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귀환, 그 후의 이야기 15화
사대 강국의 최종 병기들이 인천 송도에 모두 모이고 있었다.
처음엔 미국의 KS마공전대가 나타났고, 그들을 막기 위해 요한의 특수마공부대가 투입되었다.
그런데 복수심에 불타는 유우마가 이끄는 야마토 사무라이가 KS마공전대를 전폭적으로 돕기 시작했으며, 난데없이 러시아의 스페츠나츠R0가 등장해 KS마공전대를 막아섰다.
이제 남은 건 중국의 최종 병기 적랑뿐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적랑도 모습을 드러냈다.
송도 공원 북동쪽으로 흐르는 작은 강 아래에서 온갖 아티팩트로 온몸을 휘감은 붉은 슈트의 사내들이 둥실 솟아올랐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적랑 대원들.
그들 역시 파급에 이르는 강력한 마공사였고, 중국 최고의 연구진들의 손에 신체 개조를 진행한 돌연변이였다.
중국은 오래전 새한교에게서 키이라의 제조 기술을 넘겨받았고, 거기에 자신들만의 기술을 더해 이 적랑 대원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새로 등장한 적랑들의 움직임이 묘하게 부자연스럽다.
등 쪽에 착용하고 있는 부스터 장치를 이용해 떠오른 것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부스터는 작동 중이 아니었다.
약 50여 미터 떨어진 상공에서 적랑들을 살펴보고 있던 요한은 그들의 팔다리가 기이하게 축 처져 있음을 알아보고 그들의 얼굴 쪽을 살폈다.
그리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아홉 명의 적랑 모두 뭔가에 목을 잡힌 듯 머리가 고정된 상태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적랑의 뒤쪽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목을 매단 시체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적랑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섬뜩했다.
그때, KS마공전대 셋 모두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다.
그리고 그들의 리더인 금발 여인 제로원이 갑자기 땅바닥에 주먹을 힘차게 박아 넣었다.
꽈아앙!
그 충격에 일대가 크게 들썩였고, 반경 100미터에 달하는 넓은 지역으로 마나의 파장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파장은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적랑들도 스쳐 지나갔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빠지지직- 치지직-
적랑의 등 뒤쪽에서 자잘한 스파크들이 튀었고, 서서히 투명 막이 벗겨지며 뭔가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건 사람이었다.
요한이 예상했던 것처럼 적랑의 뒤에서 목을 꽉 움켜쥔 아홉 명의 낯선 인물들.
그들은 하나같이 은색의 가죽 같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확실히 차원이 다른 인간들이군.”
제로원은 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쭉 훑어보며 차갑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로브를 걸친 아홉 명 모두 자연스럽게 땅으로 내려섰다. 그들의 손은 여전히 적랑의 목을 움켜쥔 상태였다.
“이쯤에서 모두 끝내는 게 어때? 다들 훌륭한 마공 능력자인데 여기서 가치 없는 죽음을 맞이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가장 앞선 장소에 있던 로브 사내가 후드를 젖히며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구천승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전랑의 목을 움켜쥔 은색 로브의 인물들 모두 후드를 벗어젖혔다.
하나둘 드러나는 얼굴.
요한은 그들의 얼굴 모두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구천승의 바로 뒤쪽에 있는 큰 덩치의 사내는 대한맹 맹주 서한광이었고, 그 옆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뚱뚱한 체구의 비돈마마 주태란과 비쩍 마른 귀살객 장한구가 서 있었다.
그들 뒤에 멀찍이 떨어져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 사내는 귀부암왕 장현오였으며, 그 옆에 음산한 기운을 흘리며 서 있는 인물들은 강우진과 백윤후였다.
비돈마마 주태란의 옆쪽으로는 가녀린 여인 둘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자신보다 큰 덩치를 지닌 적랑의 목을 움켜쥔 채 아무렇지 않게 서서 제로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에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은 이하이였고, 깊이를 모르는 눈빛을 흘리고 있는 여인은 바로 서은채였다.
“우리에게 타협은 없다.”
제로원이 구천승의 말에 짧게 대답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최신형 통역 장치를 모두 달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너희 말고, 저기 사무라이 선생들한테 한 말이야.”
“대 일본제국의 사무라이에게 항복은 곧 죽음이다!”
