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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14화 (314/375)

314화

“그러니까, 황도13궁의 규모가 지금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말씀이시죠?”

이윤철은 밝은 등불 아래에서 방태식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묻고 그 답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국수대의 취조실.

말이 취조실이지 방태식과 이윤철이 있는 곳은 있을 건 다 있는 아늑한 장소였다.

“얼마 전, 적상산에서 벌어진 그 흉험한 전투에 대해 이미 다 말하지 않았나?

방태식은 적상산 전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구천승과 한수호가 황도13궁의 흉적들을 마주하여 어떻게 싸웠는지 그 누구보다 자세히 안다.

그날 황도의 궁주가 셋이나 죽었고, 황도의 수뇌부에 속하는 강자들도 여러 명 목숨을 잃었다.

마갈궁의 궁주 이문종과 쌍자궁의 궁주이자 사왕오패의 한 명인 오패편 윤관호, 그리고 처녀궁의 궁주 지소연이 죽었다.

황도에 초청되어 많은 도움을 주던 당채룡과 그를 불러들이는 데 힘을 쓴 박혜리도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건 거해궁의 궁주 문천득과 보병궁의 박새한, 천갈궁의 오희창 정도였다.

“아니, 그러니까요. 방 노사를 제외하면 황도13궁의 궁주는 12명이고, 궁주는 아니지만 수뇌부에 있는 인물이 또 다섯이나 더 있다면서요? 적상산에서 궁주 셋이 죽었으니 아직 9명이나 남아 있는데 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표현을 쓰냐 이걸 묻고 있는 거잖습니까?”

이윤철이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묻자 방태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 국수대 요원의 팀장이라면서?”

“맞습니다. 그냥 요원 아니고, 특별 요원입니다만.”

“그런데, 왜 이리 모르는 게 많아? 정의국 국장 백진성은 왜 빼? 그자가 쌍어궁 궁주라는 거 몰라? 사자궁 궁주 강지훈은? 백양궁 궁주가 이패궁 박윤주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냐고?”

“….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윤철이 뜨악한 얼굴로 방태식을 바라봤다.

백진성이 쌍어궁 궁주라는 건 특무부 본부장 유대룡을 통해 전해 들었지만, 다른 내용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 이런. 아직 모르고 있었구만. 난 또 뇌왕께서 그 내용들을 다 말해준 줄 알았지 뭔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윤철의 태도가 무척이나 진지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강지훈과 박윤주까지 황도13궁의 궁주라는 사실은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대사건이었다.

사왕오패 중에서도 정의로움과 청렴결백함으로 유명한 이패궁 박윤주와 삼패창 강지훈이 황도의 궁주였다니.

방태식은 이윤철의 경악한 표정을 나름 즐기면서 자신이 아는 정보를 하나하나 풀어내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황도13궁의 구조와 역사, 그들이 행한 일들에 대한 설명을 다 듣게 된 이윤철.

그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입까지 반쯤 벌리고 있었다.

“특무부 해외 본부장인 최부선이 금우궁 궁주라는 건 이 팀장 혼자만 알고 있게나. 사실 최부선은 황도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야. 오히려 황도가 어긋난 길을 걷지 못하게 제어해 주는 사람이지. 그건 백양궁의 박윤주도 마찬가지고.”

“그, 그럼 사견궁 궁주의 정체만 모르는 거네요?”

“그렇지. 사견궁 궁주는 베일에 쌓인 인물이야. 나조차도 본 적이 없다니까? 아마도 그자가 이프리트의 최종 보스일 거라는 게 내 추측일세.”

이 이야기들은 이미 한수호와 구천승에게도 다 해준 내용이었다.

이윤철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한수호나 구천승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내용이라 ‘흠, 그렇군.’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는 게 다를 뿐.

“그나마 사왕의 영웅들은 황도에 속해 있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사왕이 달리 사왕이겠는가? 그분들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마음의 심지 또한 곧고 단단하기에 사왕이라 불리는 것이네.”

“아무튼, 이프리트는 알면 알수록 엄청난 조직이군요. 그들이 황도13궁에 새한교까지 아우르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황도도 다 같은 황도가 아니지. 천칭궁의 신유를 비롯해 백양궁의 박윤주, 금우궁의 최부선 같은 인물들은 절대 이프리트와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있다네. 그들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진작에 이프리트의 손아귀에 완전히 장악되었을 것이네.”

