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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05화 (305/375)

305화

한수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별도의 장소에서 지평학을 만나길 참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태범이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면, 지평학의 몸에 침투된 독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들켰을 테니까.

다행히 이곳은 사방이 막힌 곳이었고, 주변엔 그 어떤 의심되는 정황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수호는 차분하게 현 상황에 대해 지평학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지평학 또한 우태범을 지도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본 결과, 한수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태범은 일부러 어르신에게 접근했던 거네요. 어르신의 눈에 띄어서 아무런 의심 없이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모든 걸 계획했던 거고요.”

“허어…. 내가 옥석을 제대로 가려볼 줄 몰랐다니. 나이를 헛되이 먹은 것이로구나.”

“그만큼 우태범의 연기가 훌륭했던 거죠. 저조차 그 연기에 완전 속아 넘어갔으니까요.”

한수호도 나스타샤의 증언이 없었다면, 끝까지 우태범이 용갑의 사내이고, 강우진이 장발의 사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걸 어찌하면 좋겠느냐? 내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만큼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렸어. 어찌 학생들을 이곳에 끌어들일 생각을 했단 말인가? 내가 한 일이지만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지평학은 한수호가 독소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조금도 자신이 벌인 일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한수호의 진심 어린 조언에 그나마 살짝 반응했을 뿐, 그조차 완전하게 실수를 인정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야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고 있었다.

“정신에 영향을 줘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미혼약에 가까운 독이었습니다. 저도 아직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지독합니다.”

말은 그래도 한수호는 이미 그 독소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다.

그가 지닌 상처 회복 특성은 그의 몸을 빠르게 정상화시키고 있었으니까.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아무튼, 이젠 내가 벌인 일을 수습해야겠다. 학생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서령그룹과의 거래도 알아서 해결해 보마.”

“서두르셔야 해요. 우태범이 뭔가를 눈치채고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요.”

“알았다. 그런데, 우태범 그 아이도 강지훈의 끄나풀일 줄은 정말 몰랐구나. 내 앞에서 보였던 모든 행동이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을 줄이야….”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겁니다. 일단은 자연스럽게 모든 일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조심하셔야….”

한수호가 지평학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그때였다.

벌컥!

두 사람이 있던 방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진무현이 뛰어 들어왔다.

“장태산! 큰일이다! 게이트 안에서 문제가 터졌어!”

당혹하는 얼굴로 소리치는 진무현.

그의 얼굴에 떠오른 다급함을 느낀 한수호는 바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설명부터 해봐.”

* * *

진무현의 말은 이랬다.

한수호와 지평학이 대화를 나누겠다며 자리를 옮기고 얼마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게이트가 사람을 토해냈다.

그 사람은 특무부 요원 복장을 하고 있었고, 팔 하나가 뜯겨나간 모습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게이트 주변엔 많은 마공사들이 있었지만 포션이나 치료 관련 특성을 사용했음에도 요원을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게이트 안에 많은 동료들이 있으니 꼭 구해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뒀다.

현장에 있던 마공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아직 합류할 인원이 더 있었고, 작전 시간도 변경되었기에 당장은 게이트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가면서 동료들을 구해달라고 하는데 어찌 머뭇거릴 수 있겠냐며 당장 게이트에 들어가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작전을 책임지기로 한 비돈귀살 부부는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대한맹의 몇몇 성질 급한 마공사들은 소수만이라도 구조팀을 꾸려서 먼저 진입하자며 의견이 대립했다.

그때 뜻밖의 사고가 터졌다.

한쪽에 가만히 있던 아카데미 학생들이 갑자기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움직였다.

총 10명의 학생이 일부 장비들을 챙겨 게이트로 뛰어든 것.

그런 와중에 백윤후가 진무현을 향해 마나전음으로 이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장태산에게 전해줘!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태범이 친구들을 죄다 부추겨 게이트로 뛰어들게 만들었다고. 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니까 빨리 뒤쫓아오라고 말이야.]

진무현에게 이 말을 전해 들은 한수호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우태범이 뭔가 눈치챘나 봅니다. 일이 잘못될 것 같자 친구들을 볼모로 잡으려고 머리를 썼네요.”

“그럼 게이트 안에서 사람이 나온 일도?”

지평학은 그게 가장 의아했다.

게이트로 들어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안에서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걸까?