“너희들이 목숨을 내놓고 덤벼든다고 해도 그걸 영웅이라고 생각해줄 일본인은 아무도 없다. 복수도 능력이 될 때나 가능한 거지, 너희들은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잖아?”
“헛소리 마라!”
“살려주겠다는데도 굳이 묏자리를 파는구만. 쯧.”
구천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잡고 있던 적랑을 앞으로 확 내던졌다.
“네놈들한테도 마지막 기회를 주마. 이대로 대한민국을 떠난다면 더는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저 병신 같은 사무라이들처럼 끝까지 적의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그땐 가장 처참한 죽음을 맛보게 될 거다.”
구천승이 적랑을 놓아주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적랑을 옥죄던 손을 풀어주었다.
단숨에 하나의 무리로 뭉쳐든 적랑들.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야마토 사무라이의 대장인 유우마를 바라봤다.
“힘을 합쳐볼 생각이 있나?”
적랑의 대장이 던진 질문에 유우마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놈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일본의 복수는 우리 힘만으로도 충분하다!”
유우마는 단칼에 거절했고, 구천승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바닥을 힘차게 찍어 찼다.
쿠웅!
강한 충격이 일더니 일곱 명의 야마토 사무라이들 모두의 몸에서 엄청난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야마토 사무라이들에 이어 아홉 적랑들 또한 품에서 노란빛의 주삿바늘을 꺼내더니 그걸 허벅지에 푹 박아 넣었다.
“우리 적랑의 임무는 목숨을 다 바쳐 동이의 쓰레기들을 살처분하는 것이며, 우리가 행한 영웅적인 행보는 중국인민공화국의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애국주의가 적랑의 눈과 귀를 모두 멀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 개조 능력이면 얼마든지 이 판세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착각의 결과는 끔찍했다.
적랑들의 신체는 주삿바늘의 효과로 순식간에 거대해졌으며, 그들이 지닌 마나력 또한 크게 늘어났다.
파급을 뛰어넘어 멸급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증폭된 마나력은 이곳에 있는 모두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꽈광! 꽝꽝!
구천승과 그의 일행들이 있던 곳에서 일제히 폭발음이 터지더니, 아홉 줄기의 빛이 적랑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터져 나온 자욱한 피 분수.
푸화아아악!
푸슈슈슈슈!
인간과 몬스터의 중간쯤 되는 머리 네 개가 하늘로 떠올랐고, 팔 세가 날아올랐으며, 적랑 중 한 명의 허리가 두 동강 나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대장인 린쥔샤오의 등에는 백윤후가 달라붙어 있었다.
“크와아아아아악!”
린쥔샤오가 4미터 크기의 거대 몬스터로 완전히 모습을 변형했을 때, 백윤후가 섬뜩한 웃음을 그려 보이더니 그대로 린쥔샤오의 목을 물어뜯었다.
마치 뱀파이어가 된 것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네 개의 송곳니가 린쥔샤오의 목 근육 깊숙이 박혀 들었다.
쥬웁. 쮸우우웁!
백윤후가 한 번 피를 빨아들일 때마다 린쥔샤오의 체격이 확확 쪼그라들었다.
그 광경에 야마토 사무라이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은 최대한 마나를 끌어올린 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스페츠나츠R0 요원 다섯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무라이식 검술을 특성으로 지닌 일곱 명의 일본 마공요원들과 특수훈련과 세포 개조를 통해 강화된 인간병기 스페츠나R0 요원 다섯의 혈투.
그건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움직임을 보이며 여기저기서 번쩍거리고, 사방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공간이 우그러졌다가 화염이 뿜어진다거나, 하늘에서 거대한 얼음창이 나타나 지상을 폭격했다.
송도 공원은 삽시간에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그사이 아홉 명의 적랑은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훌륭한 반응속도를 보이며 목이 날아가는 걸 피할 수 있었던 세 명의 적랑도 뒤이어진 공격에 몸통이 갈라지고, 머리가 터져나갔다.
멸급에 가까운 마나력을 지닌 키이라로 변신했던 적랑들은 지닌 바 힘을 채 반도 써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스페츠나츠R0와 사무라이 마공요원들의 전투는 처음엔 팽팽한 듯 보였지만 금세 우열이 판가름 났다.
사무라이 마공요원들의 기술은 불곰국의 강력한 파워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사무라이들의 검이 제아무리 빠르고 날카로워도 단번에 스페츠나츠R0 요원의 몸을 잘라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벼운 상처쯤은 완전히 무시한 채 사무라이들의 검을 모조리 받아낸 스페츠나츠R0 요원들.
