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삼패창 강지훈.
이프리트에서 유대룡 다음가는 지위에 있는 인물이며, 그가 지닌 마공사로서의 능력은 구천승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런 강지훈에겐 누구도 생각 못 한 비밀 무기가 있었다.
그 무기는 바로 비혼마접이었다.
7대 마화기 중 하나인 비혼마접은 구천승이 뿌려내는 엄청난 뇌전의 힘을 너무도 쉽게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한수호도 본적이 있는 혼마적창을 꺼내든 우태범.
마화기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혼마적창 덕분인지, 우태범은 최근 큰 성장을 보인 강우진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비혼마접과 혼마적창.
이 두 개의 무기가 뿜어내는 강력한 위력으로 인해 강지훈 쪽의 힘이 차츰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서은채가 델링그를 가지고 있다지만, 최부선이 어마어마한 마나로 베리어를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델링그의 저격 능력은 거의 소용이 없었다.
물론, 서은채가 지닌 바 마나를 쏟아부어 마황탄이나 빔포를 쏘아낸다면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적과 아군이 뒤섞여 정신없는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강지훈은 전황이 유리해지자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동안은 유대룡의 너무도 조심스러운 처세로 인해 답답하기만 했던 강지훈.
그런데 막상 모든 전력을 드러낸 상태로 전면전에 돌입해 보니 이프리트의 힘만으로도 적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처음부터 함정 따윈 필요하지 않았던 거야!’
유대룡이 준비한 함정들이 성공적이었다면 좀 더 쉽게 결판이 났겠지만, 모든 함정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이제 유대룡이 한수호를 죽이고, 발자크가 완전한 힘을 얻게 된다면 이프리트가 바라는 단일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체제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프리트도 인류의 멸망을 바라진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건 세계의 온전한 지배.
하지만 이프리트의 지배를 세계가 가만히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인류의 절반가량은 발자크에게 먹이로 던져줄 생각이었다.
나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조성하여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발자크는 인간을 증오한다.
이유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걸 최대의 목표로 삼는 존재다.
유대룡은 그런 발자크와 거래를 했다.
약 20억 가량의 인간을 사냥감으로 던져 줄 테니, 지구의 절반을 이프리트가 지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발자크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되찾는다는 전제하에, 유대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발자크의 힘이나 유대룡이 준비한 함정 따위가 없었어도 이프리트 자체만의 힘으로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강지훈은 이곳에 온 이프리트의 적들을 일망타진하고, 광화문에 있는 대한맹과 아카데미 세력, 그리고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마공가문이나 길드들 모두를 하나하나 굴복시키면 된다고 판단했다.
‘아들놈이 아비를 죽이려고 드는 이 상황만 아니라면 금상첨화이거늘!’
강지훈은 구천승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아들 강우진을 무섭게 노려봤다.
“어디다 한눈을 파는 거냐!”
구천승이 강지훈을 향해 뇌전을 집어 던졌다.
그의 손에서 뿜어진 뇌전이 창처럼 날아갔지만, 비혼마접의 주인인 강지훈은 너무도 쉽게 피해냈다.
비혼마접은 나비 모양의 귀걸이로, 착용자의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어 아무리 작은 기운이라고 해도 미리 그걸 감지해 내 저절로 몸을 피하게 만들어 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5미터 단위로 원하는 곳을 향해 점멸하듯 번쩍거리며 이동이 가능했고, 위험한 순간이 오면 지정해 놓은 위치로 순간이동 하는 놀라운 회피 기능도 있었다.
철저하게 회피력만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능력을 지닌 마화기.
그것이 바로 비혼마접이었다.
그래서 구천승과의 상성은 매우 나빴다.
구천승은 뇌전이라는 강력한 파괴력으로 적을 박살 내는 스타일이었는데, 강지훈은 깃털마냥 모든 공격을 회피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공격이 먹히질 않고 있었다.
강지훈은 돌아가는 전황을 보고, 이프리트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젠 굳이 피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힘으로 밀어붙여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프리트의 모든 신도여! 더 이상은 물러설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 적도들을 물리치고 우리의 목표를 쟁취….!”
강지훈이 정면 승부를 지시하는 바로 그때,
휘우우웅!
저 높은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번쩍하더니 건물들 사이에 떠올라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 발자크의 몸통에 작렬했다.
꽈아아앙!
발자크를 꿰뚫은 빛은 비스듬한 방향으로 건물을 파고들었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초정밀 아크로까지 관통해 버렸다.
퍼어어어엉!
퍼벙! 펑펑!
