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유령슈트 제로 원.
과연 유대룡이 자랑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닌 슈트였다.
한수호의 유니온 슈트에 비해서도 크게 부족함이 없을 정도.
이런 엄청난 물건을 이프리트에서 개발할 수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유대룡의 좌우에 선 특수1과 팀장 두 명이 입고 있는 슈트도 똑같은 유령슈트로 전환되었다.
3대 1의 국면.
유대룡은 신유와 구천승 급의 강자였고, 다른 두 명도 거의 박윤주 급에 가까운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런데 슈트를 착용하면서 상당한 능력치 버프를 얻은 데다가 언제든 능력치가 두 배로 뻥튀기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하지만 한수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꽤 센데?’ 하며 감탄만 하는, 그저 그렇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한수호는 저 멀리에서 번쩍거리고 있는 발자크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쪽이 걱정되나? 크큿.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발자크는 이미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신급 존재로 거듭났으니까.”
“그럼 인간을 넘어서면 감당할 수 있다는 겁니까?”
“뭐, 그게 가능하다면야 안 될 것도 없겠지.”
유대룡은 인간을 넘어서는 힘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장난처럼 대답했지만, 한수호는 그 장난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됐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초월해 보죠 뭐.”
“무슨 헛소리냐?”
“앞으로 2분. 그 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할 겁니다. 한때는 아버지처럼 여겼던 당신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여유는 딱 거기까지니까.”
“건방진 놈. 무려 20년에 걸쳐 만들어 온 내 계획에 초를 뿌린 재수 없는 녀석! 진작에… 진작에 네놈을 없앴어야 했다. 10년 전, 그날. 네 녀석이 도망칠 기회를 주는 게 아니었다고!”
유대룡의 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의 입장에서 한수호는 눈엣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10년 전, 지리산의 참사 속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대세에는 별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뒤에 조유현과 김유란을 통해 미래 정보를 얻었을 때에도 한수호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감은 깃털마냥 가볍기만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대룡이 추진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한수호가 끼어들었고, 그때마다 계획은 크게 어긋나고 말았다.
조유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유현은 그렇게 쉽게 죽어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들인 시간과 돈, 그리고 장시간의 노력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땅끝마을 게이트에서의 일도 그렇다.
본 계획은 그곳으로 많은 강력한 마공사들을 끌어들여 죽여버린 후 우태범의 특성을 이용해 강력한 각성자 좀비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도 어그러졌다.
그나마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건, 한수호를 발자크의 파편에게 이끌어 파편들을 해방시키는 작업이었다.
그 덕에 발자크의 봉인 해제가 무려 6년이나 당겨졌지만, 그렇게 당겨진 문제로 발자크의 힘이 완벽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특무부에서 이제 막 개발이 완료된 초정밀 아크로를 억지로 발자크에게 가져다 바친 것이다.
모든 것이 한수호 한 명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한수호만 아니었어도 유대룡이 이렇게 일찍 본색을 드러낼 일은 없었다.
적어도 5년.
그 시간 정도는 더 어둠 속에 숨어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어야 했다.
게다가 방금 전의 일만 해도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일망타진의 함정.
그 함정은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었지만, 한수호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스타샤의 힘으로 시간을 거슬러 버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수호를 이 자리에서 없애버리고,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이프리트의 모든 힘을 이용해 구천승 등을 처치해 버린다면 애초에 계획했던 일에서 그다지 크게 어긋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생각이 많아 보입니다.”
“널 어떤 방법으로 요리해 줄까 그걸 고민하고 있지.”
“적당한 레시피가 떠오르던가요?”
“물론이지. 마침 너만을 위한 가장 끔찍하고도 확실한 레시피가 준비되어 있더구나.”
유대룡은 한수호의 긴장감 없어보이는 표정에 괜히 화가 났다.
그는 한수호의 얼굴이 공포로, 슬픔으로, 후회로 가득 차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너무도 침착했고,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의연하기만 했다.
유대룡은 그런 한수호의 얼굴이 격한 분노의 감정으로 변하길 바라마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네가 들으면 즐거워할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
“당신이 이렇게나 혓바닥이 길 줄은 몰랐습니다.”
“날 재미있게 해주려고 애쓰는구나. 뭐, 어쨌든. 네놈은 혹 그걸 아느냐? 악몽급 게이트가 왜 악몽급인지를.”
