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지이이잉
한수호는 뇌까지 울릴 정도의 흔들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몸 어느 곳에도 상처는 없었다.
임주현이 폭발하며 만들어낸 충격파는 엄청났지만, 한수호가 몸으로 모든 충격을 흡수해낸 덕에 주변엔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서 있던 지반이 통째로 무너져 지하로 떨어져 내렸을 뿐.
이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쇼크이터 덕분이었다.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직.간접적인 충격을 흡수율에 따라 빨아들입니다.
쇼크이터가 가지는 강력한 효과 중의 하나.
게다가 한수호의 충격 흡수율은 육체한계치가 4로 늘어난 덕분에 80%까지 증가해 있었다.
즉, 방금전에 발생한 어마어마한 폭발의 파괴력은 고작 20% 수준으로만 한수호에게 영향을 줬다는 의미.
20% 수준은 맨몸으로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기에 한수호는 아무 상처가 없을 수 있었다.
“괜찮습니까?”
한수호는 폭발과 추락으로 인해 흙먼지를 뒤집어쓴 나스타샤를 부축하며 물었다.
나스타샤가 한국어를 원어민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굳이 영어를 쓸 이유가 없었다.
“누구…시죠?”
나스타샤는 의외로 침착했다.
그녀 또한 회귀자였으니 이미 과거에 한번 똑같은 폭탄테러를 당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테러가 있을 걸 알면서도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대체 뭡니까?”
“…. 네?”
나스타샤는 작은 얼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방금 한수호가 한 말에는 그녀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 말이기에 놀랄 수밖에.
“일단 여기부터 뜹시다.”
한수호는 당황한 나스타샤의 소목을 덥썩 움켜쥐었다.
그리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2미터 크기의 게이트를 바라봤다.
‘역시나 여기에 있었어.’
놀랍게도 지하 주차장의 구석진 곳에 게이트가 생성되어 있었다.
이프리트는 어떻게 안 것인지 미리 이 게이트가 나타날 것임을 알고, 게이트의 등장과 동시에 주변을 폐쇄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임주현은 바로 그 장소 위에서 자폭을 결행한 것이고.
만약 한수호가 쇼크이터로 모든 파괴력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이 게이트도 함께 폭발하여 ‘봉인의 틈새’를 더욱 벌렸을 터.
‘하지만, 격발기 두 개를 모두 박살 냈는데 왜 폭발한 거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한 가지.
세 번째 격발기를 가진 자가 근처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때 폭발에의해 뻥 뚫린 구멍 위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폭발로 인해 놀랐던 사람들이 이제야 하나둘 구멍 주변으로 몰려든 것이다.
한수호는 다른 손으로 게이트 테두리를 턱 하고 거머쥐었다.
“그럼 갑시다.”
나스타샤에게 한마디를 툭 던진 한수호.
그녀는 한수호가 게이트를 손으로 잡는 광경에 입을 반쯤 벌리고 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어…. 어딜 가는데요?”
나스타샤의 질문에 대답은 없었다.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한수호는 구멍 밖으로 나가자마자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구멍 근처로 모여들던 사람들은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랐다가, 더욱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 저 사람 손에 쥐고 있던 거 게이트 아니었어?”
“게이트를 들고 다니는 게 가능한 일이야?”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저 사람이 몸으로 막아 준 덕분에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공항 주차장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 * *
한 손에는 나스타샤를.
다른 한 손에는 게이트를 들고 나는 듯이 달려가고 있는 한수호.
그는 방금 전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목격한 한 사람을 떠올리며 이를 뿌득 갈았다.
‘오중헌! 놈도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방금 전, 한수호는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같은 감각을 이용해 오중헌의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량 틈에 바이크를 탄 채로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던 검은 헬멧의 사내.
그의 기운은 한수호에게 익숙한 오중헌의 것이었다.
일전에 한수호의 손에 한 팔을 잃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팔 대신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기계 팔을 장착하고 있었다.
개조 특성을 써서 찰나적으로 그의 기계 팔을 살펴본 결과는 이랬다.
[E.D 암즈]
-모든 전자 장치의 작동을 제어할 수 있는 기계 팔입니다.
-반경 30미터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착용 시, 방어력/파괴력을 10% 향상시킵니다.
나름 괜찮은 스펙의 아티팩트 암즈였다.
