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355화 (355/375)

355화

지구에 등장했던 모든 게이트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날한시에.

마치 한수홍와 키이라들이 게이트를 건너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사라져 버린 게이트들.

그건 전 세계적으로 똑같이 발생한 대 사건이었다.

케이시는 몇 번이고 아스루나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열려고 노력했지만, 두 번 다시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인적없는 섬까지 찾아가서 대적룡 볼케스로서의 본체까지 꺼내 용언으로 게이트를 불러냈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이트는 이제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도, 다시 만들어지도 않았다.

이 일로 지구의 인류 99.9%는 드디어 재앙이 끝났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게이트로 인해 죽어나간 인명이 몇이며,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 들어간 천문학적인 비용이 얼마였던가.

드디어 게이트 시대가 막을 내렸고, 인류는 마공사들을 이용한 새로운 사업을 수립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게이트가 사라진 것을 한없이 슬퍼했다.

그 소수의 사람들은 게이트가 사라지게 되면서 귀환이 불가능해진 한수호와 서은채라는 인물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으니까.

특히 한수호와 서은채의 가족은 그 비통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여행 가듯 게이트를 넘어갔을 뿐인데, 그 길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한설아는 한수호와의 마지막 통화를 결코 잊지 못했다.

농담 삼아 ‘유언장 같은 소리’라고 했던 자신이 한수호를 그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한성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어도 한수호를 광화문 게이트 쪽으로 불러들였어야 했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서은채의 아버지는 게이트가 사라진 날부터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특무부 창고 건물을 찾아가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 몇 시간씩 서 있곤 했다.

창고에 있다 집으로 돌아온 서한광의 눈에는 늘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사실, 한수호와 서은채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비슷했다.

인류를 이프리트와 발자크의 손에서 구한 한수호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통했다.

그날 이후, 완전히 새로 조직된 특무부는 한수호와 서은채가 사라진 창고 건물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그곳에 위령비까지 세웠다.

인류를 위해, 2만 5천의 시민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영웅을 위한 위령비.

하지만 두 사람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귀환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귀환을 기다리고.

매일같이 그들의 업적을 기렸다.

그렇게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 * *

“이제 다 넘어온 건가?”

한수호는 게이트를 가만히 바라봤다.

마지막 키이라가 게이트를 통과한 이후 1분이 지나도 더 이상 넘어오는 존재가 없다는 건 2만 5천의 키이라가 모두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뜻.

그런데 끝을 알리는 케이시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의문이었다.

바로 그때,

슈우우우우욱. 파앗!

갑자기 게이트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뭐야?”

한수호는 당황했다.

이렇듯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게이트가 사라져 버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한수호는 게이트가 있던 자리를 샅샅이 훑었다.

지금까지는 게이트가 사라지더라도 흔적이 남아 한수호에게 정보를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없었다.

아무리 근처를 살펴도 게이트에 대한 정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나 여기 갇힌 거야?’

끔찍한 상상이었다.

설마 했는데 아스루나에 넘어오자마자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이야.

그때, 한수호의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시스템이 메시지를 띄웠다.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게이트가 영원히 잠겼습니다.

>>세계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두번 다시 게이트를 열 수 없습니다.

뭔가 희망적인 문구들.

‘그럼 세계수의 기적으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거잖아?’

한수호는 일단 안심했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된다.

심호흡을 하며 침착성을 되찾은 한수호.

그는 일단 키이라들부터 수습하기로 했다.

한수호는 이제야 마음에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았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 암흑섬이 맞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와본 암흑섬이지만, 전에 왔던 것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일단, 한수호가 있는 곳은 숲이었다.

울창한 숲 한복판에 게이트가 생겨난 덕분에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이 죄다 숲속에 꾸역꾸역 모여있는 상황.

한수호는 초감각의 마나 파동을 펼쳐내 주변을 탐색했는데, 전에 와봤던 대평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고, 휴화산이었던 네 개의 화산이 모두 활화산인 상태로 변했다.

게다가 이전에 왔을 땐, 있지도 않았던 거대한 호수까지.

한수호는 이 암흑섬이 전체적인 형태만 전과 같을 뿐, 구조나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발자크의 봉인이 풀리면서 변화가 생긴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변화의 폭이 너무 크다.

이렇게나 변하려면 엄청난 지각변동이 있거나 굉장히 긴 세월이 지나야 가능했으니까.

‘우선, 키이라들부터 정리하자.’

한수호는 암흑섬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뒤로 미루고, 일단 키이라들을 체계적으로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호수 근처에 넓은 평야지대가 있어서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 한수호.

거기서 한수호는 키이라들을 대형, 중형, 소형으로 분류하고 비슷한 종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런데 혼자서 2만 5천의 키이라를 통솔하려니 일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날 도와줄 녀석들부터 데려와야겠다.’

한수호는 전투 영역에 데려다 놓은 고니와 사툴란을 떠올렸다.

이제는 급한 일이 아니면, 그들을 인벤토리에 담는 건 가급적 피하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날 기다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키이라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린 한수호는 재빨리 전투 영역으로 이동했다.

전투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한수호가 향한 곳은 게이트 보관 창고였다.

단순히 한수호가 통과한 게이트만 사라진 것이라면 케이시가 얼마든지 다시 게이트를 만들 수 있으니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진입차단벽의 통로를 통해 단숨에 보관창고에 도착한 한수호.

