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귀환, 그 후의 이야기 8화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벙-
티비 영상에서 끔찍한 장면이 계속해서 방송되고 있었다.
멀쩡하게 살던 사람들이 한순간 머리가 터져 죽어버리는 장면들.
매스컴에서는 그 장면을 모자이크로 처리해 세계 곳곳에 방송하는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무려 2만 3천명이 훨씬 넘는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 머리가 터져 죽은 일본인은 23,047명이지만, 그 광경을 목격하고 심장 마비로 사망한 사람들이 100명이나 된다.
삿포로 상공에서 미사일이 터지고 괴이한 파장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간 뒤 벌어진 참혹한 죽음들.
이 광경에 일본 전체가 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일본의 자위대가 훗카이도에 집결했고, 이 참혹한 학살극을 만들어 낸 장본인을 찾고자 세상이 광분했다.
일부 극우파의 일본인들은 러시아가 쿠릴 제도를 일본에 빼앗기기 싫어 과거의 침략 전쟁을 빌미로 이번 사건을 벌인 거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극우파 인물들은 대한민국의 마공사들이 혼란을 틈타 일본으로 넘어와 이번 참극을 벌인 거라며, 대한민국을 세계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쿠릴 제도의 한 섬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은 너무나 확실했다.
게다가 삿포로의 모든 일본인들 머릿속을 파고들었던 음성은 마지막에 이런 경고까지 남겼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만약 너희 일본인들이 끝까지 침략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쿠릴 제도을 탐하려 한다면, 다음엔 응징이 아닌 더욱 끔찍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 과오를 인정하고 죄를 진 국가에 사죄하라. 정확히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너희 일본인이 계속 존재해도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라. 그것만이 너희 일본을 멸망에서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내용은 한 기자가 생방송으로 머릿속을 파고드는 음성 그대로를 따라 읊음으로써 전 세계에 방송되었다.
과연 이 신비한 음성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는 누구이기에 계속해서 일본인에게 사죄를 강요하는 것일까?
그는 정말 러시아 국적이 맞을까?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떻게 한순간에 2만이 넘는 사람의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공포스러운 무기를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온갖 의문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이번 사건의 배후로 여겨지는 러시아는 아무런 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꽁꽁 다문 채 뭔가를 두려워하듯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삿포로의 시민 2만 3천여명이 목숨을 잃은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
러시아의 비밀 벙커에 고위급 장성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이미 열 명이 넘는 최고위 권력자들을 누군가의 암살로 인해 잃은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순식간에 무정부 상태가 될 정도로 러시아는 허술한 국가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없으면 부통령이, 부통령이 없으면 국무총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 러시아를 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최고 권력자는 국방부 장관인 로마노프였다.
“그래서,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지금처럼 쥐죽은 듯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로마노프는 반쯤 벗겨진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흐트러뜨리며 장성들에게 따져물었다.
“최소 일주일입니다. 의문의 목소리가 일본에 준 시한 동안 우리 러시아는 절대 어떤 움직임도 보여선 안 됩니다.”
“얀구프 차관. 자네가 두려워하는 그 존재가 대체 무언가?”
로마노프의 시선은 안경을 쓰고 있어 지적인 인상이 돋보이는 얀구프 차관을 향했다.
“뭔가 대단히 두려운 존재가 지구에 도착했습니다.”
“설마 게이트가 열렸단 말인가? 거기서 발자크 같은 대마왕이 또다시 넘어오기라도 한건가?”
“그건 아닙니다. 체키스트들의 정보에 의하면 그 존재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 어떤 존재도 그를 제어할 수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인간이면 죽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게…. 체키스트들이 파악한 바로는 어쩌면 인간을 초월한 존재일 수 있다고….”
얀구프는 강력한 특성을 지닌 마공사들로 이루어진 체카라는 조직의 수장이었다.
체카는 구 소련에서 창설된 최초의 비밀요원 집단이었고, 잔인한 임무 방식으로 유명했다.
체카는 여러 이름을 거쳐 KGB에까지 이어졌고, 다시 FSB(러시아 연방보안원)로 바뀌었다가 결국 최초의 이름인 체카로 되돌아 갔다.
