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353화 (353/375)

353화

모든 걸 끝낸 한수호.

그는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월의 조각을 챙기고 있었다.

한수호의 표정엔 거대한 적을 쓰러뜨렸다는 흥분이나, 마침내 모든 걸 끝냈다는 성취감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지금 자신을 위해 희생한 월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할 뿐.

‘이건…?’

한수호의 눈에 반짝이는 동그란 물체가 보였다.

그건 월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던 주먹만 한 ‘아크로’였다.

몸통이 폭발하면서 아크로까지 튀어나온 모양인데, 신기하게도 아크로에는 아직 빛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작동이 멈춘 게 아니라는 의미.

한수호는 서둘러 아크로를 집어들었고, 그걸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제 어쩔 것이냐?”

어느새 구천승이 다가와 한수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천승을 비롯해, 송혁과 이산 등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공격성을 잃고 그저 우두커니 서서 한수호만을 바라보고 있는 2만 5천의 괴인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괴인들 대부분은 시민들이 M바이러스를 주입해 변하게 된 키이라였다.

이프리트가 와해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들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그들을 막으려 했었지만, 이젠 모든 게 끝났으니 이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었다.

다행인 점은, 발자크가 죽고 이프리트의 잔당이 모두 처리된 직후부터 키이라들의 공격성이 깨끗하게 사라졌다는 것.

“제가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 저 사람들…. 이제 어떡할 거죠?”

한수호는 지친 듯 폐허가 된 건물 잔해 위에 걸터 앉으며, 오히려 구천승에게 되물었다.

방금 전, 구천승은 광화문 게이트에서 연락을 받았다.

악몽급 게이트의 웨이브가 드디어 멈췄다고.

이미 세 차례에 걸친 웨이브로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래도 끝내 웨이브를 막아냈으며 더 이상은 몬스터를 토해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의 처리였다.

“글쎄다.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 번 키이라가 되면 다시 인간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 알지 않느냐? 그러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배시키거나, 최악의 경우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실험체로 전락하겠지.”

“그것도 아니면 몰살될 테고요.”

한수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몇 백이면 모를까,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을 국가에서 모두 살려둘 리가 없다는 것을.

한수호는 잠시 고민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프리트와 새한교의 손에 놀아나다가 키이라로 변하게 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영역전개로 이프리트의 잔당들을 모두 죽여버린 직후, 한수호 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그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키이라들이 주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싶어합니다.

>>한 번 주인이 되면, 새로운 주인을 찾기 전까지 키이라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주인이 되어 이들을 이끌겠습니까? YES/NO

쉽게 결정하기 힘든 선택.

주인이 되기는 쉽지만, 주인으로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올바로 이끄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걸 한수호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이들의 미래까지도 책임져야 해.’

그렇다고 주인이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면 2만 5천의 목숨이 그대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

그때, 한수호의 공법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한성찬이었다.

한수호는 구천승에게 양해를 구하고 형의 전화를 받았다.

“어, 형.”

-야, 한수호! 그 미친 발자크를 쓰러뜨렸다는 게 사실이냐? 너도 죽을 뻔했을 정도로 위험했다며?

한성찬은 벌써 이곳의 소식을 전해 듣고 한수호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런데 거의 죽을 뻔한 상황까지 경험했던 한수호에게 ‘미친 발자크’라는 호칭은 왠지 모르게 가볍게만 느껴졌다.

“그렇긴 한데, 이렇게 살았으니 된 거지. 그쪽도 잘 해결됐다는 소식은 들었어.”

-그래. 천만다행이지. 설아 녀석도 무사하니 아무 걱정 말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무슨 이상한 일?”

모든 게 끝난 시점에 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까?

이젠 이상하다는 말만 들어도 깜짝 깜짝 놀라는 한수호였다.

-서한광 맹주가 게이트를 폐쇄하려고 정예 요원들하고 광화문 게이트에 들어가려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불가능? 게이트에 진입을 못 한다는 거야?”

-어. 게이트가 닫힌 건 아닌데, 진입을 거부하고 있어. 아무래도 네가 와서 좀 봐야할 것 같다.

“내가? 나도 지금 여기서 해결할 일이 좀 있는데….”

-그럼 그쪽 일부터 해결하고 와라. 일단은 신소이 아버지가 확인 중이니까 뭐가 문제인지 곧 알 수 있겠지.

신소이 아버지면 혈마 신유다.

그가 나섰다면 분명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터.

“알았어. 나도 최대한 빨리 가 볼게.”