창고 문을 활짝 열어젖힌 한수호는 텅 비어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모든 게이트가 한꺼번에 없어진 거라고?’

모든 게이트가 사라졌다는 말은, 케이시 역시 더 이상 게이트를 발생시킬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다는 건, 한수호가 다시 지구로 돌아갈 방법도 아예 사라졌다는 뜻.

이대로 아스루나에 눌러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수호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래서 이 전투 영역에 사툴란과 고니가 아닌 다른 존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수호는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너무도 복잡했다.

전투 영역 안에 현대의 문명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 모두 있긴 해도 가족과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특히, 이제 막 가족을 되찾아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던 한수호였기에 지금 이 상황은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런 한수호 앞으로 작디 작은 고니가 쪼르르 달려와 머리를 부볐다.

그리고 사툴란이 큰 그림자를 드리우며 묵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후…. 그래도 너희 둘이라도 날 따라 이곳에 와주어서 정말 다행…. 어?”

그제야 고개를 들던 한수호는 사툴란 뒤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더 나타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만큼은 초감각도 소용없었다.

게이트가 사라진 일로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 보니 이곳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오빠! 미리 말하는데, 화낼 거면 짧게 하고 끝내요. 우선 내 마음대로 오빠의 비밀 아공간에 침입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꼭 함께하고 싶었어요. 단 한 달뿐이라도요.”

큰 잘못을 하고 벌을 받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아이처럼 수줍게 말하는 사람은 바로 서은채였다.

“은채? 정말 서은채, 너야?”

한수호는 한달음에 서은채에게 달려가 그녀의 두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내가 서은채지 누구에요? 오빠…. 좀 이상하네?”

“은채야!”

한수호가 서은채의 작은 몸을 와락 껴안았다.

한수호는 감격한 얼굴이었다.

인간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세계에서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했는데, 서은채를 발견하게 되니 더할 나위없이 기뻤다.

서은채가 자신의 전투 영역을 멋대로 침입한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혼자서만 이세계에 갇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으니까.

“오, 오빠?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큰 일이라도 생겼어요?”

서은채가 벌게진 얼굴로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자 한수호는 그제야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감싸 안았던 손을 풀었다.

“미안. 네가 여기 있는 게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정말요? 제가 허락도 없이 여길 들어와서 화난 게 아니라 반갑다고요?”

“은채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한수호는 서은채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 상황부터 설명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게이트가 전부 다 사라졌고, 그로 인해 귀환할 방법이 없어졌다는 내용을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설명을 들었음에도 서은채는 그리 크게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아, 그렇구나.’하는 감탄사를 흘리며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명을 잘못이해했나 싶어 다시한번 설명해 주었지만, 서은채의 반응은 여전했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전 믿어요. 오빠라면 다시 귀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그렇게 믿다가 실망하면 어쩌려고.”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죠. 오빠랑 언제까지 이렇게 같이 지낼 수 있게 되는 거니까.”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한수호는 할 말을 잠시 잃었다.

당연히 서은채도 가족이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고, 지구의 문명을 접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한수호를 믿었고, 지금의 어려움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충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제가 뭘 도우면 되는 거죠?”

서은채는 한수호가 갑자기 전투 영역으로 되돌아온 이유가 도움이 필요해서임을 금방 눈치챘다.

이에 한수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을 혼자서는 도저히 제어하기 어렵다는 말에 서은채는 흔쾌히 이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건 고니와 사툴란도 마찬가지.

“은채야. 네가 날 따라 이곳에 와준 건 너무 고맙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의 없이 멋대로 뭔가를 하는 건 좀 자제해 줬으면 한다.”

“쳇. 고마우면 고마운 걸로 끝나야지, 뒤에 군소리는 왜 붙여요?”

“아무튼. 덕분에 혼자 할 일을 넷이서 나눌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한수호는 한시름 놓은 듯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웃음을 띨 수 있었다.

“왜 넷인데요?”

“너랑 나. 고니하고 사툴란까지 딱 넷 맞는데?”

“에이. 오빠. 2만 5천이나 되는 키이라들은 뭐 꿔다 놓은 보릿자루에요? 그중에도 오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키이라가 있을 수 있잖아요.”

“…!”

확실히 맞는 말이다.

한수호는 자신이 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게이트가 사라져 귀환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간단한 것도 파악하지 못하다니.

한수호는 이런 자신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그 모습에 서은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는 싸움에만 도가 텄지 조직이나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는 모양이네요.”

“하하…. 그런가?”

한수호도 그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서은채의 말대로 지금까지 모든 걸 혼자서만 처리해 왔고, 안 되는 건 힘으로 때려 부수기만 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수호가 머리를 긁적이자 서은채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여긴 이제 우리 보금자리로 써요. 안전을 위해서 자고 먹을 때만 사용하는 걸로. 보니까 음식은 충분할 거 같아요. 대충 5년 이상은 넉넉하게 생활이 가능할 정도?”

서은채는 벌써 아스루나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종종 사냥을 하고, 먹을거리를 챙겨서 부족한 걸 채우면 10년도 거뜬할 거예요. 그러니 마음 편히 갖고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가자고요.”

“그래, 네 말을 들으니 힘이 난다.”

한수호는 너무도 빨리 현실을 수긍하고, 바로 적응까지 해버리는 서은채가 놀랍기만 했다.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서은채의 생각이나 행동은 결코 어려 보이지 않았다.

물론 어린 소녀다운 앳된 모습도 많지만, 보기보다 어른스럽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