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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화 (1/250)

1화

끝은 다음 시작의 준비단계일 뿐이다.

20세기에 처음 지구를 벗어난 이후 인류는 다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때를 맞이했다.

테라포밍, 즉 행성 개조에 필요한 설비와 소재를 갖춘 거대한 우주 전함과 함께.

지구가 속한 태양계 내에서 점차 죽어가던 인류가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

“이게 진짜 마지막이지요?”

도시만큼이나 거대한 함선 내에서 검은 머리의 군복 차림 남자가 걸어가면서 물었다.

그의 팔 부분에는 푸른 지구가, 가슴에는 은색 원이 하나 달려있었다.

동행하던 흰 가운의 기술장교가 입을 열었다.

“정말 끝입니다. 김검천 중령님. 피곤하시면 좀 쉬어갈까요?”

김검천이 은색 계급장을 툭툭 치며 대답했다.

“아직 소령입니다. 달려있는 은색 원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라고요.”

“진급이 이미 결정되셨는데 중령님이라 못할 건 없겠지요.”

“그런가요? 그보다 집에서의 휴식이 더 좋으니 임무부터 끝내지요.”

“그게 낫겠네요.”

김검천은 지구연합우주방위군 한국 출신으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영관급 장교였다.

이제 40대를 바라보는 나이로 중령 진급이 된 건 빠른 편에 속했지만.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병사가 중령까지 올라왔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전함 높이만 1,000미터를 가볍게 넘고 너비와 두께도 그 이상입니다. 그러면 실제로는 수십 킬로나 걸은 셈이 되 버렸으니까요.”

“명령이니까 별수 없이 따라야지요. 그러고 보니 김검천 중령님은 함장님이 데려오셨지요?”

“박재형 중장님 말씀이군요.”

“예. 두 분의 사이가 제법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병장 때 2년 단기 장교 코스로 소위로 임관하기도 전부터 말이지요.”

“2년 임관이 어쩌다 장기 근무로 바꾸시고 중령까지 승진하신 겁니까?”

“대학 학비 때문에 임관하게 되었지요. 어쩌다 보니 군인 연금 때문에 계속하게 된 거고요.”

“20년 근속 중령부터 연금이 나오지요. 귀환하면 전역하실 예정인가요?”

“그때는 아무도 절 막지 못할 겁니다.”

기술장교는 결의에 찬 김검천을 바라보며 고개를 슬쩍 저어 보았다.

박재형 중장이 한 일을 보아 그가 김검천을 그냥 놔줄거 같지는 않아보였으니까.

“아무래도 못할 거 같…아, 아닙니다. 그보다 사관학교 출신들 연례행사인 파워드슈츠 백병전에 참가해서 당시 최강자던 사관학교 수석을 격파하신 게 시작이라 들었습니다.”

“병장때 대리로 참가했는데 그만…당시 함장님은 제가 속한 부대 대대장이었지요.”

“함장님은 김검천 중령님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시더군요.”

“덕분에 10명을 좀 넘는 수뇌부에 포함되었고요. 거기서는 나이로 보나 계급으로 보나 막내지만요.”

“함선 내 10만 인원들 중에서 소령 계급으로 그 위치라면 대단한 거지요.”

“수뇌부에 영관급 계급은 저밖에 없으니까요.”

“그건 함장님의 배려가 반영되었다고 봐야지요?”

“이번 중령 진급으로 함 내 1급 기밀까지 접근하게 해주겠다고 하실 정도니까요. 여전히 이렇게 걸어야 합니다만.”

“아직 일반적인건 아니지만 마법같이 원격 이동 전송마저 가능한 시대인데 말이지요.”

“물론 저 신세보다는 낫긴 하지만요.”

- 쿵쿵쿵.

함내 병사들이 박재형 중장의 명령에 따라 분대 단위로 구보를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신에 40킬로에 가까운 강화복, 파워드슈츠를 장착한 채로 뛰는 중이었다.

김검천처럼 12시간 동안 60,000미터 정도의 거리를 걷는 건 양호한 편인 것이다.

“난! 병사를 그만두겠다! 소대장! 슈츠 구보라니 요즘 시대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반항하는 그를 소대장이 두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10미터도 넘는 로봇인 배틀머신에 탑승한 상태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넌 특별히 맛없는 근육 증강 해물 프로틴 5주 식사형에 스쿼트 50회 50세트로 대체 해주지.”

“오, 근 손실은 없겠네… 헉! 어느새 세뇌를 당한 건가? 그걸 먹을 바에는 차라리 죽여줘!”