방태식은 이프리트와 다른 길을 걷는 황도의 궁주들 이름에 자신의 이름은 쏙 뺐다.

그 또한 이프리트와는 전혀 다른 뜻을 좇는 극우파에 속해 있었지만, 앞서 말한 세 사람에 비한다면 세상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었기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

그 마음을 알기에 이윤철도 더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협조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자궁의 강지훈에 대한 건 세상에 빨리 알리는 편이 낫겠군요.”

“아니, 지금은 시기상조이네. 뇌왕께서도 말씀하셨지. 지금 강지훈을 건드려봐야 놈들이 일을 벌일 시기를 앞당기는 상황밖에 안 된다고. 우선은 국수대만이라도 이프리트의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했네.”

“국수대에도 이프리트의 손이 닿고 있다고요? 설마 노희경 과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국수대의 안방마님이자 정보과장 자리를 맡은 노희경.

강지훈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온 이상, 의심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3개월 전부터 한수호와 구천승이 별도의 만남을 요구했음에도 노희경은 지금까지 회피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게이트 발생 현상으로 너무 바쁘다는 이유였지만, 잠시도 짬을 낼 수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그녀는 강지훈에게 많은 정보를 넘겨주고 있다네.”

방태식의 말에 이윤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노희경 과장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뇌왕께서 직접 말씀한 건데도 말인가?”

“그렇지만….”

이윤철이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취조실 구석에 달린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때였다.

치이익-

카메라와 함께 설치된 스피커에서 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눈치 볼 거 없어요, 이 팀장님. 에휴. 일부러는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만남을 피했더니 결국 이런 의심을 받게 되네요. 뇌왕 어르신한테 연락 가능하죠? 바로 전화 돌려요. 편한 시간에 만나자고. 장태산인가하는 엄청난 학생도 함께 말이에요.

음성의 주인은 바로 노희경이었다.

국수대 정보과장이자 이윤철의 연인이기도 한 노희경.

그녀는 지금껏 방태식과 이윤철이 나눈 대화를 옆 방에서 모두 듣고 있었던 것이다.

* *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해가 도래했다.

2052년 1월 3일.

지난해 9월에 서울을 떠났던 한수호가 3개월 만에 다시 서울에 입성한 날이었다.

서울은 무척이나 활기찼다.

무사히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기쁨과 게이트 소멸자가 등장하면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게이트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희소식이 겹쳤기 때문.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한수호는 가족과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중이라 새해의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차라리 몬스터나 발자크와의 전투였다면 이처럼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결을 봐야 할 상대가 형과 동생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하. 어렵네, 정말.’

한수호는 칸막이가 쳐진 카페의 한 곳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권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권열은 한수호의 연락을 받자마자 흔쾌히 이곳에 나와주었다.

그런 권열에게 한수호는 10년 전 지리산에 벌어진 한 가족의 참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엔 권열도 한수호가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해주는 건가 싶어 의아해하다가, 한성찬이라는 아이가 강제로 기억을 잃고 권현태의 아들이 되었다는 대목에서 경악하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한수호의 이야긴 너무 자세했다.

혼란에 빠진 권열.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엔 지리산에서의 사건도, 가족과의 추억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한수호는 권열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기억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잠시만 자신에게 몸을 맡겨달라고.

하지만,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면 조용히 이곳을 떠나달라고 말이다.

권열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수호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 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직후가 바로 지금이었다.

한수호는 권열의 혈도를 짚어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권열이 맨정신인 상태에서 정신 조작 특성을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했으니까.

한숨을 길게 내쉰 한수호는 권열의 손목을 잡은 뒤, 바로 전투 영역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주변의 방해가 없는 전투영역에서 일을 진행하는 게 훨씬 안전했기 때문.

진입차단벽으로 들어서자마자 권열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권열을 상대로 하여 정신조작 특성을 발동시켰다.

지난 며칠 동안 정신조작 특성의 마나 회로를 분석했던 한수호.

그 덕에 이 특성으로 기억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그 방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수호가 알아낸 제어법은 단순히 기억에 변형을 가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머릿속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기억을 자극하여 지워진 부분들까지 되살려내는 고도로 정밀한 기억 치료법이었다.

권열의 머리에 손을 얹은 상태로 정신조작 특성을 사용하자 그의 모든 기억이 수많은 단편적인 영상이 되어 눈앞에 떠올랐다.

영상의 조각들은 대충 봐도 수만 개는 될 것 같았다.

그걸 일일이 확인하는 건 시간 낭비였고, 권열에게도 이로울 게 없었다.

