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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89화 (289/375)

289화

한수호가 지평학의 교수실을 나선 건, 그로부터 1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그 1시간 동안 구천승과 지평학은 평생지기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구천승은 한수호를 후계자로 삼았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이에 지평학은 재능만 따진다면 강우진이 더 뛰어난데, 그 대신 한수호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한 구천승의 대답은 간단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한들,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가볍다면 쓸모가 없으니까요.’

이 말은 강우진에 대한 구천승의 평가나 마찬가지였다.

재능은 있으나 사람 됨됨이가 틀려먹었다는 뜻.

지평학은 의외의 평가에 살짝 놀란 듯했다.

구천승이 사람을 평가하는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에, 그의 평가가 틀리거나 잘못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가 강우진의 됨됨이가 틀렸다고 말했다는 건?

지금까지 지평학이 봐왔던 강우진은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외에도 구천승은 몇 가지 중요한 당부를 전했다.

이산이 말하는 활의 열쇠와 살의 열쇠가 미래에 벌어질 일들의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구천승은 강지훈이 이프리트의 수장일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기에 김무성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다만 두 가지 조언을 남겨주었다.

첫째, 이프리트의 수장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하였고.

둘째, 강우진과 우태범을 눈여겨 봐야 하며, 그들에게 뭔가 이상이 감지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한수호는 그 사이 지평학이 건네준 ‘명왕초패기’를 머릿속에 완전하게 담은 상태였다.

지평학과 인사를 나눈 한수호와 구천승.

두 사람은 교수실을 빠져나온 뒤, 곧바로 전투 영역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구천승을 두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한수호가 향한 곳은 기숙사였다.

이제 휴학계를 내었으니 더 이상 기숙사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한수호는 기숙사 내의 모든 개인물품을 아공간에 넣은 다음 아카데미 밖에 자리한 자신의 컨테이너 하우스로 향했다.

거의 50일 만에 돌아온 보금자리.

그곳엔 언제나처럼 라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그럼 이제 이 집은 버리는 건가요?”

라라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집 안을 둘러봤다.

그녀가 아무리 세이렌의 여왕이라지만, 변변한 궁전을 소유한 것도 아니라 이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마저 소중하게 느꼈던 것이다.

“멀쩡한 집을 왜 버려? 너 돈 많냐? 어디 난파된 보물선이 가라앉은 자리라도 알고 있어?”

한수호는 전기 시설과 상하수도 시설을 컨테이너 하우스와 분리시키면서 그렇게 말했다.

“저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되는 거예요?”

“그야 안될 건 없지만…. 그러려면 밥값은 해야지.”

“하, 할게요! 몬스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절 데려가 줘요. 세이렌의 여왕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하게 보여드릴게요!”

“응? 갑자기 뭔 몬스터? 그냥 주변 청소랑 정리만 잘해도 밥값은 충분하니까 그렇게 알아.”

“…. 정말 그 정도로 되겠어요? 청소 말고 다른 서비스도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는데….”

라라는 괜히 몸까지 배배 꼬면서 콧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한수호가 한소리 크게 외쳤다.

“또 그런 헛소리할 거면 확 쫓아버린다?”

“아, 왜요! 무슨 이상한 생각이라도 한 거예요? 어머, 어머, 어머! 이 오빠 큰일 낼 사람이네?”

“됐으니까, 딱 거기까지. 따라 나오기나 해.”

한수호는 뭔가를 더 할 모양인지 라라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섰다.

“손 내놔.”

“…?”

한수호는 현관 앞에서 라라의 손을 잡았고, 다른 손은 하우스 벽에 댔다.

“네가 청소도 하고 지속적으로 깨끗하게 관리해야 할 곳은….”

한수호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리던 어느 순간,

파앗-

한수호를 비롯한 라라, 그리고 3개 동의 컨테이너 하우스까지 그 자리에서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라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가 맞이한 것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돔 형태의 공간이었다.

“에? 여기엔 왜….”

“이제부터 이곳이 네 새로운 직장이다.”

한수호는 다정한 얼굴로 라라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새, 새로운 직장이라니요?”

“쓸고, 닦고, 정리하고…. 내 집의 첫 번째 집사가 된 걸 축하한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한수호는 그렇게 웃으며 컨테이너 하우스를 한 동 한 동 들어서 진입차단벽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진입차단벽 밖에는 한수호가 월과 함께 지어놓은 커다란 3층 주택이 자리했고, 그 옆에는 수련장이, 그리고 거기서 다시 3백미터 떨어진 곳에는 게이트 보관소가 위치해 있었다.

