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370화 (370/375)

외전 - 귀환, 그 후의 이야기 12화

“와, 이거 엄청난데? 세계수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날이 올 줄이야.”

백윤후는 새하얀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것 같은 거대한 나무를 올려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양소혜도 한마디 했다.

“이게 정말 세계수라고? 예전에 가양 게이트 안에서 본 나무보다는 작은데?”

양소혜는 백윤후를 따라 고개를 쳐들고는 드높게 솟아있는 세계수를 감상했다.

“아직 10년밖에 안 돼서 좀 작은 것뿐이에요. 1년에 거의 두 배씩 자라니까 내년 정도면 더 엄청나질걸요?”

서은채는 그렇게 대답하며 세계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런데 쟤들은 아직도 저러고 있네? 뭘 하는지는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여긴 왜 데려왔데?”

한설아는 작은 사막여우의 모습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는 고니와 놀다가 세계수 뿌리 쪽에 모여 있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몬스터 봇 한 기를 바라봤다.

“중요한 일 있다고 잠시 어디 다녀오겠다는 수호 녀석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 게 누구였더라?”

최지혁은 라라가 준비해 준 차를 홀짝거리며 한설아를 째려봤다.

“야, 최지혁. 수호가 돌아왔다고 아주 기가 살았네? 조만간 나랑 친분의 시간을 좀 가져야 할 것 같다?”

“설아야. 지혁인 그만 괴롭히고 말투나 좀 어떻게 해봐. 아무리 쌍둥이라도 수호가 오빠라며? 존대는 못 해도 오빠 호칭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이번엔 신소이까지 끼어들어 한설아에게 한마디 했다.

신소이는 예전처럼 음침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젠 친구들 모두가 신소이의 아버지가 혈마 신유임을 알기 때문에 굳이 정체를 감추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염색도 풀어 예쁜 브론즈빛 머리카락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니 너무나 예쁜 서양형 미녀의 얼굴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쳇. 1년이나 집에 오지도 않고, 죽을 뻔한 동생을 구하러 와주지도 않았는데 오빠는 무슨! 이참에 내가 누나 하련다.”

“설아 언니! 수호 오빠가 일부러 돌아오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 잘 알면서, 왜 그래?”

이하윤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한마디 하자 한설아는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내 편은 하나도 없네. 다들 수호만 찾지 그냥. 그래도 한때는 내가 아카데미 수석이었는데….”

한설아는 한숨까지 푹 내쉬며 1년 전보다 훨씬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한수호를 바라봤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최지혁처럼 라라가 끓여준 차를 음미하고 있던 이하이가 노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눈에는 기쁜 기색이 가득하구만, 뭐. 너희 한 씨 남매는 어째 그리하는 짓도 똑같니? 앞에선 싸가지 없이 말하면서도 뒤로는 해줄 거 다해 주는 이상한 핏줄이라니까?”

“하이 말이 맞다. 나도 처음엔 한수호, 저 녀석이 날 엄청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나 때문에 꽤나 고생을 많이 했더라고. 내 실력 높여준다고 게이트까지 데려가 줬지.”

이하이 옆에는 강우진이 있었는데, 한수호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선 깊은 신뢰가 느껴졌다.

세계수 아래에 마련된 휴식 공간엔 한수호의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무려 열세 명. 그 안에는 송지문, 송유나 남매와 한수호의 친형인 한성찬과 국수대의 진무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 전투영역에 다녀오겠다는 한수호를 한설아가 끝까지 붙들고 늘어졌고 결국 여기까지 모두가 따라오게 된 것.

송지문과 송유나는 아버지의 죽으로 인해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한성찬의 설득으로 이곳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곳에 온 이후로 송 씨 남매는 크게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모두 한수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는 건, 한수호가 전투영역에 들어오기 직전에 전 세계를 향해 네 개의 조작된 영상을 뿌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영상을 직접 촬영한 건 한수호 본인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끝났을 때, 영상 속 한수호의 모습은 전혀 다른 네 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수호는 그 영상을 아무 장비도 없이 직접 편집하더니 송수신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세계 각국의 매스컴에 전송해 버렸다.

그 영상을 본 전 세계가 경악하는 건 당연했다.

미국엔 중국이, 러시아엔 일본이, 중국엔 미국이, 일본엔 러시아가 경고를 날리는 영상은 그 어떤 장비로도 조작 여부를 밝힐 수가 없었다.