하지만 지금의 체카는 과거의 체카와는 완전히 달랐다.
오직 특성을 지닌 마공사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으며, 게이트가 존재했을 당시 1년 365일을 균열 너머에서 지내며 몬스터들을 살육하는 것을 훈련으로 삼았던 전쟁광들의 집합체였다.
체카엔 매우 특이한 특성을 지닌 마공사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특성이 바로 ‘능력자 감지’였고, 그런 마공사들을 체키스트라고 불렀다.
능력자 감지 특성을 지닌 마공사들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지닌 능력자가 나타나면 이를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 능력자의 범위는 인간부터 몬스터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 있었는데, 예전에 발자크나 발자크를 없앤 한수호라는 인간이 등장했을 때도 이들의 특성이 여지없이 발동했었다.
하지만 체키스트들은 그런 존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감지만 할 뿐, 그 능력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대신 그 존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후…. 초월자라. 그럼 체키스트들은 그 초월자가 어느 편에 서 있는 존재인지도 알아냈나?”
로마노프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네.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설마…?”
“네. 장관께서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그 초월자는 아직까진 일본의 적입니다. 일본과 한배를 탄다면 함께 멸망하게 될 뿐입니다.”
얀구프의 말에 비밀 벙커에 모여있던 인물들 모두가 심각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그 초월자가 과연 일본만 적으로 둔 것일지, 아니면 다른 국가들까지 적으로 돌릴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그 존재가 우리 편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니 그 시간 동안 초월자를 없앨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초월자를 없앤다? 그게 가능하긴 한가?”
“우리 힘만으로 안 된다면 다른 나라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하다못해 대한민국의 힘이라도 말입니다.”
“끄응….”
로마노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체키스트들이 발견한 초월자가 대한민국의 힘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일 줄은 정말 몰랐다.
“다만 한 가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이 있을 수도 있나?”
“네. 그건 바로 초월자가 대한민국의 편에 서는 경우입니다.”
“뭐라고!”
이건 말 그대로 최악 중의 최악이요, 러시아의 멸망을 확정 짓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안 되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얀구프 차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사태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네!”
“알겠습니다. 러시아 최강의 마공사들을 소집하겠습니다. 체카 최강의 요원, 스페츠나츠R0 팀 전원을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스페츠나츠R0.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한 명도 없다.
일반 스페츠나츠만 해도 특수병 중에서도 특수병인데, 거기에 R0라니.
이들은 궁급 이상의 마공사들로만 이루어진 헬급 게이트 폐쇄 전문 요원들을 의미했다.
러시아의 입장에선 최종병기나 다름없는 셈.
그만큼 이번에 체키스트들이 발견한 초월자의 존재는 끔찍하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 * *
같은 시각.
한국의 태극서가엔 강력한 마공사들이 대거 운집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핵 미사일을 막기 위해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있다가 이제야 몸을 추스리고 김재우의 호출에 응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들 모두에겐 은신, 추적에 능통한 강력한 마공사들이 최소 두셋 이상 달라붙어 항시 감시를 받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오늘 오전에 벌어진 사대 강국의 대통령 암살 사건과 핵 미사일 폭격으로 인해 모든 감시자들이 본국으로 귀환한 상태였다.
김재우는 태극서가에 오면서 절대 미행을 달고 오지 말라는 경고를 했고, 마공사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나름 고생하며 이곳까지 왔다.
그렇게 해서 모인 마공사들의 숫자는 대략 20여 명.
원래대로라면 그보다 두 배는 많은 인원이 모여야 했지만, 나머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기에 어쩔 수 없었다.
태극서가의 비밀 회의실 분위기는 무척이나 침울했다.
가까스로 핵 미사일이 대한민국의 대지 위에서 폭발하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으나, 그를 위해 희생된 마공사들이 너무나 많았다.
사자도왕 송혁과 친분이 두터웠던 마공사들은 대 영웅을 잃었다며 안타까워 했고, 일패검 권현태와 이패궁 박윤주의 죽음 역시 많은 이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깊은 슬픔에 빠진건 바로 서한광이었다.
