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한수호는 급히 강우진의 상태를 살폈다.
[신체외적능력] : 32(-67)/999
[신체내적능력] : 1(-3)/99
[마나] : 230(-600)/9999
한 번의 공격에 능력치가 60% 이상 깎여 나갔다.
강우진의 신체외적능력치가 원래 200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80% 이상의 능력치를 빼앗겼다는 말이다.
‘방금 그놈이…?’
한수호는 섬전 같은 빠르기로 강우진을 스쳐 지나간 존재를 정확히 봤다.
터번 같은 천을 머리에 두르고, 망토로 온몸을 가리고 있던 푸른색 피부를 가진 괴이한 존재.
‘재미있는 놈이군.’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수호는 대상의 정보까지 바로 스캔해 냈다.
[약탈의 스메르]
-약탈의 신전을 관장하는 주인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 끊임없이 능력치와 특성을 갉아먹는 존재입니다.
-음속을 돌파합니다.
-함정의 달인입니다.
-히든피스: 알파 몬스터
여러모로 난감한 능력을 지닌 몬스터였다.
덩치는 크지 않지만, 움직임이 굉장히 빠르고 조금만 스쳐도 능력치를 쭉쭉 빨아가는 놈이다.
게다가 이 30층 곳곳에는 함정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한수호는 이때다 싶어 미리 꺼내놨던 특수 포션을 강우진에게 건넸다.
“우선 이걸 마셔요.”
이 특수 포션은 한수호가 약탈의 신전이 어떤 곳인지를 깨닫자마자 개조로 변형을 가한 포션이었다.
포션의 효과는 ‘손실된 능력치의 50% 원상복구’였다.
포션에 이 효과를 부여하기 위해 80만 LP를 소모했지만, 아까울 건 없었다.
이 게이트의 알파 몬스터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그에 준하는, 어쩌면 그 이상의 포인트를 얻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 이건?”
“포션이요. 잃어버린 능력치들이 조금은 돌아올…. 조심!”
한수호가 말하는 도중에 또다시 스메르가 달려들었다.
이번엔 한수호가 가까이 있었던 덕분에 강우진이 다치는 일은 없었다.
대신, 한수호가 상처를 입었다.
[신체외적능력] : 800(-3200)/9999
[신체내적능력] : 60(-240)/999
[마나] : 48,000(+600)(-2,300)/99999
[육체한계치] : 1/10
스메르가 휘두른 단검이 아주 살짝 팔뚝을 스쳤을 뿐인데도 날아간 능력치가 엄청났다.
하지만 마나는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약탈의 영향을 받은 건 백윤후의 생명 코어에 담긴 마나력뿐.
“윽!”
한수호는 인상을 확 구기며 쓰러질 듯 비틀댔다.
“야, 장태산!”
“난 신경 쓰지 말고, 포션부터…. 마셔요!”
한수호가 단호한 얼굴로 소리치자 강우진은 급히 포션을 꿀꺽 삼켰다.
그사이 한수호는 적의 위치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한곳을 향해 돌진했다.
“거기냐!”
한수호가 기둥 쪽으로 달려들며 세라믹 단검을 힘차게 내던진 순간이었다.
퍼억!
단검이 정확하게 망토를 두른 스메르의 목에 박혀 들었다. 그리고,
우웅
한수호가 디디고 선 바닥이 갑자기 움푹 꺼져버렸고, 그 위로 거대한 쇳덩이가 내리꽂혔다.
꽈앙!
한수호는 피할 여유도 없이 쇳덩이에 깔려버렸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두 손으로 쇳덩이를 받쳐 들어, 납작한 오징어가 되는 꼴은 면했다.
하지만 두 다리와 두 팔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더 버티지 못하고 쇳덩이게 깔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강우진은 단검에 맞아 쓰러진 스메르와 한수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한수호를 돕기 위해 움직이면 스메르는 도망칠 시간을 벌게 된다.
반대로 한수로를 내버려 두고 스메르를 먼저 처리하면 보상을 독차지할 수 있게 된다.
극과 극을 달리는 선택의 갈림길.
누구라도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고, 이기심이며, 타고난 본성이니까.
강우진도 결국 한 가지를 선택했다.
“내가 시발, 이러려고 여길 왔냐고!”
신경질적으로 거친 욕을 내뱉은 강우진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한수호가 떠받치고 있던 쇳덩이가 멀리 튕겨 날아갔다.
“괜찮냐?”
강우진은 한수호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니, 아예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우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 뭐?”
강우진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한수호가 한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부상을 입은 스메르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고, 기척까지 완전히 감추고 있었지만 한수호는 놈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 끝내죠.”
피식 웃음을 흘린 한수호가,
퓻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퍼억!
한수호의 그림자가 스쳐 간 텅 빈 공간에서 핏물이 확 튀더니 머리가 사라진 스메르가 나타나 앞으로 고꾸라졌다.
* * *
“하…. 그러니까 모든 게 연기였다, 이거지?”
강우진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 자신이 바보 같은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가 선택을 했듯이, 저도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한수호는 스메르의 머리통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저 멀리 휙 내던져 버렸다.
지금까진 일부러 강우진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 약한 척 연기를 해야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유가 뭐냐? 내가 강씨호왕가의 강지훈 아들이라서? 남산의 절반을 날려버린 노미란의 아들이어서냐고!”
강우진이 분한 얼굴로 소리쳐 묻자 한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가 본 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상이라니?”
“그런 게 있어요. 여길 나가면 그때 말씀드리죠.”
“아직도 날 가지고 놀 셈이냐?”
강우진은 한수호를 다그쳐 당장 설명을 들으려고 꺼낸 말이었지만,
“제가 가지고 놀 건 저건데요?”