하나가 터지자 다른 아크로들도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발자크의 에너지 흡수율이 99%까지 채워진 시점에 벌어진 일.
모두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아든 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검붉은 슈트를 입고 있었으며, 몸에서는 희뿌연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내고 있었다.
머리 위에 세 개의 검을 띄우고, 왼손에는 송곳 같은 검을 거머쥔 자.
바로 한수호였다.
한수호는 건물 옥상의 끝에 내려서더니 오른손을 콱 움켜쥐었다. 순간,
쿠르릉!
처음 폭발한 아크로가 있던 장소가 무너지며 그 안에서 푸른 빛이 날아들었다.
한수호는 그 빛을 움켜쥐었다.
약 2미터 길이의 기다란 창.
그건 다름 아닌 뇌격창이었다.
콰지직. 콰직!
창에서는 끊임없이 뇌전이 튀고 있었다.
“발자크는 제게 맡기시죠. 그러니….”
한수호는 구천승을 향해 씨익 웃었다. 그리고 건물 바닥에 처박혔던 발자크가 부스스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뒷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제 마음 놓고 전력을 다하셔도 됩니다.”
한수호는 안다.
구천승과 강우진, 백윤후에 서은채까지.
모두 한수호를 걱정하느라 전력을 쏟아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혹시라도 유대룡이 한수로를 쓰러뜨릴까 봐 노심초사였다.
하지만 이제 한수호가 돌아왔다.
유대룡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한수호의 손에 쓰러졌다는 의미.
이프리트 최강자인 유대룡이 쓰러졌다는 사실은 인류 측의 사기를 크게 드높여 주는 효과를 보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적의 대장을 쓰러뜨리고 한수호가 돌아왔다!”
“잔당들을 처치하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여기저기서 힘을 북돋아 주는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대규모 전투에서 사기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리 승기를 쥐고 있다 해도 사기가 떨어지면 단숨에 전황을 역전당할 수 있었고, 패색이 짙은 상황이라도 사기가 오르면 승기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한수호의 등장은 이프리트의 사기를 저하시킨 반면, 인류 측의 사기를 크게 상승시켰다.
그로 인해 주춤거리며 밀리고 있던 전황이 한 번에 뒤집어졌다.
“감히 인간 따위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발자크가 눈을 치켜뜨며 한수호를 향해 일갈했다.
아크로의 에너지를 흡수해서인지 발자크가 몸에서 뿜어내는 기운은 한층 더 무시무시해졌다.
“어디서 몬스터 따위가!”
한수호는 똑같은 말투로 되받아치며 발자크의 변화된 능력치 정보를 훑었다.
[신체외적능력] : 42,500/99999
[신체내적능력] : 1,512/9999
[마나] : 630,000/999999
말도 안 되게 높아진 능력.
한수호는 초인화 두 배를 사용한 자신의 능력치와 빠르게 비교해 봤다.
[신체외적능력] : 9,600/99999
[신체내적능력] : 720/9999
[마나] : 150,000(+3,500)/999999
[육체한계치] : 3/15
비교 자체가 힘들 정도로 차이가 크다.
물론 초인화를 다섯 배 이상으로 높이고 괴인혈에 라그나로크까지 사용한다면 얼추 비슷한 수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발자크도 특성이나 마법 능력을 사용하게 될 테니 다시 차이가 벌어지는 건 한순간이리라.
‘아무래도 혼자서는 힘들겠지?’
발자크는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당차게 외쳤지만, 애초부터 혼자서 발자크를 상대할 생각은 아니었다.
혈마 신유나 권존 김무성, 아니면 대한맹주 서한광이라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아무 고민 없이 그들과 함께 발자크를 상대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지금 광화문의 악몽급 게이트를 처리하는 중이라 이곳에 올 여유가 없었다.
‘케이시라도 불러들여야 하나?’
대적룡 볼케스.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이곳으로 와달라고 한다면 몇 초 안에 포탈을 열고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악몽급 게이트의 2단계, 3단계 웨이브가 걱정이었다.
스승 구천승은 강지훈을 상대해야 했고, 송혁이나 다른 마공사들은 발자크와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한수호는 잠시 자신과 손발을 맞춰 발자크와 싸워줄 조력자가 없을까 고민했다. 그때였다.
“그렇군. 머뭇거리는 걸 보니 네놈…. 아직은 그걸 이뤄내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흐흐흐.”
발자크가 또 이상한 소릴 지껄인다.
“너 나 알아? 왜 자꾸 친한 척인데?”
“크크큭! 재미있군, 재미있어. 네놈이 날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있을 줄이야. 뭐, 상관은 없지. 아스루나의 인류를 멸망시켰듯, 이곳 지구의 인류도 곧 내 손에 멸망할 테니까. 크하하하!”