그리고 그 암즈가 임주현을 폭발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한수호는 당장이라도 발길을 돌려 오중헌을 잡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엔 민간인들이 너무 많았고, 보안요원들과 마공사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에겐 지금 나스타샤와 게이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물론, 적당한 곳에서 바로 전투 영역으로 이동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12시간 안에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와야 하기에 다시 쫓기게 될 위험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한수호는 과감히 오중헌을 포기하고 공항을 완전히 벗어나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한수호는 공항에서 멀어지자마자 곧장 바닷가로 향했다.
영종도는 사방이 물이라서 어디로든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숨 크게 들이마셔요.”
바닷가 도로를 박차며 높이 날아오른 한수호의 말.
“설마 이대로 뛰어들려고요?”
“지금!”
풍덩
한수호는 나스타샤의 손을 꼭 쥔 채 바닷물 속으로 잠수했다.
거기서 1분 가까이 헤엄쳐 먼 곳까지 이동한 뒤, 곧장 전투 영역을 발동시켰다.
스팟!
한수호와 나스타샤, 그리고 게이트까지 물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 *
“…?”
분명, 방금 전까지는 물 속이었는데 풍경이 확 바뀌더니 검은색이 가득한 이상한 공간으로 이동해 버렸다.
놀라운 건, 엄청난 양의 물까지 그대로 이동해버려서 바닥이 바닷물로 흥건하다는 것.
거기에 수많은 물고기까지 바닥에 떨어져 퍼덕거리고 있었다.
“후…. 이제 한숨 돌리겠네요. 어디 다친 곳은 없죠?”
한수호가 긴장을 풀며 하는 말에 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침만 꼴딱꼴딱 삼킬 뿐이었다.
올해 24살의 금발머리 외국 여인 나스타샤.
키는 160센티 정도로 작았지만, 황금비율의 몸매를 지니고 있어서 작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비교적 얇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물에 젖어 몸매가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지만, 한수호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잠시 숨 돌리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 봐요.”
“무슨….”
“공항에서 테러가 있을 거라는 거 알았잖아요. 그런데도 굳이 똑같은 루트로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뭐죠?”
“아….”
벌써 두 번째로 듣는 질문.
나스타샤는 회귀자다운 침착성을 금방 되찾았다.
“알지만 한국에 꼭 와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어요.”
“이유?”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보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내가 이미 한 번 테러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 건가요?”
나스타샤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회귀자라는 말을 자기 입으로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수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에게 들었거나, 아니면 나도 당신과 똑같은 비밀을 가진 거겠죠.”
“하.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나요?”
“농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군요. 무슨 깡다구로 아무 보호자도 없이 혼자 한국에 왔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한수호가 보기에 나스타샤는 테러를 당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의미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허비하려고 했냐는 질문을 크게 돌려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대비는 했어요. 그런데 그 대비가 오히려 내 목을 치는 자충수가 될 줄은 몰랐네요.”
나스타샤는 자신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 그리고 별다른 걱정 없이 한국에 온 이유도 차분히 설명했다.
그녀가 말한 준비는 바로 이동석 요원이었다.
그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고, 회귀 전에는 그 사람 덕분에 공항 테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너무도 깊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동석에게만 따로 연락해서 테러가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을 꼭 도와달라며 부탁까지 했었던 것.
하지만 이번 삶에서의 이동석은 회귀 전과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오히려 나스타샤를 속여 한국으로 유인했고, 그녀에게 확실한 죽음을 안겨주려고 완벽한 함정을 팠다.
결국, 나스타샤는 회귀 전에 겪었던 상황만을 믿었던 탓에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한 것이었다.
나스타샤의 이야기를 다 들은 한수호.
그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귀 전에 이동석 요원 덕분에 살아남았다고요?”
한수호의 질문엔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네. 날 죽은 것처럼 위장해서 그 공포의 현장에서 날 빼내 주었죠. 대신 그 사람이 목숨을 잃었었고.”
“이동석 요원이 당시 폭탄테러에 당했다면, 당신을 살려준 사람이 그라는 건 어떻게 안거죠?”
“그가 남긴 메시지가 있었어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저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신의 이름을 남겨 뒀더라고요. 그리고 마공전뇌 이산에게 꼭 협력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고요.”
