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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29화 (329/375)

329화

>>틈새간격: 87.1%

한수호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틈새간격을 확인했다.

‘6시간만에 3%나 벌어졌어.’

생각보다 시간이 더 없었다.

발자크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봉인을 깨뜨리려고 발악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대로라면 100%를 채우기까지 남은 시간은 하루 정도.

아마도 지금 쯤은 현실 세계에서 전투를 준비 중인 노희경 또한 조짐 특성으로 악몽급 게이트가 열릴 시간을 예측할 수 있을 터.

‘서둘러야겠구나.’

한수호는 짧게 심호흡을 한 뒤,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슈아아아아악

주변 풍경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간 순간,

타닥.

한수호는 어느새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곧이어 신유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이 모두 게이트를 넘어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원래 이 34호 게이트는 ‘티탄 마운틴’이라는 곳으로 높은 산 다섯 개가 합쳐진 거대한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드래곤 마운틴’으로 등급이 오른 지금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은 산맥이 아니었다.

거대한 협곡.

마치 그랜드 캐니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협곡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 산 아니었어요?”

“산이었는데, 아니었나 보네.”

한수호도 어이가 없는지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나왔다.

“볼케스라는 놈…. 이런 곳에 레어를 만들었다니, 정말 괴상한 드래곤이로구나.”

“이자투스로 활동할 때부터 좀 많이 이상하긴 했죠. 자기 자신부터가 굉장히 비상식적이면서, 오히려 규칙과 규범을 지키려고 하는 괴팍한 작자거든요.”

백윤후가 이자투스를 잘 아는 듯하는 말에 신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마치 이자투스를 본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네? 아…. 하하하. 당연히 본적은 없지만, 여기 라라한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백윤후가 괜히 라라 핑계를 대자 신유가 눈매를 좁혀 떴다.

“라라하고 무척이나 친한가 보군. 하지만 말이다…. 이 작은 여자애는 겉모습만 예쁜 인간일 뿐이지 알맹이는 아스루나의 몬스터라는 걸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신유는 사람도 믿지 못하는 삐뚤어진 성격이라, 몬스터인 라라를 더욱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자 한수호가 신유에게 한마디 했다.

“그 말씀은 제가 인정하기 힘드네요. 라라가 몬스터인 것은 맞지만, 이기적이고 배신감 쩌는 인간들보다는 훨씬 믿음직합니다. 아저씨도 이젠 그런 선입견을 버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내 선입견이라고? 흐음…. 참고는 해보마.”

신유는 자식 나이의 한수호가 지적하자 화를 내는 대신, 잠시 생각에 잠기며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그도 자신이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기에 한수호의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다들 단단히 준비하세요. 주변에 엄청난 놈들이 잔뜩입니다.”

한수호의 감지 능력은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였기에 먼 곳의 소음과 움직임까지 모조리 스캔해 낼 수 있었다.

그런 감각에 전해지는 수많은 존재들.

과연 위험도 10성의 게이트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난 놈들이 거대한 협곡 안에 수두룩했다.

그리고 놈들이 지닌 강력함의 수준은 어느 한 방향으로 향하면서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한수호는 볼케스의 레어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기어가는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골짜기 같은 형태의 깊숙한 협곡.

그 협곡 안에선 수많은 몬스터가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점점 강한 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방향을 따라가 보면 볼케스의 레어가 나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한수호는 때가 되었다 싶어 슈퍼 골렘 사툴란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5미터 앞에 소환시켰다.

쿠웅

간만에 밖으로 나온 사툴란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가 한수호를 발견하고 시선을 내렸다.

“쿠워어어억?”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괴성처럼 내지르는 소리가 마치 이번엔 또 어떤 놈들을 때려잡으면 되냐고 묻는 것 같았다.

15미터의 골렘 사툴란을 처음 본 신유는 그 거대함에 꽤나 놀란 듯했다.

“하다 하다 이젠 골렘까지 부리는구나. 허, 참내….”

“그냥 골렘 아닙니다. 사툴란. 저 녀석의 이름입니다.”

한수호는 사툴란의 듬직함이 마음에 드는지 꽤나 자랑스러워 했다.

그때, 아직 한수호의 대답을 듣지 못한 사툴란이 발로 땅을 쿵 하고 구르며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쿠어어억! 쿼억?”

