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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13화 (313/375)

313화

10년 전, 지리산의 어느 동굴 안.

임시로 지어진 막사 안에서 방태식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두 아이를 한참이나 내려다봤다.

“하아. 어린 나이에 죽는 게 아까워 구해 내긴 했다만, 이제 어쩐다? 넌 내가 이 두 아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방태식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큰 덩치의 사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 사내는 5년 전, 3급 게이트 폐쇄 작전에 나섰다가 대형 몬스터에게 당해 몸통이 찢겨나가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진급 마공사였다.

당시 방태식은 우연히 죽어가는 마공사를 발견했고, 그의 몸에 자신의 특성을 사용하여 궁급에 이르는 강력한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냈다.

방태식은 오늘 그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두 불쌍한 아이를 죽음에서 구출했지만, 막상 구해 놓고 보니 뒷일이 걱정이었다.

“오늘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방태식은 황도13궁 중 하나인 인마궁의 궁주였고, 원래는 극우파에 속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같은 극우파에 속한 강지훈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이곳을 찾아오는 우를 범했다.

강지훈은 말했다.

며칠 뒤, 지리산에서 황도의 극좌파 인물들이 한 가족을 상대로 끔찍한 살인을 일으킬 거라고.

그러니 그곳에 가면 실험체로 쓸 시체를 여러 구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솔깃한 언질을 해주었던 것.

게다가 그 시체 중에는 10살 좌우의 어린아이도 있을 거라는 말도 해줬다.

방태식은 이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방태식이 비록 산 사람을 잡아다가 실험하는 악질은 아니었지만, 시체를 훔치는 정도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차가운 심성을 지니고 있었다.

방태식에게 누가 누굴 죽이고, 왜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구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어린아이들 시체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고, 그걸 자신이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지리산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지리산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극좌파의 목표가 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철형과 그의 가족이었다.

비록 방태식은 한철형과 큰 접점이 없었지만, 그가 무척이나 올곧은 마공사이며, 아내 이태희와 함께 시민들을 몬스터에게서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멀리서 그런 한철형이 죽어가는 걸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차마 앞으로 나설 수 없었던 방태식.

그러나 한철형의 두 자식까지 죽이려는 가면인들을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안드로이드를 소환해 구출했던 것이다.

다행히 안드로이드의 정체를 들키진 않았지만, 앞으로 이 두 아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사자궁의 궁주인 강지훈은 방태식이 지리산에 왔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을 테고, 극좌파에게 그 정보를 흘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친구도 팔아먹을 인물이라는 게 방태식이 본 강지훈이었으니까.

방태식이 아는 강지훈은 박쥐와 같은 자였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철저히 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극우파 궁주들에게도 절대 진심을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인물이었다.

황도13궁의 극우파 수장인 혈마 신유는 박새한이 배신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지만, 방태식은 박새한보다 오히려 강지훈이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런 걱정에 휩싸여 있던 방태식은 결국 특단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구했으니 적어도 앞으로의 삶 정도는 내가 책임져 주는 게 맞겠지. 하지만 옛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기엔 이 어린 녀석들의 미래가 너무도 불쌍하구나.’

방태식은 한철형이 죽고, 이태희와 갓난아기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까지 목격했다.

한순간에 부모와 동생을 잃은 이 두 아이가 과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던 방태식.

그의 결정은 두 아이의 기억을 지워 모든 것을 잊은 채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태식은 특성을 사용해 기억을 조작했다.

그리고 다리가 잘린 한성찬에겐 기계 다리를 달아주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데리고 지리산을 빠져나간 뒤, 방태식은 한성찬의 얼굴까지 성형시킨 뒤 일패검 권현태의 아들로 둔갑시켰다.

우연하게도 그 시점에 권현태의 아들 권열은 희귀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결국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방태식은 기회를 보고 있다가 몰래 권열과 한성찬을 바꿔치기했다.

특성을 이용해 권열의 기억까지 훔쳐내 한성찬에게 주입시켰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권현태는 아들이 희귀병을 이겨내고 살아난 것에 매우 기뻐하였고,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었다.

한성찬 다음은 한설아였다.

방태식은 한설아의 기억만 지운 채, 귀부암왕 장현오의 양녀로 살아가게끔 상황을 만들었다.

