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귀환, 그 후의 이야기 5화
서울 상공에서의 핵폭발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끔찍했으며, 강렬했다.
만약 지상에서 폭발했다면, 서울 전체가 지옥으로 변하고도 남았을 위력.
대피 중이었던 천만의 서울 시민 모두가 하늘 위에서 터져버린 핵폭발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울 상공에서 일어난 폭발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피난 행렬은 이미 멈춰 버렸다.
너무나도 눈부신 빛에 시민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벌벌 떨면서 폭발이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후아아아아아아아악
핵폭발에 의한 충격파가 서울 상공을 휩쓸었다.
콰과과과광
충격파는 높은 빌딩들을 과자처럼 부숴버렸고, 20층 이상의 건물 상단부를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우르르르르릉
수십, 수백 개의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며 도로와 아파트를 뒤덮었다.
아직 제대로 피신하지 못한 시민들은 건물들의 잔해에 깔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서은채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핵폭발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던 것.
하지만 생존자가 훨씬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핵폭발이 일어났음에도 서울 시민의 99.9%가 생존했으니 이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핵폭발에 의한 진동은 한참 만에 멈췄다.
그제야 시민들은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폐허로 변해 있었다.
뒤집힌 차들.
무너진 건물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까지.
서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나마 수십 킬로미터의 상공에서 폭발이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가까운 곳에서 폭발했다면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무너진 건물들 그다지 많지 않은 편에 속했다.
시민들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에 감격하며 서로 감싸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어떤 사람들은 서둘러 테블릿을 켜서 다른 지역의 소식을 확인했다.
그리고 속속 들려오는 소식들.
-…. 니다. 이건 신이 아직 우릴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핵폭발을 막아준 마공사들께 어떤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부산의 모든 시민이 살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구의 희생자는 100명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핵폭발이 일어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희생자가…. 너무나도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포의 모든 시민이 피난을 중지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 벅찬 행렬입니다. 마공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목포는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 저기 보이십니까? 희생된 마공사들을 향해 목포의 시민들이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무겁지만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다.
총 20기나 되는 핵 미사일 중에서 제대로 폭발한 건 단 한 기뿐이었다.
나머지 19기나 되는 핵미사일이 모두 마공사들의 손에 침묵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마공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자도왕 송혁이 제주도에서 죽었고, 일패검 권현태가 죽었으며, 이패궁 박현주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방태식을 비롯해 회귀자였던 노희경과 김유란 또한 핵융합을 막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그 외에도 목숨을 잃은 마공사들은 수두룩했다.
대충 집계된 숫자만 약 400여 명.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수천만의 시민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통신이 정상화되자 전 세계 또한 난리가 났다는 사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대국들의 수뇌부가 몽땅 암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으로 20기나 되는 핵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마공사들의 희생으로 대부분의 핵 미사일이 핵융합 없는 단순 폭발로 소멸되었다는 뉴스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일로 강대국들이 모든 군대를 대한민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을 비롯해 부통령, 국무총리 등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권력자들이 한날한시에 죽어버렸기에 패닉에 빠졌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이 네 국가에선 모든 핵 미사일을 대한민국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강경파와 모든 것이 스스로 자초한 거라며 이미 핵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끝내야 한다는 온건파가 맞부딪쳤다.
대한민국은 핵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수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사대 강국의 수뇌부들을 암살한 자들이 대한민국의 마공사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크나큰 곤경에 처한 것이다.
이대로는 대한민국 혼자서 사대 강국을 상대로 한 세계대전을 벌여야 할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이 서울 상공에서 핵폭발이 일어난 지 두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 폭발로 인해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던 특무부 본부 건물들은 또 한 번 처참히 박살 나고 말았다.
당연히 창고들도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그중 한 창고 앞.
그곳에 몇몇 사람들이 꽤나 당황한 얼굴로 우두커니 한곳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창고는 폐허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무너져 있었다.
원래는 수만 명이 쉘터로 사용해도 될 만큼 커다란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건물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은 상태.