“흠…. 그럼 당신은 회귀한 뒤에 그 메시지 하나만 믿고 이동석에게 연락을 취한 거다? 뭔가 굉장히 허술하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한수호는 나스타샤의 이야기만 듣고서 이상함을 느꼈다.
이건 아무래도 마공전뇌 이산이 나스타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작업을 친 게 아닐까 싶었다.
이산이 첫 번째로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 나스타샤는 테러를 당하지 않았고, 이프리트와의 최종 결전 직전까지도 살아남아 있었다.
그런데 1차 회귀 후, 그녀를 찾아가 그녀를 회유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나스타샤는 이를 거절했다고 했다.
그러다 게이트 폐쇄를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특무부 유대룡 본부장의 협조 요청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벌어진 폭탄테러.
거기서 이동석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이산의 그룹에 합류하는 게 가능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한수호가 원인이 되어 2차 회귀가 발생했는데, 이번엔 나스타샤가 스스로 이동석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믿었던 이동석이 오히려 그녀를 죽이려는 무리의 앞잡이였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수호는 이산이 나스타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이동석의 죽음을 역이용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산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죽은 사람이니 이름을 빌려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재수 없게도 그 이동석은 사실 폭탄테러의 배후 인물 중 하나였다면?
그럼 지금 이 상황이 모두 설명된다.
‘두 번이나 회귀한 사람이 뭐 이렇게 허술하지?’
한수호가 보기에 나스타샤는 사람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지금만 해도, 단순히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수호를 믿고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때, 진입차단벽과 게이트 보관창고로 이어지는 통로가 열리며 월이 나타났다.
월은 한수호와 나스타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눈에 물음표를 띄우며 한마디 했다.
“또 여자를 데려왔군.”
“뭐가 또야! 왔으면 헛소리 말고 여기부터 정리해.”
한수호가 가리킨 곳에는 엄청난 양의 바닷물로 흥건하게 젓은 바닥과 펄떡거리는 물고기들이 한가득이었다.
“이곳의 정리 정돈은 라라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니었던가?”
“그럼 라라 불러서 치우던가! 일단 자리를 옮기죠.”
한수호는 나스타샤와 함께 진입차단벽 밖으로 향했다.
월은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 라라를 호출했고, 그런 월의 곁을 지나치는 동안 나스타샤는 고블린 워리어가 말을 하는 모습에 크게 신기해했다.
통로를 걸으며 나스타샤가 질문을 던졌다.
“아까 그 몬스터…. 진짜 아니죠? 몬스터 봇 맞죠? 와, 개 신기해. 대한민국의 기술력은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군요? 지금까지 본 몬스터 봇 중에서 그렇게 리얼리티 수준이 높은 건 처음 봤어요. 능력치도 꽤 높아 보이던데…. 특별한 마나코어를 동력원으로 사용한 건가요? 이산 씨의 제작 특성까지 더해지면, 엄청난 전력이 되겠는데요? 혹시 제가 연구할 기회를 줄 수 있어요?”
와다다 쏟아져 나오는 말들에 한수호는 걸음을 멈추고 나스타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키 차이가 꽤 나서 나스타샤의 얼굴은 한수호의 어깨높이에 간신히 닿고 있었다.
“저기요.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나요?”
“네?”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하고, 아차 했으면 죽을 뻔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냐고요.”
한수호가 한심한 듯 말했지만 나스타샤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녀는 손을 허공에 저으며 ‘에이, 뭐 그런 걸로….’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회귀 2회차라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게다가 한 번뿐이긴 하지만 죽을 걱정도 없었고.”
“…?”
이번엔 한수호가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유일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뭐가 어쩌고 어째?’라고 되묻는 표정일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하죠?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알려주지 않으면, 그냥 오빠라고 부를 거예요?”
나스타샤는 현시점에서의 나이가 24살일 뿐, 실제는 61년이나 살아온 할머니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말이나 행동은 20대 아가씨들과 다를 게 없었다.
한수호는 기가 막혔지만, 가면 덕분에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다.
“태산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누님.”
한수호는 일부러 누님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이번엔 나스타샤가 벙찐 얼굴이 되었다.
“누, 누님이라니요?”
지금의 한수호는 누가 봐도 듬직한 오빠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에 나스타샤는 자신이 누님으로 불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당년 19살인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한수호는 가면을 벗어 맨 얼굴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음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