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탁.
한수호는 아스루나의 세계에서 장장 10년이 가까이 써오던 일기장을 덮었다.
두꺼운 일기장에 단단한 잠금 장치를 하고 몇 겹이나 되는 천으로 감싸버린 한수호.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서은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 일기장 누구 보여주려고 쓰는 거야?”
서은채는 이제 한수호와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다.
“일기장을 누구 보여주기 위해서 쓰냐? 그냥 기록이다, 기록.”
“너무 정성스럽게 쓰길래 난 또 나한테 선물로 주려는 건가 했지. 헤헤.”
“이젠 스물다섯이나 먹은 녀석이 헤헤가 뭐냐, 헤헤가.”
“어머, 이 오빠 보게? 지금 내 얼굴 어디가 스물다섯처럼 보이는데? 기껏해야 열여덟 정도려나? 아무튼 딱 그 정도잖아. 오빠도 스물 이상으로는 절대 안 보인다는 거 몰라?”
서은채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수호의 얼굴은 10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나이가 들지 않았다.
그건 서은채도 마찬가지.
그녀의 얼굴은 스물이 아니라 그보다 더 어린 청소년의 나이에서 세월이 멈춰져 있었다.
이건 모두 세계수의 잎이 만들어 낸 주안의 효과였다.
한수호는 이미 10년 전에 세계수의 잎을 흡수했고, 서은채는 이곳에 온 지 3년 정도가 흘렀을 때 한수호를 들들 볶아서 세계수의 잎을 먹게 되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피부 노화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됐으니까 이제 준비해. 세계수한테 소원 빌러 갈 시간이니까.”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천으로 감싼 일기장을 방구석에 놓인 금고 속에 넣어버렸다.
이 금고에는 한수호와 서은채가 아스루나에서 살아가며 발견한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세계수가 정말 우리 소원을 들어줄까?”
“글쎄. 기적을 만들어내는 세계수니까 적어도 80%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보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빠도, 엄마도…. 많이 늙었겠지?”
“엄청까진 아니어도 세월의 흔적이 어느 정도 새겨지긴 했겠지.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게 아니니까.”
“근데 우리가 왔던 시간대로 돌아가게 되는 거야? 아니면 그때에서 10년이 흐른 지구로 돌아가는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가능한 우리가 이곳에 왔던 시간대로 돌아가는 게 좋긴 한데 말이야.”
두 사람이 이곳에 온 건 지구시간으로 2,052년 2월이다.
이곳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고 2,062년으로 귀환하는 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서은채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난 상관없는데. 10년이 지난 시간대로 가도, 오빠랑 나는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가 않으니까 오히려 사람들한테 부러움을 사지 않을까?”
“난 반대야. 내 막냇동생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조금도 지켜보질 못하게 되는데 그게 얼마나 큰 손해냐?”
“동생 커 가는 모습은 못봐도, 우리 아이가 커 가는 건 볼 수 있잖아.”
서은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달고 한 말에 한수호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또! 2세는 일단 지구로 귀환하고 나서 생각해 보자니까.”
“어머, 우리 오빠 얼굴 빨게진 것 봐? 우리 사이에 창피해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 훗~”
서은채는 마치 모든 걸 가진 사람처럼 거드름을 피웠다.
그녀의 당당함에 오히려 한수호가 다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만으로 성인이 되었다며 야밤에 달려들던 서은채를 끝내 거부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한 인내심이 한스럽기만 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집을 나와 밖으로 나섰다.
집 앞에는 조금 커다랗고, 튼튼하게 생긴 자전거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아스루나에 온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서은채의 닦달에 한수호가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낸 커플 자전거였다.
한수호는 바로 의자에 착석해 핸들을 잡았고, 뒷좌석에 서은채가 올라탔다.
그때 옆 건물에서 고니와 사툴란이 뛰쳐나왔다.
고니는 자기도 데려가 달라며 폴짝 뛰어서 서은채의 품에 안겼다.