“야, 너두? 하지만 죽으면 근육 훈련을 못 하니까 기각이다!”

매일 보는 희생자를 뒤로 하며 김검천은 기술장교가 탑승 중인 작은 원반을 바라 보았다.

들고 다닐 정도로 가볍지만 시속 100킬로까지 나오는 녀석이었다.

중력을 무시하는 반중력 장치가 달려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박재형 중장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이런 시대에 누가 걸어서 이동하겠는가.

김검천의 시선을 느낀 기술장교가 쓴웃음을 지었다.

“좋게 생각하도록 하지요. 이 전함은 각 부위 변형도 가능하니 도보 이동 거리가 더 길어질 수도 있잖습니까.”

“그걸 위로의 말이라고 한 거라면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만.”

이후 엔진실에 도착하자 보안 카메라가 뻗어 나오더니 둘의 앞을 막아섰다.

김검천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손등에 기이한 모습의 문양이 빛났다.

[1차 검증 끝. 2차 검증 시도합니다.]

이번에는 눈 안에서 손등의 문양 같은 것이 떠올랐다.

특정 부위에서 빛의 문양 같은 고리가 생성되는 건 몸속 나노머신이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해당 등급의 병기 등을 사용하려면 필요한 신분증이 몸 속에 박혀 있는 셈인 것이다.

인증을 하고 엔진실에 들어서자 처음 접한 건 백금색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김검천이 그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게 우리 함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주엔진입니까?”

기술장교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다른 한 곳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저건 핵을 이용한 열핵융합 동력원으로서 원래는 저것만 장착될 예정이었지요. 주엔진은 저기에 있습니다.”

그 말에 신경 써서 살핀 후에야 반투명한 검은 구체가 허공에 떠 있는 걸 찾을 수 있었다.

검은 구체가 마치 사람의 눈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 엔진이자 코어인 초신성 반응로를 보면서 김검천이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저게 사용되는 건지 알고 싶어 궁금해지는데요.”

“그러게요. 사실 저도 모르거든요.”

“…에?”

김검천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기술장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엔진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기술장교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안다는 건가.

기술장교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용하는 것과 그 원리에 대해 잘 아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함선을 조종한다고 함선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지만 담당자가 모른다는 건 그렇군요.”

“저건 1급 기밀이니 장성급 장교나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블랙홀과 관련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군요.”

“진짜로 블랙홀이 동력원으로 쓰이는 건 아닐 테지요?”

“하하, 블랙홀이면 사람은커녕 우주선도 못 버틸걸요? 지구도 블랙홀에 빠져들면 증발해 버릴 텐데요.”

결국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마무리를 하던 김검천이 초신성 반응로와 연결되는 하단부 시설쪽에 손이 닿았을 때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금속 너머로 전해져왔다.

급히 손을 뗀 김검천은 눈을 닮은 초신성 반응로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기분 탓이겠지? 빨리 돌아가서 쉬어야겠군.”

***

며칠 후 웜홀 근처에 도착해 태양계를 벗어날 준비가 끝났다.

김검천은 함선을 통제하는 함교, 브리지에서 함장인 박재형의 옆에 대기 중이었다.

그는 함대 수뇌진의 막내인 동시에 부관이었으니까.

“이봐. 김검천 중령.”

“예. 박재형 중장님.”

“중장은 무슨. 함장이면 충분해. 그건 그렇고 어떻게 생각하나? 70억km를 1주일도 안 되어 이동한 것 말이야. 사람이 막 달에 갔을 때라면 상상도 못한 일이겠지?”

“그런 식이라면 21세기에 나온 스마트폰도 중세시대 무렵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겠지요.”

“그런가. 심지어 지구가 돈다고 주장하면 화형을 당하는 시절도 있었으니까.”

“지금이면 당연한 게 과거에는 당연하지 않으니 말이지요.”

“이번 시도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래서 처음이라는 게 중요하지.”

박재형 중장의 눈이 빛났다.

지구에 있으면 보장된 부와 지위를 버리고 모험을 택한 그였다.

김검천이 아는 바로는 군인의 모범 같은 박재형이 다시 중얼거렸다.

“군대를 권력을 위한 도구로 쓰려 들다니.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야. 정치 다툼 따위는 이제 지긋지긋해.”

웜홀 진입 준비에 정신이 가 있던 김검천이 박재형의 혼잣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니야. 그것보다 최종 점검 후 진입하도록 하지.”

김검천은 수월한 진행을 위해 어제부로 함장 권한도 임시로 부여받은 상태였다.

“미리내.”

[부르셨습니까. 김검천 함장 대리님.]