한수호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강우진은 한수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방금 한수호의 손에 죽어버린 알파 몬스터 스메르의 사체가 엎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사체가 화르륵 불타오르더니 바닥에 뭔가를 떨어뜨렸다.
“특성석?”
스메르의 사체가 사라지고 테니스공 크기의 특성석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때, 두 사람의 눈앞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알파 몬스터가 소멸하여 게이트가 폐쇄 조치에 들어갑니다.
>>업적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목록
-특성석
-Level Point 10,000,000
-Nomal Point 100
-Sense Point 10
>>보상을 수령하면 1시간 뒤, 게이트가 폐쇄됩니다.
역시나 한수호의 예상대로였다.
한수호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특성석을 집어 들고는 강우진을 향해 물었다.
“보상은 만족스러운가요?”
한수호와 강우진의 보상은 같을 수가 없었다.
포인트 시스템은 한수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기에 강우진에겐 다른 보상이 주어졌으리라.
“나쁘진…않군.”
강우진의 표정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다소 멍한 표정.
마치 이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건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표정에 한수호는 피식 웃었다.
“마나가 한 몇백 올랐나 봐요?”
한수호가 장난처럼 묻는 말에 강우진이 흠칫 놀랐다.
“그걸 어떻게?”
“어라. 그냥 해본 말인데 진짜였나 보네요?”
“….”
강우진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하하하. 이제 보니 재밌는 선배시네요. 처음 봤을 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 같더니.”
“냉혈한 같은 아버지와 20년을 살다 보면 너도 나처럼 되었을 거다.”
“선배처럼 재밌는 사람이 된다고요?”
“너! 후…. 아니다. 됐다. 그 얘긴 그만하자.”
강우진은 계속해서 자신을 놀리는 한수호와 더 이상 입씨름하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사람은 둘인데, 특성석은 하나뿐이니.”
한수호는 특성석을 내보이며 강우진에게 물었다.
“그건 네 거다. 어차피 알파 몬스터를 잡은 것도 너고.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절 위험에서 구해주셨잖아요.”
“그야 네가 내 얼굴을 치료해 줬으니까….”
“치료에 대한 보답이다?”
“뭐, 그런 셈이지.”
한수호가 보기에 강우진은 붙임성 있는 성격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불편해하며, 누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 역시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마음만은 올곧다.
악에 깊이 물들어 있는 강지훈의 아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럼 이렇게 하죠. 이 특성석은 제가 갖는 대신….”
말을 하던 한수호의 손에 있던 특성석이 사라지고, 갑자기 다른 돌멩이 두 개가 불쑥 생겨났다.
방금 전의 특성석과 모양은 달랐지만 기하학적인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그건 분명 특성석이었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
강우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성석 하나를 가져가더니 두 개를 내놓는다?
세상 어디에 이런 희한한 계산법이 있나 싶은 강우진은 특성석과 한수호를 번갈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수호는 그런 강우진에게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곧 이프리트와 최후의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아마 대마왕 발자크도 봉인을 풀고 나타날 거고요. 이 특성석이 지닌 힘을 그 전쟁에서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최후의 전쟁…이라고?”
“네. 누구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입니다.”
강우진은 안색을 굳히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수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는,
“너에게 받은 이 힘…. 반드시 세상을 위해 사용하겠다.”
확고한 어조로 말하며 두 개의 특성석을 받아들였다.
“이번에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선배님.”
“내 선택은 늘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아, 그러셨군요. 이제 알았네요. 하하하.”
이제는 강우진도 한수호의 화법에 적응을 했는지 편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 가죠. 이 세계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요.”
“그래, 가자. 나가자마자 네가 준 특성석부터 흡수해야겠네. 전쟁에 대비하려면 말이야.”
“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6일뿐이니까요.”
한수호의 말에 강우진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곧이라는 말이 고작 6일 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6일 내로 최선을 다해 강해지겠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한수호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강우진이 그 손을 맞잡았다.
* * *
잠시 후,
한수호와 강우진은 약탈의 신전을 나와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급할 게 없어서 천천히 걸어가며 이번에 얻은 특성석을 자세히 살피는 중이었다.
한수호가 강우진에게 건넨 특성석은 오늘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인챈트 스톤이었다.
두 스톤에 새겨진 특성은 체질 개선과 마나 회복.
사실 강우진은 구천승에게 받은 0티어 특성 ‘염룡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염룡아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마나력이 최소 3천을 넘어야 했기 때문.
하지만 강우진의 마나는 2천이 되지 않았다.
한수호는 그 점을 미리 파악하여 마나를 짧은 시간에 크게 확장시킬 방법으로 체질 개선을 선택한 것이다.
거기다 마나 회복 특성까지 함께한다면 염룡아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
두 개의 특성석을 준비해 둔 한수호는 강우진에 대한 마지막 테스트를 한 뒤, 줄지 말지를 결정하고자 했다.
그 결과 강우진은 한수호의 시험을 아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것이고.
‘두 가지 특성이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거야.’
한수호는 강우진이 이프리트와의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이젠 내 것도 확인해 봐야겠지?’
알파 몬스터 약탈의 스메르를 해치우고 얻은 특성석.
그걸 손에 쥐고 정보를 스캔하자 한수호로 하여금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내용이 주르륵 떠올랐다.
[특성석]
-보유 포인트: 900,000LP
-아스루나의 가디언 ‘월락’이 무한의 염동력과 초월급 마나력을 사용해 혼신의 힘으로 합체형 특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특성, ‘약탈[3]’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성을 흡수하고 포인트를 획득하겠습니까? YES/NO
‘약탈 특성이 합체형 특성이라고? 가디언 월락은 또 누구고?’
한수호는 가던 걸음까지 우뚝 멈추고 특성석을 뚫어져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