사툴란까지 쿵쿵 소리를 내며 품으로 펄쩍 뛰어들 자세를 취하자 한수호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사툴란! 넌 그냥 뛰어가든가, 여기서 기다려. 내가 널 어떻게 안고 가냐고!”
꾸워억?
사툴란은 왜 자길 안을 수 없냐는 얼굴로 머리를 갸웃거렸다.
한수호의 힘이면 사툴란 같은 골렘이 몇이라도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너를 안아 드는 순간, 이 자전거는 저세상이야.”
쿼거거걱. 쿼거거걱!
사툴란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큰 덩치를 들썩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니도 여기서 기다려. 어차피 금방 다시 올 거니까 걱정 말고.”
한수호가 그렇게 말했지만 고니는 마구 도리질 치며 더욱 더 서은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서은채가 피식 웃었다.
“오빠가 10년 전에도 그 말 똑같이 했다가 아직까지 지구로 돌아가지 못했으니까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거겠지. 데리고 가자. 내가 안고 있을께.”
“뭐, 그래도 되고.”
한수호는 서은채의 말은 거의 다 들어주는 편이었다.
여자에게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서은채를 위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럼, 출발한다.”
“네~ 오라방!”
서은채의 희안한 호칭에 땅을 디디고 있던 발이 미끌어져 자빠질 뻔한 한수호.
그는 간신히 중심을 잡아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끝없이 하얗기만 한 아공간의 세상 어딘가였다.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났을 때였다.
티하나 없이 새하얘야 할 풍경 끝에 뭔가 다른 색의 물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커다란 나무였다.
새하얀 배경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나무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자전거로 10여분을 달렸는데도 나무가 전혀 가까워지지가 않았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그제서야 나무는 조금 가까워졌다.
“와…. 멀긴 엄청 멀다.”
서은채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나무를 바라보며 탄성을 흘렸다.
“몇 년만 지나면 우리 집에서도 크게 보일 정도로 거대해질걸?”
“하긴…. 명색이 세계수인데 평범하게 크면 말이 안 되긴 하겠다.”
“이제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훗. 오늘따라 우리 오빠 엄청 듬직한데?”
서은채가 왼손에 고니를 안은 채 오른손으로 한수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묘한 느낌에 또 다시 자빠질 뻔한 한수호는 간신히 침착성을 유지한 채 열심히 패달을 밟았다.
“오늘따라? 그럼 평소엔 내가 전혀 듬직하지 않다는 말이냐?”
“그건 아니랍니다~ 평소엔 사랑스러운 오빠고, 지금은 듬직한 오빠려나?”
“설마 다른 오빠도 있어?”
“당연히 있지. 밤에는 어떤 오빠냐면….”
“그, 그만! 거기까지. 넌 말하는데 어째 중간이 없냐.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어휴….”
한수호는 한숨까지 내쉬며 서은채의 당돌함에 혀를 내둘렀다.
“헤헤. 좋아서 그런거니까 화내지 마. 오빤 알지? 내가 오빠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보통 인연이 아니었잖아.”
서은채는 한 손으로 한수호의 허리를 껴안은 상태로 옛일을 떠올리며 그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수호의 기억 속 깊이 남아 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천의 한 공원에서 동네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여 안 좋은 일을 당할 뻔했던 서은채.
그녀는 한수호가 도우려고 나서기도 전에 스스로 양아치들을 처리해 버린 당찬 소녀였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어느 던전이었고, 그 던전에서 두 사람은 꽤나 살벌한 전투를 함께 치렀었다.
수많은 가고일을 상대로 마나를 한계까지 뽑아 내며 싸웠고, 세 개의 뿔을 가진 대형 가고일을 상대할 때는 정말 식은 땀이 줄줄 흐를 만큼 긴장감이 넘쳤었다.
서은채는 그 전투에서 델링그를 얻었고, 그 델링그를 사용할 수 있는 ‘암즈’를 얻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은채는 한수호가 스승 부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빼낼 수 있도록 대법원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언제 어디서든 훌륭한 이동수단이 되어주고 있는 SUV를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한수호가 그토록 만나길 원했던 어머니와 동생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서은채가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모든 기억을 떠올리자 자신이 왜 이토록 서은채를 아끼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 서은채. 네 덕분에 모든 걸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한수호는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을 지금 이 순간에서야 진심을 담아 전했다.
