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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21화 (321/375)

321화

한수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눈부신 빛이 자신의 품으로 날아 들어오면서 두 팔이 뜯겨나가고, 다리 하나가 눈 녹듯 사라지는 광경은 조금도 현실성이 없었으니까.

고통도 없었다.

피륙으로 된 팔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어떻게 아무런 고통이 없을 수 있는 걸까?

‘그래, 이건 꿈이야.’

꿈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절대 꿈이 아니다.

한수호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웃음이 난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는데.

가족을 되찾고, 아버지를 죽인 복수를 하기 위해 지금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고작 이런 결말이라니.

이것이 현실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귓가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건 시뻘건 화염과 거대한 폭발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한수호는 폭발로 폐허가 된 건물의 잔해 속에서 흐릿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돌덩이가 된 무거운 몸은 전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팔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도 기적 같은 상황.

뻥 뚫린 하늘 위로 검붉은 버섯구름이 돋아나고, 그 아래의 모든 세상이 화마에 휩싸였다.

‘씨발…. 내성 수치가 높으니까 이런 게 엿 같네.’

아무 고통도, 화마에 의한 열기도 거의 느껴지지가 않으니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한수호는 꺼져가는 의식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이대로는 절대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되찾은 가족인데.

얼마나 힘들게 얻어낸 초월자의 힘인데.

아직 발자크도, 이프리트도 끝장내지 못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그동안 자신이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조차 거부하는 것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살아난다. 반드시!’

한수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부터 빠르게 체크했다.

움직일 수 없는 몸.

하지만 신체 능력치를 확인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신체외적능력] : 50/9999

[신체내적능력] : 10/999

[마나] : 420(+44)/99999

[육체한계치] : 10/10

[정신+5][감지+5][면역+4][초감각+3]

하늘도 한수호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완벽하게 날아갔던 능력치들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었다.

문제는 육체 한계치가 10을 꽉 채운 채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만큼 이번 폭발로 인한 타격이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한수호는 바로 면역 수치를 사용해 ‘상처 회복’ 특성을 사용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면역 수치는 3뿐.

하지만 그 3이라는 숫자로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되살리기엔 충분했다.

가장 먼저 심장을 보호하고, 내부 장기들의 상처를 재생시켰다.

뒤이어 머리에 생긴 큰 상처들부터 치료에 들어갔다.

느리지만 천천히 한수호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지 못한 구원자가 등장했다.

혹시라도 강지훈의 끄나풀이 이곳에 먼저 도착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낸 이는 다행스럽게도 백윤후였다.

한수호는 백윤후에게 몇 가지 사항을 당부했고, 훨씬 홀가분해진 마음이 되어 억지로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었다.

* * *

“이, 이게 대체….?”

서한광은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정신을 차린 한수호를 보고 어처구니없어했다.

서은채가 광양백가의 비밀 병실을 찾아온 뒤 4시간 정도 흘렀을 때, 놀랍게도 한수호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것만이 아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잘려 나간 팔과 다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돋아났다.

한수호에게 상처 회복 특성을 넘겨준 백윤후조차, 이 정도로 완벽하게 잘려 나간 신체를 복구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지 않은 건 서은채 한 명뿐이었다.

그녀에겐 팔다리가 다시 생겼다는 놀라움보다, 곧 죽을 사람처럼 미약하게 호흡하던 한수호가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

“오빠!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서은채는 한수호의 온몸을 살피며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이 없는지 계속 확인했다.

한수호는 그런 서은채의 머리를 슥 쓰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난 괜찮다. 윤후 녀석한테 못 들었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온다고 말했었는데.”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라고요. 난…. 난 오빠가 죽는 줄 알고…. 흐윽!”

서은채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한수호가 덮고 있는 이불 위로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서은채.

그녀는 한수호가 잠시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살짝 물러섰다.

“맹주님께 몇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서한광을 바라보는 한수호의 눈빛은 무척이나 매서웠다.

뭔가 단단한 결심을 한 것 같은 눈빛에 대한맹의 맹주 서한광조차 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뭐든 말해 보거라.”

“내일 오전 중으로 한남동에 게이트가 하나 열릴 겁니다. 그 게이트가 등장하면 저만 출입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내일 게이트가 열리는 걸 네가 어찌 알고….”

“저…. 한수호입니다.”

너무도 당당한 얼굴로 자신이 한수호라는 걸 밝히자 서한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도 한수호의 진짜 이름이 장태산이 아닌, 한수호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한수호 스스로가 장태산의 이름을 고집했기에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한수호라고 선언했다는 건 더 이상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다는 것.

