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6화 (6/250)

6화

그렇게 말한 건 주술사라는 자의 행동이나 마을 사람들 분위기 모두 심상치 않아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거라고 미리 들은 걸 감안해도 그랬다.

“사람을 만난 게 아니라 괴물들과 조우한 느낌이 들어서 하는 말이야.”

굳이 따지자면 눈앞의 세이야 정도가 제대로 된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김검천이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한 편이었다.

병사로 시작해 장교로 진급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접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잠시 망설이던 세이야가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요. 이곳은 잃을 것이 없는 자만이 모였으니까요. 쫓겨난 사람들의 마을이거든요.”

“쫒겨났다라… 혹시 범죄를 저질러서 쫓겨난 건가? 너를 제외하고는 다들 피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았다.”

“최소한 살인자가 대부분일 겁니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요. 제 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르는 파벌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그냥 쫓겨난 사람들이었거든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어쩔 수 없이 추방당한 경우인가.”

“앉아서 그냥 죽어줄 수는 없으니까요.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긴 이곳은 생명체도 찾기 힘드니 몸 숨기기에는 좋겠군. 괴물들도 있고.”

그 말에 세이야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실례지만 김검천 님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째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하셔서 그렇습니다.”

“정신이 들어보니 이곳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4일 정도를 걸어 너희를 만나게 된 것 같군.”

함선이 추락해 정신이 들어보니 여기였고 4일째 되는 날 사람을 보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이야에게는 그게 더 이상한 게 들린 것 같았지만.

“여기서 제대로 된 마을이라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도 1주일은 걸릴 텐데요. 도시는 더 멀리 떨어져 있고요.”

“생략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야.”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 하시는데요?”

“하늘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우주에서 추락했지만 말이야.”

“우주라는 게 뭡니까?”

김검천은 잠시 머리를 짚었다.

예상은 했지만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막힐 줄이야.

하늘 너머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없는 걸 보니 이곳의 문명 발달 정도를 알만했다.

기사나 귀족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말이다.

김검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건 나중에 말하고 이곳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었으면 하는군. 마을을 둘러보면서.”

“그러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돌아보도록 하지요. 밤에는 이불 밖을 나서는 것도 위험하거든요.”

세이야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돌아보았는데 별로 볼 게 없긴 했다.

백여 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 마을이었다.

그런 곳에 볼만한 게 많이 있을 리 없었다.

“저기가 말린 고기를 보관해 두는 저장소입니다. 저기는 무기나 도구를 보관하는 곳이고요. 동물은 고기는 먹고 비곗살, 기름, 가죽, 뼈, 힘줄로 옷을 만들거나 연장, 심지어 바늘도 만들지요.”

세이야가 여기저기 가리키며 말하는 도중 김검천이 가장 궁금하던 걸 물었다.

“먹을 걸 구하는 방법은 알겠는데 식수는 어떻게 얻고 있지?”

“일단 사냥한 동물의 혈액을 마시거나 증류, 혹은 비가 올 때 물을 저장한 걸 마시고 있습니다.”

“그걸로는 모자랄 텐데. 몇 명 정도는 몰라도 백여 명은 되는 사람들의 공동체잖아.”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주술사의 입김이 강한 겁니다. 무슨 방도인지는 몰라도 필요하면 식수를 공급해 주거든요. 아마도 사악한 힘을 써서 얻었을 테지요.”

“사악한 방도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게 그날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

“가끔 마을 사람들 중에는 이런 곳에서마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나옵니다. 주술사는 그런 사람을 요구했고요.”

“설마…”

“예. 그때마다 어디선가 물이 생겨났습니다. 주술사가 데려간 사람은 다시 볼 수 없었고요.”

“사악하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네. 그래서 다른 방도를 찾으려고 했던 건가?”

“어떻게든 식수 공급원을 찾는다면 더이상 주술사 따위에게 조종당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실패였지? 괴물들에게 당할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군.”

“거기서 그 고블린들을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여기서 살면서 괴물들의 습성은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블린이라. 만약 고블린에게 주술사와 대립하던 사람들이 죽는다면 누가 가장 이득을 보는 걸까?”

“그거야 주술사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마을에서 네 편은 없다는 말인가. 살아남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주술사가 그런 말을 대놓고 한 건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 죽어서니까요.”

“다 죽은 건 아니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니야. 나도 그저 만약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면 이제 식수를 보관하는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식수 보관하는 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2명의 남자가 무기를 든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멈추십시오.”

세이야가 손을 내저었다.

“비켜라.”