그 말에 허리를 감싸쥔 서은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야, 오빠. 고마운 건 바로 나야. 오빠 덕분에 이 팔로 오빠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됐고, 오빠 덕분에 세상에 다시없을 귀한 경험도 했어. 그리고…. 가장 고마운건, 내가 오빠 옆에 쭉 있을 수 있게 허락해준 거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오빠 옆에 같은 마음으로 머물러 있을게. 고마워, 오빠.”
서은채는 진심으로 한수호에게 감사해하고 있었다.
단순한 기계 팔에 불과했던 오른팔을 암즈로 대체할 수 있게 해준 걸로 모자라 그 암즈를 진짜 인간의 팔과 똑같이 개조해 준 것도 한수호였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서은채에게 한수호는 처음으로 신뢰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었다.
속마음과 다른 거짓된 표정과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자들과는 달리 한수호는 모든 게 진심이었고, 겉과 속이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은채는 한수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 말로만 고맙다고 하지 말고 성의를 보여봐, 성의를.”
한수호가 농담식으로 대꾸하자 서은채는 허리를 껴안고 있던 손으로 옆구리를 꽉 꼬집어 버렸다.
“쳇! 분위기 망치는 데는 정말 선수라니까!”
“그럼 넌 꼬집기 선수냐?”
괜히 툴툴거리는 한수호.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을 무척이나 행복해하고 있었다.
비록 10년이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서은채가 있었기에 버틸 수가 있었다.
이제 지구로 귀환만 할 수 있다면 남은 삶 역시 매일같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다 왔다.”
어느새 세계수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보니 세계수의 크기가 더욱 엄청났다.
거의 50층 건물의 높이만큼이나 되고,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은 축구장 몇 개를 뒤덮기에도 충분할 만큼 넓게 퍼져 있었다.
이게 막 성장하기 시작한 초기 상태라고 하니 나중엔 얼마나 더 커질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 나무의 가장 아래.
그곳에 반가운 존재 하나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서 있었다.
약 1.5미터 키에 손발이 다소 길고, 뾰족한 귀와 정감가는 얼굴을 한 고블린 한 마리.
바로 월이었다.
최대한 과거의 월과 똑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려고 했는데 세계수가 월의 외모를 멋대로 고치는 바람에 생김새가 좀 달라졌다.
예전엔 못생긴 고블린의 얼굴과 판박이었다면, 지금은 귀여운 고블린으로 변해 버린 것.
어쨌든 녀석이 월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주인. 준비는 다 끝났다.”
월은 세계수 뿌리 근처에 제단 같은 걸 마련해 놓고, 그 위에 몇 가지 물건을 가지런히 놓아 두었다.
“수고했다, 월.”
“항상 고마워!”
한수호는 바로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서은채와 함께 제단 쪽으로 다가갔다.
고니는 이미 서은채의 품에서 뛰어내려 월의 머리 위로 올라타 있었다.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월은 고니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는 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게 잘되길 빈다.”
월은 한수호가 얼마나 귀환을 기다렸는지를 알기에 오늘의 일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게 필요한 모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수 시스템의 핵으로서.
그리고 한수호의 오래된 친구로서.
이제는 세계수가 월이고, 월이 세계수다.
한수호의 몸에 잠자고 있던 과거의 시스템은 현재의 시스템과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동화된 상태.
그 덕에 한수호는 세계수가 지닌 방대한 정보를 모두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생겼다.
아스루나 어디에 무슨 특성이 숨겨져 있고, 어느 보더 쉘터를 찾아가면 무슨 몬스터를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7대 마화기가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모두.
하지만 한수호는 그런 것들을 단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어 미래의 누군가가 그것들을 얻어 훌륭한 마공사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발자크가 이 시점에 죽은 이상, 인류를 위협할 존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그냥 두는 게 맞았다.