게다가 죽음에서 돌아온 한수호다.

죽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상황에서 버젓이 살아온 한수호인데 그의 부탁을 어찌 허투루 들을 수 있을까.

“알았다. 준비해 두지.”

“그리고 5일 내로 대한맹 최정예 인원들을 준비해 주세요. 조만간 발자크와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겁니다.”

“최후의 전투…?”

“네. 인류가 존속하느냐, 멸망하느냐를 건 마지막 전투요.”

갑작스러운 말에 서한광과 백윤후 모두 경악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결코 근거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시점은 추가로 확인해 봐야겠지만, 길어 봐야 일주일입니다. 그 안에 발자크의 봉인이 풀립니다.”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이프리트가 봉인을 풀 열쇠라도 발견했다는 소리냐?”

서한광이 흥분하여 묻자 한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두가 봤잖아요. 남산에서 일어난 대폭발. 그 폭발로 발자크가 봉인된 봉인구의 틈새가 60%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폭발도 틈새를 벌리기 위한 이프리트의 계획이었던 거죠.”

한수호는 노희경의 기억에서 노미란에 대한 기억 외에도 그녀 조차 기억하지 못할 장면 하나를 찾아냈었다.

노희경이 강지훈을 만나 최면에 빠지게 된 날.

그날 강지훈의 옆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땅끝마을 게이트 사건 이후 모습을 감춘 우태범이었고, 다른 한 명은 무려 꽃잎 열 다섯 개가 그려진 가면을 쓴 새로운 인물이었다.

한수호는 그 가면인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 이프리트의 최고 수장이 강지훈이며, 그가 꽃잎 열 개의 가면인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꽃잎 다섯 개가 더 많은 꽃잎 열다섯 개짜리 가면인이 또 있었을 줄이야.

한수호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프리트에 속한 마공사들이 쓰는 가면에 그려진 꽃잎 개수는 지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무력의 강함에 따라 꽃잎의 개수를 스스로 늘려가는 것임을.

즉, 원래는 이프리트 수장이 쓴 가면의 꽃잎 개수가 열 개였으나 이제는 열다섯 개로 늘어났다는 의미.

그만큼 그의 무력이 크게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그걸 확인해 볼 방법이 있지.’

한수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면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한수호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한수호가 지닌 꽃잎 열두 개짜리 가면을 지금 다시 쓴다면 꽃잎의 개수가 더 늘어나게 될 테니까.

아무튼, 노희경의 기억 속에서 꽃잎 열다섯 개의 가면인은 분명 이런 말을 했었다.

‘이번 폭발로 봉인의 틈새는 80%까지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틀 내로 발자크는 봉인을 깨고 나올 수 있겠지. 그날 광화문에 악몽급 게이트가 열릴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종말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가면인은 최면에 걸린 노희경이 이들의 대화를 절대 기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크나큰 실수였다.

한수호는 지워진 기억마저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노희경이 보고 들은 장면을 기억의 잔재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노희경의 기억을 확인한 한수호.

그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폐허가 된 국수대 본부의 한 곳에서 흐릿한 게이트의 흔적을 발견했었다.

그건 국수대가 남산 본부에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특수 던전이었다.

게이트를 이동시키는 한수호의 능력에 관심이 많았던 노희경은 지난 4개월간 온갖 노력을 기울여 포탈 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 포탈 기술로 게이트를 옮기는 데 성공했고, 그 게이트를 국수대 본부로 옮겨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 게이트는 이프리트가 설계한 지독한 함정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말았다.

노미란이 가져온 폭발물은 한수호와 구천승을 완벽하게 죽음에 이르게 할 최악의 무기이면서, 게이트까지 마나폭발을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한수호는 정신을 잃기 전, 흔적만 남은 게이트의 정보를 확인했었다.

[던전의 흔적]

-잔존 포인트: 1LP

-거대한 마나폭발로 던전이 발자크에게 잡아먹혔습니다.

-발자크가 힘을 얻어 봉인의 틈새를 크게 벌리기 시작합니다.

>>틈새간격: 59.7%

>>본인의 포인트를 사용해 틈새를 다시 봉합하겠습니까? YES/NO

이것이 한수호가 마지막에 본 게이트의 흔적이었다.

이프리트의 수장은 이 폭발로 봉인의 틈새가 80%까지 벌어질 거라 예측했지만, 한수호로 인해 결과가 크게 달라졌다.

폭발의 마지막 순간, 한수호는 쇼크이터를 사용했고 그 특성이 폭발의 파괴력을 흡수하게 되면서 틈새가 예상보다 훨씬 적게 벌어지게 된 것.

