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한수호는 약탈[3]가 지닌 효과가 너무도 궁금해 지금 당장 특성을 흡수해 보기로 했다.
강우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특성 흡수를 실행한 한수호.
한수호의 몸을 글자로 만들어진 마법의 띠가 빠르게 휘감더니, 그의 가슴으로 글자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짧게 심호흡을 마친 한수호는 흡수된 특성의 정보를 눈앞에 띄웠다.
[특성: 약탈[3]]
-약탈 시리즈 최종 버전으로 0티어에 있는 합체형 특성입니다.
-죽은 자의 특성을 최대 두 개까지 약탈합니다.
-죽은 지 1시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에만 약탈이 가능합니다.
-특성을 분해하여 포인트, 또는 특성 조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72시간
>>합체에 필요한 시리즈가 모두 모였습니다. 합체하겠습니까? YES/NO
‘하…. 이러니 이대경, 그 자식이 눈에 불을 켜고 날 죽이려고 했지.’
약탈[3]은 단순히 마공사의 특성을 약탈하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번에 약탈할 수 있는 특성이 두 개나 될 뿐 아니라, 필요 없는 특성을 분해하여 포인트나 특성 조각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확실히 0티어 특성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특히 마지막에 떠오른 문구는 더욱 놀라웠다.
‘합체라….’
합체에 필요한 시리즈라는 건, 약탈[1], 약탈[2], 약탈[3]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이 특성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도 가능한 모양.
‘해볼까?’
어차피 게이트가 폐쇄되기까지는 40분 정도 더 남아 있었으니 여유는 많았다.
한수호는 바로 합체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YES를 선택하자 다른 메시지가 등장했다.
>>약탈 시리즈의 합체 및 해지에는 2,000의 마나력이 소모됩니다.
>>‘초감각’ 수치가 행운지수로 작용하여 합체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합체를 실행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 주르륵 등장하더니 한수호의 눈앞에 약탈[1], [2], [3]이라고 새겨진 돌멩이 세 개가 삼각형 형태로 떠올랐다.
돌멩이들은 회전판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점점 회전이 빨라지며 환한 빛을 뿜어내던 순간,
푸쉬이이
전기밥솥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어처구니없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합체 실패
‘이건 개똥 같은!’
특성 합체에 실패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더군다나 57이나 되는 초감각 수치로도 실패라니.
다행스럽게도 합체에 실패했다고 특성이 사라지거나 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단지, 마나 2천이 홀라당 날아간 것일 뿐.
‘내 행운이 이렇게나 형편이 없다고?’
오기가 생긴 한수호는 옆에서 강우진이 ‘너 뭐 하냐?’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체 다시 합체를 시도했다.
이제 마나 소모량이 4천을 넘었다.
>>합체를 실행합니다.
방금 전과 똑 같은 이팩트가 펼쳐졌고,
>>합체 실패
또 다시 실패였다.
‘뭐야? 초감각 수치가 57이면, 행운지수도 57% 이런식으로 적용되는 거 아니었어?’
57%가 맞다면 두 번에 한 번은 성공해야 정상.
그런데 두 번 다 실패였다.
‘딱 한 번만 더.’
아직 마나력에 여유는 많았다.
하지만 게이트 폐쇄를 앞두고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합체를 실행합니다.
이젠 이 메시지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귓가로는 두구두구 하는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다.
전혀 다를 것 없는 이팩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한수호는 마음속으로 ‘이번엔 좀 되라!’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악
전과는 다른 화려한 금빛이 눈앞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리고,
>>합체 성공
>>약탈 시리즈의 합체 성공으로 ’특성 파괴’가 생성되었습니다.
>>합체를 해지하기 전까지는 약탈 시리즈의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드디어 성공이었다.
나름 감격한 얼굴이 된 한수호는 곧바로 특성파괴라는 독특한 특성의 정보를 훑어봤다.
[특성: 특성파괴]
-약탈 시리즈를 한 사람이 소유했을 때, 시너지 효과로 발생하는 특성입니다.
-몸으로 직접 받아낸 상대의 특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파괴된 특성은 두 번 다시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합체를 해지하면 재합체가 이루어질 때까지 특성이 봉인됩니다.
-소모 마나: 20,000
-쿨타임 240시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운 특성이었다.
약탈[3]은 본인이 지닌 특성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었는데, 합체된 특성은 다른 사람의 특성까지 파괴해 버릴 수 있었다.