한수호는 통화를 끊고 광화문 쪽 상황을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몇몇은 이미 광화문의 소식을 접했는지, 한수호보다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서은채가 그중 하나였다.

“아빠가 그러는데, 다른 건 다 게이트 통과가 가능하지만 딱 사람만 통과를 못 하고 있데.”

“사람만? 정말 이상하네.”

한수호도 궁금증이 커졌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2만 5천의 키이라들을 어떻게 할 건지부터 결정하지 않고는 여길 떠날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거의 90% 이상이나 소모되버린 마나력을 회복하고, 몸에 생긴 상처들을 상처회복 특성으로 재생시키는 한편 키이라들을 어찌할지를 고민했다.

키이라들은 여전히 멀뚱멀뚱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한수호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현장을 정리하면서 키이라들이 단 한 마리라도 도망치지 못하게 주변에 단단한 장벽을 세우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수호는 방금 전, 발자크를 죽이고 획득한 물건을 인벤토리에서 꺼내들었다.

네 개의 열매.

보석처럼 생긴 그건 다름아닌 세계수의 열매였다.

[세계수의 열매(불/물/바람/벼락)]

-코스트: 150/150/150/150

-모든 생명체를 사랑과 축복으로 보듬어 주는 세계수의 본질입니다.

-열매를 먹고 ‘불/물/바람/벼락’의 화신이 되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를 소멸시킬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세계수의 조각이 하나로 합쳐질 때, 신마저 거역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암흑섬에서 발자크의 봉인이 깨질 때 소멸된 줄 알았는데 발자크가 죽고 나니 놈의 시체에서 세계수의 열매가 나왔다.

이로써 한수호는 세계수의 조각 일곱 가지를 모두 모았다.

단 세 가지만으로도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냈던 세계수의 조각들.

이 일곱 개의 조각으로는 과연 어떤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가 기대되었다.

‘저들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기적도 가능할까?’

한수호는 세계수의 열매를 꽉 움켜쥐며 2만 5천의 키이라들을 바라봤다.

잠시 후, 한수호는 인벤토리에서 다른 세계수의 조각들까지 모두 꺼내 들었다.

두 손으로 조각들을 든 채로 마나를 살짝 밀어넣자, 예상대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계수의 조각이 모두 모아졌습니다.

>>이로써 완벽한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게됩니다.

>>원하는 기적을 떠올리면 당신의 운명에 따라 기적이 이루어 질수도,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한수호는 키이라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기적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그 기적을 명확하게 떠올렸다. 하지만,

>>세계수의 기적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새로운 기적을 바란다면 세계수의 조각 또한 새로워야 합니다.

시스템은 한수호가 바라는 기적을 두 번이나 허용하지 않았다.

오직 단 한 번만 허락된 기적.

이미 발자크와의 전투에서 기적을 사용했기에 더 이상은 기적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하…. 방법이 없는 건가?’

모든 건 끝났지만,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의 죽음을, 원래는 일반 시민이었던 이들의 죽음을 방관한다면 발자크나 이프리트와 다를 게 없었다.

그때,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또 다시 공법폰이 울렸다.

그런데 한수호의 폰만 울리는 게 아니었다.

현장 정리를 돕고 있는 구천승과 송혁, 이산과 김명중 등 모두의 폰들까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한수호는 일단 자신의 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한설아?’

액정에 떠있는 이름은 장한설이었다.

“설마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

전화를 받자마자 이유부터 캐묻자 한설아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야! 넌, 내가 걱정도 안 되냐?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는 묻지도 않고 용건부터 따지네.

“형한테 소식들었으니까 그러지. 그래서, 뭔데?”

-수호, 넌 나중에 나랑 깊은 대화가 좀 필요할 거 같다. 아무튼…. 다른 게 아니라. 게이트가 좀 많이 이상해진 것 같아서 전화했어.

“또 뭐가? 게이트에 사람만 진입할 수 없다는 건 이미 들었어.”

-아니. 그거 말고. 광화문 게이트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더라고. 지구에 나타난 모든 게이트가 인간의 진입을 다 거부하고 있데. 온 세계에서 이 일로 아주 난리가 났어.

“모든 게이트가?”

이건 또 새로운 소식이다.

광화문 게이트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

-일단, 인간은 게이트에 진입할 수가 없어. 하지만 동물이나 몬스터, 혹은 물건 같은 건 통과가 된다더라. 그리고….

“그리고 또 뭐?”

-게이트 너머에서 지구로 귀환할 때는 또 완전 반대로 적용되나봐.

