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콰자자자자자작!
끔찍한 위력의 뇌전이 수십 명의 머리 위로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폭음과 비명.
퍼버벙. 퍼버버버벙!
“아아악!”
“크아악!”
단 한 방이었다.
무려 50에 가까운 특수1과의 요원들이 단 한 번의 뇌전 공격에 폭죽처럼 터져 버렸다.
목숨을 건진 건 단 세 사람.
유대룡과 특수1과의 두 팀장뿐.
그들도 한수호가 뿜어낸 뇌전에 직격당했지만, 슈트에 내장된 절연 능력을 발동시켜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젠장.”
유대룡은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뒤를 특수1과 팀장 두 명이 황급히 뒤따랐다.
“고니!”
한수호의 외침에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고니가 곧장 거대 비행선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모두 비행선에 올라타세요.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저 개자식들을 끝장내 버리셔야 합니다!”
한수호는 연달아 사툴란과 월까지 소환시킨 뒤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들 서두르세요! 멍하니 있다가는 또다시 당합니다!”
사기환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구천승이 한 번의 발돋움으로 비행선에 올라타자 삼십에 달하는 고위 마공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머지 5백여 명의 일반 마공사들은 뇌왕 구천승의 호통 같은 외침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인류의 배신자가 되어 불명예스럽게 죽고 싶지 않다면, 적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목숨을 걸고 그 자리를 사수하라!”
이미 해외본부장인 최부선의 배신을 보았고, 방금 전에는 유대룡과 특수1과 정예 요원들의 배신까지 목격했다.
그런 특무부 요원들에게 구천승의 외침은 바늘이 되어 심장에 쑤셔박혔다.
“이곳을 사수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특무부의 명예를 지키자!”
5백여 특무부 요원들은 자신들만이라도 이미 더럽혀진 특무부의 명예를 되찾고자 목숨을 내놓기로 했다.
비행선이 떠오르고 본부 건물 옥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행선 아래에 가득 몰려있는 3만의 시민들.
그들은 강지훈의 뒤늦은 지시로 다시 주사기를 팔뚝에 꽂아 넣고 있었다.
우드드득. 콰드득.
본부 건물 주변은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키이라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키이라들은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공격해야 할 적들은 비행선을 타고 수십미터 공중에 떠올라 있고, 유일한 출입구에 해당하는 특무부 입구 쪽에는 5백여 특무부 요원들이 온갖 특성을 몇 중첩으로 발동시켜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던 구천승이 그 틈에 빠르게 사기환을 불러들였다.
“방금 그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구천승은 아까 한수호가 나스타샤와 사기환을 붙잡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묻고 있었다.
“수호는 이프리트가 파놓은 함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배신자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이어지는 사기환의 설명.
그의 말을 들은 구천승은 실로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수호는 이프리트가 정면승부를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함정이 준비되어 있으며, 그 함정은 이프리트의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일 것임을 예측했다.
그래서 이프리트의 진짜 수장이 누구인지, 그자는 대체 어디에 숨어서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아내려 했다.
그 시발점이 바로 우태범이었다.
우태범이 이프리트의 수뇌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원인을 알고자 사기환을 불러 그의 정보를 캐내게 했다.
하지만 우태범의 정보는 몇 겹으로 감춰져 있었다.
이미 사기환은 여러 차례 우태범의 정보를 캐본 적이 있었고, 밝혀진 정보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 사기환의 정보수집 특성에 한수호의 심리분석 특성이 더해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태범의 정보 속에서 노이즈가 일어나는 것들을 중점으로 심층분석에 들어갔고, 약 여덟 번에 걸친 심층분석의 결과로 우태범의 어머니가 특무부 요원이었다는 작은 정보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모든 건 거기서 시작됐다.
한수호는 사기환으로 하여금 우태범의 어머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밝혀낼 것을 요구했고, 마침내 그녀가 유대룡과 한때 연인 사이였다는 정보까지 캐낼 수 있었다.
우태범의 어머니는 결혼을 한 기록이 없었다.
게다가 우태범이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건강 악화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런 우태범을 거짓으로 입양해 비밀리에 돌봐준 자가 바로 유대룡이었던 것.
알고 보니 우태범의 친부는 유대룡이었다.
우태범은 유태범이었고.