김검천이 이름을 부르자 브리지 중앙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지만 병사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건 우주 전함 미르의 두뇌, 인공지능 전술 컴퓨터의 인격이 반영된 홀로그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와 인간을 초월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마와 눈에 빛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에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만든 사람에게 인공지능의 외모에 이렇게 공을 들였냐고 물었더니 간단히 대답했다.

“아름다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게 사기 진작도 되고요.”

거기다 사람처럼 제대로 된 감정까지 표현 가능한 미리내였다.

그렇기에 함내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이돌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각 부서 및 승선 인원들의 준비는 다 되었나?”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브리지에서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김검천이 함장석을 쳐다보니 박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외우주로 출발해볼까? 이제부터는 간단히 이세계라 불러도 되겠지.”

김검천이 박재형의 바로 앞 좌석에 앉으며 명령했다.

“이제부터 이세계에 돌입한다. 안전을 위해 모두 착석하도록. 그게 힘들면 뭔가 붙잡고 멀미라도 방지해라.”

열어둔 통신 회선으로부터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게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 집중력을 높인 김검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함선 내 방송으로 김검천의 명령을 알린 미리내가 숫자를 세었다.

[59, 58,…. 2, 1, 0 웜홀로 진입합니다.]

웜홀로 진입하는 순간은 의외로 포근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문제의 시작은 웜홀의 출구가 얼마 안 남았을였다.

긴급 통신이 들어오자 불안한 느낌에 김검천이 급히 통신 회선을 열며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긴급 통신을?”

- 다들… 다들 미쳤습니다. 갑자기 서로 죽이기 시작하더니… 으아악! 괴물… 괴물이!

그 이후로 통신 너머로 들리는 건 오직 뭔가의 비명 소리 뿐이었다.

김검천은 통신을 지속하기보다 다른 곳과 연결을 먼저 시도했다.

주둔해 있는 헌병이나 함선 내 동원 가능한 병력을 움직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연락이 안 되었고 연결되었다고 해도 비명 소리로 응답할 뿐이었다.

김검천은 급히 자리의 안전장치를 풀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함장님? 함장님?”

대답 없기에 이상해서 돌아보니 박재형 중장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목이 없는 사람이 어찌 말을 하겠는가.

말 대신 피를 내뱉는 중인 박재형의 옆에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승무원 한 명이 서 있었다.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알고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는 피부가 갈라져 뼈가 보이는데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라면 또 모를까 그런 게 사람일 리가 없었다.

- 크특. 크트특!

그는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듯이 팔에서도 가지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함선의 레이더나 의자 같은 무생물마저도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승무원 한 명이 변형되고 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사방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 이건 꿈이야!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리가 없어!”

- 퍼억!

주먹에 맞은 그 옆에 있던 동료가 단번에 으깨져 버렸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 대신 금속으로 변해가던 주먹에 맞은 것이다.

“하하! 이 몸을 봐줘! 꿈이 아니라면 신체가 금속이 될 리 없잖아아아---ㅏ?”

그렇게 시작된 악몽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죽였다.

어떤 사람은 괴물들에게 죽었다.

누군가는 괴물로 의심되는 사람을 죽였다.

그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험을 느끼는 생존본능만 남은 자들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던 김검천과 몇몇 사람만이 어떻게든 상황을 막으려고 들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미쳐 날뛰는 사람들을 맨몸으로 저지할 수는 없었고.

김검천 또한 결국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죽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평온해 보였으며 함 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웜홀로 진입합니다.]

미리내의 목소리에 김검천은 식은땀을 흘리는 이마를 손으로 훔치며 중얼거렸다.

“…웜홀의 영향으로 인해 환상이라도 본 건가? 나중에 의무실에라도 가봐야겠군.”

- 크특. 크트특!

잠시 앉아 있자니 뭔가 익숙한 소음이 들려왔다.

김검천은 돌아보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고개를 움직였다.

역시 꿈을 꾸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함장을 잔뜩 맛본 나무 괴물이 김검천을 덮쳐왔으니까.

앉아있던 좌석이 피로 물들었다.

이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김검천이 죽을 때마다 웜홀로 진입하는 순간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김검천은 매 순간 어떻게든 참사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그는 괴물은 물론이고 사람마저 죽여야 할 때도 있었다.

몇 번인지 세다가 지쳐서 세는 걸 잊어버릴 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 현상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이었으니 어떤 행성으로 떨어져 내리게 되었다고 해도 누가 신경 쓰겠는가.

하얀 빛을 뿜는 거대한 별의 추락에 이세계 존재들이 흥미를 가진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김검천과 전함은 그렇게 이세계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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