그런데 그 폐허 속의 한 곳에 너무도 찬란한 빛을 내는 타원형의 게이트가 나타나 있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건 바로 그 게이트였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1년이 넘은 게이트.
그게 왜 이 시간에, 이런 엉뚱한 장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일 것?
사람들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긴급히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그들은 무너진 특무부 건물에서 살아나온 요원들이었고, 우연히도 김재우가 이끄는 특수 전략부대 소속의 대원들이었다.
“…. 네. 맞습니다. 게이트가 생긴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크기는 대략 2미터 정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통화를 마친 요원은 다른 요원들에게 상관의 지시를 하달했다.
“모두 대장님이 오실 때까지 이곳을 사수한다. 게이트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시야부터 차단해라.”
총 다섯 명의 요원은 빠르게 움직였다.
무너진 벽을 일으켜 세워 게이트가 보이지 않게 했고,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철저히 경계했다.
그렇게 몇 분이 더 흘렀을 때였다.
지이이이이잉-
게이트가 더욱 강렬하게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요원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혹시라도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올까 봐 잔뜩 긴장하며 지켜봤다.
빛이 조금씩 사그라졌을 때였다.
저벅.
게이트 안에서 누군가의 다리가 스윽 빠져나오더니 안정적으로 바닥을 디뎠다.
뒤이어 또 다른 다리가 나왔고 이내 사람 형체를 만들어 냈다.
그 형체는 손을 뒤로 살짝 빼고 있었다.
손은 또 다른 사람 형체와 이어졌다.
자박.
앞선 사람보다 훨씬 작고 가녀린 다리가 바닥을 밟았다.
그 다리도 사람의 형체를 이루어 냈고 마침내 한 여인이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남 일녀.
남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여자는 아직 스물도 안 된 것처럼 어렸다.
두 사람은 뭔가 감동적인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뭐야? 우리 제대로 온 거 맞아?”
“그걸 오빠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저기 사람들 있으니까 물어보자.”
놀랍게도 여인은 멀리에 몸을 숨기고 있는 특무부 요원들을 금방 발견해 냈다.
“우릴 발견한 모양인데 어쩌죠? 아직 대장님이 안 오셨는데….”
“아직 그대로 있어! 위급 상황이 아니면 절대 교전하지 말라는 지시…. 헉!”
말하던 요원이 귀신을 본 듯 깜짝 놀라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요원이 보는 곳에는 방금 게이트에서 나온 두 남녀가 서 있었다.
분명 3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마치 점멸하듯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다, 당신들 누구…. 어?”
두 남녀의 정체를 묻던 요원이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했다.
“거봐. 맞다니까, 오빠! 이분들 입은 옷은 분명 특무부 요원복이라고.”
“와, 씨. 그럼 뭐야. 이 폐허가 특무부 본부라는 거잖아? 여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거기, 이봐요. 아저씨!”
청년이 뭔가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다가 요원을 불렀다.
그런데 요원은 지금 그 말에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이 두 남녀가 누구인지를 지금 막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당신 한…. 한수호 맞죠? 여자분은…. 서…은채? 뭐야! 여기서 왜 서은채가 또 나와?”
당황해하며 소리치는 요원.
그 말을 들은 다른 요원들도 손가락으로 청년과 여인을 가리키면서 덜덜 떨어댔다.
“말도 안…돼!”
“정말…. 정말 귀환했다고?”
“왜…. 왜 이제야 귀환했는데!”
특무부 요원들의 얼굴이 울상이 돼버리더니 눈물까지 펑펑 흘렸다.
그 모습에 한수호와 서은채가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여기 특무부 본부 맞아요? 연도는? 지금 몇 연도에요?”
한수호가 다급하게 묻자 이들 중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요원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2053년입니다. 두 분이 게이트를 타고 아스루나로 떠난 지 정확히 1년하고 나흘이 지났고요.”
“2053년? 그럼 여긴 대체 왜 이런…. 음?”
