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갑자기 유대룡이 마법진 위로 등장하자, 모든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발자크의 놀라움은 누구보다 컸다.
발자크는 유대룡이 죽었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죽은 유대룡이 멀쩡한 모습으로 홀연히 나타났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한수호는 사람들의 놀라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소환된 사령마에게 ‘유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유대룡이 사용했던 참살마도를 유룡의 의탁처로 지정해 주었다.
-오랜만이구나, 수호야. 이런 모습으로라도 널 도울 수 있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널 위해 최선을 다하마.
지금의 유대룡은 이프리트의 수장이 아닌, 한수호를 자식처럼 키워주었던 제2의 아버지였다.
유대감 95%라는 수치가 말하듯, 사령마가 지닌 영혼은 한수호와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
회귀 전의 유대룡도 분명 다른 목적을 위해 한수호를 키워준 것이겠지만, 사령마는 오직 좋은 기억만을 지닌 채 소환된 것이다.
한수호는 사령마 유룡을 바라보며 씁쓸해했다.
‘이토록 자상한 분이셨는데….’
이 자상함도 사실은 거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빠르게 상념을 털어내고 첫 번째 사령마인 가련까지 소환했다.
“가련.”
-네, 수호님.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유룡 옆에서 스르륵 떠오른 사령마 가련.
그녀는 한수호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한수호는 개인적인 감정은 잊고, 가련과 유룡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사령마라는 존재는 생전의 능력 50%에 사령마 주인의 능력 50%를 합친 힘을 갖게 된다.
가련은 염의 마녀였던 만큼 생전의 능력이 꽤 높았던데다가 한수호의 능력치 버프까지 받게 되면서 3만 8천이 넘는 엄청난 마나를 소유하게 됐다.
그건 유룡도 마찬가지.
생전의 기본 마나력이 11,800이나 되었던 유대룡의 능력치에 한수호의 능력 버프가 더해지니 4만 3천의 마나를 소유한 막강한 사령마가 탄생한 것이다.
가련과 유룡.
두 사령마의 등장에 발자크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대룡과 똑닮은 존재가 엄청난 마나를 지니고 나타난 것도 모자라 그와 버금가는 마나력을 소유한 젊은 여인까지 등장했다.
그냥 두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발자크는 곧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투학
날개를 펼치며 한수호를 향해 쏘아진 발자크.
그의 움직임은 실로 눈부시게 빨랐다.
인간을 아득하게 초월한 상태였기에 궁급의 마공사라 할지라도 발자크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모든 걸 볼 수 있었다.
뒤로 물러나며 가련과 유룡으로 하여금 발자크를 막게 했다.
그사이 진.용마검을 소환해 손에 쥐었고 용의 박동을 사용해 마나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가련에겐 뇌격창을, 유룡에겐 참살마도를 넘겨준 한수호.
그들이 발자크가 휘두르는 철혈의 모닝스타를 전력으로 막아내는 사이, 한수호는 초인화를 7배까지 단숨에 뻥튀기시켰다.
푸화아아아아아악!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몇 배로 강력해졌고, 이제는 더 이상 땅에 발을 디디고 설 필요가 없어졌다.
발자크처럼 허공에 떠오른 한수호.
-육체한계치: 9/15
초인화 7배로 인해 육체한계치는 단숨에 9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했다.
한수호는 초인화 7배의 상태에서 괴인혈 3단계까지 발동시켰다.
쿠과과과과과과!
한수호의 온몸이 황금빛으로 휘감기더니 용의 비늘로 뒤덮였다.
등에서는 날개가 돋아났고 이마엔 두 개의 뿔이 솟아 나왔다.
용마족.
한수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용마족으로 변신했다.
-육체한계치: 13/15
거의 한계치까지 오른 수치.
한수호는 길게 끌지 않고 이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후우우웅. 후우우우웅.
손에 쥔 진.용마검이 무섭게 박동하며 한수호가 뿜어내는 모든 힘을 검 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모든 걸 한 호흡에 펼쳐낸다!’
한수호는 용형4식의 구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하며 천천히 발자크를 향해 다가섰다.