유대룡은 한수호의 얼굴이 일그러지길 기대하며 한발 다가섰다.
“말하고 싶은 게 뭐죠?”
“네놈 친구들이 지금 광화문의 악몽급 게이트를 막기위해 꽤나 분전하고 있더군. 듣자하니 웨이브를 거의 다 막아냈다지?”
한수호는 유대룡이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흠칫한 표정이었다.
“네놈이 살다 온 미래에선 악몽급 게이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더구나. 조유현도, 김유란도 악몽급 게이트의 진정한 무서움을 전혀 모르더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악몽급 게이트의 웨이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너희들이 겪고 있는 웨이브는 고작 첫번째일 뿐이지.”
“…!”
한수호의 눈동자가 커지자 유대룡은 만족한듯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악몽급 게이트의 웨이브는 총 세 번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배는 더 강력하고,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강력해지지. 과연 네놈 친구들이 그 웨이브를 견뎌낼 수 있을까? 모조리 죽을 거다.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거란 말이다!”
유대룡은 한수호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기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한수호의 표정이 너무도 편안하다.
잠시 커졌던 눈동자도 빠르게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유대룡의 웃음이 멈췄다.
“그 표정은 뭐지? 왜 놀라지 않는 것이냐?”
“놀라야 하는 거였습니까? 어이쿠, 놀래라.”
“….”
한수호의 장난스런 대답에 유대룡의 굵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당신은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전혀 모르고 있군요.”
“내가 모르고 있는 게 있다고?”
“혹시, 내 옆에 있던 빨강머리 여자애를 기억합니까?”
한수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옆에는 완전히 생소한 이국적 외모를 지닌 붉은 머리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한수호가 사기환, 나스타샤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직후에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표정을 보니 기억하시네요. 그럼 묻겠습니다. 그녀의 정체가 무언지 압니까?”
“그래봐야 외국에서 조력자로 데려온 마공사겠지. 그녀를 게이트 쪽으로 되돌려 보낸 모양이군.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파급이나 멸급의 마공사라고 해도 혼자서는 악몽급 게이트의 3단계 웨이브를 모두 막아낼 수 없을 거다.”
과연 유대룡이었다.
그는 한수호의 말 몇 마디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파악한 것.
한수호는 유대룡이 이프리트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시점에 곧바로 케이시를 악몽급 게이트 쪽으로 돌려보냈다.
유대룡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면, 악몽급 게이트를 그리 쉽게 방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케이시를 보낸 것이다.
악몽급 게이트 쪽은 서한광과 대한맹의 정예 요원들, 그리고 김무성과 아카데미 친구들이 맡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엔 한수호의 양부모인 비돈귀살 부부도 있었고, 형인 한성찬과 여동생 한설아까지 나서서 돕고 있는 상황.
한수호로서는 그들의 안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추가적인 함정이나, 악몽급 게이트에서 더 강한 몬스터들이 출현할 것을 염두에 둔 존재가 바로 케이시였다.
붉은 머리의 소녀 케이시.
그녀는 다름 아닌 대적룡 볼케스였으니까.
“아스루나에 고룡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한수호의 질문에 유대룡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알기로 아스루나에 존재했던 드래곤들은 발자크의 손에 모두 죽었다.
하지만 한수호가 이렇게 말한다는 건 아직 살아있는 고룡이 존재한다는 뜻.
거기다 붉은 머리 여자애를 갑자기 언급했다는 건,
“그 계집애가 고룡이라도 된다는 소리냐?”
“글쎄요.”
한수호는 대답을 피했다.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너무도 얄미웠다.
한수호의 반응으로 보아 붉은 머리 여자애가 아스루나의 드래곤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모양.
그렇다면 악몽급 게이트도 소용이 없었다.
게이트에 유일하게 물리력을 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드래곤이었으니까.
게이트에는 그 어떤 물리력도 소용이 없다.
설사 지구의 핵폭탄이 게이트 바로 앞에서 폭발한다고 해도 게이트는 멀쩡하다.
하지만 드래곤의 브레스만은 게이트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동안 유대룡이 마나 폭발을 이용해 게이트를 날려버렸던 방법이 바로 드래곤의 브레스를 흉내 낸 것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안다.