한수호는 말을 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몰라서 천천히 마나 파장을 주변으로 퍼뜨리고 있었는데, 이 주변만 폐허가 된 게 아니라 마나 파장이 닿고 있는 지역의 상당 부분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기운이 몇 개 느껴졌다. 그중 하나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존재의 기운이기도 했다.
‘이건 케이시? 그런데 기운이 왜 이렇게 약하지?’
케이시의 기운이긴 한데, 마치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거리는 느낌이었다.
“은채야. 너 잠깐 여기 있어 봐.”
“귀환하자마자 나 두고 어디 가려고?”
“지금 여기로 재우 형이랑 재희 누나가 오는 중이거든? 두 사람 만나면 상황 설명 좀 해주고 있어. 금방 돌아올게.”
“조심해. 여기서 뭔가 엄청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으니까.”
서은채는 한수호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면서 마나력과 특성을 다루는데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이젠 한수호 만큼이나 감각의 폭이 넓어졌다.
그 덕에 이곳에서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까지 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확인이 필요한 거고. 잠시만 기다려.”
“알았어.”
서은채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수호는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 * *
크르르르르….
케이시는 폭발의 충격에 큰 상처를 입고 땅속 깊은 곳에 처박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핵 미사일 세 기의 폭발을 혼자서 감당한 결과였지만 사실 목숨이 붙어있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날개 하나는 완전히 찢겨나갔고, 오른쪽 다리와 허벅지까지 지옥의 불길에 녹아버렸다.
케이시가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이 아니었다면 벌써 목숨을 잃고도 남았을 상황.
하지만 케이시는 극심했던 부상을 2시간여 만에 거의 치료한 상태였다.
치료를 위해 마나하트의 능력을 상당 부분 소모한 터라 그녀의 기운은 극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때, 케이시의 감각에 무시무시한 기운이 두 개나 느껴졌다.
그녀가 회복 중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그곳은 바로 특무부 본부였다.
두 개의 기운 중 하나는 케이시가 멀쩡한 상태라 할지라도 감히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대했다.
그 기운을 접하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케이시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70%밖에 회복하지 못했기에 지금 그 존재를 마주한다면 자신은 한 방 거리였다.
케이시는 더욱 빠른 회복을 위해 마나하트를 쥐어짰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감수한 채 방금 나타난 존재로부터 최소한의 방어를 하기 위해 힘을 비축시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파앗-
케이시가 엎드려있는 구덩이 속에 빛무리가 번쩍하더니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독특해 보이는 사내.
하지만 그보다 너무도 잘생긴 용모가 눈에 확 띄었다.
케이시는 그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드래곤으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사내를 향해 거대한 몸을 날렸다.
“한수호-!”
거대한 산이 날아들자 한수호는 손을 들어 점잖게 케이시의 육중한 몸을 허공에 멈춰 세웠다.
이제는 공간 조작 특성이 없음에도 패시브 능력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 염동력의 힘이었다.
“워워. 그 덩치로 달려들면 에바지. 날 죽일 셈이냐, 케이시?”
한수호가 염동력으로 케이시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으며 한 말에 케이시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너 이 자식, 지금까지 뭔 헛짓거리를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냐!”
우르르르릉
케이시의 호통 소리에 지진이 난 것처럼 사방이 뒤흔들렸다.
지상에서 100미터가량 파인 구덩이로 건물의 잔해와 흙더미들이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헛짓거리는 네가 한 거 아니고? 그것보다 서울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얼마나 대단한 몬스터가 나타났길래?”
한수호가 심각한 얼굴로 묻자 케이시는 빠르게 폴리모프를 하여 젊고 어린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몬스터는 개뿔. 아니지, 그것도 몬스터라고 볼 수 있겠군. 그것도 아주 개같이 공포스러운 최악의 몬스터 말이야.”
“그게 뭔 소리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봐.”
케이시는 어느새 한수호 앞까지 다가와 건물 잔해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폐 속 깊숙한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였다.
“잘 들어, 한수호. 네 놈이 한발 늦게 오는 바람에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 터져버렸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까.”
그렇게 시작된 케이시의 이야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