빨리 어디로 갈지 말하라고 재촉하는 듯한 괴성에 한수호는 피식 웃으며 아까 봐둔 깊은 협곡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쭉 갈거다. 가면서 마주치는 놈들은 전부 박살내면 되고.”

“크웍! 크롸롸롹!”

자신만 믿으라는 듯 제 가슴팍을 두 팔로 쾅쾅 거세게 치는 사툴란.

그러고는 바로 한수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삐끗

급경사에서 발을 헛디딘 사툴란은 거대한 몸으로 협곡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꽈르르르르릉. 꽈과광!

산사태에 버금가는 엄청난 소음.

협곡 바닥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굴러떨어진 사툴란은 지면과 격렬한 키스를 하며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 광경을 지켜본 신유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한마디 했다.

“저거 전투에 도움은 되나?”

“아하하하. 사툴란 녀석, 오늘 따라 긴장 많이 했나 보네요. 발을 다 헛디디고.”

한수호는 사툴란의 창피함이 자기 몫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거대 협곡을 헤쳐나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최전방에 나선 사툴란이 몬스터들의 공격을 최대한 방어해 내고 있었지만, 등장하는 몬스터의 숫자와 놈들이 지닌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땅 속에서 바닥을 뚫고 나오는 웜 형태의 거대 벌레부터 협곡 좌우의 무수한 구멍 속에서 아무런 조짐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거미를 닮은 몬스터들까지.

거의 100미터에 한 번씩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때로 협곡 위에서 날아드는 ‘플라이 샤크’도 위협적이었고, 협곡의 바위처럼 은신하고 있던 ‘메탈 트롤’들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이곳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들의 등급은 거의 다 1급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평범한 게이트나 던전에서 보스로 등장해도 될 정도로 강력했다.

진급 수준의 마공사들만으로는 이 협곡에 들어와 10분도 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몬스터들이 많이 등장했다.

땅끝마을 게이트에서는 수천의 몬스터들을 대평원에서 상대했기 때문에, 전술이나 전략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닥치는 대로 때려잡으면 되는 일이었기에 오히려 쉬웠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긴 대지 아래로 깊숙히 파고든 거대한 협곡.

길도 구불구불하고 곳곳에 숨어있는 몬스터들이 시도 때도 없이 기습을 하고 있어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수호의 파티는 차원이 달랐다.

궁급을 넘어선 마공사가 일단 넷이나 되는 데다가, 궁급 막바지에 이른 몬스터가 둘, 이제 막 궁급에 오른 몬스터 봇도 둘이다.

게다가 고니와 사툴란은 사실상 등급을 부여하기조차 어려운 존재였다.

고니는 작은 사막여우인 상태에선 궁급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지만, 사자 형태로 변신하면 파급을 넘어서게 되며, 드래곤으로 최종 변신을 하게 되면 멸급에 준하는 파괴력을 갖게 된다.

그건 사툴란도 비슷했다.

이미 수차례 진화를 거듭한 사툴란은 세 가지 속성을 지닌 마법 생명체가 되었고, 방어력 하나만큼은 가히 우주 최강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사툴란의 몸을 이루고 있는 금속 물질은 지구엔 존재하지 않는 강력한 재생형 금속으로 되어 있어, 신체가 파괴되어도 바로 바로 재생된다.

그렇다보니 사툴란이 전면에서 서서 모든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사툴란이 공격을 받아낼 때, 뒤에서 라라가 세이렌의 노래로 몬스터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가장 후미에 선 서은채가 델링그로 저격하면 끝.

때로는 백윤후가 폭렬참으로 일격을 날려서 상황을 종료시켰다.

월과 살이, 범이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월은 후미에서 서은채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 어떤 몬스터가 기습을 가해도 귀신같이 놈의 접근을 알아내 사전에 차단했다.

월은 한수호의 파랑격과 벽력권을 자신만의 기술로 재탄생 시킨 파동권과 뇌격을 이용해 마치 무술 고수처럼 화려하게 몬스터들을 발라버렸다.

살이와 범이는 사툴란의 미니버전이었다.