그 답을 한수호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점프석이겠죠.”

“아무리 점프석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는 좌표 표시기를 들고 들어가야 할 텐데?”

“이미 13년 전에 수많은 마공사들이 게이트 안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 좌표 표시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한수호의 빠른 추측에 지평학은 또 한 번 놀랐다.

“그럼 이프리트는 그때부터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해서 첩자를 미리 침투시켜 놨다는 말이냐?”

“아마도요.”

“아니, 이걸 어떻게 알고….? 설마, 이프리트에도 이산과 같은 자가 있다는 말이냐?”

지평학은 이프리트에도 회귀자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한수호로서도 가늠이 힘들었다.

땅끝마을 게이트가 발생한 건, 13년 전이고.

한수호와 8명의 회귀자가 시간을 거스른 건 10년 전이다.

즉, 이프리트는 회귀자가 나타나기 3년 전부터 이미 미래에 발생할 일을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된다.

하지만 1차 회귀 때, 기억을 가진 채 회귀한 인물은 이산과 나스타샤 단 두 명뿐.

그렇다면 1차 회귀자가 두 명 말고도 제삼의 인물이 더 있었거나, 1차 회귀자 중 누군가가 이프리트에 정보를 흘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한수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후자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가 알아낸 일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이프리트가 알고 있는 미래 정보의 대부분은 2차 때 회귀한 노희경과 김유란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 말은 이프리트에 제 삼의 회귀자가 존재하는 건 아닐 터.

그렇다면 이산이나 나스타샤 중 한 명이 1차 회귀 직후에 이프리트에 정보를 흘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프리트는 2차 회귀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현재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니 당연한 추측이었다.

‘나스타샤는 아니야. 그녀는 1차 회귀 때 인천공항 테러에 당한 상태라 이 게이트 폐쇄 작전에 참가하지도 못했어.’

그렇다면 남은 인물은 이산 한 명뿐.

한수호는 확인을 위해 서둘러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지평학, 진무현과 함께 게이트로 가보니 그곳은 난리도 아니었다.

참관 수업을 위해 이곳을 찾았던 학생들 10명이 위험에 처한 특무부 요원들을 구하겠다고 무턱대고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당연했다.

국수대 팀장인 이윤철은 진무현을 보자마자 다급히 말했다.

“현 요원! 방금 비돈귀살 부부가 이끄는 작전팀과 서령에서 보낸 특수보안팀 모두 게이트에 진입했다.”

“벌써요?”

“1급 게이트에 학생들만 들어갔기 때문에,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큰일이네요. 저희는 어떡하죠?”

“우리도 진입할 준비를 마쳤다. 거기 두 분은 어찌할 겁니까?”

이윤철이 한수호와 지평학에게 물었다.

특히 지평학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굉장히 좋지 못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학생들을 이런 곳에 데려온 내 잘못이오. 나도 함께 진입해 내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겠소.”

지평학이 무거운 얼굴로 대답하자 이윤철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이미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평학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기에 별말 없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좀 있으면 특무부하고 정의국, 마공가문에서도 마공사들이 도착한다면서요? 그들까지 무턱대고 게이트에 들어오지 못하게 누군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한수호의 말에 이윤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이 이곳에 남아서 상황을 설명해 주게.”

“제가요? 전 저 안에 꼭 들어가야 하는데요.”

“어허.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고? 학생 친구들을 구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 될 것이야. 나는 또 다른 짐을 더 지고 갈 생각은 없네만.”

이윤철은 한수호가 예전에 도움을 받은 그 마스크 사내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하는 모양.

이에 진무현은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당황해했다.

그때, 한수호가 씨익 웃으며 후드티의 칼라를 변경하고 고니가 변형하여 만든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살짝 목소리를 변조해 입을 열었다.

“접니다, 팀장님.”

한수호는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밝혀버렸다.

이곳에 남은 인물이라고 해봐야 국수대 요원 네 명에 지평학 한 명이 다였으니까.

나머지는 죄다 주둔부대 병사들이었다.

“어? 그때 그 은인…?”

“그분 정체가 하, 학생이었다고?”

국수대 요원 임향기와 최민우가 한수호를 보고 경악했다.

그건 이윤철도 마찬가지.

반쯤 입을 벌린 채, 몇 초간 정지한 듯 아무 말도 없는 이윤철.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그는 곧바로 진무현을 노려봤다.

