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하….”
한수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걸 쏟아부어 간신히 발자크의 육체를 갈라냈는데, 초재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이 결과를 뒤집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한수호에겐 더 이상 발자크를 상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사용한 탓에 그의 육체엔 한 줌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크크큿.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 온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씨를 말려버리고 말 테다. 아스루나는 내 원대한 목표의 첫걸음일 뿐. 이제 너의 죽음을 시작으로 지구의 모든 인간은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발자크는 이미 승리를 쟁취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의 외침에 한수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절대 포기는 없었다.
설사 발자크의 손에 온몸이 찢겨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심장이 터질 때까지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서.’
한수호가 각오를 다지며 진.용마검을 꽉 움켜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링.
>>용형4식을 한 호흡에 펼치는데 성공하여 히든피스가 발동합니다.
-히든피스: 종결식 용의 신갑.
난데없는 메시지가 등장하더니,
콰직
진.용마검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렇게 부서진 수천, 수만의 조각들이 한수호의 온몸에 달라붙어 무언가의 모습으로 재조합되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차륵.
재조합을 마친 모습에 한수호 본인도 무척이나 당황했다.
온몸이 갑주에 둘러싸여 있었다.
태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갑주.
황금 갑주에 휩싸인 순간 사라졌던 힘이, 깨끗이 증발했던 마나력이 모조리 되돌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투확! 퉁. 투퉁!
한수호의 인벤토리 속에서 네 개의 검이 스스로 튀어나왔다.
라뮬. 그랑. 나샬. 로크.
이 네 개의 검은 스스로의 힘으로 진화체로 모습을 변형시켰다.
라뮬은 중앙이 비어있는 커다란 대검인 ‘라’의 블레이드로.
그랑은 대검의 손잡이 형태인 ‘그’의 그립으로.
나샬은 기다란 비늘검의 모습인 ‘나’의 가드로.
로크는 회오리치는 송곳 검, ‘로크’의 코어로.
네 개의 무기가 한수호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하나로 합쳐졌다.
블레이드에 그립이 끼워졌고, 그 위를 가드가 덮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어있는 블레이드의 중앙에 코어가 정확하게 끼워졌다. 그 순간,
파아아아아아아앗-
태양처럼 강렬한 빛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더니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대검이 새롭게 탄생했다.
검 역시 눈부신 황금색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떠 있는 검을 거머쥔 한수호.
그의 머릿속으로 검에 대한 정보가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천왕검 라그나로크]
-황금의 기사가 아스루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최종 병기입니다.
-모든 능력을 10배로 증폭시킵니다.
-육체의 한계를 두 배로 증폭시킵니다.
-생명력을 두 배로 증폭시킵니다.
-마나를 소모해 검이 지닌 특수 능력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소모 마나력: 1,000,000
천왕검 라그나로크.
이것이 바로 라그나로크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무기.
한수호는 용의 갑주에 이은 천왕검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신체외적능력] : 47,000/99999
[신체내적능력] : 3,500/9999
[마나] : 740,000(+35,000)/999999
[육체한계치] : 1/30
눈이 휘둥그레진다.
과연 이런 수치가 가능한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황금기사로 변하고 황금빛 대검을 거머쥔 한수호의 모습을 본 발자크 또한 경악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네가…. 네가 결국 그걸 얻어내다디! 흐…. 과거는 그대로 되풀이 된다는 건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발자크.
그는 뭔가를 결심한 듯 한수호를 바라보며 다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모든 게 똑같이 반복된다고 해도, 이번엔 다를 것이다. 과거의 내가 가지지 못했던 특별한 능력을 지금의 나는 가지고 있다.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지닌 힘이 몇 배는 강하단 말이다!”
발자크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더욱 거칠어졌다.
발자크가 다시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초재생을 통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발자크의 능력치는 처음보다 더욱 상승해 있었다.
[신체외적능력] : 72,000/99999
[신체내적능력] : 4,200/9999
[마나] : 910,000/999999
용의 갑주와 천왕검으로 능력치가 폭증한 한수호보다도 훨씬 더 높아진 상황.
이것이 발자크가 말한 특별한 능력인 듯했다.
‘끔찍하군.’
정말 끔직할 정도로 높은 능력치였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한수호 또한 모든 능력이 되돌아왔으니까.
‘초인화. 괴인혈!’
푸화아아아아아악!
한수호의 몸에서 다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인화 10배에, 괴인혈 3단계까지 단숨에 최강의 특성을 사용해 모든 능력치를 최고치로 증폭시켰다.
그 결과 한수호의 능력치는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았다.
[신체외적능력] : 99999/99999
[신체내적능력] : 9999/9999
[마나] : 999999/999999
[육체한계치] : 25/30
하지만 한수호는 이걸로도 부족하다 생각했다.
‘천왕검이 지닌 특수 능력을 개방시켜야 해!’
특수능력을 개방시키기 위한 마나력은 무려 백만.
그런데 한수호가 지닌 마나의 최고치는 99만이었다.
지금 상태로는 무슨 방법으로도 백만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때, 한수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거의 잊고 있었던 세계수의 조각들.
그중 세계수의 뿌리를 통해 알게 된 정보에는 분명 이런 문구가 있었다.
-정해진 운명의 그릇을 깨뜨리고 새로운 그릇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세계수의 조각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내용을 떠올린 즉시, 한수호는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던 세계수의 조각 세 개를 모두 소환시켰다.
세계수의 씨앗.
세계수의 잎.
그리고 세계수의 뿌리.