각국의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이 4개국의 성명문들이 모두 조작이라는 걸 알지만, 그게 조작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고, 4개국의 국민들은 당장 시위에 나설 정도로 영상의 내용을 철저하게 신뢰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마공사들은 이 일을 벌인 한수호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성찬이 형 동생이잖아. 가서 뭘 하는 건지 좀 확인하고 알려주라.”

강우진이 한성찬에게 슬쩍 부탁했다.

“조금만 기다려봐. 분위길 보아하니 정리가 다 끝난 것 같으니까.”

한성찬은 세계수 뿌리 옆에 모여 있는 세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명은 대마왕 발자크를 끝장내버린 지구 최강의 인간이요,

다른 하나는 대적룡 볼케스라는 이름을 지닌 드래곤이었으며,

작은 고블린에 불과한 몬스터 봇은 이 거대한 세계수 그 자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 셋이 꾸미는 일이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한성찬은 이들을 적으로 삼은 사대 강국이 오히려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성찬의 예상대로 한수호가 비밀 회의를 끝내고 친구들이 모인 장소로 다가왔다.

“다들 오래 기다렸지?”

“답답하니까 얼른 말해 봐.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돼? 내가 아무리 졸랐어도 필요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을 거잖아.”

한설아는 쌍둥이 답게 한수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한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론부터 말할게. 잘 들어. 일단, 우리에겐 120시간의 여유가 있어. 아니지, 한 시간 지났으니까 119시간이네. 아무튼, 이 시간은 내가 사대 강국의 머리들한테 준 제한시간이지만, 반대로 우리에겐 모든 걸 준비할 시간이 되는 거야.”

그렇게 시작된 한수호의 설명.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친구들의 얼굴은 놀라움에서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마침내 길고 긴 한수호의 설명이 끝났을 때, 이들 중에서는 백윤후 다음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강우진도 입을 반쯤 연 채로 넋을 놓고 있었다.

“수호야.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냐? 정말 모든것이 네 예상대로 움직여 질까?”

한성찬이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질문을 던지자 한수호는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모든 변수를 가정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고, 그 결과를 토대로 만든 작전이야. 만에 하나,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것마저 이 월이 막아줄 테니 걱정 마.”

이젠 세계수와 하나가 되어버린 고블린 몬스터 봇, 월.

그에 대한 한수호의 신뢰는 무한에 가까웠다.

“자, 모두들 이걸 받아.”

한수호는 인벤토리에서 거의 백 개에 달하는 인챈트 스톤을 꺼내놨다.

그리고 그걸 라라까지 포함한 열 세명의 친구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줬다.

“이 스톤 하나엔 1회용 특성이 다섯 개나 담겨져 있어. 한 번 사용하면 그대로 폭발하고 마니까 정확한 시점에 사용하는 게 중요해.”

“1회용 특성 다섯 개라고? 그게 어떤 것들인지 알려줄 수 있어?”

강우진이 놀란 눈으로 인챈트 스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영역 전개, 마나력 증폭, 솎아내기, 공간조작, 그리고…. 천배 압축.”

한수호가 다섯 개 특성의 이름을 말해줬지만, 이름만으로는 그게 어떤 특성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말한 그 일이 발생하면 우리 모두 특정 지역으로 이동해서 그곳에 이 스톤을 내던지고 살릴 사람들만 골라내면 된다는 거지?”

“네, 우진 선배 말 그대로예요.”

“그것만 하면 세계가 다시 안정화 되는 거 맞냐?”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꽤 긴 세월 동안 평화가 유지될 겁니다.”

“하…. 네 말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걸 그대로 믿자니 내가 무슨 판타지 세계에 온 느낌이 든다.”

강우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계속 심호흡 중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판타지나 다름없는데요, 뭐.”

“그런…가?”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여기서 스톤에 새겨진 다섯 가지 특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단 한 명도 빠짐 없이요.”

한수호가 사대 강국에 120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을 준 건, 친구들이 특성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5일만에 모든 핵을 폐기하라는 요구 자체가 불가능한 것임을 한수호도 잘 알기에 과연 사대 강국이 폐기할 의사를 가졌느냐, 그것을 알아보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고.

“괜히 게으름 피울 생각 말고 제대로들 훈련해야 할 거다. 형들도 마찬가지고요.”

한수호가 친구들과 세 명의 형들을 돌아보며 한 말에 다들 어깨가 축 처지고 말았다.

“밥은…. 주는 거지?”

최지혁이 슬쩍 물어보자 라라가 힘차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지혁 오라버니. 제가 수시로 오가며, 여러분들이 일용할 양식을 끊임없이 채워드릴 거예요.”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훈련은 누가 시켜줘? 우리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건가?”