3층 집 옆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붙여 놓은 한수호는 그곳을 라라의 집으로 지정해 주었다.

“인사해. 앞으로 네가 여기서 극진하게 모셔야 할 분이다.”

한수호는 라라에게 구천승을 소개해 주었다.

게이트 탐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구천승은 한수호가 데리고 온 인간형 몬스터, 라라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요망한 몬스터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다니, 너 제정신이냐?”

“요망하다니요! 이래 봬도 제가 세이렌의 여왕인데,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오? 세이렌의 여왕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호 네 녀석은 어찌 이렇게 어린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느냐?”

구천승은 라라가 세이렌의 여왕이라는 말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전 오빠 유혹한 적 없거든요? 저와 오빠는 운명의 끈으로 이어진 사이로, 십 년이고, 백 년이고 늙어 백골이 될 때까지 함께 있게 될 거라고요.”

“히야. 이 조그만 녀석 하는 말 좀 보게? 까불거리는 걸 보니 데리고 있으면 심심하진 않겠구나. 하하하!”

구천승은 라라가 발끈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앞으로 시키실 일 있으면 뭐든지 시키세요. 이 녀석 말처럼 무슨 끈인지 뭔지로 연결되어 있어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이 녀석하고는 대화가 가능합니다. 저한테 연락하실 일 있으면 이 녀석을 이용하면 됩니다.”

한수호의 말에 구천승은 ‘그것참 편리해서 좋구나!’라며 즐거워했고, 라라는 그제야 한수호가 자신을 왜 여기로 데리고 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를 연락용 전화기로 쓸 생각이었잖아!’

한수호는 늘 전투 영역에 머물고 있는 구천승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라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 * *

컨테이너 하우스까지 전투 영역으로 옮겨버린 한수호.

발자크와의 운명을 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시 마공 아카데미로 되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기에 아무 미련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한수호는 구천승과 계획을 세웠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거대하고, 강력하며, 조직적이었다.

발자크라는 대마왕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이프리트.

그리고 그 이프리트의 손발이나 마찬가지인 새한교와 황도13궁.

그들 모두를 상대하려면 철저한 계획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한수호와 구천승은 우선 강력한 아군을 만들기로 했다.

이산과 김명중은 회귀자이지만 일을 풀어가는 방식이 맞지 않기에 함께 뜻을 펼쳐 나갈 인물들은 아니었다.

나머지 회귀자들 중에서 조유현은 한수호의 손에 죽었고, 김유란은 높은 확률로 이프리트에 잡혀있을 터.

남은 네 명의 회귀자 중에 구천승을 제외하면 이쪽으로 끌어들일 인물은 세 명뿐.

박철민, 노희경, 그리고 나스타샤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중에서 노희경은 강지훈 편으로 회유되었다고 봐야 했기에 실질적으로 남는 건 박철민과 나스타샤였다.

박철민이라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마공사였는데, 워낙 소심한 인물이라 회귀한 직후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천승은 그 박철민과 연락을 취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 박철민이 유일하게 믿음을 주었던 인물이 구천승이었기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특별한 방법으로 연락하자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연락 방법을 사용하려면 월말이 되어야 했다.

매월 마지막 날, 특정 장소에 특정한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박철민과 연락이 가능했다.

때문에 월말이 되기 전까지는 연락을 취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박철민과의 만남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남은 인물은 나스타샤.

그녀는 8명의 회귀자 중,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마공전뇌 이산은 첫 번째 회귀를 경험한 직후,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나스타샤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지닌 특성은 투시로, 사물을 투시하여 보는 능력 말고도 미래나 과거를 투시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구천승에 의하면 투시 특성 말고도 시간과 관련된 독특한 특성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산은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발자크가 부활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결국 이산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회귀라는 대비책을 준비해 둔 터라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튼, 지금의 한수호와 구천승에게도 나스타샤의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인천공항에 가기로 결정했다.

회귀 전의 나스타냐는 2051년 8월 초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가 폭탄테러에 당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지금은 그녀가 그 사건으로 죽지 않았으며, 이산과 다른 회귀자들 무리에 합류하여 수 년간 이프리트와의 전쟁을 주도했음을 잘 알고 있다.

