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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93화 (293/375)

293화

10분 뒤.

전투 영역에 있는 한수호의 집 1층 거실에 총 네 사람이 함께 자리했다.

한수호를 비롯해 스승인 구천승, 손님인 나스타샤, 그리고 라라였다.

원래 라라는 월의 호출을 받았지만, 한수호가 차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 덕에 이 자리에 남을 수 있었다.

나스타샤는 자리에 앉은 이후, 내내 한수호와 구천승을 번갈아 바라보며 혼자 탄식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된 거로군요. 흐음. 예상 밖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지. 그런데, 아니. 아니에요.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네.”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어…. 그럼, 말할게요. 아니, 말할게. 내가 누나니까 말을 좀 편하게 하는 건 이해해 줄 수 있지?”

“뭐,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좀 물어보자. 네 이름이 장태산이라고? 열아홉 살이고?”

“네. 맞습니다.”

“진짜? 장태산이 본명이야? 뻥 치는 거 아니고?”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나스타샤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집요하게 물었다.

“제가 다른 이름이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있지. 엄청 중요한 이유가.”

“이유가 뭔지부터 들어보고 다시 답변을 드리도록 하지요.”

“역시, 뭔가 있구만. 있어.”

나스타샤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무릎을 탁 치며 신나 했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구천승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스타샤. 넌 어째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냐? 2차 회귀 후에 10년, 1차 회귀까지 감안하면 총 61년이나 살아온 녀석이 애처럼 그게 뭐야? 답답하니까 빨리 이유나 말해 봐라.”

구천승은 회귀 전에 나스타샤와 적지 않은 인연이 있었기에 이처럼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스타샤도 구천승에게 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알았다고요. 제자 들였다고 이젠 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으신가 보네요. 치잇.”

“엄한 소린 그만하라고 했다.”

“네네. 알아 모실게요. 그럼 설명할 테니 귀 쫑긋하게 세우고 잘 들으세요.”

장난스럽게 이어진 나스타샤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은 한수호와 구천승은 너무도 큰 놀라움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 *

나스타샤는 총 두 개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투시 능력이었는데, 이 투시 능력은 단순한 투시만이 아니라 특정 사물의 접촉을 통해 그 사물이 지닌 미래, 혹은 과거의 기억 중 극히 일부분을 랜덤하게 영상처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나스타샤는 이 투시 특성을 통해 자신이 2058년 2월에 이프리트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산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가 회귀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었다.

나스타샤가 회귀 장치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가진 두 번째 특성 때문이었다.

특성의 이름은 바로 ‘동반회귀’.

이 특성은 한수호가 침묵의 협곡 보상 목록에서 보았던 0티어 특성 중 하나였다.

특성이 지닌 단계는 총 세 가지로, 첫째는 지구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회귀를 발동시켰을 때, 동반회귀를 지닌 나스타샤 역시 함께 회귀하게 되는 효과였다.

두 번째 단계는 역시나 제삼의 인물이 회귀를 발동시켰을 때, 나스타샤의 반경 5미터 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한꺼번에 회귀시키는 효과를 지녔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남아 있었지만, 이 단계가 지닌 효과에 대해서는 나스타샤도 알지 못한다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아무튼, 이 동반회귀 덕분에 나스타샤는 두 번의 회귀를 할 수 있었고, 두 번째 회귀 때는 그녀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던 8명이 함께 회귀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큰 놀라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진 말에는 한수호도 침착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한수호는 늘 궁금해했었다.

자신의 몸에 개조 특성을 봉인해 놓은 것이 대체 누구인지.

그리고 개조 특성을 봉인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 궁금증이 나스타샤의 이야기 덕분에 모두 풀렸다.

나스타샤는 이산에 의한 1차 회귀로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11살의 나이로 되돌아갔다.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이산이 찾아왔으며 그는 나스타샤 또한 함께 회귀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나스타샤는 이를 거절했다.

그녀는 이산이 매우 이기적인 인물이며, 인류 구원이라는 미명하에 그 어떤 악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 또한 인류가 발자크와 이프리트의 손에 멸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혼자서 나름의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투시 특성을 이용해 게이트가 지닌 과거, 혹은 미래의 장면을 훔쳐보던 도중 매우 신기한 특성석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발생한 게이트에서 그 특성석을 찾아낸 나스타샤.

