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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20화 (320/375)

320화

한수호는 10분의 1로 느려진 세상을 달리고 있었다.

모든 마나가 사라진 지금, 한수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정신 수치를 써서 매초마다 2천씩, 9초 동안 총 1만8천의 마나를 회복한 한수호.

정신 수치가 0이 되면 정신이 붕괴될 위험이 있기에 수치 1은 반드시 남겨두어야 했다.

한수호는 가장 먼저 가까이에 있는 노희경과 구천승, 그리고 이윤철의 손을 잡아 전투영역으로 이동시켰다.

그들을 진입차단벽에 옮긴 후 바로 현실로 돌아온 한수호는 매트릭스의 시야로 국수대 본부를 빠르게 훑어 진무현과 임향기, 최민우 요원을 찾아냈다.

다행스럽게도 세 명은 한자리에 있었고, 그들까지 찾아 전투영역으로 옮기는 데는 현실 시간으로 8초면 충분했다.

매트릭스 시야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력도, 초감각 수치도 필요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

한수호는 곧장 국수대 본부의 심장인 ‘시크릿존’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도중, 눈에 띄는 국수대 요원들은 모조리 전투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매트릭스 시야로 살펴본 결과, 현재 국수대 본부에 머무르고 있는 요원의 숫자는 217명.

하지만 시크릿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수호가 만날 수 있는 요원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217명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폭발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소닉붐을 여기서 사용했다간, 폭발이 있기도 전에 국수대 본부가 무너질 수 있었다.

노미란이 머물고 있는 시크릿존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이미 17초의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은 초감각을 쓸 수 없었고, 한수호는 현실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00:07]

남은 시간은 단, 7초.

시크릿존을 지키고 있는 요원 넷을 전투 영역으로 옮겨놓고 문을 부수며 뛰쳐 들어갔을 때,

[00:04]

다시 3초가 흘렀다.

부서진 문 안쪽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노미란.

그녀는 한수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 앞에는 방태식이 있었다.

한수호는 두말없이 방태식의 팔을 움켜쥐었고 그 또한 전투영역으로 이동시켰다.

[00:02]

또다시 1초가 또 지났고, 2초 만이 남았다.

그때 노미란이 결연한 표정으로 뭔가의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우웅!

묵직한 울림이 울려 퍼진 순간,

‘젠장!’

한수호는 낭패감을 금치 못했다.

그의 등장에 놀란 노미란이 2초 빠르게 폭발 스위치를 작동시킨다는 변수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입술을 질끈 깨문 한수호.

그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을 각오로 최후의 초감각 1을 사용했다.

피이이이이이이잉!

또다시 귓가로 울려 퍼지는 초음파.

세상이 느려지며 초감각이 0이 된 순간 한수호는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육체한계치] : 4/10

한순간에 육체한계치가 치솟아 올랐다.

고통 내성이 95%나 되는데도 이런 고통이라니.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낸 한수호는 느려진 세상 속에서 기어코 폭발물을 찾아냈다.

노미란의 목에 걸린 자그마한 펜턴트.

그 펜던트가 여덟 조각으로 쪼개지며 찬란한 불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한수호는 펜던트를 덥썩 거머쥠과 동시에 무려 세 가지 특성을 한꺼번에 사용했다.

푸하아아아악!

가장 먼저 초인화 4배를 사용했고,

부우우우우욱!

곧바로 괴인혈 최종 단계를 발동시켰다.

[육체한계치] : 9/10

육체한계치가 극으로 치닫는 순간, 한수호가 선택한 마지막은 바로 ‘소닉붐’이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노미란이 차를 마시고 있던 국수대 본부의 심장부, 시크릿존 안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음.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한수호는 빛의 속도로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꽈앙! 꽈과과과광!

소닉붐에 스친 공간들이 마구 폭발했다.

한수호는 더 이상은 누구의 안전도 감안하지 못한 채 밖을 향해 치달았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도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국수대 본부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세상은 느려졌지만 그렇다고 폭발이 멈춰진 건 아니었으니까.

“제기라알-------!”

한수호가 손에 쥔 펜던트가 더욱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폭발을 위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부우우우우우욱!

그 모습을 본 한수호는 마지막 남은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 ‘쇼크이터’를 사용했다.