소모 마나가 2만이나 되고, 쿨타임이 열흘이나 되긴 했지만 상대의 특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쩐다, 쩔어.’
가디언 ‘월락’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합체형 특성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대단한 존재인 것 같았다.
“너, 괜찮냐?”
강우진이 참지 못하고 한수호의 상태를 물었다.
그의 눈엔 한수호가 혼자 우두커니 서서 얼굴을 찡그렸다가 웃었다가 하며 생쇼를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
“당연히 괜찮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있어서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이제 보니 별거 아니었네요. 하하하. 이제 가요.”
한수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게이트 쪽으로 다가가려는 그때였다.
게이트 우측 20미터 지점의 허공이 뭔가에 베어지듯 갑자기 쫙 찢어졌다.
세로로 쪼개지듯 갈라진 균열은 세로 2미터에 가로 폭은 50센티 정도였다.
일반적인 게이트에 비해서는 상당히 작은 크기.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미끄러지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제대로 왔나 보구만.”
이상한 소릴 하며 균열 밖으로 나선 사람은 장신의 사내였다.
190센티 정도 되는 키에 조금은 마른 체형.
그리고 얼굴은 정리되지 않은 장발로 가려져 있어 용모 파악이 힘들었다.
길거리에서 봤으면 노숙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붉은색이 잔뜩 들어간 고급의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는 걸로 봐선 절대 노숙자일 리 없었다.
그를 본 한수호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몸을 작게 떨었다.
그건 전율이었다.
허공을 찢어내며 등장한 장발의 사내는 한수호가 지금껏 만나본 사람 중 그 누구보다도 강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
[신체외적능력] : 810/999
[신체내적능력] : 12/99
[마나] : 9,300/99999
[육체한계치] : 1/3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는 능력치였다.
더욱 놀라운 건, 한수호 이외에 육체한계치가 등장한 인물은 이 사내가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 말은 육체한계치를 3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능력치 또한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야. 못 본 사이에 또 한층 강해졌는데?”
장발 사내는 한수호를 아는 듯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사내를 만난 기억이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이 사내는 4개월 전 횡경도에서 몰래 한수호를 지켜봤던 그 사내였으니까.
“저에게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한수호는 최대한 정중하게 상대했다.
상대의 능력치도 엄청나거니와, 이자는 게이트가 아니라 직접 공간을 찢고 나타난 놀라운 인물이었으니까.
이 사내가 보여준 능력은 점프포털이 아니었다.
점프포털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게이트 점프석이 필요한데, 이곳의 그 어디에도 점프석으로 생각되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렇군. 난 너를 알지만, 넌 나를 모르겠지. 하하하. 이런 단순한 실수를 하다니.”
사내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그러다 강우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 너.”
“다짜고짜 왜 반말입니까?”
강우진도 한 성깔 하는 인물인 탓에 나오는 대답이 고울 수가 없었다.
“강씨 자식답게 성격이 아주 지랄맞구만. 어른한테 버릇없이 말이야. 아무튼, 너한텐 볼일 없으니까 일단 꺼져주겠니?”
장발 사내는 게이트를 가리키며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이에 강우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꺼지라면 꺼지고, 켜지라면 켜지는 전등이라도 됩니까? 그리고 왜 남의 집안 성격가지고 왈가왈부합니까? 당신, 나 알아요? 아니면, 고약한 우리 집 가주 양반을 아시나?”
“히야. 이 개 싸가지를 보게나. 한철형이 아들만 성격 더러운 줄 알았더니, 강지훈이 아들 새끼도 만만치 않구만. 뭐, 어쨌든. 네 말대로 네놈이 전등은 아니지. 바람만 훅 불어도 바로 꺼지는 촛불쯤 되겠구만. 그러니 괜히 한가 꼬맹이 옆에 있다가 불똥 튀지 말고 꺼져 주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이 녀석아.”
“그깟 협박에 내가 알아서 꺼져 줄 거라 생각했습니까?”
“꺼지기 싫으면 입 닥치고 거기 서서 불똥에 튀겨져 뒈지던가.”
사내의 입담도 보통이 아니었다.
강우진과 장발 사내가 서로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쏘아내고 있을 때, 한수호가 강우진을 말렸다.
“저한테 맡겨 주세요.”