우태범이 유대룡의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한수호는 모든 흑막이 유대룡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신유와 구천승을 넘어설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서도 입신양명을 원하지 않고 그저 특무부 국내본부장의 자리에 만족하며 살았던 이유가 한순간에 밝혀졌다.
정보.
특무부라는 거대한 조직이 지닌 정보력을 마음대로 악용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본부장이었으니까.
유대룡은 본부장으로서 모든 정보를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고, 그걸 이용해 이프리트의 세력을 키우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언제나 우직하면서도 정의로운 모습만 보이며 사람들을 우롱해 왔던 것이다.
모든 사건의 뒤에는 유대룡이 존재했다.
10년 전, 지리산에서 벌어진 한철형 가족의 참사도.
그 뒤에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와 황도13궁의 반란에, 새한교의 M바이러스 개발,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발생한 게이트까지.
유대룡은 그 모든 일의 뒤에서 빌런들을 장기 말처럼 이용했고, 그 자신은 뒷짐을 지고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봐 왔다.
그러는 한편, 회귀자인 조유현과 김유란을 찾아내 미래 정보를 알아낸 뒤, 발자크가 봉인된 암흑섬까지 몰래 찾아가 거래를 했던 것이다.
모든 걸 알아낸 한수호는 허탈해했다.
이프리트의 수장이 유대룡인 이상, 그가 직접 키워낸 특수1과의 마공요원들은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수호는 구천승에게 뒤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것.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기에 따로 경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김재우와 윤재희조차 더 이상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유대룡이 이프리트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암습을 시도할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 암습으로 전부는 아니어도 이곳에 있는 고위 마공사의 절반은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이프리트의 승리는 확정적이었으니까.
그래서 한수호는 숨어 있는 적들이 스스로 본색을 드러내도록 함정에 빠져주기로 했다.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고, 큰 부상을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수호에게는 엄청난 비밀무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나스타샤.
그녀가 지닌 동반회귀라는 특성이 바로 한수호의 숨겨진 무기였다.
동반회귀는 0티어에 해당하는 최고위 특성.
그래서 한수호는 이미 나스타샤가 이 특성을 최종 단계까지 진화시킬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준 상태였다.
그 결과 나스타샤는 동반회귀의 최종 단계를 이룰 수 있었다.
1단계는 타인에 의한 회귀 발생 시, 본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회귀한다는 효과를 지녔고,
2단계는 타인에 의한 회귀 발생 시, 그녀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모두 기억을 가진 상태로 회귀하는 효과를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이뤄낸 최종 3단계.
이 마지막 단계는 타인이 아닌, 본인의 힘으로 회귀를 발동시킨다는 경악스러운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이 최대 10분밖에 되지 않으며, 사용과 동시에 특성이 파괴되는 패널티가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수호는 나스타샤에게 회귀를 준비시켰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그가 나스타샤의 이름을 부르면 동반회귀의 최종 단계를 발동시키기로 서로 약속을 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사기환의 설명이 끝났을 때, 비행선은 본사 건물의 100미터 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건물 옥상에서는 강지훈과 황도의 무리들이 비행선에 탄 구천승 등을 무섭게 노려고 있었다.
“수호 덕분에 배신자는 모두 솎아졌다. 그러니 이젠 동료를 믿고, 등 뒤를 걱정하지 마라.”
구천승이 힘주어 한 말에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대룡이 이프리트의 진짜 수장이었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이 컸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고 비밀을 밝혀낸 한수호가 있었기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유대룡의 손에, 이프리트의 계획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한수호가 유대룡을 처리하는 동안,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프리트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손에 사정을 두지 말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이젠 그 하나 된 마음을 적을 향해 분출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자!”
구천승이 비행선의 선두에서 가장 먼저 날아올랐고, 그 뒤를 따라 다른 마공사들도 일제히 날아올랐다.
바로 그때,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강지훈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꾹 눌렀다.
지징. 지지지지징-
엄청난 진동과 함께 건물 옥상의 허공에 거대한 게이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게이트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꾸에에에에에!
키아아아아아악!
그건 드레이크였다.
