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암흑섬 1년 차 1일.
드디어 모든 의문이 풀렸다.
우리가 지금 와 있는 곳은 아직 발자크가 발호하기도 전인 수백 년 전의 시간대였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지만,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대였고 여기서 난 아스로, 은채는 루나로 불리기 시작했다.
케이시의 말대로 암흑섬은 반마족의 땅이 맞았다.
바알의 부족이 암흑섬에서 살고 있었고, 그들과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바알과 달리 우리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바알만 특이하게 호전적이었기에 반마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어쨌든, 반마족들은 나와 은채의 고향인 지구를 ‘아스루나’라고 불렀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이세계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반마족의 마을에 아주 조금이나마 영어를 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
여전히 의사소통은 쉽지 않았지만 그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이제보니 대영웅 아스는 나 자신이었고, 루나는 바로 서은채였다.
지구인이라는 아스가 왜 이곳에 와서 발자크를 봉인시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암흑섬 1년 차 11일.
나와 은채는 반마족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어차피 영어를 할 수 있는 반마족은 단 하나였으니, 이왕 이곳에서 살려면 한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훨씬 편했다.
반마족은 생각보다 언어 습득력이 빨랐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와 키이라들이 섬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함께 조성해 나갔다.
반마족은 기껏해야 1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능력은 하나 같이 뛰어났다.
알고보니 바알은 부족장 로른 자쿠의 아들이었다.
바알은 성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아무튼, 로른 자쿠만 해도 능력치가 궁급을 가볍게 넘어선다.
부족의 원로들이나 전사들은 하나같이 궁급 마공사 수준의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반마족이 실제로는 전투 민족이나 다름없는 능력을 지녔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대단한 종족이 수백 년 후의 미래엔 왜 멸종되어 암흑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이들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미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암흑섬 1년 차 189일.
이제는 반마족과의 의사소통이 꽤나 자연스러워졌다.
바알 녀석과도 짧은 문장이긴 해도 큰 문제없이 대화가 가능해졌다.
바알은 꽤나 총명한 아이였다.
반마족 나이로 89세였지만, 지구식 나이로는 9살 수준이다.
놀랍게도 바알은 남자아이였다.
생긴 게 너무 여성스러워서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완전 뒤통수 맞았다.
난 천성적으로 남자아이들 하고는 합이 잘 안 맞는데,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걱정이다.
암흑섬 2년 차 28일.
이곳의 1년은 지구와 똑같이 365일이었다.
이 시기의 아스루나는 문명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발달된 문명이 꽤나 많았다.
아주 가끔 섬 밖을 나서는 반마족들이 가져오는 물건만 봐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내년쯤엔 은채와 함께 대륙으로 나가 세상을 돌아볼 생각이다.
그 여행엔 바알도 함께할 것이다.
아직은 어린 은채 녀석의 비위를 맞추는 건 나보다 바알 녀석이 몇 배나 뛰어나니까.
이번 여행에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세계수의 조각들을 심어 성장시킬 수 있는 ‘마나의 대지’. 그곳을 찾아내야 한다.
세계수의 조각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단언하건대, 그 기적은 우리를 지구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을 일으키려면 마나의 대지를 찾아 그곳에 세계수의 조각을 심어야 한다.
키이라들은 이제 암흑섬의 일원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었으니 아무 걱정이 없다.
대륙의 인간들이 이곳을 쳐들어오는 일만 없으면 암흑섬의 평화는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다.
암흑섬 3년 차 67일.
모든 게 내 예상대로다.
대륙은 이자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검과 마법, 마족과 인간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구도였다.
이자투스 대륙은 총 2개의 제국과 8개의 왕국, 그리고 3개의 공국으로 이루어졌다.
이 국가들은 틈만 나면 전쟁이었고, 남의 땅을 빼앗기 위해 1년 내내 피를 흘렸다.
놀라운 사실은, 폰노이만이 이미 이곳에 와 있으며 대신관 아캄이라는 이름으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만간 아캄을 만날 생각이다.
그라면 내 친구 월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암흑섬 3년 차 238일.
드디어 월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냈다.
아캄은 과연 천재 수학자이자 뛰어난 대신관답게 월의 신체를 재구성할 물질을 마법으로 만들어 냈다.
이제 월의 육체가 되어줄 그릇을 제작하고 아크로를 심어 마나를 주입한다면, 그리운 친구 월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바알이 반마족이라는 사실이 대륙의 인간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나와 은채까지 마족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이곳의 인간들은 마족을 증오했기에 마족의 피를 이은 존재는 그게 누가 되었든 반드시 잡아 죽이려고 한다.
내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수많은 마법사와 기사들에게 붙잡혀 화형을 당하고 말았으리라.
서두를 필요가 있다.
한시라도 빨리 마나의 대지를 찾고, 월의 그릇을 만든 다음 암흑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나저나 발자크가 등장하는 시점이 언제인지가 궁금하다.
분명 이 시점에 발자크가 서서히 발호하기 시작하는 걸로 아는데, 아직은 아무런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발자크가 발호하면 또다시 녀석하고 생사대전을 치러야 하겠지?
