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귀환, 그 후의 이야기 3화
[만약, 파급 이상의 마공사가 단 한 명이라도 소속된 국가의 경계를 벗어난 것이 확인될 경우, 어떤 국가든 해당 마공사의 국가를 향해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조항이 들어간 마공사 이동 금지법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규칙이 되고 말았다.
사실상 이 법은 대한민국을 목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에만 불공정한 내용만 담고 있었다.
파급은 물론 멸급에 이른 마공사까지 수두룩하게 보유한 대한민국에 있어서 이 마공사 이동 금지법은 손과 발을 모두 묶어버리는 수갑이나 다름없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거기에 일본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입지는 완전히 축소되고 말았다.
만약 한 명이라도 파급 이상의 마공사가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고 외국으로 향한다면 어느 국가든 대한민국을 향해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란 말인가.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크게 반발했고, 이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이미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게이트가 사라진 이상, 최첨단 무기와 핵무기까지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저항은 우스울 따름.
특히 중국은 대한민국을 깔아뭉개기 위해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2052년 8월의 화창한 어느 날.
중국 정부는 북한 출신의 파급 마공사 한 명이 중국 국경을 넘어왔다면서 본보기로 북한의 한 섬에 전술핵무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대한민국만큼은 아니었지만, 북한에도 다른 국가보다 강력한 마공사들이 상당수 존재했었는데, 이를 질투한 중국이 괜한 트집을 잡아 진짜로 핵무기를 사용한 것이다.
그 사건으로 북한의 시민 수만 명이 한순간에 소멸했다.
이 끔찍한 짓에 분노한 북한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고, 그들이 보유한 파급 이상의 마공사들을 동원해 중국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10기가 넘는 핵미사일을 준비시키자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파급 이상의 마공사들이 중국으로 넘어가 살육을 시작한다면 수만의 목숨에 대한 복수는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 북한은 지구에서 사라지고 만다.
작은 전술핵무기 하나에 커다란 섬 하나가 통째로 소멸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강력한 핵미사일이 10여 기나 쏟아진다면 과연 북한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북한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가 자체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강대국들의 횡포에 아무 반발을 하지 못한 채 납작 엎드리고 말았다.
많은 젊은 청년들이 국가가 소멸하더라도 이런 비참한 생존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며 전면전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끝내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지금은 싸우는 게 아니라 기회를 살피며 몸을 사려야 할 때였으니까.
더욱이 그 어떤 마공사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한수호가 귀환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비참한 삶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었다.
궁급 이하의 마공사들을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용병처럼 강대국에 빌려주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파급 이상의 마공사들은 24시간 감시를 받아야 했다.
1시간 단위로 위치를 알려주는 추적기를 발목에 차야 했으며, 추적기가 신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곧바로 핵무기가 발사 카운트에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서은채는 지금 이 상황을 자신이 직접 해결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니 구천승이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사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케이시, 아니 볼케스 님이다.”
대적룡 볼케스.
그가 케이시로 폴리모프를 하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내용이다.
지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수호가 아스루나에서 데려온 고룡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이상 중국은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파급 마공사를 우습게 도륙할 수 있는 발록과 그런 발록 두세 마리를 가뿐히 상대할 수 있는 삼두룡 가이도까지 대한민국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 무서운 존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오직 한수호뿐.
그가 없는 이상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이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국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강대국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더욱 압박하여 케이시와 발록, 가이도를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막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금까진 잘 참아주고 계시다만, 점점 한계가 오는 것 같다. 만약 한별이가 케이시 님의 마음을 붙잡아 놓지 않았다면, 진작에 중국이나 미국으로 날아가 지구에서 없애버렸을 것이야.”
구천승은 케이시가 지금 불이 붙은 화약고와 같은 상태임을 강조했다.
길어봐야 1년.
그 안에 한수호가 귀환하거나, 이 거지 같은 이동 금지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케이시가 볼케스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세상을 파괴하고 말리라.
“그 안에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서은채는 자신만만해했다.
구천승이나 신유, 서한광 같은 강자들도 해결하지 못한 걸 어린 서은채가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이 있느냐?”
“제가 귀환한 사실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겠죠?”
“물론이지. 우리가 다니는 곳은 어디든 놈들의 눈과 귀가 붙어 있단다. 아마도 며칠 내로 정부에서 널 소환해 가벼운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야. 그 개 같은 자식들한테 던져줄 정보가 필요할 테니까.”