한수호가 그 세 가지 보물을 한 손에 쥐었을 때였다.
>>세계수의 조각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상태로 이뤄낼 수 있는 기적은 제한적입니다.
>>원하는 기적을 떠올리면 당신의 운명에 따라 기적이 이루어질 수도,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진위 여부를 따지고, 이유를 분석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한수호는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기적을 생각했다.
그것은 마나력의 한계치를 백만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한수호가 그 기적을 정확하게 머릿속으로 형상화 시켰을 때,
>>운명의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메시지가 떠올랐고, 잠시 후.
>>운명의 주사위가 멈춰 섰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기적은….
>>이루어 집니다.
기적은 이루어졌다.
[마나] : 999999/1000000
한계치가 정확히 1이 증가해 백만 마나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실제 마나력은 여전히 99만.
이걸 백만으로 높일 방법은 하나였다.
한수호는 손에 쥔 세계수의 조각 중, 세계수의 잎을 입으로 가져갔다.
세 개의 잎 중 두 개는 인벤토리에 그대로 남겨진 상황.
잎은 입안에 넣는 즉시 솜사탕처럼 녹아 목구멍으로 넘겨졌다.
시원한 청량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
[마나] : 1000000/1000000
드디어 마나력 백만이 꽉 채워졌다.
바로 그 시점에 발자크가 웅크렸던 몸을 펴며 한수호를 응시했다.
흥분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검게 번들거리던 눈동자는 평소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없음을 깨달은 한수호.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 한수호는 초감각을 사용해 시간의 흐름까지 늦춰버렸다.
주변의 시간이 거의 멈춰버린 듯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하자, 한수호는 서둘러 할 일을 시작했다.
그는 빠르게 백만의 마나력을 투입해 천왕검에 담긴 특수 능력을 개방시켰다.
>>천왕검의 특수 능력이 개방됩니다.
>>특수 능력 ‘운명 가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수 능력 사용에 필요한 포인트는 ‘100,000,000LP’ 입니다.
‘1억 포인트?’
이어지는 메시지를 본 한수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마나 대단한 특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사용하기 위한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하지만 발자크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무조건 해내야 했다.
한수호는 현재 보유한 포인트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341NP / 24,200,000LP
‘거의 8천만이나 부족해.’
지금 당장 어디서 8천만 LP를 충전시킬 수 있을까?
침묵의 협곡이나 증명의 탑, 혹은 발자크의 파편이라도 처리하지 않는 이상은 8만이나 되는 포인트를 채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족한 LP를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건 바로 특성 분해.
한수호에겐 약탈[3] 특성이 있었고, 이 특성에는 약탈한 특성을 분해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이미 유대룡과 두 수하에게서 약탈한 특성을 분해해 2천만이 넘는 포인트를 얻었다.
문제는 ‘약탈한 특성’이라는 조건이 어느 선까지 인정이 되느냐였다.
한수호는 의문은 뒤로하고 우선 분해할 특성부터 추렸다.
그가 지닌 특성은 총 21개.
이중 발자크를 상대로 크게 소용이 없거나 마나회로를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어 특성이 없는 채로도 발동이 가능한 것들을 분해의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그 대상에 해당하는 특성은 8개였다.
얼음불, 이기어검, 내가중수, 체질개선, 공간조작, 뇌룡아, 정신조작, 심리분석까지.
한수호는 얼음불부터 분해를 시도했다.
>>특성 ‘얼음불’을 분해합니다.
>>분해 가능 여부를 확인합니다….10%
시스템에서 분해 여부를 판독하기 시작했고, 금방 결과가 나왔다.
>>분해 가능 여부 확인 완료.
>>분해가 가능하여 분해를 진행합니다….12%
>>분해 완료.
-분해 후 획득 포인트: 6,000,000LP
얼음불 특성은 한수호 스스로가 각성해낸 특성이었지만, 놀랍게도 분해가 가능했다.
어쩌면 세계수의 조각을 통해 발생한 기적의 효과가 아직 끝나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당신이 바라는 기적은…. 이루어집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문구들.
한수호는 분해를 바랐고, 그 기적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성 ‘이기어검’을 분해합니다.
>>분해 가능 여부를 확인합니다….10%
다시 판독이 이어졌고, 이번에도 분해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분해 후 획득 포인트: 10,000,000LP
단 두 번의 분해로 2천만 포인트를 얻어냈다.
0티어 특성인 버닝 소울도 분해 후 나온 포인트가 1천8백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
한수호가 이런 의문을 가졌을 때,
>>분해 후 획득하는 포인트는 소유자에게 해당 특성이 얼마의 값어치를 지녔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마치 한수호의 의문에 대답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깜짝 놀란 한수호.
일방적인 통보식으로만 메시지가 나타나다가 갑자기 소통하듯 대답이 나오자 한수호는 다른 질문을 떠올려 봤다.
‘네 정체는 대체 뭐지?’
하지만 이번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수호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절대 믿지 않는다.
방금 전 시스템이 답변을 준 건 절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단지 선택적으로 대답을 했을 뿐.
어쨌든 소통이 가능한 유형의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한수호가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드디어 발자크가 움직였다.
천왕검의 특수 능력을 개방시키고, 특성 두 개를 분해해 포인트를 획득하기까지 걸린 실제 시간은 불과 2초.
그런데 발자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초감각으로 느려진 세상이 단번에 깨지고 말았다.
발자크의 힘은 한수호가 구현한 초감각의 세상조차 찢어발길 정도로 공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