“반대? 그럼 아스루나에서 게이트를 통과해 지구로 귀환한 사람이 있다는 거야?”

-오, 역시 한수호네. 이해력이 빨라.

한설아의 말을 요약하면 이거였다.

인간은 지구에서 아스루나로 넘어갈 수 없지만, 아스루나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이 아니라면 지구에서 아스루나로 가는 게 가능하나, 아스루나에서는 지구로 넘어올 수 없다는 뜻.

전 세계가 악몽급 게이트며, 헬 게이트의 출현으로 난리가 났는데도 게이트를 통해 아스루나로 넘어가 있던 마공사들이 있었던 덕분에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한설아의 설명이었다.

“그럼 이제 인간은 아스루나로 갈 수 없게 된 거네.”

-그렇지. 이게 좋은 게 뭐냐면, 아스루나에 있는 몬스터들도 이젠 지구로 넘어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건 마음에 든다.”

-응. 그래서 다들 기분이 들떠 있어. 이 지긋지긋한 몬스터와의 전쟁이 이제 끝난 거라고 생각하거든. 이게 다 발자크가 쓰러진 덕분이라면서 널 아주 영웅처럼 여기던데?

“그건 좀 별로다.”

-아, 그리고. 하윤이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전해달래. 살아줘서 고맙다면서 울먹이더라. 너 죽었으면 줄초상 났을지도 몰라.

한설아의 목소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럴 만도 한게, 게이트가 더 이상 몬스터들을 쏟아내지 않는다면 크게 위험한 상황이 없어지는 것이고 언제까지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한설아.”

한수호가 갑자기 한설의 이름을 불렀다.

-갑자기 뭐야? 나 부르는 목소리가 왜 그리 부드러워? 너 뭐 잘못한 거 있냐? 아니면, 앞으로 잘못 할 일이 있다던가. 뭐, 그런 거야?

“잘못은 무슨…. 아무튼, 엄마랑 형, 그리고 별이까지 잘 좀 챙겨라.

-응? 내가 잘 챙기지 못할 일이라도 있나? 갑자기 뭔 소리야?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내 양부모님이나 뇌왕 스승님 찾아서 상의하면 될 거야. 아, 소이 아빠도 좋은 분이니까 믿어도 되고. 지평학 교수님도…. 크게 도움이 될 거다.”

-설마 너….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없다. 그러니까 아무튼…. 그냥 혹시 몰라서 그래.”

-뭔 유언장 쓰는 소릴 하냐? 야, 한수호! 너 거기서 딱 기다려. 이 누나가 당장 갈 테니까.

“됐고. 이만 끊는다. 여기 일 끝나면 다시 연락할게.”

한수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가 한설아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방금 그녀가 말한 게이트의 이상 현상 덕분에 키이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이제 지구에 있는 게이트는 인간은 통과할 수 없게 되었지만 키이라들은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아스루나에 가게되면 키이라들은 지구로 귀환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이 정도 조건이면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을 아스루나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살게 만들 수 있었다.

어차피 그들은 인간으로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이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한수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키이라들로 하여금 게이트를 통과하게 만들어야 했다.

한수호는 키이라들을 바라봤다.

오직 한수호만을 바라보는 2만 5천의 시선들.

‘결국 내가 저들의 주인이 되서 게이트를 넘어가는 수밖에.’

한수호는 자신이 직접 키이라들을 데리고 아스루나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한수호는 괴인혈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특성이면 게이트가 진입을 거부하는 ‘인간’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있으니 통과가 가능하리라.

‘일단 아스루나로 가서 저들이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면 되겠지.’

그 뒤 자연스럽게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면 되는 일이었다.

아스루나 쪽에서는 인간만이 지구로 귀환할 수 있다고 하니 문제될 건 없었다.

다만, 아스루나에 키이라들이 정착할 수 있게 동우려면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야 하기에 한설아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한수호는 곧바로 이 계획을 구천승과 송혁 등에게 전달했다.

그들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한수호를 말리려 했다.

아직 게이트가 어떤 식으로 변형된 건지 정확히 파악된 것도 아니니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시간을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모든 걸 마무리하고 지구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수호의 결심이 확고하자, 구천승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대신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귀환하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마음 같아서는 구천승도 함께 가고 싶었지만, 그는 인간의 몸이었기에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었다.

사실, 한수호가 인챈트 스톤에 괴인혈을 새겨서 익히게 한다면 누구든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두 명이 괴인혈로 게이트를 통과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그게 열 명으로, 다시 백 명으로 늘어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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