“그럼 좀 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겠네요.”
“그게 가능할까?”
강대국들은 대한민국의 마공사들을 향한 감시를 단 한시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서은채도 이제 곧 그 감시하에 들어가게 될 테니,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해도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그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법안을 만든 작자들 말이에요. 그들 명단을 구하는 게 어려울까요?”
“그 법안을 발의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중심 인물들 말이냐?”
“네. 중국이 그 법안을 제안했다고 모든 중국인을 적으로 삼을 이유는 없잖아요? 분명 그 법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명확하게 적과 아군부터 구분 짓고, 머리만 치자는 거죠.”
“그 법안과 관련된 강대국의 모든 머리를 쳐내겠다? 그게 통할까?”
언뜻 듣기엔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머리를 쳤을 때, 다른 쪽 머리가 이를 경계하여 핵무기 발사 버튼부터 눌러버린다면?
그럼 일을 수습하기도 전에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놈들의 머리를 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시간을 끌어줄 아군이 필요해요. 우선 그들부터 찾아내서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적의 적을 찾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지?”
그 일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강한 마공사가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파급 이상의 마공사는 모두 감시가 붙어 있고, 위치 추적기까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서은채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무거운 얼굴로 서은채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아카데미 학생들이 서 있었다.
서은채의 시선이 향하자 양소혜가 자신을 가리키며 의문을 표시했다.
“나? 나보고 적들 속에 숨어 있는 우리 편을 찾아내라는 거야?”
“언니, 오빠들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서은채는 양소혜를 비롯해 최지혁, 한설아, 신소이, 이하윤 모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말에 학생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현 마공 아카데미에서 탑으로 분류되는 강력한 마공사들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이제 막 궁급에 오른 상태라 강대국들도 그들에 대한 감시는 소홀했다.
파급 이상의 마공사들을 24시간 동안 철저하게 감시하는 일은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일이라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우후죽순으로 감시 대상자를 늘릴 수는 없었던 것.
서은채는 바로 그 틈을 이용하고자 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해요. 전투가 목적이 아니라 설득이 목적이니까요. 하지만 사전에 정확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해요. 섣불리 접근했다가 우리 목적이 적들에게 알려지면 큰일이니까요.”
쓸 만해 보인다고 아무나 붙잡고 내 편이 되라고 했다가는 바로 이 사실이 적국의 수뇌부에게 알려져 큰 사고가 터질 수 있었다.
때문에 아군으로 끌어들일 대상을 명확하게 선별하는 작업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우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겠어.”
“당연하지! 수호가…. 우리 친구 한수호가 목숨을 걸고 구해준 대한민국인데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어찌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냐고!”
양소혜와 최지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신소이와 이하윤까지 뜻을 하나로 모으자 서은채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3일.
그 안에 마공사 이동 금지법을 강력히 주장하는 강대국들의 수뇌부를 없애려면 서둘러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강대국들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특무부에서 개발한 포탈 기술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아직은 포탈이 발동될 때 발생하는 마나의 파동이 너무 강력해서 발동과 동시에 포탈이 발견될 확률이 거의 99%에 육박한다.
강대국으로 아무도 모르게 숨어들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케이시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었다.
케이시가 만들어 내는 포탈은 은밀하며 정확하다.
지구의 인류가 만든 포탈과는 차원이 달랐고,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한 인원수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서은채는 케이시에게 이 포탈을 네 개 동시에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미국 워싱턴과 중국 상해, 그리고 러시아의 모스크바, 마지막으로 일본 도쿄가 포탈의 목적지였다.
워싱턴은 한설아와 이하윤이 맡기로 했고, 상해는 서은채가 혼자 책임지기로 했다.
양소혜와 최지혁은 모스크바를, 신소이는 도쿄를 맡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모든 준비를 마친 여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포탈을 타고 네 개의 도시로 은밀하게 숨어들었다.
* * *
대한맹 맹주 서한광의 집 안에 설치된 상황실.
그곳엔 대한민국 최강의 마공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구천승을 비롯해 서한광, 신유, 송혁과 장현오에 김무성까지.
파급을 넘어 멸급에 이른 강자들은 지금 위성 전화로 날아들 학생들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은 모두 완전무장을 한 채였다.