최지혁의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질문의 대답은 붉은 머리의 여인에게서 흘러나왔다.

“한 눈 팔면 팔다리 하나쯤 날아갈 각오들 해라. 한수호의 부탁으로 너희들 훈련을 맡은 이상 절대로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케이시가 엄포를 놓자 최지혁 등의 몸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케이시의 음성에 실린 드래곤 하트의 마나가 전기 충격기 같은 효과를 일으켰던 것.

“자, 그럼 다들 수고해 줘. 난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말이야.”

“우릴 두고 혼자 또 어딜 가려고?”

한설아는 곧장 한수호의 옷깃을 잡아채더니 놔주질 않았다.

“너희들이 할 일이 있듯, 스승님이나 다른 마공 선배님들도 할 일이 있어. 그러니 가서 설명해 줘야지.”

“진짜야?”

“속고만 살았나. 이 오빠가 그런 걸로 거짓말 할까 봐?”

“이미 전적이 있으니까 그러지!”

한설아가 말한 전적이란, 한수호가 3만의 키이라들을 이끌고 게이트를 넘어갔던 일을 의미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금방 온다던 한수호는 1년이 지나서야 돌아왔으니 거짓말은 거짓말이었다.

“이번엔,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해.”

“그래요, 언니. 오빠 곁에는 늘 제가 있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서은채가 이때다 싶어 얼른 한수호의 팔을 껴안았다.

“어이, 어이! 은채, 너 아직 열여섯이다. 이 언니 오빠들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양소혜가 서은채를 구박했다.

그러자 최지혁이 또 나섰다.

“소혜야. 넌 좀 생각이라는 걸 해라. 수호랑 은채는 아스루나에서 10년을 있었다잖아? 그럼 은채 나이가 우리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고요. 그러니 괜한 어른 흉내는 그만 두셔.”

“난 그런거 모르겠고.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잖아. 여기가 동방 예의지국 대한민국인 이상, 엄연히 주민등록상의 나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걸로 나이가 16살이면 미성년자인 거라고. 내 말이 틀려?”

“아유, 답답하다, 답답해. 그냥 니 맘대로 하세요.”

최지혁도 양소혜의 고집만큼은 꺾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서은채도 조심스레 한수호의 팔을 풀었다.

“죄송해요, 언니. 10년 동안 워낙 습관이 되어서….”

“습관이라고 방도 한 방 쓰고 그러면 못 쓴다. 알았지?”

“네? 아…. 네.”

서은채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 * *

전투영역에서 나온 한수호와 서은채.

두 사람은 여전히 태극서가의 비밀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공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119시간 후, 이들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들의 역할은 또 달랐다.

사대 강국이 한수호의 경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따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악수를 두고 만다면 이곳의 마공사들이 큰 수고를 해 주어야 했다.

어쩌면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야 겠지.’

한수호는 모든 설명을 마치고 구천승과 함께 어딘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구천승이 꼭 한수호를 데려오고 싶어 했던 장소였다.

“수호야. 네가 아스루나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난 이곳에 와서 널 귀환시킬 방법을 찾으려 했었다.”

구천승이 한수호와 서은채를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특무부 국내부 본부장 유대룡의 서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여길 뒤져도 널 지구로 데려올 방법은 찾을 수 없겠더구나. 대신, 여기서 이걸 찾아냈다.”

구천승이 서재의 한 귀퉁이에서 꺼내든 건 두툼한 수첩이었다.

“그건…?”

그 수첩은 한수호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한수호 본인이 아스루나에 머물면서 10년 내내 모든 사건을 기록했던 일기장이었다.

물론 그것이 한수호의 진짜 일기장은 아니었다.

한수호가 기록한 일기장은 전투영역 속의 집 안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기 때문에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구천승은 그 일기장을 한수호에게 건네주었다.

“그건 네가 쓴 일기장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한수호라고 해야겠지.”

구천승도 이 일기장이 자신의 제자인 한수호가 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구천승이 확인한 일기장의 내용은 현실 속 지구의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도대체 왜 한수호가 이런 얼토당토않은 내용의 일기장을 남겼으며 그게 어떻게 유대룡의 서재에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구천승은 이 또한 유대룡이 뭔가를 획책하려다가 남겨진 조작된 물건이라 여기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세상의 서은채가 등장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이 가짜 일기장의 내용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구천승은 그때야 깨달았다.

이 일기장을 작성한 사람은 한수호가 맞다는 것을.

다만, 그 한수호가 자신의 제자인 한수호가 아니었을 뿐임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