“현 요원. 넌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한테까지 비밀로 했던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몰랐어요. 그냥 혹시 동일 인물이 아닐까 의심 정도만 했던 거라고요.”

“지금 현 요원 표정은 하나도 놀란 것 같지 않은데? 미리 알고 있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평온할 수가 있나?”

“우, 우와! 엄청 놀랐네! 장태산, 네가 그때 그 은인이었…구나? 정말 꿈에도 몰랐….”

“발연기 그만해라. 보는 내가 다 쏠린다.”

한수호의 일침으로 진무현의 발연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이곳엔 교수님이 남아주시죠.”

“내가? 아니다. 이번 일은 꼭 내 손으로 마무리 짓겠다. 학생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것도 내 일이고.”

“마무리를 짓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이곳에 남았다가 다른 요원들이 도착하면 정확하게 솎아내서 그들을 이끌고 와달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알리고, 정예 인원을 선별해 지원을 와줄 사람은 교수님뿐입니다.”

“끄응….”

지평학은 답답한 신음을 흘렸다.

반박을 하고 싶지만, 누가 봐도 한수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후…. 알았다.”

“친구들이 밖으로 나오면 들어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폐쇄 작전은 제가 마무리 지을 거예요.”

“가능하겠느냐?”

“예전엔 실패했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그땐 제가 없었으니까요.”

회귀 전에도 땅끝마을 게이트 폐쇄 작전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워낙 조용하게 진행된 작전이어서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 작전은 대한맹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정도로 완벽하게 망했다.

총 6명의 궁급 마공사에 18명의 진급 마공사로 이루어진 작전팀은 단 두 명의 생존자만 남기고 전원 사망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게이트 안에 전술 핵무기를 던져 넣어 폭발시켰고, 게이트를 강제로 폐쇄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이 일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한수호는 특무부의 지휘 요원이었던 김재우 덕분에 이런 비밀을 알 수 있었다.

‘그때도 이프리트의 간섭이 있었던 거였어.’

방식은 달랐겠지만, 분명 이프리트가 작전에 관여했고 게이트 폭발이라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이 분명했다.

‘나스타샤를 만나서 정확히 물어봐야겠군.’

한수호가 물어보고 싶은 건 한 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13년 전에 이뤄진 첫 번째 작전에 13년 뒤의 오늘을 위해 점프석 용 좌표 표시기를 들고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준비 됐습…아니, 됐다. 후…. 이것도 아닌가? 젠장. 어렵군.”

이윤철은 한수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헷갈렸다.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긴 한데, 실제 나이가 열아홉이라는 걸 알았으니 존대를 하기도, 그렇다고 반말로 대하기도 어려웠다.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오, 그럼 다행이군. 아무튼, 게이트 진입 준비가 끝났으니 우리도 움직이자고.”

“네. 갑시다.”

한수호를 포함한 총 다섯 명은 나란히 게이트 앞에 섰다.

30명이 넘는 마공사들을 꿀꺽 삼켜버린 게이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푸른 물결을 일렁이고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의 무사 귀환이다. 그 임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최대한 전투를 피한다. 다들 이해했지?”

이윤철이 팀장다운 리더쉽을 발휘했다.

한수호까지 자연스럽게 팀원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과연 베테랑답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적은 몬스터뿐이겠죠?”

진무현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최민우 요원이 질문을 던지자 이윤철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러니 한번 손을 쓰기로 했으면 절대 사정을 봐주지 마라.”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한수호가 이윤철의 말에 토를 달았다.

다들 한수호에게 시선을 돌려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게이트 안에서 대량 학살을 노리는 세력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생존자를 최소화시켜서 게이트를 강제로 폭파하려 들 것이고요.”

“게이트를 강제로 폭발시켜?”

“생존자를 최소화시킨다는 건…. 우릴 다 죽이겠단 뜻이야?”

임향기와 최민우가 놀라며 묻자 한수호는 힘주어 대답했다.

“네.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그 말 그대로입니다.”

“학생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이번엔 이윤철의 질문.

한수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게는 특별한 감이 존재해요. 여러분들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감 덕분입니다. 그때와 똑같은 감이 지금도 느껴지고 있고요.”

회귀자로서 미래 지식을 ‘특별한 감’으로 설명한 한수호.

그 말에 국수대 요원들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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