만약 학생 중 단 한 명이라도 임무에 실패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을 향해 핵무기가 발사될 것이기에, 그 핵무기를 몸으로라도 막아낼 각오까지 한 상태였다.
미리 약속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30여 분.
아직까지 네 곳 어디에서도 성공했다는 소식은 날아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5분여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후욱. 후욱. 도쿄의…. 도쿄의 신소이입니다.
위성 전화로 신소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소이야! 나다. 몸은 괜찮고?”
혈마 신유는 임무의 성공보다 딸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네. 후우….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요. 우선 결과부터 말씀드립니다. 총리를 비롯해 내무성 장관까지 모두 없애버리는 데 성공했어요! 이제 일본엔 이동 방지법에 찬성하는 수뇌부는 더 이상 없습니다!
“오, 성공이구나!”
“잘했다, 소이야!”
“바로 귀환하거라.”
다들 기쁜 마음으로 성공을 축하해 주자, 신소이 역시 뿌듯해했다.
-다른 쪽에서도 성공했다는 연락이 오면, 그때 귀환하겠어요.
신소이는 포탈 앞에서 다른 친구들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성 전화로 다시 연락이 떴다.
-워싱턴입니다. 하아…. 하아…. 성공했어요. 단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이동 금지법을 주장하는 대가리들을 죄다 쓸어버렸다고요!
한설아의 연락이었다.
이로써 두 번째도 성공.
남은 건 상해와 모스크바뿐이었다.
그때,
-모스크바에서 알려드립니다. 이제 러시아에서는 더 이상 핵무기의 위험이 없을 겁니다!
최지혁의 성공까지 확인이 되었다.
마지막은 서은채였다.
현 지구상의 인간 중에는 그 누구보다 강한 마공사인 서은채.
그녀가 맡은 중국은 사실상 이동 금지법을 가장 먼저 주창한 나라였고, 그 어디보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장을 질시하는 자들이 가득한 이기적인 집단이었다.
그래서 처리해야 할 고위급 인물이 상당히 많았고, 나름 든든한 방어시스템까지 지니고 있어 처리가 가장 어려운 상대이기도 했다.
모두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였다.
-서은채입니다. 임무…. 성공했습니다. 이제 중국에는 핵무기를 발사시킬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기다려 마지 않는 소식.
서은채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마자 상황실에는 커다란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 진중한 구천승마저 주먹을 번쩍 치켜들면서 ‘됐어!’를 외쳤을 정도.
특무부 요원 자격으로 상황실에 참석해 있던 김재우와 그의 연인 윤재희는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서은채, 이제 귀환하겠습니다.
-한설아, 이하윤 모두 귀환합니다.
-신소이도 귀환할게요.
-양소혜, 최지혁 귀한 포탈 탑니다.
역사적인 일을 해낸 여섯 명의 학생들이 연달아 귀환을 선언했고 상황실에선 그들의 임무 성공을 축하해 주는 말들이 계속 울려 퍼졌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권존 김무성만은 환호 대신 침착하게 세계 지도가 펼쳐진 대형 화면을 살피고 있었다.
김무성은 이곳의 그 누구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치밀함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인해 이름과 얼굴 모든 걸 숨긴 채 이십 년을 지내왔던 그였기에 이토록 쉽게 상황이 끝났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부디 내 걱정이 기우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김무성이 딱 그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삐빅-
커다란 세계지도 화면 한쪽에 갑자기 붉은 점 하나가 탁 켜졌다.
그곳은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삐빅- 삐비비빅- 삑삑-
화면 전체로 붉은 점들이 무수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점은 중국 내륙 깊숙한 곳에서, 어떤 점은 일본의 훗카이도 지방에서, 또 어떤 점은 러시아의 비밀 연구소가 위치한 곳에서.
“모두 이걸 봐야 할 것 같다.”
김무성의 무거운 음성에 환호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침묵에 빠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화면을 곳곳에 떠오른 붉은 점들이 빠른 속도로 한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서한광이 급히 화면에 달라붙었고, 그 아래의 패널을 조작해 붉은 점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서한광의 표정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핵무기가…. 발사됐다고?”
그 한마디에 상황실은 패닉에 빠졌다.
강대국의 수뇌부들을 몰살시키는 강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핵무기가 발사되고 말았다.
그것도 한두 기가 아니다.
화면에 떠오른 붉은 점은 무려 24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