갑자기 발자크의 등에서 검은 날개가 확 튀어나왔다.
갑주를 뚫고 나온 날개가 펄럭이자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 옥상의 끝에 서 있는 한수호와 같은 위치에서 마주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대략 30여미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발자크는 어느새 손에 크고 기다란 모닝스타를 들고 있었다.
“네놈을 위해 특별히 무기를 사용해 주지. 모든 마화기를 거느리기 위해 만들어낸 무기, 철혈의 모닝스타를.”
부우웅
발자크가 모닝스타를 휘돌리자 묵직한 파공음이 흘러나오며 공기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철혈의 모닝스타.
발자크를 대표하는 무기이자, 7대 마화기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최강의 무기였다.
이 모닝스타엔 발자크가 직접 부여한 강력한 능력이 4개나 깃들어 있었다.
반경 20미터에 10G나 되는 압력을 가하는 중력장을 비롯해, 모닝스타에 박힌 가시들을 이기어검처럼 날려 적을 고슴도치로 만드는 가시 지옥, 모닝스타 주인의 신체를 전투에 알맞게 변형시켜 주는 최적화 능력, 그리고 모닝스타 자체가 강력한 갑주가 되어 방어력과 공격력을 몇 배나 높여주는 갑주화 능력까지.
발자크가 철혈의 모닝스타를 꺼내 들었다는 건, 한수호를 적수로 인정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의 내가 저질렀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 네놈을 확실히 죽여주마.”
쿠화아아아아악!
발자크의 온몸에서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마기가 터져 나왔다.
용솟음치듯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은 백여 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드레이크들이 크게 휘청였고, 건물 아래에서 특무부 요원들과 전투 중이던 몬스터들과 좀비 떼까지 우수수 쓰러졌다.
그만큼 발자크의 마기는 강력했다.
그런 발자크를 바라보는 한수호는 겁을 먹기는커녕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놈의 시선을 잠시만 끌어주면 승산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한수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오히려 발자크를 해치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정면 승부는 어리석은 선택이고, 승산도 크게 없는 방법이었다.
설사 발자크를 상대하기 위해 이곳의 모든 마공사들이 힘을 모아 싸운다 해도 이쪽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을 터.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장 확실하게 발자크를 처치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때, 우태범이 불러낸 좀비 떼들이 주인을 대신하여 적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 주며 주인에게 공격할 틈을 만들어 주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육체가 산산이 부서져도 온몸으로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좀비들.
조력자로서 이보다 훌륭한 조건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만약, 이런 좀비들이 생각을 할 수 있고 협동체제를 구축할 정도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가히 최상의 조력자였다.
한수호에겐 그런 조력자가 이미 존재했다.
‘사령마!’
죽은 자의 영혼을 되살려 수호신처럼 부릴 수 있는 한수호만이 지닌 능력, 사령마 개조.
지금까지는 의식적으로 사령마 사용을 거부해 왔지만, 지금은 윤리와 도덕을 따질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한수호는 생각과 동시에 개조 특성의 최종 단계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정말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가 등장했다.
>>사령마로 개조를 원하는 대상을 선택하세요.
-유대룡(유대감 95%)
-이찬수(유대감 2%)
-배동혁(유대감 2%)
-사이클롭스(유대감 1%)
-케톨톡(유대감 1%)
-라이칸즈(유대감 1%)
…
..
사령마로 개조가 가능한 영혼은 상당히 많았다.
좀 전에 한수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유대룡을 시작으로 그의 수하로 보이는 두 사람, 그리고 많은 몬스터들이 사령마 목록에 존재했다.
사령마 하나를 소환하는데 필요한 마나는 5천.
한수호가 지닌 마나력이면 최대 30개체까지 사령마를 부릴 수 있었다.
‘약한 사령마는 굳이 소환할 필요가 없지.’
그리고 유대감이 낮은 사령마도 필요 없었다.
지금 한수호에게 필요한 건, 강력하면서도 한수호와 유대감이 깊은 사령마였다.
이미 황가련이라는 사령마가 있긴 하지만, 그녀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다면 유대룡이 적격이었다.
최대의 적으로 마주했던 유대룡이지만, 이전 삶에서는 제2의 아버지로 여겼던 인물이기에 유대감이 무려 95%나 된다.
한수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령마로 유대룡을 선택했고, 마나력 5천의 사용을 허락했다. 순간,
우우우우웅
옥상 한쪽에서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와 마법진을 형성하더니 그 위로 유대룡의 모습이 유령처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