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한수호는 지금까지 인천공항 폭탄 테러가 윤재희 혼자 벌인 사건이라고 생각했었다.
지난번, 아카데미 역사관에서 벌어졌던 테러도 최지혁의 사형 혼자서 자행한 일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범인이 왜 한 명뿐일 거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해.’
한수호는 테러범이 두 명, 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회귀 전의 사고에도 윤재희 혼자만 연루된 게 아닐 수 있었다.
한수호는 곧바로 김재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르르
-어떻게 됐어? 뭔가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한 거냐?
김재우도 오늘 인천공항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건 한수호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바로 상황부터 물었다.
“아직이요. 나스타샤가 탄 비행기는 도착했고, 곧 입국장 통해서 나올 거 같아요. 그런데, 재우 형. 뭐 좀 물어볼게요.”
-어, 그래. 아는 건 뭐든 대답해 주마.
“원래 나스타샤 보호 임무 맡았던 사람 누구인지 알 수 있어요? 재희 누나 말고요.”
한수호는 한 달 전 본래 일정에 나스타샤가 왔을 때, 윤재희와 함께 팀을 이루기로 예정되어 있던 인물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내가 말 안 해줬던가? 애초에 나스타샤 경호팀으로 5명이 배정됐었어. 일정이 바뀌면서 그걸 핑계로 내가 재희를 팀에서 빼버린 거라 한 명 빼고는 그대로 투입됐을 텐데?
“그럼 재희 누나 말고는 다 원래 멤버라는 거잖아요?”
한수호의 눈이 반짝했다.
나스타샤 경호팀 멤버에서 윤재희만 바뀌었다?
그럼 나머지 4명 중에 폭탄 테러를 일으킬 공범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재희 누나 대신 들어간 사람이 임주현 요원이라고 했죠?”
-맞아, 주현이. 재희가 나스타샤 보겠다고 경호팀을 자처하지 않았으면, 애초에 임주현이 투입될 임무였으니까.
“알았어요. 나중에 또 연락할게요.”
-뭐야? 그것만 물어보고 그냥 끊는….
달칵
한수호는 김재우의 이야기를 더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시켰다.
왜냐하면 저 앞에 보이는 티비 화면에서 입국장을 나서는 나스타샤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
나스타샤의 한국 방문은 여러 방송 매체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US특무부 요원, 나스타샤.
그녀가 한국에 왔다는 건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는 의미일 수 있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불안한데….’
한수호의 마음은 매우 불안했다.
안타깝게도 회귀 전의 한수호는 인천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정확히 몇 시에 어느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났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윤재희 요원의 폭탄 테러로 인해 나스타샤를 비롯해 5명이 사망했다는 정도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분명 폭발 지점 근처에 새로 생성된 게이트가 있을 텐데,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한수호는 이미 입국장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게이트의 기운이 전해지지 않았다.
지금의 한수호는 굳이 괴인혈 특성을 발동시키지 않은 상태에서도 다른 마공사들보다 두, 세 배 정도 높은 마나 친화력을 보이고 있어서 게이트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게이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아직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이프리트에서 게이트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고 있겠지.’
한수호는 후자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
회귀로 인해 미래가 틀어지고는 있어도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굵직한 사건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테러는 반드시 일어나. 그렇다면 게이트도 이미 열려 있다는 거고.’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게이트를 찾고자 마나 파장까지 넓게 퍼트린 한수호.
하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너무 다양한 마나 파장들이 걸려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게이트라고 의심될만한 마나력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때, 한수호의 머릿속에 또 한 번 뭔가가 번쩍했다.
‘당시 희생자는 5명이 전부였잖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면, 희생자가 5명으로 끝났을 리가 절대 없다.
정부가 희생자 수를 확 줄이는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야 희생자 수가 잘못될 가능성은 제로.
‘폭발 지점은 공항 안쪽이 아니었어!’
한수호는 조금 높은 곳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나스타샤가 경호팀에 둘러싸여 공항 밖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임주현 요원이 안 보여?’