한수호는 제단 위에 놓인 7가지 세계수의 조각을 바라봤다.
이것들은 예전에 한수호가 모은 조각들이 아니라, 새롭게 성장한 세계수에게서 얻은 것들이었다.
예전의 조각들은 이미 한차례 기적을 발휘했기 때문에 더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조각들을 새로운 세계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사용했던 것.
이제 세계수의 조각이 다시 모였으니 기적을 만들 기본 조건은 모두 갖춘 셈.
한수호는 세계수의 조각들은 한 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이제는 한없이 높아진 마나력을 아주 살짝 끌어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세계수의 조각이 완전합니다.
>>원하는 기적을 떠올리면 당신의 운명에 따라 기적이 이루어질 수도,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다시 마주하게 된 기적의 메시지.
한수호는 귀환을 위한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떠올렸다.
하늘처럼 파란 물결을 가진 시공간의 균열, 게이트
그 게이트가 지구로 연결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운명의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합니다.
전과 똑같이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했다.
이 주사위가 멈춰선 결과가 무엇인지에 따라 귀환 게이트는 만들어질 수도, 아니면 두 번 다시 생성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심장 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크게 들리던 어느 순간,
>>운명의 주사위가 멈춰 섰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기적은….
>>이루어집니다.
성공이었다.
세계수의 기적은 한수호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키이이이이이잉!
공간이 열리고, 게이트가 나타났다.
한수호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모습 그대로의 게이트.
“오빠, 게이트야!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서은채도 게이트를 보고 크게 놀라워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서은채는 반신반의했다.
무려 10년.
그 긴 시간동안 아무리 애를 써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게이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감동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게이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개조 특성으로 게이트 정보를 훑었다.
[규격외급 게이트 ‘귀환의 문’]
-보유 포인트: 1LP
-위험도: ☆☆☆☆☆☆☆☆☆☆
-아스루나의 대영웅 아스가 세계수의 기적을 통해 만들어 낸 게이트입니다.
-아스루나와 지구를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게이트는 통과와 동시에 사라집니다.
위험도 표시가 하나도 없는 안전한 게이트.
한수호는 자신이 바라던 게이트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등장한 것에 꽤나 감정이 북받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갈 수 있겠구나.”
“응. 오빠가 해 냈어. 길고도 길었던 여행은 오늘로 끝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서은채가 다가와 살며시 한수호의 손을 잡았다.
“그래.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바로 가볼까?”
서은채는 대답대신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주인. 조만간 다시 보자.”
월은 한수호와 서은채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월의 눈에서는 축하의 의미로 폭죽이 터지는 화려한 임팩트가 그려졌다.
캬르릉! 캉, 캉!
이번엔 고니의 인사였다.
무조건 함께 가겠다더니 막상 게이트를 넘는 순간엔 월의 머리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한수호는 그 둘을 향해 하얗게 웃어주었다.
“지구에 도착하면 바로 여기로 돌아올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라.”
“월, 그리고 고니야! 우리 이따가 보자!”
서은채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것으로 인사는 끝이었다.
한수호는 과거와 다른 선택을 했다.
발자크라는 존재로 인해 서은채만 지구로 돌려보냈던 과거의 아스와는 다르게, 지금의 한수호는 아스루나의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서은채와 함께 귀환하는 길을 택했다.
한수호는 서은채의 손을 잡고 게이트로 진입했다.
그런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과거엔 세상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선택을 했지만, 이젠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거다.’
한수호와 서은채는 나란히 게이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울고 웃으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두 사람의 걸음걸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침이 없었다.
슈우우욱-
두 사람은 게이트의 푸른 물결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찬란하게 빛나던 게이트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던 월과 고니.
월은 거대한 세계수를 슥 올려다보고는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고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주인이라면…. 대영웅 아스라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모두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다. 그렇지 고니야?”
캬르르릉!
고니는 긍정의 표시인지, 부정의 표시인지 모를 소리를 내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길고 긴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