특성석에는 ‘개조’라는 규격외 특성이 새겨져 있었다.

생전 처음 규격 외 특성을 발견하게 된 나스타샤는 그걸 본인이 흡수하여 사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특성석에 마나를 투입한 순간, 투시 능력이 자동으로 발현되며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본 장면에는 남녀 한 쌍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기이한 외모의 사내가 등장했다.

그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소의 배경으로 중세 시대에나 볼 법한 커다란 성채가 보인다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들의 전투 장면을 지켜보던 나스타샤는 온통 검은색에 5미터나 되는 큰 키, 그리고 날개까지 지닌 사내가 바로 대마왕 발자크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놀라워 한 이유는 발자크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 발자크를 상대로 너무도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몰아붙이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그들의 전투는 나스타샤에게 전율을 선사했다.

검붉은 용갑을 걸치고, 크고 화려한 모양의 대형 검을 손에 쥔 채 발자크를 몰아붙이는 사내.

그리고 그 사내의 뒤에서 라이플을 겨누고 서 있는 앳된 여인의 감탄성이 나올 정도의 훌륭한 지원 덕분에 발자크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무너져갔다.

나스타샤는 전투의 결과까지 목격하지는 못했다.

발자크가 거의 쓰러져가는 와중에 그 장면은 씻은 듯이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나스타샤는 그 두 남녀가 인류의 미래를 구원해 줄 구원자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찾기 위해 대한민국에 몰래 숨어들었다.

두 남녀의 용모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여인이 사내를 부르는 이름을 분명 들었기 때문.

여인이 부른 이름은 한국식 이름인 ‘수호’.

아쉽게도 성씨까지는 몰랐지만 이름을 안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 길로 한국행에 오른 16살의 나스타샤.

그녀는 수개월간 한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수호’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11살의 어린 나이인 한수호를 발견했다.

당시, 한수호는 초등학생이었고 9살에 부모를 잃고 특무부 본부장인 유대룡의 양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나스타샤는 한수호가 투시에서 봤던 용갑의 사내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투시에서 봤던 용갑 사내의 눈빛과 11살의 어린 한수호의 눈빛이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

그래도 혹시 몰라 한수호의 물건을 이용해 투시를 사용했다.

그 결과, 그녀가 봤던 중세 시대의 성채가 다시 나타났고, 거기서 수많은 몬스터를 학살하는 용갑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확실했다.

한수호가 바로 용갑의 사내였고, 발자크를 쓰러뜨릴 인류의 희망이라는 것이.

그래서 나스타샤는 일부러 한수호를 기절시킨 뒤 양호실에 실려간 한수호에게 몰래 접근했다.

아무도 없는 양호실에서 한수호의 몸에 개조 특성을 심어 넣은 나스타샤.

그녀는 이 개조 특성을 한수호가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특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도록 봉인시켰다.

한수호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 닥쳐야만 발동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은 것.

그 후, 나스타샤는 투시에 등장했던 앳된 여인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여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간 나스타샤는 한수호가 잘 성장해 주길 바라며, 스스로의 힘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녀가 24세가 되었을 때 한국 특무부 본부장인 유대룡이 그녀를 초청했다.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으나, 유대룡이 한수호의 양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기에 성장한 한수호를 보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허락했던 것.

그래서 2051년 8월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그날 윤재희의 자살 폭탄테러에 죽을 뻔했다.

나스타샤는 자신이 테러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이동석 요원의 희생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산과 힘을 합쳐 인류의 멸망을 막아달라는 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산의 계획에 동참하게 된 나스타샤.

그 후로 구천승과 인연이 되었고, 틈만 나면 마공 아카데미에 숨어들어 한수호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나스타샤는 단 한 번도 한수호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한수호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접촉을 피했다.

그러다 마침내 2057년이 도래했다.

