미를 찾아왔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것이고.

“그녀는 고통 없이 죽었느냐?”

지평학은 지소연의 죽음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죽인 한수호를 증오하지 않았다.

그저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간 것이라고 여기며 지소연의 명복을 빌어줄 뿐.

“뒤늦게나마 산에 잘 묻어드렸습니다.”

“언제고 한번 적상산을 찾아가 봐야겠구나….”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한수호는 오늘 지평학에게 알려야 할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지소연의 딸인 이민경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지소연…에겐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이번엔 지평학도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나도 안다.”

“민경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올 초에 전 그녀도 만났습니다. 그녀 역시 흡정귀가 되어 있었고요.”

“그랬…느냐?”

이건 지평학도 몰랐던 사실.

지소연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왜냐하면, 그가 지소연 곁을 떠나기 직전 그녀는 임신 6개월이었으니까.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어르신. 그녀도 저로 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수호는 솔직하게 자신이 이민경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건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거짓으로 감춰봐야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뿐이었다.

콰직

지평학이 손에 쥐고 있던 펜이 손아귀에서 완전히 박살 났다.

이민경. 아니, 김민경이라고 불러야 할 그녀는 권존 김무성의 단 하나뿐인 딸이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지평학이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죽이고, 탄생조차 지켜보지 못했던 딸아이마저 죽게 한 원수가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원수에게 복수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지평학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이는 분노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운명이라는 것에 대한 원통함이었다.

“어르신이 손을 쓰신다면 두 번까지는 반격하지 않겠습니다.”

한수호는 악을 해치운 것이지만, 존경하는 권존 김무성의 처자식을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렇다고 목을 내밀어 죽여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수호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단 두 번의 공격까지.

그 두 번의 공격에는 절대 반격하지 않기로 했다.

콰드득

지평학이 주먹을 있는 힘껏 말아쥐었다.

그 또한 사람이고, 처와 자식을 아끼는 마음은 여느 사내와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처자식이 흡정귀가 되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아…. 이 또한 내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겠느냐.”

지평학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 한수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조차 너에겐 미안한 일이다. 용서하거라.”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무정한 분이라고 오해했을 겁니다.”

“그래…. 난 너무 무정한 놈이었단다. 나 하나 살겠다고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자식을 버렸으니까. 그러니 어찌 내가 너에게 화를 낼 수 있겠느냐.”

지평학은 빠르게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얇은 책자 하나를 하나 꺼내 한수오게 건네주었다.

“이걸 받거라.”

한수호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감정을 정리한 지평학을 바라보며 속으로 과연 권존답다고 생각했다.

“이게 뭡니까?”

“내 마지막 심득이다.”

“…. 네?”

한수호는 놀란 눈이 되어 지평학이 건넨 책자를 내려다봤다.

[명왕초패기]

책자에 쓰인 글자였다.

“이걸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은 너 하나뿐인 것 같구나. 그러니 잘 배워서 악을 베어내는 데 사용하도록 하여라.”

지평학의 마지막 심득 명왕초패기.

이건 지평학 자신도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초고난이도의 기술이었다.

마나압축법, 근밀도강화법, 염동파쇄기, 그리고 마지막 기술인 명왕초패기.

이제 권존 김무성의 네 가지 기술이 모두 한수호에게 전수된 것이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한수호는 책자를 잘 갈무리한 뒤, 지평학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제 떠나려느냐?”

지평학은 책상 위에 올려진 휴학 신청서류를 힐끔 보고는 물었다.

“모든 게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요.”

“자신은 있고?”

“자신이 없다면 떠날 생각도 안 했겠지요.”

“비돈귀살과 함께 가는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그분들도 현 상황을 좌시할 생각은 없으시니까요.”

“천승, 그 녀석은 어떻느냐?”

지평학은 1세대 마공사로서 사왕오패 모두에게 영웅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 모두와 친분이 있었고, 특히 구천승은 지평학이 꽤나 아끼던 후배였다.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지금? 녀석도 아카데미 근처에 와 있는 것이냐?”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한수호는 그렇게 말한 뒤, 바로 전투 영역을 발동시켰다.

지평학의 코앞에서 아무 소리도, 기척도 없이 훅 사라져 버린 한수호.

그 광경에 지평학은 잠시 얼이 빠지고 말았다.

듣도 보도 못한 움직임이다.

권존 김무성도 알아차리지 못한 움직임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건 움직임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이라 봐야 했다.

‘장태산 녀석…. 아공간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던 건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알기로 한수호가 지닌 특성은 최소 세 개.

거기다 김무성 자신이 네 가지 특수 기술을 전수했으니 일곱 개 이상의 능력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마공사라는 말이다.