한수호의 손 위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블랙홀에 가까운 검은 구체는,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섬뜩한 소음과 함께,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대폭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폭발의 위력은 끔찍할 정도였다.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남산의 절반이 날아갔다.

1월 10일 오전 10시 5분.

남산의 하늘 위로 커다란 버섯 구름이 피어올랐다.

이날의 대폭발은 인류 멸망 시나리오의 시작일 뿐이었다.

* * *

[…. 사망자 수는 참사가 일어난 지 3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서울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남산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테러가 발생할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티비를 틀면 나오는 방송이 며칠째 똑같다.

서은채는 외출금지에 외부와 연락 금지를 당한 지난 사흘 동안 한수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녀가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한맹의 맹주인 아버지 서한광은 한수호의 생사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전해주지 않았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105명, 실종자는 24명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망자 중 96명이 국가수호대라는 비밀 조직의 마공 요원이라는 점입니다. 이 끔찍한 비극 속에서 민간인 희생자 수가 9명뿐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진희 기자. 현장에 있었던 마공 요원들 중 생존자도 꽤 된다면서요?]

[네. 이진희 기자입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마공 요원의 수는 217명이었던 것으로 공식 집계됩니다. 하지만 어느 한 마공사의 영웅적인 행동 덕분에 88명이나 되는 국가수호대의 마공 요원이 생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서은채는 뉴스 속에서 말한 영웅적인 행동을 한 마공사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한수호.

그가 아니고서는 이런 끔찍한 사고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

그사이 서은채는 갖은 노력 끝에 한수호의 친구인 백윤후와 연락이 닿았고, 그날 사고의 현장에 한수호 또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윤후 또한 끝까지 한수호의 생사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진희 기자. 대한맹과 특무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산에서 터진 폭발의 위력은 원래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강력했어야 한다고 하던데요?]

[네, 사실입니다. 이번 폭발에 사용된 것은 초소형 전술핵무기로, TNT 500톤 급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파괴력이 그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고, 희생자 수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폭발의 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건데…. 그 일을 해낸 인물이 국수대 마공 요원을 구해준 젊은 마공사와 동일 인물인가요? 아니면 대체 누가, 어떤 마공사가 있어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걸까요?]

[정부에서도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사고 조사에 참여한 마공사가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마공사라고 해도 그 폭발의 중심에 휘말렸다면 절대 살아날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기자의 표정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마치 많은 생명을 구한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듯 깊은 한숨까지 내쉬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니 다 함께 그 영웅적인 마공사를 살아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서은채는 이쯤에서 티비를 껐다.

공식적인 방송을 통해서는 한수호의 소식을 절대 들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다시 백윤후에게 연락을 취했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두 번의 벨이 울렸을 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서은채?

“네. 또 저예요. 이번엔 회피하지 말고 대답 좀 해줘요.”

-이미 말했잖냐. 수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고.

“아니요. 오빠는 알아요. 며칠 동안 뉴스란 뉴스는 죄다 살펴봤는데, 그 어디에서도 추가적인 생존자를 찾았다는 말은 없었어요. 오빠가 그랬죠? 그 엄청난 대폭발 속에서 112명이나 살아남았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그런데 뉴스에서 말한 생존자는 88명이에요. 24명은 어디에서 나온 숫자죠?”

-그, 그야 실종자 24명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일이니까….

백윤후의 음성에서는 당황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거짓말 말아요. 실종자 24명하고 태산 오빠 같이 있는 거죠?”

-그건 아니야. 같이 있을 리가….

백윤후가 어버버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휴대폰을 탁하고 가로채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람을 보낼 테니, 미행 당하지 말고 조용히 이곳으로 오거라.

휴대폰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서한광이었다.

* * *

삐비- 삑. 삐비- 삑.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는 수많은 의료 장비에 연결되어 간신히 호흡하고 있는 미이라 같은 사람이 있었다.

서은채는 병실 안에서 붕대를 온몸에 휘감은 사람을 본 순간, 그가 바로 한수호라는 걸 직감했다.

두 팔은 팔뚝 아래로 보이지 않았고, 오른발도 허벅지 밑이 없었다.

왼발 하나만 남긴 채 피와 고름에 절은 붕대에 칭칭 감겨있는 한수호의 모습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손으로 틀어막은 서은채는 곧바로 눈물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장태산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아난 것도 아니지만.”