말이 미니버전이지, 이족 보행 상태로 변신한 두 몬스터 봇은 거의 5미터에 육박하는 덩치를 지니고 있어서 코앞에서 마주하면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월이 미친 듯이 이 둘을 개량시켜 왔기에 두세 배 이상 큰 초대형 몬스터와 맞붙어도 전혀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한수호와 신유는 크게 할 일이 없었다.

“넌 대체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을 어디서 찾아낸 거냐?”

신유는 한수호를 따르는 존재들만 있어도 천 단위 이상의 몬스터 군단 한 개 정도는 가뿐히 상대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 자신이 이들과 전투를 벌인다면, 아무리 그라도 쉽게 이기긴 힘들거라는 게 신유가 내린 판단이었다.

“제가 찾아냈다기 보다는, 이 녀석들이 저를 찾아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아직 갈 길이 먼데 너무 더딘 것 같지 않습니까?”

한수호는 이런 전투가 앞으로도 몇 시간 이상 이어질 것 같자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고 했다.

“하늘을 나는 재주가 없는 이상, 이 협곡을 빠르게 지나갈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한수호는 히죽 웃음을 그렸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고니를 불렀다.

고니는 전투에 적합한 배틀 모빌로 변신한 상태에서 주변을 빨빨대며 돌아다니다가 한수호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소형 미니견 크기에 사륜구동으로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상체에는 30미리 구경의 포탑을 두 개나 달고 있는 고니.

일자로 쭉 그어진 기계식 눈에서는 푸른 빛이 좌우로 오가고 있었다.

“고니야. 맵핑은 다 끝났어?”

한수호의 질문에 고니는 눈에서 빛을 뿜어내 허공으로 홀로그램을 띄웠다.

홀로그램에 나타난 것은 이 거대 협곡을 스캔하여 만들어 낸 지도였다.

지도의 가장 아래 쪽에선 열 개의 푸른 점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최상단 쪽에서 깜빡이는 붉은 점 하나.

곧이어 푸른 점에서 녹색의 빛이 시작되더니 구불구불한 협곡의 길을 마구 지나쳐가다가 한참만에 붉은 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숫자와 기호들.

[18:16’27”]

그건 시간 표시였다.

“현 위치에서 목표지점까지 가는 데 18시간이나 걸린다고?”

한수호의 말에 고니가 귀여운 기계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럼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은?”

질문이 떨어지자 마자 고니가 띄운 홀로그램이 조금 더 크게 확대되었고, 현 지점 위로 비행선처럼 생긴 그림이 나타났다.

그 비행선 위에 10개의 푸른점이 올라타더니 붉은 점을 향해 직선으로 쭉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선은 금방 붉은 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5’16”]

그리고 떠오른 시간 표시.

그걸 본 한수호가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는 고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부탁 좀 한다, 고니야.”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그때,

파치이이이이이잉-

고니의 눈에서 강렬한 레이저가 폭발하듯 뿜어지는가 싶더니,

촤르르륵. 철컥. 철커덕.

공중으로 뛰어오른 고니의 몸체가 엄청난 빠르기로 분해와 재조립을 시작했다.

고니는 순식간에 덩치를 불렸다.

3초만에 자동차 크기가 되었고, 10초가 지났을 땐 커다란 요트 크기로 커졌다.

정확히 15초가 지났을 때, 모두의 눈앞에는 전장 15미터에 기다란 돛이 달린 비행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모두의 표정에 경악이 가득했다.

현대적인 모양의 비행기가 아닌, 마치 배처럼 생긴 비행선.

과연 이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배와 모양이 흡사했다.

한수호는 그런 비행선을 뿌듯하게 쳐다보다가 일행에게 말했다.

“타시죠.”

그 말에 가장 먼저 신유부터 비행선에 탑승했다.

비행선의 측면엔 비스듬하게 계단이 내려와 있어서 탑승은 무척이나 쉬웠다.

사툴란을 제외한 모두가 탑승하자, 한수호는 사툴란을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자, 그럼 빠르게 가봅시다. 목적지를 향해 돌진!”

한수호는 이 비행선의 선장이라도 된 듯, 손까지 앞으로 뻗어내며 소리쳤다. 순간,

푸아아아아아악!

비행선의 하부에서 엄청난 추진력이 뿜어지며 하늘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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