방금 말하는 투로 보아 구천승과도 인연이 닿은 모양이니 어쩌면 그의 독문기술인 뇌신기까지 얻었을지 모른다.

‘강우진, 그 아이가 잘못된 걸로 봐서는 다른 아이를 후계자로 삼은 모양인데….’

지평학은 구천승이 오래전부터 강우진을 후계자로 점찍고 쭉 지켜봐 왔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도 강우진의 천부적인 재능을 잘 알기에 구천승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방학 때, 구천승이 강우진을 후계자로 삼아 많은 걸 전수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우진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강씨호왕가로 귀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곧 적상산에서 벌어진 황도13궁과 구천승의 전투에 대한 걸 알게 되었고, 구천승이 강우진을 후계자로 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구천승과 황도13궁의 궁주들이 벌인 전투에 대한 소문은 마공세계에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구천승의 편에 서서 황도13궁의 궁주들과 일전을 벌인 마공사 셋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많은 사람이 거금을 주고 정보를 사들였었다.

그 정보는 1억이 넘는 거액으로 거래되었는데, 강우진과 방태식의 이름만 밝혀졌을 뿐, 마지막 1인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마지막 1인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많은 사람이 정보를 사들이는 중이었다.

원래는 지평학 또한 그 정보만은 알 수 없었지만, 방태식을 직접 찾아가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듣게 된 이후, 그가 한수호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평학은 한수호가 임무를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조유현을 처리한 뒤 모습을 감췄다는 것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태식의 설명을 듣고 바로 한수호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장태산이 강우진과 척을 지는 건 그다지 좋은 그림이 아닌 것 같은데….’

지평학은 강우진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았다.

그래서 최근까지 강우진이 바로 마지막 활의 열쇠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한수호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지평학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파앗

방금 전 한수호가 있던 자리로 두 사람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한 명은 한수호였고, 다른 한 명은 구천승이었다.

“교수님이 진정 무성 선배십니까?”

구천승은 거짓말이라면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만 같은 얼굴로 지평학을 노려봤다.

그 모습에 지평학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변장술이 천승, 자네의 눈까지 속일 수 있을 줄은 몰랐군.”

지평학이 얼굴을 잡아 떼어내자, 투명한 가면이 떨어져 나갔다.

가면이 떨어져 나간 지평학의 얼굴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름지고,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강인하며 고집스런 사내대장부의 얼굴이 나타났다.

“선배님이 맞군요!”

구천승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권존 김무성이 사라진 건 정확히 22년 전.

그동안 그 누구도 김무성을 본 적이 없었기에 다들 그가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토록 가까운 곳에 교수의 신분으로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적상산에서 고초를 겪었다고 들었네. 자네 입으로 그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동안 어디서 무얼하고 지냈는지 듣고 싶으이.”

“물론 말씀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선배님께서 이리 정정하게 살아계신데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우선, 그동안 제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구천승은 그답지 않은 말투로 지평학에게 그간의 모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평학은 중간중간 감탄사를 연발하며 놀라워했고, 가끔 한수호를 돌아보며 알 수 없는 의미의 눈빛을 보이곤 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한수호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교수실 구석의 빈자리로 가서 지평학에게서 받은 책자를 꺼냈다.

[명왕초패기]

이름만 들어도 뭔가 대단한 것이 들어있을 것 같다.

한수호는 지평학이 정성을 들여 만든 책자를 꼼꼼하게 살피며,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꽉꽉 눌러 채웠다.

명왕초패기는 어떻게 보면 쇄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쇄혼은 피부의 경도를 20배가량 높이는 능력이었는데, 마나력이 높다고 해서 경도를 더 높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명왕초패기는 달랐다.

마나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명왕초패기였다.

쇄혼처럼 피부의 경도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건 아니지만, 대신 피부 바깥쪽에 초패기를 두르게 됨으로써 그 어떤 힘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명왕초패기에는 그 외에도 세 가지 효과를 더 지닌다.

초패기를 두른 채로 적과 근접전투를 벌이게 되면, 초패기의 영향으로 적의 방어력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또한 이 초패기의 기세는 상대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며, 적이 지닌 마나력까지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즉, 이 명왕초패기를 두른 채 전투를 벌이면 적은 온갖 디버프를 지속적으로 얻어맞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한수호가 경도를 극단적으로 높여주는 쇄혼 특성을 사용한 상태로, 경도와 강도 모두를 한없이 높일 수 있는 명왕초패기를 발동시킨다면?

한수호는 다이아몬드보다도 강하고, 강철보다도 튼튼한 몸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르신께서 대단한 걸 주셨구나.’

한수호는 명왕초패기라는 희대의 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넘겨준 지평학을 바라보다가 감사의 의미로 홀로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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