하지만 그래 봐야 며칠 차이였다.

틈새 간격이 50%를 넘게 되면 발자크가 스스로 봉인을 깰 수 있게 되기 때문.

한수호가 봤을 때, 발자크가 봉인을 깨고 나오는 시점은 약 7일 후.

정확한 시점을 파악하기 위해선 노희경의 조짐 특성이 필요했다.

‘그녀를 살려두길 잘했구나.’

강지훈의 최면에 걸린 노희경을 전투 영역으로 이동시켜 두길 천만다행이었다.

“네 말대로 7일 내로 발자크가 봉인을 깨고 나온다면, 우리의 힘만으로 어찌 놈을 막을 수 있겠냐? 이프리트도 아직 처리하지 못한 마당에 발자크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서한광은 한수호의 말을 완전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저희 광양백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백윤후가 동참할 뜻을 밝히자 서한광의 얼굴에 서려있던 근심의 빛이 한결 밝아졌다.

“광양백가의 가주가 그리 말해주니 마음이 든든하구나.”

“정의국의 힘도 끌어들이고 싶지만, 거긴 황도의 악적들이 너무 깊숙히 파고들어 있어서….”

“정의국은 너무 타락했지. 백진성의 손에 놀아난 정의국은 이번 전투에 참가할 자격조차 없다.”

서한광은 지금의 정의국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엔 한수호도 동의하는 바였다.

“정의국은 그렇다 쳐도, 특무부는 다를 거다. 내가 직접 유대룡을 만나 특무부 최고 요원들의 힘을 빌리도록 해보마.”

서한광이 특무부 이야기를 꺼내자 한수호가 눈을 얇게 떴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요. 특무부는 뺍니다.”

“특무부까지 뺀다고?”

서한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마공조직 세 곳 중에서 두 곳의 힘을 빌릴 수 없으면 발자크의 발호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수상한 게 있어서요. 특무부도 믿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한수호는 이번 남산 폭발 사건을 겪으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이프리트에 강지훈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가면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둘째는 이프리트가 방태식의 특성에 버금갈 정도의 정신 조작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셋째, 게이트를 이동시킬 수 있는 포탈 기술을 국수대에 넘겨준 것 또한 이프리트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 세 번째 사실이 한수호가 특무부를 의심하는 이유였다.

왜냐면, 이 포탈 기술의 근간이 되는 ‘마나 친화도’에 대한 이론을 특무부에 넘겨준 사람이 바로 한수호였으니까.

한수호는 몇 개월 전, 특무부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기환에게 마나 친화도에 대한 이론을 알려주었고, 그 이론을 이용해 포탈 기술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 포탈 기술이란, 아크로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장치에 강제로 마나 친화도를 높이고, 그 효과를 이용해 게이트를 아공간으로 빨아들였다가 다른 장소에서 토해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한수호와 사기환, 단 두 명만이 알고 있어야 정상.

그런데 똑같은 기술이 국수대에 있었고, 그 기술로 이미 게이트 하나를 남산 본부로 옮겨 놨던 것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둘 중 하나였다.

사기환이 한수호를 배신하여 이프리트와 손을 잡았던가, 아니면 사기환도 모르는 사이에 포탈 기술이 빼돌려져서 이프리트에 넘어간 거였다.

한수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사기환은 절대 배신자가 아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사기환의 몸에 감시용 아티팩트를 부착시켜놨었고, 그 아티팩트는 사기환이 배신한 적이 없음을 계속 알려줘 왔으니까.

그렇다면 특무부 연구소의 누군가가 사기환의 연구를 빼돌렸다는 말이 된다.

그 인물은 당연히 사기환과 가까운 인물일수밖에 없다.

연구소 내에서도 특별 관리 대상인 사기환을 철저히 속여가며 접근해 포탈 기술을 훔쳐 가려면 특무부에서도 보통 인물은 아닐 터.

그런 인물이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태라면 특무부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정의국도, 특무부도 없다면 우리 힘만으로 발자크를 막아야 한다는 거구나. 뭐, 좋다. 대한맹과 우리 태극서가의 최정예 모두를 동원하면 어떡하든 되겠지.”

서한광이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며 한수호는 붕대를 풀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너무 걱정 마시죠.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분들은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다들 손 좀 빌려주겠습니까?”

한수호는 병실 안에 있는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그들의 손을 두 손으로 살짝 잡아 쥐었다.

그 순간,

푸슉

한수호를 비롯한 네 사람 모두 병실 안에서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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