“내가 선밴데 왜 너한테 맡겨? 이번엔 네가 빠져. 어차피 이젠 체력이고 뭐고 다 원래대로 돌아와서 저딴 꼰대 아저씨 상대하는 건 문제도 아니니까.”
“아, 그래요? 그럼 착한 후배가 빠져드려야죠. 뭐.”
한수호는 강우진이 그렇게 나올 줄 이미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요즘 어린 것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실력 좀 있다고 해서 자기가 만난 상대가 그냥 꼰대인지, 아니면 저승사자인지도 구분을 못 하다니. 아무튼, 그래서 네놈이 날 상대해 보겠다. 이거냐?”
“딱 봐도 좋은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닌 것 같은데, 상대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오호. 기개 하나는 좋구나. 그럼 가볍게 한번 놀아주마. 네 녀석 실력이 과연 말만큼 되는지 확인도 해볼 겸 말이야.”
장발 사내가 껄껄 웃으며 흐트러져 있던 머리카락을 뒤로 훅 쓸어올리더니 고무줄로 묶어 버렸다.
그제야 드러난 사내의 얼굴.
한국어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서 당연히 한국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서양인이었다.
하얀 피부에 쑥 들어간 큰 눈.
높게 솟아오른 코와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남형의 얼굴이었다.
“왜,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놀랐냐?”
“의외라서요. 머리카락은 염색한 거군요? 미용실 실력이 좋네요. 머리 묶기 전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한수호가 살짝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자 사내가 피식 웃었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 소개라도 시켜주랴?”
“전 이발소 체질이라….”
“말 한마디를 지지 않는구나. 네 애비도 그랬지.”
“아버진 신사셨어요. 저랑은 다르게. 제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시는 걸 보니, 당신은 아버지의 친구가 아니었다는 말이 되네요.”
한수호의 말에 사내가 한족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가 네 애비를 잘 모른다? 그러니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 참으로 간단한 흑백 논리로구나.”
“제가 회색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허…. 거참. 말로는 이기질 못하겠군.”
사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는 어떤 의도로 이 게이트를 무단으로 침입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봐요. 여기 사람 있습니다만?”
강우진이 자신도 이곳에 있음을 강조하는 말에 사내가 또다시 껄껄 웃었다.
“그래, 안다. 알아. 어디, 한번 보자꾸나. 강씨 자식 놈이 뭘 가지고 그리 자신만만해 하는지를.”
사내가 히죽 웃으며 한발을 크게 내디뎠다. 순간,
쿠우우우웅
묵직한 충격음이 터지고 반경 20미터의 땅이 크게 출렁거렸다.
그저 가볍게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그 모습을 본 강우진은 마치 거대한 해일이 밀어닥치는 듯한 착각을 느껴야 했다.
해일은 순식간에 강우진의 몸을 강타했다.
해일과도 같은 사내의 마나파동을 정면에서 맞닥뜨린 강우진.
그 충격을 버티기 위해 강우진은 지닌바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콰드드드드득
그저 마나파동에 얻어맞았을 뿐인데도 10미터나 뒤로 주르륵 밀려나 버렸다.
강우진은 자신이 땅바닥에 그려낸 두 개의 골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얼빠진 놈.”
강우진이 찰나적으로 한눈을 판 사이, 그의 코앞으로 장발 사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사내는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고, 화들짝 놀란 강우진은 그 주먹을 막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두 팔로 방어했다.
사내의 주먹이 강우진의 두 팔 위에 작렬한 순간,
꽈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강우진이 실 끊어진 연처럼 튕겨 나갔다.
“크윽!”
20여 미터나 튕겨 나간 강우진.
그는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도 10여 미터 이상을 더 나뒹굴고 말았다.
하지만 강우진은 기절하는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그는 단 1초도 넘어져 있기 싫었는지 바닥을 두 손으로 힘차게 찍어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은 좀 전보다 더욱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장발 사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놈 봐라? 생각보다 너무 멀쩡한데?”
적어도 팔 하나쯤은 부러졌을 거라 여겼는데, 강우진의 두 팔은 무척이나 멀쩡했다.
강우진이 화려하게 튕겨 나간 이유가 몸으로 전해진 충격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였다는 걸 이제야 알아봤다.
“나도 안 봐줍니다, 꼰대.”
강우진은 이를 뿌드득 갈고는 그동안 꾹꾹 억눌러왔던 분노를 장발 사내를 상대로 시원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