결국 사무라이들은 스페츠나츠R0 요원들의 손에 부러진 자신들의 검에 심장을 찔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킹슬레이어 세 기가 뭔가를 결심한 듯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원. 제로투. 이곳은 내게 맡겨라.”
“킹슬레이어의 영광이 있기를.”
“우리는 반드시 사명을 완수한다.”
제로쓰리만 이곳에 남고 다른 둘은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과 최종 목표인 한수호를 찾아 움직이려는 것이다.
이를 눈치챈 요한이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이를 막아서려 했지만,
“너희들 모두 여기서 나와 함께 뼈를 묻는다!”
제로쓰리가 큰 소리를 외치더니 머리부터 팔, 다리 모두가 몸통에서 1미터 이상 떨어져 나왔다.
몸통과 다른 신체 부위는 시퍼런 빛줄기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빛줄기들은 몸통 중앙에 있는 코어핵에서 발출되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제로쓰리의 코어핵이 엄청난 진동과 함께 초고음의 음파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요한은 이 현상이 무언지 너무도 잘 안다.
“핵이다! 놈이 핵 융합으로 자폭에 돌입했다!”
요한은 경악성을 터뜨리며 팀을 모두 뒤로 물렸다.
킹슬레이어들의 몸에 장착된 코어핵이 폭발하면 거의 핵 폭발의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위력이 발생한다.
코어핵이 가동을 시작하고 폭발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분.
지금 당장이라도 전력으로 이 자리를 벗어난다고 해도 폭발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그런데 구천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마공사들은 전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포기한 건가?’
요한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꽈릉!
하늘에서 우렁찬 뇌성이 터져 나오더니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먹구름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굵은 빛의 기둥이 수직으로 섬전처럼 뿜어져 내렸다.
쿠아아아악!
빛의 기둥은 그대로 제로쓰리의 머리 위로 직격했다.
콰직
단숨에 제로쓰리의 몸체가 짜부라졌고, 동시에 땅바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며 일대를 화염으로 휘감아 버렸다.
그 범위는 직격된 제로쓰리에서부터 무려 반경 50여 미터에 달했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마공사들 대부분이 그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폭발은 10여 초나 이어졌고, 화염과 열기가 가라앉았을 때 드러난 광경에 요한과 그의 팀원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엄청난 크기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그 끔찍한 폭발 속에 들어있던 마공사들이 단 한 명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로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미 핵분열 반응을 시작했기에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화끈한 화염으로 깨끗이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그때, 하늘에 난 구멍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건 엄청난 크기의 레드 드래곤이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항공모함 같은 위압감을 선보이며 수직으로 하강하던 드래곤은 어느 한 지점에서 수평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 점으로 변해가는 나머지 두 기의 킹슬레이어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고니!”
빛의 기둥에 직격된 곳에 두둥실 떠 있던 서은채가 허공을 향해 하얀 털 뭉치 같은 걸 내던졌다.
털 뭉치는 핑그르르 회전하며 하늘 위로 솟구치다가 갑자기 온몸을 활짝 펼쳤다.
그건 작은 사막여우였다.
사막여우는 허공에서 수천 조각으로 분해되었다가 크기를 부풀려 재조립되더니 대형의 은색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크허어어어어엉!
드래곤은 허공을 크게 선회하더니 서은채 쪽으로 날아왔다.
머리를 쭉 내밀고 바닥을 스치듯 날아가자 서은채가 훌쩍 뛰어올라 드래곤의 목 위로 착륙했다.
그리고 그 둘도 방금 전의 초거대 드래곤의 뒤를 따라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요한은 반쯤 넋이 나갔다.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멸급에 가까운 마나력을 지닌 키이라 아홉을 무슨 애들 장난처럼 죽여버리는 마공사들과 핵 분열을 시작한 킹슬레이어 인조인간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는 빛의 기둥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 등장한 항공모함급의 드래곤과 은빛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사막여우라니.
게다가 초거대 드래곤의 목 위에도 분명 사람이 타고 있었다.
워낙 멀어서 정확한 인상착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략적인 실루엣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한수호. 그가 정말 귀환했구나!’
1년 전의 대영웅 한수호.
초거대 드래곤을 타고 두 기의 킹슬레이어 뒤를 쫓아간 건 분명 한수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