경호팀은 4명이었다.
모두 진급 마공사로 상당히 노련해 보이는 인물들.
하지만 윤재희를 대신해 경호팀에 합류한 임주현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 경호를 하는 게 아니라면….’
그녀가 있을 곳은 딱 한군데였다.
‘주차장!’
공항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놓고 대기를 타고 있기에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폭발 지점이 주차장이라면 희생자 수가 적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제길!’
한수호는 급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수많은 인파 사이를 바람처럼 미끄러지며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경찰들과 경호팀에게 둘러싸여 주차장을 향해 가고 있는 나스타샤 우측 10미터 지점에 도착하는 데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후드티를 깊게 눌러쓰고.
고개를 살짝 숙인 한수호는 감각을 넓게 퍼트려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게이트는 어디냐!’
나스타샤는 이미 공항을 벗어나 주차장 근처로 접근해 있었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도 이젠 크게 줄어든 상태.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한수호의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거기! 잠깐 멈춰보세요. 실례 좀 하겠습니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한수호를 향해 보안 요원 두 명이 다가섰다.
한수호는 멈추지 않고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검은색 벤을 향해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그곳에 임주현이 있었다.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안절부절못한 채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다.
한수호는 그녀의 땀방울 하나까지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나?’
임주현의 시선이 경호팀의 한 사내를 향해 있었다.
김재덕 요원.
29살의 김재덕은 이 경호팀에서 막내나 다름없었다.
나스타샤의 경호를 위해 이곳에 온 임주현이 그녀가 아닌 김재덕을 빤히 쳐다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김재덕도 공범이야!’
그런데 김재덕이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팀장 이동석이 맨 앞에 서 있고, 그 뒤를 나스타샤와 김재덕이 따르는 중이었는데, 후미에 있는 문현수와 박종규에게 김재덕이 묘한 손짓을 해 보였다.
그 손짓을 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으로 넓게 퍼지며 경호 반경을 크게 넓혔다.
김재덕도 걸음을 늦췄고, 앞에는 이동석과 나스타샤, 그리고 보안 요원 두 명만이 남아 있었다.
‘저 5명이군.’
딱 봐도 폭탄이 터지면 희생될 사람들만 남은 상태.
이제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임주현을 살펴보니 상의가 과하게 두터운 것이, 외투 안에 폭탄 조끼라도 입고 있는 모양.
그녀는 오른손에 작은 격발기 같은 것도 쥐고 있었다.
이동석과 나스타샤 등이 10미터 안쪽으로 들어섰을 때, 임주현이 덜덜 떨면서 엄지를 격발기 버튼 위에 올려놨다.
그때, 한수호 앞을 두 보안 요원이 막아섰다.
“멈추라고 했잖습니까? 여기서 뭐 하는 거죠? 더 이상의 접근을 금지합니다. 우선 고개부터 드시고, 신분증 내놓으시죠.”
보안 요원이 인상을 쓰며 하는 말에 한수호는 손에 들고 있던 마스크를 얼굴에 썼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보안 요원들이 크게 놀라며 좌우로 퍼졌고, 손에는 테이저건을 들었다.
“당장 멈춰! 손 들고 그대로 서 있으라고!”
갑작스러운 외침에 근처의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임주현과의 거리가 거의 5미터까지 가까워져 있던 나스타샤도 뭔 일인가 싶어 멈춰서는 고개를 돌렸다.
한수호와 나스타샤 사이의 거리는 대략 6미터.
보안 요원이 좌우로 흩어진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수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스타샤를 향해 손을 뻗어내며 조용히 한마디 했다.
“숙여요.”
뜻 모를 한국어였지만, 나스타샤는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거의 주저앉듯 몸을 낮춰버렸다. 순간,
타앙! 탕!
테이저건이 총소리를 내며 발사되었다.
하지만 테이저건의 발사체는 한수호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튕겨 나왔다.