한수호는 눈앞에 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두 무시하고 아래로, 더욱 깊은 기억의 바닥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수많은 영상의 조각이 옆으로 빠르게 스쳐 갔다.

얼핏 보이는 영상 속 권열은 점점 나이가 어려지고 있었다.

2년 전의 권열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5년 전의 권열이 등장했다.

8년 전 15살의 나이로 아버지 권현태에게 수련을 받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10년 전 병상에 누워있는 13살의 권열이 영상 속에 나타났다.

그 영상이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아래로는 더 이상 기억의 조각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같은 깊이에 있는 다른 영상들이 상당히 많았다.

더욱 어린 나이의 권열이 겪어온 기억들.

하지만 그 영상들은 좀 전까지 보아온 영상들과는 달리 굉장히 흐릿했다.

마치 8K 해상도로 보던 영상이 갑자기 2K로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방태식이 강제로 주입한 진짜 권열의 기억인가 보구나.’

한수호는 흐릿한 영상의 조각들이 주입된 기억이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한수호는 밑바닥에 있는 기억의 조각 중, 선명한 영상들만을 골랐다.

그리고 그 영상이 지니고 있는 마나 회로를 찾아내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기억의 마나 회로를 건드릴 때마다 영상에 노이즈 현상이 일어났다.

파직. 지지직.

자칫 잘못하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기억까지 완전히 파괴되는 수가 있어서 한수호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나 회로를 건드리던 어느 순간이었다.

찌잉! 우우우웅.

고장 난 발전기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르르르르르르

더욱 깊은 곳에서 영상의 조각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영상들은 다름 아닌 한성찬으로서의 기억들이었다.

* * *

“수호야.”

권열, 아니 이제는 한성찬이라고 불러야 할 스물세 살의 청년이 한수호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봤다.

“기억…. 돌아온 거야?”

한수호의 몸은 바짝 긴장해 있었다.

권열의 기억 밑바닥에서 간신히 한성찬으로서의 기억을 찾아내 끄집어내긴 했지만, 정말 한성찬의 기억을 되찾은 게 맞는지 걱정이었다.

“자식. 네가 6살 때까지도 내 침대에서 자다가 실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까지 말해야 믿겠냐?”

“…. 어?”

한수호의 얼굴이 단숨에 벌게졌다.

이건 형 한성찬과 한수호 둘만의 비밀이었다.

당시 둘 모두 각자의 방이 있었지만, 한성찬을 워낙에 따랐던 한수호는 부모님 몰래 형 방에 숨어 들어가 함께 잠들곤 했었다.

그러다 실수로 쉬를 한 적이 몇 번 있었고, 한성찬은 이를 숨겨줬었다.

“오랜만이다, 꼬맹이.”

한성찬이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10년 동안이나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게 되면서 아버지 한철형의 처절한 죽음 또한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

“형. 돌아와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한수호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한성찬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런 한수호를 한성찬이 가만히 안아주었다.

어렸을 때는 품에 쏙 안길 정도로 작은 아이였는데, 지금은 한성찬에 비해서도 체격이 전혀 작지 않았다.

10년의 간극 속에서 훌쩍 커버린 동생을 꼭 안아주던 한성찬은 한참 만에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엄마는? 엄마랑 별이는 어떻게 된 거냐?”

옛 기억을 되찾았다고 10년간 권열로 살아온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다.

때문에 한성찬도 장한설이 한설아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남은 가족 중에 생존 여부를 모르는 건 어머니 이태희와 막냇동생 한별이뿐.

“나랑 같이 가. 가보면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거야.”

한수호는 눈물을 훔치고 진입차단벽의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통로 너머에 있는 집에서 자신과 형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 한수호의 뒤를 따르는 한성찬은 이 이상한 공간이 어딘지를 몰라 낯설어했다.

조금 어정쩡한 자세로 주변을 두리번대는 한성찬.

그 모습에 한수호가 괜히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한마디 했다.

“여긴 나만의 영역이야. 나를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고, 나 없이는 나갈 수도 없는.”

“…. 아, 그래? 그건 좀 대단한걸?”

한수호의 말에 한성찬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한 당사자가 한수호였기에 한성찬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험 점수 잘 받아온 동생을 축하해 주는 형의 모습이었다.

한수호는 언제나처럼 자신을 철석같이 믿어주는 형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을 그려 주었다.

“그때랑 똑같아서 좋네. 변한 게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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