그는 딸 서은채가 서울에 떨어지는 핵 미사일을 막고자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가슴 아프게도 그녀가 서울 상공에서 폭발한 핵 미사일의 충격파에 소멸되는 장면이 서울을 빠져나가던 시민의 손에 촬영되었던 것.
서한광은 이미 그 장면을 수많은 필터를 사용해 면밀하게 분석했고, 서은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어쩌면 남겨진 사람들이 더욱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사람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송지문, 송유나 남매는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오열하고 있었고, 한성찬은 양아버지 권현태의 죽음에 그저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하윤은 스승 박윤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쉬지 않고 울음을 터트렸다.
국수대 특수팀 요원들은 어떠한가?
늘 그들을 보듬어 주고, 진심 가득한 조언을 아낌없이 주었던 노희경의 죽음에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권존 김무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마공사들을 힘없이 돌아봤다.
그는 핵 미사일의 파편에 어깨를 관통당했음에도 치료조차 하지 않고 이 자리에 와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는 관통상으로 흘린 피가 흥건했다.
대충 지혈만 한 상태로 2시간이나 지났기에 피는 완전히 말라붙어 있었다.
“김재우 요원. 아무래도 쉽게 진정될 것 같지가 않으니 일단 무슨 일로 우릴 소집했는지부터 말해 보게나.”
김재우와 윤재희 역시 이 자리에 와 있었지만, 그들은 한수호와 약속한 게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을 모셔달라고 부탁한 분이 곧 도착할 겁니다.”
“뭐? 우릴 모셔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다고?”
김무성이 굵은 눈썹을 치켜뜨며 묻자 김재우가 몸을 움찔했다.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재우 아저씨! 누굴 기다리는 건데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죠?”
참다못한 한설아가 양소혜의 만류를 뿌리치며 김재우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설치된 패널을 조작해 중앙의 대형 화면에 뉴스를 틀었다.
뉴스에선 일본 삿포로에서 벌어진 대형 참살극을 계속해서 특보로 다루고 있었다.
“자, 보이시죠? 어떤 미친 인간이. 아니, 인간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가 일본에 이런 참사를 일으켰다고요. 러시아에서 일으킨 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걸 누가 믿겠냐고요. 사대 강국에서 핵 미사일을 쐈고, 우린 그걸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간신히 막았어요. 그런데 바로 일본에서 2만 명이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죠. 그럼 그 참사를 일으킨 게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한설아의 질문에 김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어찌 그 사실을 모르겠는가.
게다가 그는 그 참사를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지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의 절반은 우리가 보복으로 그런 엄청난 짓을 벌인거라고 생각하겠죠. 그럼 그 뒤가 빤히 보이죠? 안 그래도 저희가 사대 강국의 대가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는데, 일본에 그런 참사까지 일으켰으니 대한민국을 아예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며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요!”
한설아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외나무 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는 상황인데, 거기다 기름을 부어 중심조차 잡을 수 없게 만든 꼴이었다.
하지만 한설아는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잠자코 한설아의 말을 듣고 있던 백윤후는 그중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설아.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를 잊은 것 같다.”
“내가 뭘?”
“그럼 놈들의 손에 죽은 대한민국 시민들의 억울함은 어디에 풀어야 하지? 5천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희생된 수많은 마공사들의 넋은 누가 위로해 줄 건데?”
“그럼 네 말은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일본인 2만여 명을 참살했으니 정당하다고 생각하라는 거야?”
“솔직히 묻자. 넌 그 많은 일본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깊은 슬픔에 말문이 막혔어? 아니잖아. 너도 시원했을걸? 속으로는 2만 명이 아니라 5만 명, 아니 10만 명이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그건….”
한설아도 일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백윤후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정말로 일본인 2만여명이 죽었다는 소식에 통쾌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모두가 한설아와 백윤후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였다.
벌컥!
회의실 앞문이 활짝 열리더니 세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한설아. 넌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한설아를 향해 꾸짖듯이 말하며 회의실에 들어선 인물은 다름아닌 한수호였다.
“네가 걱정하는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강력한 무력이 있다면 그 어떤 후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말이야.”
한수호의 자신만만한 음성이 회의실의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