서한광이 서은채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한 말이었다.

“흐윽…. 대체 어떤 상태인데요? 살아날 수 있는 거죠? 치료 특성 가진 분들 많이 있잖아요. 그분들 불러서 치료해 주면 안 되요? 왜…. 왜 오빠가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저렇게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죽고도 남았을 상처야.”

“하윤 언니! 이하윤 언니를 불러줘요. 그 언니 특성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요!”

서은채는 이하윤에게 회생이라는 특성이 있으며 그 특성이 지닌 효과가 무엇인지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어룡도에서 한수호가 이태희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눌 때, 이하윤에 대한 내용도 있었기에 알 수 있었던 것.

“이하윤을 비롯해, 그 누구한테도 연락하는 건 안 돼. 태산이가 나한테 분명 그렇게 말했거든. 안 그러면 날 죽여버리겠다던가? 하….”

병실 한쪽 의자에 앉아 있던 백윤후가 서은채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누구한테도 연락하면 안 된다고요? 아니, 그보다 태산 오빠가 저 상태인데, 윤후 오빠는 어떻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거예요?”

“태산이를 폭발 현장에서 데려온 게 나니까.”

“…네?”

서은채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해하자 백윤후가 그날 있었던 일을 천천히 설명했다.

사흘 전 아침.

한수호는 남산의 국수대 본부로 출발하기 전, 백윤후에게 전화를 걸어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강씨호왕가의 강지훈이 너무 긴 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으니 광양백가의 힘을 이용해 강지훈을 찾아 철저하게 감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백윤후는 흔쾌히 수락했고, 곧바로 강지훈의 모든 걸 추적하기 시작했다.

광양백가의 정보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정보를 캐기 시작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강지훈과 관련된 정보가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광양백가의 정보력을 좀 더 일찍 활용하지 않았던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껴질 정도.

백윤후는 그 정보 중 의심스러운 정황 몇 가지를 발견했다.

강지훈의 부인인 노미란은 원래 강지훈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 중에 있었는데, 최근 그녀가 강씨호왕가로 다시 들어가 안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그녀와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동생 노희경과의 관계가 틀어져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로 고성이 오갔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런 노미란이 갑자기 노희경의 초대를 받아 국수대 본부로 향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노미란이 국수대를 방문한 시점이 한수호가 국수대로 가는 시점과 일치했다.

이 몇 가지 사실을 토대로 백윤후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다.

그래서 국수대 본부가 있는 남산으로 향했고, 얼마 안 있다가 무시무시한 대폭발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한수호의 가슴에는 백윤후의 생명코어가 박혀 그와 동기화 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수호가 죽으면 백윤후 또한 죽게 되지만, 그 덕에 백윤후는 언제든 한수호가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폭발 직후 절반이나 무너져 내린 국수대 본부로 뛰쳐 들어간 백윤후.

누구보다도 먼저 폭발 현장으로 뛰어 들어간 백윤후는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한수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팔은 사라져 있었고, 오른 다리도 녹아내려 보이지 않았다.

배며, 가슴 모두 폭발에 휘말려 구멍이 나 있었고, 몸 곳곳이 고열에 녹아내린 상태였다.

백윤후는 급히 고급 포션을 꺼내 한수호에게 먹였다.

하지만 한수호의 상처는 포션 따위로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정신이 남아 있었던 한수호.

그는 자신을 부축한 백윤후를 바라보며 간신히 몇 마디를 남겼다.

‘내 전투영역에 국수대 생존자 24명이 더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태라 그들을 여기로 데려올 수가 없어. 그러니 아직은 그 누구한테도 나와 그들이 살아있다는 걸 알리면 안 돼.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내 가족과 스승, 그리고 서한광 맹주…뿐이고. 그분들 외엔 절대 내 소식을 알리지 마라.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끔찍한 모습을 한 채로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던 백윤후에게 한수호의 말이 이어졌다.

‘난… 난 죽지 않으니까 걱정 마라. 이틀…. 아니, 사흘만 딱 기다려. 그 안에 난 반드시 돌아…온다.’

한수호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백윤후는 그 즉시로 한수호를 데리고 광양백가의 비밀 장소로 데려가 생명 유지장치를 가동시켰고, 오직 서한광에게만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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