한수호가 가련과 유룡에게 발자크를 상대하게 한 시간은 불과 10여 초.
하지만 그사이에 가련과 유룡의 상태는 처참하게 변했다.
가련은 다리 하나가 날아간 데다가 허리까지 기형적으로 꺾인 상태였고, 유룡은 두 팔이 잘리고 머리가 움푹 파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령마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발자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그때, 한수호의 음성이 그들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수고했습니다. 이제 물러가 쉬세요.’
그 말이 전해지자마자,
스르륵
가련과 유룡 사령마는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발자크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던 사령마가 갑자기 사라진것에 크게 분노했다.
대마왕이라고 불리는 자신을, 철혈의 모닝스타까지 소환해 사용하고 있는 자신을 십여 초나 묶어두다니.
발자크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한수호가 더할 나위 없이 증오스러웠다.
“더 이상 자비를 바라지 마라!”
발자크는 흉신악살과 같은 얼굴로 철혈의 모닝스타를 꽉 움켜쥐었다.
쿠오오오오오오
발자크도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또한 한수호가 뭔가 강력한 공격을 펼치기 위해서 사령마로 시간을 벌었다는 걸 알기에 자신도 최강의 기술을 펼치기로 한 것.
한수호와 발자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콰과과과과과과
후아아악. 후아아악!
모두가 전투를 멈추고 물러났다.
하늘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고니도 더는 드레이크들을 사냥하지 않고 멀리 자리를 피했다.
새파란 빛으로 둘러싸인 한수호와 피처럼 붉은 빛을 뿌리는 발자크.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두 존재가 20미터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영역 전개.’
한수호는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영역 전개 특성까지 발동시켰다.
촤아아아앙
푸른 마나의 파동이 주변을 삽시간에 훑고 지나갔다.
발자크의 머리 위로 마름모 꼴의 표식이 생겨났고, 그걸 확인한 한수호는 지체없이 모든 특성을 발동시켰다.
‘쇄혼. 이기어검. 내가중수!’
이미 한계에 근접한 상황에서 강력한 특성들이 한꺼번에 발동되자,
휘우우우웅!
눈부신 빛무리가 한수호를 뒤덮었고,
-육체한계치: 14/15
육체한계치 또한 한 단계 더 상승했다.
한수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 한번에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뇌룡아. 명왕초패기!’
푸화아아악
한수호의 몸에서 더욱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 순간,
-육체한계치: 15/15
결국 육체한계치가 최고조에 달했다.
‘크윽!’
인간을 초월한 육체로도 이 모든 힘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던 걸까?
한수호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을만큼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것이 끝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다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마지막은….’
입에 피까지 머금은 한수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능력은,
‘뇌신기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스승 구천승에게 전수받았으며, 한수호 스스로가 더욱 심화시킨 능력 뇌신기.
한수호는 뇌신이라도 된 듯 온몸에 벼락의 힘을 두르기 시작했다.
콰지직! 콰지지지직!
사방으로 뻗어나간 벼락이 건물을 때리고, 몬스터들의 몸에 작렬했으며, 흐느적거리는 좀비 떼의 한 가운데에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광!
벼락의 힘은 모든 걸 소멸시켰다.
닿는 즉시 존재를 지우며, 뇌신이 천벌을 내리듯 악을 처단했다.
그때, 발자크가 먼저 움직였다.
츠아아아아아앙
공간을 꿰뚫듯이 날아간 발자크가 한수호를 향해 모닝스타를 내리쳤다.
그저 번쩍했을 뿐인데, 발자크의 모닝스타는 이미 한수호의 머리를 쪼개가고 있었다.
한수호는 천지를 가를 듯이 떨어져 내리는 모닝스타에 대항하기 위해 진.용마검을 힘껏 올려 쳤다.
두 무기가 허공에서 충돌한 순간,
쩌어어어어어어엉!
충돌 지점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을 뒤덮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충격파는 모든 걸 부숴버렸다.