세계 곳곳에 1급 게이트를 넘어서는 헬급 게이트가 마구잡이로 등장했고, 연말에는 악몽급 게이트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한수호는 아무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스타샤는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 혼자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쯤엔 한수호가 어떡하든 개조 특성의 봉인을 풀고 라이플 여인과 힘을 합쳐 발자크를 막아서야 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한수호가 각성하기를 기다리며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던 나스타샤.

결국 2058년 1월의 어느 날, 그녀의 예상대로 한수호는 개조 특성을 각성했다.

그러나 그 각성은 인류 구원을 위한 영웅의 각성이 아니었다.

한 번 더 철저한 준비를 해서 재도전을 해 보라는 듯, 2차 회귀가 발동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2차 회귀를 경험한 나스타샤는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한수호가 영웅으로 거듭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두 번 다시 한국에 입국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원래 8월에 입국 예정이었던 계획까지 모두 취소시켰다.

하지만 유대룡에 이어, 이번엔 서한광까지 그녀를 초대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

서한광은 땅끝마을에 발생한 1급 게이트의 폐쇄를 위해 나스타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 게이트가 1급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무서운 몬스터가 등장해서가 아니었다.

게이트 안의 구조가 밀실 형태에 온갖 끔찍한 함정들로 도배되다시피 해서 밀실을 벗어나기도 전에 죽는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

만약 투시 능력자가 있으면 훨씬 수월하게 함정을 피할 수 있기에 서한광은 대한맹을 대표하여 나스타샤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나스타샤는 테러를 당할 것을 알면서도 한국에 입국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나스타샤는 테러를 당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한수호의 손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 *

이야기를 들은 한수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궁금해했던, 자신의 몸에 개조 특성을 봉인한 인물이 나스타샤였다니.

“공항에서 진작 얼굴을 보여주지 그랬니? 그랬으면 두말없이 네가 하자는 대로 다 따랐을 텐데.”

나스타샤는 가면을 벗은 한수호를 빤히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응. 두 가지 궁금해도 돼.”

“개조 특성을 저한테 준 건 무척이나 고마운 일인데, 왜 봉인을 해 놔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각성할 수 있게 한 거죠?”

그냥 알아서 사용할 수 있게 풀어놨으면, 굳이 이대경과 그 난리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터.

죽을 정도의 위기가 닥쳐서야 봉인이 깨지게 만들어 놓은 진짜 이유가 너무도 궁금했다.

“아, 그거? 뭔가 소중한 것을 얻을 때는 그만한 고난이 함께 해야 하는 법이니까. 너무 쉽게 얻으면, 그만큼 값어치가 떨어지거든.”

“하아….”

한수호는 나스타샤의 설명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였을 줄이야.

“이래 봬도 개조 특성은 규격 외 등급이야. 그런 엄청난 특성을 얻는 과정이 단순해선 안 되는 거지.”

나스타샤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한 번 더 어필했다.

그런데, 규격 외 등급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누님이 봤다는 미래의 장면이요. 거기에 저랑 같이 있었던 여자가 혹시 이 녀석인가요?”

한수호는 예전에 촬영해 놨던 이하이의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나스타샤가 봤다는 저격용 라이플을 사용하는 여인은 원래대로라면 이하이여야 했으니까.

“어머, 노랑머리 아가씨네? 네 취향이 이쪽이었어? 그럼 나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하나? 호홋! 그런데, 이 아가씬 아니야. 얘도 참 예쁘긴 한데, 내가 봤던 장면에 등장한 여자는 얘보다 훨씬 더 예뻤거든.”

이상한 취향 이야기가 덧붙긴 했지만, 이하이가 라이플의 진짜 주인은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서은채.

현시점에서 델링그의 주인이 된 서은채가 나스타샤의 투시에 등장한 게 틀림없었다.

“이 아이는요?”

이번엔 서은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복을 입고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방긋 웃고 있는 서은채의 사진.

이건 며칠 전, 서은채를 만났을 때 기념이라며 건네받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나스타샤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그리고,

“와~ 얘는 어쩜 이렇게 예쁘니? 이러니 우리 수호 동생이 이 아이하고 사랑에 빠진 거구나? 어쩐지, 투시 장면에서 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남다르더라니. 둘이 무슨 관계야? 미래를 약속한 사이?”

나스타샤가 또다시 이상한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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