과연 지구에서 마주했던 녀석보다 강할까?
설사 그렇다 해도 난 몇 번이고 발자크를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암흑섬 4년 차 2일.
드디어 마나의 대지를 찾아냈다.
아캄의 도움이 없었다면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마나의 대지는 바로 내 전투 영역인 아공간을 의미했다.
그저 새하얗기만 한 아공간의 땅이 마나의 대지였을 줄이야.
난 전투 영역에 세계수의 조각들을 심기로 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세계수의 조각을 심는다 해도 S급 이상의 마나코어가 심장 역할을 하지 않으면 세계수로 성장하지 못한다.
세계수가 성장해 새로운 씨앗과 잎, 뿌리, 그리고 열매들을 맺지 못하면 지구로의 귀환은 불가능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코어는 고작 B급짜리.
이걸로는 세계수가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있게 돕지 못한다.
해결할 방법은 있다.
월의 심장인 ‘아크로’와 내 몸에 박혀있는 백윤후의 생명 코어면 S급 마나코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월의 부활을 포기하거나 백윤후의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나로서는 두 가지 모두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다.
암흑섬 4년 차 312일.
무려 300일 넘게 고민한 끝에 결국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아캄이 도움을 주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아캄은 아크로를 분석해 세계수의 심장이 되는 한편, 월의 육체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경악스럽게도 아캄은 미래에도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나노기술을 만들어 냈고, 그 기술을 이용해 다중제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아캄은 말했다.
어쩌면 이로 인해 이 세상에 전혀 다른 형태의 마법적 특이능력이 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난 그것이 뭔지 바로 깨닫는 것이 있었다.
특성.
지구에 게이트가 생기면서 발현되기 시작한 특성이 바로 아캄이 말한 새로운 형태의 마법적 특이능력이리라.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특성까지 탄생한다면 발자크 역시 반드시 등장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해도 내 결정은 변하지 않는다.
난 반드시 월을 다시 만날 것이다.
암흑섬 5년 차 8일.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내 전투 영역의 대지에 세계수의 조각을 심었다.
더불어 월의 아크로 또한 세계수의 조각과 함께 묻혔다.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
아캄의 말로는 세계수가 제대로 성장하는 데는 최소 5년이 필요하다.
그 안에 난 발자크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면 된다.
난 암흑섬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틀어야 했다.
대륙에 남아 발자크의 흔적을 찾고 아캄을 도와 보더 쉘터를 만들기로 했다.
결국, 보더 쉘터를 만든 것 또한 나였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기만 하다.
나에게는 과거지만, 이곳에서는 미래가 될 발자크의 인류 멸망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가 곧 시작될 거다.
과정은 같겠지만 결과는 필시 달라질 것이다.
과거의 아스는 발자크를 소멸시키지 않고 단순히 봉인하는 것에 그쳤지만, 난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발자크의 존재가 확인되면 당장 놈을 찾아가 세상에서 놈의 존재조차 지워버릴 테니까.
그래서 먼저 바알만 암흑섬으로 돌려보냈다.
그사이 바알은 훌쩍 컸다.
덩치는 나보다도 좋아졌고, 나와 은채의 가르침을 받아 전투 능력이 일취월장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난다면 발자크와도 일전을 치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리라.
암흑섬 5년 차 187일.
대륙을 떠돌다가 드래곤과 마주쳤다.
놈은 제국의 황족과 거래를 한 젊은 그린 드래곤이었는데, 나와 은채를 마족으로 생각하는 황족의 요구대로 우릴 처치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드래곤이라 해도 고룡 볼케스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약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모든 마나력을 소모한 녀석은 결국 은채의 델링그 한 방에 무릎을 꿇었다.
난 녀석을 죽이지 않는 대신, 우리를 죽이라고 사주한 황족의 성에 브레스를 날려줄 것을 요구했다.
드래곤은 약속을 지켰다.
나와 은채의 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족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을 속인 제국의 황제에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래곤의 브레스로 인해 한 제국의 웅장했던 성채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사전에 경고를 한 탓에 사망자는 전무.
황성을 소멸시키는 엄청난 힘을 지닌 드래곤마저 길들였다고 생각한 것인지 나와 은채를 노리는 세력은 더 이상 없었다.
난 약속을 지킨 드래곤에게 마나 회로에 대한 지식을 전해 주는 대가로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바로 대적룡 볼케스를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안 그래도 대륙에 나오자마자 대적룡 볼케스를 찾아 드래곤 마운틴을 찾아가 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지금은 다른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을 찾아서 게이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곳의 볼케스는 날 모를 테니 한바탕 난리를 치게 되겠지.
내가 용마족으로 변신해 보이면 크게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덤빈다면 약간 손을 좀 봐주면 되는 일이다.
암흑섬 5년 차 280일.
대륙을 떠돌며 발자크의 흔적을 조사하다가 암흑섬 근처까지 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바알도 볼 겸, 암흑섬을 찾아갔다.
그런데,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암흑섬에 인간의 침공이 있었다.
대륙의 삼대 제국 중, 두 곳이 다섯 왕국과 손을 잡고 암흑섬을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했었다.