수년 전, 장현오는 아내와 딸이 있었음에도 게이트를 찾아다니며 몬스터 사냥에만 열을 올렸다.

그러다 가족이 사는 곳 근처에서 게이트가 열렸고,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게 되면서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그 이후 반쯤 미치광이처럼 살게 된 귀부암왕 장현오.

그런 장현오에게 한설아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장현오는 아주 짧은 인연이 있었던 방태식의 도움으로 한설아를 딸로 입양하게 되었고, 장한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한성찬과 한설아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 방태식은 강지훈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면서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 * *

주마등처럼 스쳐 간 옛 기억들.

방태식은 한성찬과 한설아의 이름을 들은 순간, 눈앞의 장태산이라는 학생이 10년 전 지리산에서 실종된 한수호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 그럼 설마 네가…?”

“방 노사의 생각이 맞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한철형의 아들, 한수호요.”

지금껏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구천승이 한마디 꺼냈다.

그 말에 방태식은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내가 한 게 아니네. 그날 난 그저 실험체를 얻을 생각으로….”

방태식은 한수호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설명했다.

한수호는 방태식의 말을 들으며 복잡한 감정을 내보이다가 마지막엔 긴 한숨을 내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방태식의 말을 직접 듣게 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방태식은 한성찬과 한설아를 죽음의 위기 속에서 구해준 은인이기도 하지만, 두 어린아이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게 만드는 죄악을 범했다.

‘형과 동생이 살아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하자.’

한수호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눈을 떴다.

“방 노사님. 제 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말만, 말만 하게! 뭐든지 들어주겠다니까?”

“아까 말씀드린 내용과 동일합니다. 한성찬, 한설아. 두 사람의 기억을 되돌려주십시오.”

한수호의 말에 방태식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 모습만 봐도 기억을 되돌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두 사람의 기억을 되돌릴 가능성은 0.1%도 되지 않네.”

역시나 회의적인 대답.

이어지는 설명은 한수호로서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방태식의 특성인 생체 조작의 여러 가지 효과 중 하나인 기억 조작.

이 기억 조작은 단순히 기억을 봉인하거나 수정하는 게 아니라 아예 이전 기억을 들어내고,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옛 기억을 되찾는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뿐이며, 오히려 한 사람의 몸에 생체 조작을 두 번이나 행함으로 인해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현재로서는…. 없다고 보네.”

“그럼 좋습니다. 부탁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죠.”

“무언가? 기억을 되찾아 달라는 것만 아니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네.”

“방 노사님의 특성을 제게 주십시오.”

“…. 뭐라고?”

한수호가 생각해낸 차선책은 방태식의 생체 조작 특성을 인챈트 스톤으로 받아내서 자신이 직접 마나 회로를 분석하여 한성찬과 한설아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었다.

이것도 사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마나 회로만 분석해 낼 수 있다면 아무런 후유증 없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생체 조작 특성을 새겨 넣어주면 됩니다.”

한수호가 내민 것은 보랏빛을 띄고 있는 야구공만 한 인챈트 스톤이었다.

그걸 받아든 방태식은 얼빠진 표정으로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인챈트 스톤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물건이 있다니…. 대체 이 귀한 걸 어디서 얻은 것인가?”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거기에 특성을 새겨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수호는 드물게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족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한수호의 반응은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해, 해야지. 당연히 해주어야지.”

방태식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철저한 을이었다.

대한맹과 특무부의 집요한 추격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한철형의 죽음을 면전에서 지켜보고도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한성찬과 한설아의 기억을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만약 자신이 한성찬, 한설아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한수호의 손에 팔다리 하나쯤 잘려 나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

방태식은 곧바로 인챈트 스톤을 쥐고 특성을 새겨넣었다.

그런데 특성을 새겨넣는 과정에서 특이한 문구가 보였다.

“적합도가 26%라는데, 이건 뭔가?”

아쉽게도 방태식의 특성 적합도가 무척이나 낮았다.

26%면 상당히 크게 다운그레이드된 특성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냥 효율 같은 겁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한수호는 자세한 설명은 건너뛰고 방태식이 특성을 새겨넣은 특성석을 돌려받았다.

특성석에는 방태식의 특성인 생체 조작과 유사하지만, 효과는 크게 떨어질 게 분명한 특성이 새겨져 있었다.