이번에도 한수호가 한발 빨랐다.
유대룡은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한수호를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끝냅시다.”
한수호는 이 정도면 유대룡의 심기를 흐트러뜨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양손에 라뮬과 그랑을 소환시켰다.
“약속대로 2분을 드리지요. 그 시간이 지나면 당신이 두 눈은 영원히 하늘만 올려다봐야 할 겁니다.”
2분 뒤, 유대룡의 머리를 바닥에 나뒹굴게 만들겠다는 선포였다.
유대룡은 허허롭게 웃었다.
이제 남은 건 한수호와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이는 것뿐.
수십 년간 이프리트를 이끌어온 장본인으로서 발자크가 아크로의 에너지를 완전히 흡수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오냐. 이 자리에서 널 없애고 모든 걸 원 궤도에 올려놓으면 되는 것이니까.”
촤앙
유대룡의 손에도 굉장히 커다란 도 하나가 쥐어졌다.
양손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두껍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1.5미터 길이의 대도.
놀랍게도 그 무기는 7대 마화기 중 하나였다.
>>용마검이 또 다른 마화기를 발견했습니다.
>>발견된 마화기에게 부여된 이름은 ‘참살마도’입니다.
>>참살마도는 격이 높은 용마검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참살마도가 미소마궁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7대 마화기 중의 하나인 참살마도.
그것이 유대룡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무기로군요.”
“네놈이 지닌 미소마궁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지.”
메시지의 내용대로 유대룡은 한수호가 미소마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미소마궁을 꺼내 들길 원합니까?”
“그래야 승부를 빨리 낼 수 있을 테니까.”
“미소마궁이 없어도 원하는 걸 이뤄드릴 수 있습니다.”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 위로 세 번째 검을 소환시켰다.
번들거리는 검은빛으로 가득한 50센티 길이의 그건, 바로 나샬검이었다.
라뮬과 그랑은 양손에 거머쥐고, 머리 위에 나샬을 둥실 떠올린 한수호는 서서히 마나력을 온몸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주변의 땅이 한수호가 일으키는 마나의 진동에 뒤흔들리자 돌가루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유대룡 쪽도 마찬가지.
그도 참살마도를 굳게 거머쥔 채 온 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의 좌우에 선 두 마공사들 또한 더는 눈치 보지 않고 지닌 바 능력을 모조리 끌어내 한수호를 향한 전투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꽈앙!
유대룡이 서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한수호를 덮쳤다.
약 20여 미터의 거리가 단숨에 지워졌고, 한수호의 머리 위로는 이미 참살마도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쾅!
한수호는 왼손의 그랑검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한번의 부딪침이었지만,
콰득
한수호가 서 있던 자리가 푹 꺼져 들었다.
그때, 유대룡의 두 수하가 좌우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한 사람은 마법 특성을 지닌 마공사였는지, 몸 앞에 열두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 내어 거기서 엄청난 수의 뾰족한 얼음 창을 뿜어냈다.
콰과과과과과과
벌집을 만들려고 작정한 듯, 마법진 하나에서 무려 다섯 개의 얼음 창이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한수호의 시선이 그쪽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콰지지지직
그의 몸에서 뿜어진 수십 줄기의 뇌전이 얼음의 창을 모조리 박살 내 버렸다.
반대쪽에서 달려든 사내는 한 번의 발돋움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스무 개로 늘려버렸으며, 어느 것이 실체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수호의 전신으로 검을 난도질했다.
촤좌좌좌좌좍
꼼짝없이 잘게 썰려질 것만 같은 상황.
그때, 한수호의 몸이 미끄러지듯 쭈욱 늘어나더니 사내가 만들어 낸 스무 개의 그림자 모두를 단숨에 꿰뚫어 버렸다.
즈앙
한수호의 움직임이 허공에 그려낸 푸른 궤적.
그 궤적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사내의 그림자가 수박처럼 퍽퍽 터져 나갔다. 그리고,
“컥!”
열일곱 번째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사내가 가슴을 움켜쥐며 쿵쿵 뒷걸음질 쳤다.
푸슈슈슛
움켜쥔 가슴에선 시뻘건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1분 45초 남았습니다.”
한수호는 유대룡에게만 2분을 준다고 했지, 그의 수하한테도 여유를 준다고는 말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