그로 인해 반마족이 전멸했고, 내가 살리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키이라들도 4천이나 목숨을 잃었다.
난 바알을 찾았다.
적어도 그 녀석만은 죽지 않기를 빌면서 폐허가 돼버린 반마족 마을의 잔해를 뒤지고 또 뒤졌다.
하지만 끝내 바알의 시체는 찾지 못했다.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지만 섬 어디에서도 바알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암흑섬을 침공한 인간들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돌아갔다.
하지만 난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제국이나 왕국을 상대로 복수를 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을 이곳에 보낸 황족들만은 절대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다.
암흑섬 10년 차 45일.
결국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란 말인가?
반마족을 멸종시킨 제국과 왕국들의 최고 권력자들을 모조리 없애는 데 무려 4년이나 걸렸다.
내가 지닌 힘으로 모든 걸 날려버리면 짧고 굵게 끝낼 수 있었겠지만, 책임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일일이 걸러내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게 모든 일의 화근이 되고 말았다.
난 한 달 전 바알을 만났다.
다시 만난 바알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너무나도 잔혹하고, 너무나도 폭력적인 대마왕과 다름없는 존재가.
녀석는 발자크가 되어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바알이 바로 발자크였다.
녀석의 본명이 바알 자쿠라는 걸 알았을 때,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바알 자쿠와 발자크.
발자크라는 이름은 바알 자쿠를 인간들이 부르면서 변형된 이름이었다.
그걸 몰랐던 내가 바보다.
바알은 암흑섬의 부족이 인간들의 손에 처참히 멸족하게 되면서 증오와 복수의 화신으로 재탄생했다.
반마족은 순하고, 전투 성향이 낮지만 바알은 달랐다.
녀석은 한계조차 없는 분노를 자신의 힘으로 소화했고, 인간들을 떼 죽음 시키며 더욱더 힘을 키웠다.
바알의 분노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나와 은채도 바알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없었고, 결국 전투가 벌어졌다.
바알은 끔찍하게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 부활한 발자크와 일전을 치렀던 나에게 바알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투는 나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난 바알을 죽일 수 없었다.
아스루나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만나 긴 시간 동안 인연을 쌓았던 바알 자쿠.
직접 한글을 가르치고, 싸우는 방법까지 알려준 바쿠를 어찌 쉽게 죽일 수 있을까?
이 마음은 은채도 똑같았다.
발자크의 정체가 바알인 줄 몰랐을 때는 가차 없이 죽이겠노라 다짐했지만, 이제는 쉽게 그 다짐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바알을 죽이지도, 그렇다고 봉인구에 가두지도 않았다.
딱 하루.
바알을 어떻게 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으로 하루 정도는 필요하다.
암흑섬 10년 차 46일.
바알은 죽었다.
난 수없이 고민했고, 무엇이 인류를 위한 일인지, 그리고 무엇이 미래를 위한 일인지를 생각했다.
내 고민은 결국 바알의 죽음으로 귀결됐다.
다른 건 다 모른다 쳐도, 바알 때문에 미래의 내 아버지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니 차마 살려둘 수가 없었다.
바알과 지낸 수년의 정이 어찌 내 아버지의 죽음보다 중요할 수 있을까?
난 볼케스를 만나 받아온 봉인구를 깨뜨려 버리고, 바알의 목을 쳤다.
이것으로 미래의 지구엔 바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이제 남은 건 성장한 세계수의 힘으로 귀환 게이트를 여는 것뿐.
모든 것은 필연이라는 말이 뼛속 깊숙이 새겨지는 날이다.
암흑섬 10년 차 111일.
드디어 세계수가 열매를 맺었다.
세계수는 아캄의 나노 기술에 월의 아크로의 힘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냈다.
그와 더불어 월도 부활에 성공했다.
결국, 이거였다.
그동안 내 눈앞에 내가 가야 할 길을 끊임없이 메시지로 알려주었던 존재는 바로 세계수 시스템이었다.
그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는 내 친구 월의 아크로가 잠들어 있었던 것이고.
놀라운 일이면서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세계수 시스템은 스스로 나노입자를 공기 중에 뿌려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매우 작은 크기로 이루어진 나노입자가 세상에 퍼지면서 이를 인간이 흡수하면 각성할 조건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수 시스템이 유독 나에게만 친절하고,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던 이유를 이제야 할 수 있었다.
난 아스루나 세계의 어느 한 장소에 세계수의 씨앗과 잎, 그리고 뿌리 열매를 함께 심어 두었다.
이제 그곳엔 세계수가 성장할 것이다.
이미 내 전투 영역 속에는 세계수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S급 마나코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란 세계수는 시스템의 관리를 받게 될 것이고, 아스루나를 비롯해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까지 나노입자를 뿌려 수많은 각성자들을 만들어 내게 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이후의 일은 운명에 맡기고 스스로 흘러가게끔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이제 기적을 이루어낼 시간이다.
세계수의 힘으로 귀환의 게이트를 열고 은채와 함께 지구로 귀환하기만 하면 된다.
과거의 나처럼 은채 혼자만 지구로 돌려보내는 어리석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