만약 한수호가 2058년 1월에 개조 특성을 사용해 시간을 거슬러 오지 않았다면, 이산과 나스타샤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을지 모르는 일.

설사 그렇다 해도 한수호는 이번 삶만큼은 나스타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나스타샤가 한국에 들어오는 일정이 9월 6일로 미뤄진 이상, 아직 기회는 있었다.

한수호는 그 기회를 잡고자 구천승과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 * *

이튿날, 인천 송도의 한 카페.

한수호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는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던 한수호는 주변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이 찾는 사람의 기운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녀석…. 그사이 많이 발전했는데?’

한수호는 저 멀리 인파 속에서 카페를 향해 다가오는 작은 체구의 누군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서은채.

열다섯 살의 서은채가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채로 카페에 들어섰다.

그녀는 한수호를 발견하고는 신이 난 듯 한쪽 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 댔다.

“오빠아!”

안 그래도 눈부시게 빛나는 외모로 인해 카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서은채.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누군가를 찾자, 이번엔 한수호 쪽으로 시선들이 움직였다.

이에 한수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호다닥 달려온 서은채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휘날리며 한수호 앞자리에 폴짝 뛰어 앉았다.

“와아! 오빠가 웬일로 나한테 먼저 연락했데요? 근처에 온 김에 연락한 거는 알겠는데, 어쨌든 기분은 좋다. 헤헷. 나 뭐 먹어요? 아.아? 아니면 라떼? 에이, 센스 없게 미리 시켜놓지도 않고. 뭐예요?”

오자마자 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서은채.

한수호는 여전히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서은채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다.

“쉿. 네가 지금 너무 사람들 관심을 끌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냐?”

“관심? 그런 거 한두 번 받는 것도 아니고. 자주 받다 보면 별로 신경 안 쓰여요. 오빠도 이젠 그런 관심에 덤덤해질 때가 되지 않았어요? 생긴 걸로 치면 나보다 더한 분이 왜 이리 쑥맥처럼 행동하실까?”

“….”

한수호는 서은채를 조용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작고 어린 여자애는 한수호를 놀리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보자고 한 것 같았다.

한수호의 표정이 안 좋아 지자 서은채는 혀를 삐죽 내밀었다가 바로 커피를 주문했다.

그녀의 자리로 커피가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주변의 관심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요즘은 좀 어때?”

한수호가 한참 만에 꺼낸 말에 서은채는 히죽 웃음을 그렸다.

“내년에 있을 아카데미 입학시험 준비하느라 정신없죠, 뭐.”

“백이 좋긴 좋구나. 열여섯 나이에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도 하고.”

“그게 왜 백이에요? 전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각성했고, 그걸로 특채 입학 자격을 얻은 거잖아요.”

“그 말에는 어폐가 좀 있지 않나?”

한수호가 눈을 얇게 뜨며 묻자, 서은채가 또 헤실거리며 웃었다.

“헤헤. 뭐, 전적으로 저 혼자의 힘으로 각성한 게 아니긴 하죠. 앞에 계신 우리 태산 오빠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래서 고맙다고 몇 번을 말했잖아요. 아니에요?”

“알면 됐다. 은혜 갚으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걱정 말고. 원수로 되갚는 배신만 안 때리면 만족이니까.”

“에이, 어떻게 그래요. 아빠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오빠가 하는 말은 200% 믿을 거니까 언제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말이라도 고맙네. 그보다, 이거나 받아라.”

한수호는 인벤토리에서 마법처럼 물건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건 정육면체의 작은 큐브였다.

“큐브? 이거 저 주는 거예요? 와, 선물받았다!”

서은채는 단순한 큐브 장난감처럼 보이는 물건을 기분 좋게 받아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게 뭐냐며 반문부터 할 텐데, 서은채는 즐거운 표정으로 큐브를 받아 들고는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확실히 서은채는 선물 받은 물건의 가치보다는 선물을 받았다는 행위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 독특한 성격의 여자아이였다.

“마나력 넣어서 정보나 좀 살펴라. 내가 주는 건데 평범하겠냐?”

“마나력? 설마 이거 아티팩트에요?”

그제서야 큐브에 마나력을 흘려 넣는 서은채.

큐브의 정체를 파악한 서은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까지 반쯤 벌린 상태로 한수호를 바라봤다.

“이걸 저한테 준다고요? 이런 엄청날걸?”

서은채는 큐브가 지닌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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