특무부 본부 건물을 비롯해, 주변의 크고 작은 건물들까지 모조리 그 충격파에 휩쓸려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만약 건물 옥상에 있던 사람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지 않았다면 그들까지 그 충격파로 인해 가루가 되고 말았으리라.
충격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용마검으로 모닝스타를 올려친 한수호의 몸이 얇은 막으로 휩싸이는가 싶더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하얀 입김이 육체와 용마검을 단숨에 뒤덮었다.
시작식 용의 비늘과 숙련식 용의 숨결을 거의 동시에 발현시킨 것.
두 가지 초식으로 발자크의 모닝스타에 담긴 무지막지한 파괴력에 의한 충격파를 완화시킨 한수호.
곧바로 세 번째 초식인 명인식 용의 폭주를 발현시켰다.
쿠화아아아아악!
용마검에서 아홉 마리 용의 머리가 튀어나와 발자크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용의 포악함에 놀란 발자크가 뒤로 몸을 빼려는 순간,
크허어어어엉!
이번엔 검은용이 쏜살같이 튀어나오더니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아홉 용의 머리와 검은 용의 막강한 힘을 막아내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때, 발자크를 향해 섬전처럼 그어지는 한 줄기 빛이 있었다.
빛은 엑스자 형태로 공간을 갈랐고, 입을 쩍 벌린 드래곤의 형상이 되어 그대로 발자크의 정면에 작렬했다.
콰르르르르르릉!
명인식 용의 폭주 마지막 기술인 격룡
발자크는 격룡을 막아내긴 했지만 충격에 튕겨 하늘 높이 날려졌다. 그때, 최후의 공격이 이어졌다.
‘초월식 용의 권능!’
한수호는 양손으로 쥔 용마검을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리그었다.
촤아아아아아악!
용마검에서 파란 검기가 초승달 모양으로 확 뿜어져 나왔다.
세상을 두쪽낼 것 같은 기세로 날아간 검기는 발자크의 몸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푸확!
핏물이 튀었다.
허공으로 발자크의 팔과 다리가 날아올랐다.
꽈과과과과과과과광
실 끊어진 연처럼 날다가 건물 두 개를 관통하며 바닥에 처박힌 발자크.
와르르 무너지는 건물의 모습에서 발자크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조금도 없어보였다.
“하악…. 학…..”
한수호는 폐허가 되버린 잔해 위에 내려서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저 숨만 쉴 뿐인데 입에서 핏물이 주르르 흘러 나왔다.
오버히트.
육체한계치를 넘어서는 힘을 사용한 탓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초인화와 괴인혈의 힘은 오버히트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고,
한수호의 온몸을 휘감고 있던 찬란한 빛도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런…. 제길.”
더 이상은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모든 것을 이 한 번의 공격에 쏟아부었기에 다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이 공격에도 발자크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때,
와르르르르
발자크가 처박힌 곳의 잔해가 무너져 내리며 핏물로 가득한 존재가 일어섰다.
그건 다름아닌 발자크였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존재의 재등장에 한수호는 숨이 턱하고 막혔다.
“크아아아아아!”
발악과도 같은 울부짖음을 토해낸 발자크는 지옥의 겁화처럼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한수호를 노려봤다.
그의 왼팔과 왼다리는 깨끗하게 잘려 나간 상태.
이제 평범한 공격 한 번만 더 가하면 발자크도 막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날…. 이렇게나 몰아붙이다니. 흐흐. 과연 과거의 내가 네놈에게 당할 만했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던 발자크가 갑자기 몸을 웅크리더니 혈관이 불룩거릴 정도로 힘을 끌어모았다.
“봉인구에 갇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아느냐?”
발자크의 눈빛이 핏빛에서 암흑으로 순식간에 물들었다.
그리고 잘려 나간 팔과 다리의 절단면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푸확!
푸화악!
팔과 다리가 튀어나왔다.
언제 잘려 나갔냐는 듯 멀쩡하게 되돌아온 육체.
발자크는 재생된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바로 초재생이다. 네놈을 지옥으로 밀어 넣기 위해 내가 준비한 반전의 카드란 말이다. 크하하하하!”
발자크는 광소를 터뜨리며 한수호를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