그때, 한수호가 들고 있던 손을 가볍게 그었다.
손이 그어진 방향엔 임주현이 서 있었고,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이 공간을 가르며 나스타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스칵!
임주현의 손에 있던 격발기가 뭔가게 찢겨나갔다.
1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대부분이 손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물건을 베어버린 기술.
이는 지평학에게서 전수받은 염동파쇄기였다.
한 번 사용에 800이나 되는 마나력이 소모되지만, 지금의 한수호에겐 아무것도 아닌 수치였다.
“테러범이다! 저놈을 잡아!”
“사살도 불사한다!”
“간악한 놈!”
경호팀 마공사들이 한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한수호의 시선은 그들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나스타샤와 단 2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이동석 요원에게 향해 있었다.
몸을 휙 돌린 이동석의 손에는 어느새 또 다른 격발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차량 쪽으로 몸을 튕기더니 망가진 격발기를 쥐고 멍하니 서 있는 임주현을 잡아 나스타샤 쪽으로 내던졌다.
그 장면을 또렷이 지켜본 한수호.
‘역시, 모두가 한패였어!’
그는 이동석을 끝까지 의심하고 있었기에 일련의 모든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해 두었다.
터엉
한수호는 바닥을 찍으며 그 자리에서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를 향해 달려드는 세 명의 특무부 요원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초감각을 사용하는 한수호에게 너무도 느렸다.
안 그래도 빠른 한수호가 초감각을 사용해 10배나 빨라진 상황.
한수호는 가장 앞서 달려든 박종규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커억!”
새우처럼 굽어지며 천천히 튕겨 나가는 박종규.
그다음은 유독 큰 덩치를 지닌 문현수였다.
덩치답지 않은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는 문현수였지만, 한수호 앞에서는 그저 잔재주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 한수호가 어깨를 툭 올려치자.
뻐억-
문현수의 가슴이 움푹 파이며 그가 입으로 피를 토했다.
마지막은 김재덕.
한수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특성을 사용한 그는 쌍권총을 꺼내 이미 여섯 발의 탄을 쏘아낸 상태였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공격.
하지만, 그 또한 한수호의 초감각 앞에서는 아무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한수호는 강화 특성으로 인해 막강한 파괴력을 갖춘 탄환의 비속을 유유자적 파고들면서 여섯 발의 탄환을 모조리 손으로 튕겨냈다.
티잉! 티디디딩!
여섯 발 중 두 발은 김재덕의 쌍권총 총열로 빨려 들어갔고, 나머지 네 발은 벤 차량 위로 넘어가는 이동석을 향해 날아갔다.
퍼엉! 퍼벙!
김재덕의 쌍권총이 폭발하며 그의 두 손마저 산산이 조각났다.
“크아아악!”
그의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질 때, 이동석을 향해 날아간 탄환 중 한 발만이 그의 손등에 박혀 들었다.
놀랍게도 이동석은 마나 장벽을 일으켜 세 개의 탄환을 튕겨냈던 것.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격발기를 쥐고 있던 손에 탄환이 박혀 들어서 폭발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이동석은 이미 나스타샤 앞을 막아선 한수호를 무섭게 노려보다 그대로 차를 박차며 날아올랐다.
한수호는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세 요원을 훑어봤다. 주변엔 많은 보안 요원과 민간인들로 가득해진 상태.
그때, 거칠게 바닥을 굴렀던 임주현을 나스타샤가 급히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대체 왜 이런 짓을….”
그녀가 말하는 순간이었다.
달칵!
뭔가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피이이이이잉-
임주현의 몸에서 엄청난 고음의 음파가 터져 나왔다.
이 음파가 폭발의 전조음이라는 걸 알아챈 한수호.
“비켜요!”
한수호가 나스타샤를 뒤로 잡아당기고 임주현의 온몸을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바로 그때, 슬픈 눈을 하고 있던 임주현의 몸이 굉음을 내며 폭발해 버렸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