드래곤이 되다만 이무기라는 이명을 가진 드레이크는 거의 집채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드레이크들이 무려 이십여 마리나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왔고, 놈들은 하늘을 누비며 사방에 브레스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미 허공에 떠오른 구천승 일행은 드레이크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들은 강지훈과 이프리트 수뇌부들을 맞이해 처절한 전투를 시작해야 했다.
드레이크들은 특무부 요원들의 저지선 위로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오백이 넘는 인원이라지만 드레이크의 브레스는 그들이 형성한 마나장막을 쉽게 깨뜨리고 있었다.
그때, 모든 인원을 건물 옥상으로 날려 보낸 고니가 거대한 드래곤으로 다시 한번 모습을 변형시켰다.
크아아아아아아앙!
공간마저 우그러뜨릴 정도의 엄청난 피어.
그 피어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드레이크 몇 마리가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전투가 시작되었다.
24마리 드레이크와 한 마리 드래곤이 벌이는 전투는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흉험했다.
* * *
유대룡이 도망친 곳은 특무부 본부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다른 건물들과는 유독 멀리 떨어진 장소.
이곳엔 키이라들도, 특무부 요원들도 아무도 없었다.
“이제 포기하시죠.”
한수호는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유대룡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유대룡은 정면에 있는 높은 건물을 가만히 올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회귀 전에는 내가 널 주워다 키웠다지?”
유대룡은 회귀자 김유란을 통해 많은 미래 정보를 알아냈고, 그 정보 중에는 한수호에 대한 것도 있었다.
“왜요? 지금이라도 절 데려다 아들처럼 키워보고 싶습니까?”
“하핫. 이미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더 필요할 리가.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하나는 직접 죽여놓고, 이제 와서 둘이라니요. 아, 나머지 아들도 곧 세상에서 지워질 겁니다.”
“네가 아직 잘 모르는구나. 태범인 내 경지에 가장 가깝게 성장한 마공사다. 이곳에 온 떨거지들 중에는 태범이를 제대로 감당할 만한 녀석이 얼마 없어. 네 녀석까지 여기에 있으니 태범이 손에 많은 동료가 목숨을 잃을 게다.”
유대룡은 우태범의 실력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수호가 다시 만난 우태범의 능력치는 전보다 거의 두 배는 높아져 있었으니까.
“어째, 정보력이 예전만 못한가 봅니다?”
한수호는 흥분했던 감정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지극히 이성적으로 유대룡을 대하고 있었다.
“무슨 의미지?”
“지금 제 쪽 정보가 버전 10정도까지 업데이트됐거든요. 그런데 당신 정보는 버전 7에 불과하니 수준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져서요.”
“뭐라고?”
“우태범이 강해진 건 맞죠. 마나가 대충 5천을 넘으니까. 그런데 우리 쪽에 그 정도 마나를 가진 사람은 차고 넘칩니다. 윤후 녀석이야 오래전에 그 수준을 넘었고, 서은채도 거뜬히 넘죠. 내 동생 라라만 해도 우태범은 우습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아, 혹시 월이라고 아십니까? 오래된 친구인데, 그 녀석이라면 우태범 두셋이 덤벼도 하하 웃으며 상대할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약간의 거짓이 보태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번에 암흑섬에 다녀오면서 함께 간 동료들의 능력이 엄청나게 상승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결과를 보면 알겠지요. 아니다. 당신은 여길 벗어나지 못할 테니 결과를 볼 수 없겠네요.”
한수호는 빙글거리며 웃다가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유니온 슈트를 소환시켰다.
촤르륵. 철컥!
슈트는 자연스럽게 한수호의 몸에 착용되었다.
착용과 동시에 모든 능력치를 30%나 높여주는 슈트가 입혀지자 한수호는 온몸에 힘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대룡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리석은 녀석. 고작 그따위 급조된 슈트를 입는 걸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목이 날아가는 건 네놈이 될 거다.”
파칭-
유대룡의 모습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원래 특무부에서 개발한 전용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된 새로운 슈트를 착용했다.
한수호는 유대룡이 착용한 슈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유령슈트 제로 원]
-이프리트에서 개발한 전투용 슈트로 파괴력과 속도 증강에 특화된 슈트입니다.
-마나력 상승 5%, 파괴력 상승 15%, 이동속도 증가 30%
-마나력 5,000을 소모하여 1분간 능력치 두 배 상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