특성의 이름은 ‘정신 조작’.

뭔가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자세한 효과는 직접 특성을 흡수해 봐야 확인이 가능했다.

한수호는 바로 특성석을 흡수했다.

촤아아아아아

특성석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띠처럼 떠오르며 한수호의 심장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흡수를 완료한 한수호는 빠르게 새로 얻은 특성의 정보를 훑었다.

[특성: 정신 조작]

-마나력 1,000을 소모하여 상대의 정신에 변형을 가할 수 있습니다.

-기억 조작, 감정 조정, 호감도 조정

-쿨타임: 24시간

역시나 크게 대단할 게 없는 조악한 특성.

하지만 중요한 게 있었다.

이 특성으로 상대의 기억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제 이 특성의 마나 회로를 분석하기만 하면 한성찬과 한설아의 기억을 되찾아 주는 것도 불가능한 게 아니리라.

“어떻게…. 내 특성이 좀 도움이 되겠나?”

방태식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약속대로 방 노사님의 수배는 내일까지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주일 내로 제가 말씀드린 장소로 찾아가세요. 그곳엔 미리 말을 해둘 테니까요.”

“오, 그 말이 정말인가! 너무 고맙네, 너무 고마워! 뇌왕께도 감사드립니다. 뇌왕이 이 자리를 주선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방태식은 정말로 고마워하는 얼굴이었고, 한울뇌왕 구천승에게도 함께 감사를 표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이틀은 수고를 좀 해주셔야 할 겁니다.”

“이틀이 뭔가! 열흘도 수고할 수 있네!”

“그럼 다행이고요.”

한수호가 엷게 웃으며 손짓하자 주변을 차단하고 있던 국수대의 이윤철 요원이 다가왔다.

“이분은 국수대의 이윤철 요원이십니다. 황도13궁에 대해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하시니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리죠.”

“반갑습니다. 이윤철입니다.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이윤철이 정중하게 동행을 요청했고, 방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아는 건 전부 말씀드리리다.”

그렇게 이윤철과 방태식이 카페를 떠났다.

다른 국수대 요원들도 한수호와 구천승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한 뒤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이제 어쩔 것이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게이트 중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죄다 네 영역에 다 처넣어뒀으니 한숨 좀 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곧 1월입니다. 한남동에 게이트가 열릴 때가 거의 다 됐어요. 거기서 얻어야 할 물건이 있으니 미리 가서 기다려야죠.”

한수호는 2052년 1월 14일에 열릴 한남동 게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등장하게 될 특성, 약탈[3]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럼 이제 서울로 가야겠구나.”

“네. 가서 기억을 되찾아 줘야 할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럼 난 네 영역에 들어가 좀 쉬고 있으마. 일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고.”

“스승님. 제 전투 영역은 휴양지가 아닌데요? 47개나 되는 게이트가 모여있는 위험지역이라고요!”

한수호가 눈을 얇게 뜨며 꺼낸 말에 구천승이 히죽 웃어 보였다.

“야, 이 녀석아. 그럼 넌 엄마하고 여동생을 그런 위험지역에 데려다 놨다는 소리냐?”

“그야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정성 들여 만들어 놓은 집이 그곳에 있으니까…. 게다가 제가 전투 영역에 없으면 게이트 입구가 자동으로 동작을 멈추니까 위험할 것도 없고요.”

“히야, 이 녀석 봐라? 바로 앞뒤 말이 바뀌네? 네 속내를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내가 네 영역에 가 있으면, 네 엄마한테 음식 해 달라고 괴롭힐까 봐 그러지?”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적당히 부려 먹어요. 안 그래도 고생만 하셨는데 이젠 편히 지내셨으면 하는 게 자식 된 도리인 거죠.”

한수호는 머리를 긁어대며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구천승도 장난기를 지우고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엄마가 그러더구나. 집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게 그 어떤 것보다 행복하다고.”

가슴을 울리는 구천승의 말에 한수호는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이태희와 동생 한별이를 전투 영역으로 데리고 온 지도 어언 석 달.

그동안 한수호는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매일 같이 먹을 수 있었고, 무려 27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동생에게 오빠 역할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젠 그 행복한 삶 속에 형 한성찬과 쌍둥이 동생 한설아까지 포함시키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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