“하지만 주술사님의 명령이 없으면…”

“물을 공급하는 건 그 자일지 모르지만 나눠주는 건 촌장의 몫이야. 너희들이 마실 물도 마찬가지고. 다시 한번 말해 볼까? 비켜라.”

남자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치를 보았다.

그중 한 사람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저쪽 너머로 이상한 기척이 느껴지는군요. 아무래도 저희들은 주변을 수색해 봐야겠습니다. 잠시 이곳을 지켜주시겠습니까?”

“음. 그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잠깐만 부탁드립니다.”

핑계를 대며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세이야가 식수 보관소의 문을 열었다.

보관소라고 해도 틈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올 정도로 허름한 목조 건물이었다.

식수는 나무를 통째로 파서 만든 사람 키만 한 높이의 나무 용기에 보관되어 있었다.

백여 개는 충분히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제법 걸었으니 갈증이 나실 겁니다. 좀 드셔 보시지요.”

세이야가 나무 국자에 물을 떠서 김검천에게 넘겨주었다.

식수를 마신 김검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맛이 집에서 마신 것과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이 물은 주술사가 만들어 낸 것이고 집에서 마신 건 빗물을 받아 정제한 것이니까요.”

“이 물속에서 약간 쇠 맛이 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익숙한 맛이거든.”

김검천은 피와 살이 튀던 때 갈증을 해결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런가요? 철로 만든 도구로 물을 퍼 올리기라도 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김검천은 식수통에 다가가 담긴 물을 살펴보았다.

물 위로 김검천의 얼굴이 보였다.

김검천은 깜짝 놀랐다.

물 위로 비친 자신의 얼굴은 10대 후반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기에 따라 더 어리게도, 더 나이가 들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40세를 바라보던 나이 아니였던 것이다.

“내가 눈이 이상해졌는지도 모르겠군. 세이야.”

“예.”

“혹시 이 물에는 마법 같은 뭔가가 걸려 있어서 사람의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나?”

“그럴 리가요. 주술사가 만들어 낸 물이라고 해도 물 자체에 그런 힘이 있을 리 없지요.”

“불가능하다는 건가?”

“그보다 저 주술사 수준에 많은 양의 액체에 그런 힘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거든요.”

“그러고 보니 주술사라고 했지만 흉내내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었지.”

“주술을 쓸 수 있다고 해도 미약한 힘을 발휘하는 정도니까요. 강력한 주술사나 마법사는 범죄를 저질러도 국가에서 무마시켜 주기도 하거든요.”

“쫓겨나올 정도면 별 것 아니라는 존재라는 건가. 힘이 정의라는 뜻 같군.”

“왕족 같은 높으신 분들은 평민들이 뭘 당해도 신경 안 쓰시니까요.”

세이야와의 대화를 끝낸 김검천은 자신의 몸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혹시 이것도 웜홀을 통과한 영향인 건가.’

딱히 문제가 될 거 같지 않기에 김검천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전성기 때 육체로 돌아간 게 나쁜 일도 아니었으니까.

김검천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치안이 나쁜 건 이 마을뿐만이 아닌 것 같군.”

“괴물에게 공격당하는 건 왕국이나 제국도 변경지역은 마찬가지거든요. 심지어 수도로 향하는 대로에서도 공격하는 일이 있다고 하니까요.”

“대충 이해가 가는데. 그런데 내가 몇 살로 보이는 것 같지?”

“에? 그거야…젊어 보이시는군요.”

“자세히 말해봐.”

“10대 중반에서 10대 후반 정도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 나이에 그만한 무력을 가졌으니 높으신 분이 아닌가 했던 거고요.”

서양인 같은 얼굴과 체형을 한 세이야를 보면서 김검천은 납득했다.

동양인은 보통 서양인보다 어리게 보이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이거 젊어졌으니 좋아해야 하나? 어쩐지 몸 상태가 전성기 때처럼 날아다닐 거 같더니.”

“젊어지다니요?”

“이렇게 보이지만 난 사실 40살에 가까운 나이야.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되었군. 체형도 좀 변한 거 같고.”

그 말에 세이야가 경악했다.

“헉! 설마 마스터급 기사분이셨습니까? 혹시 그래서 기억을 제대로 못 하는 부분이 있으신 거였고요.”

“마스터라니?”

“저도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만 몸속에 마나라는 무형의 힘을 한계까지 채우면 몸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 와중에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하고요.”

마나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기운의 일종 같았다.

동양에서는 몸 속에 기라는 게 있어서 육체에 힘을 부여해 준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젊어지기도 하는 건가.”

“거기에 더해서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기도 한다더군요.”

“하지만 난 마나 같은 건 전혀 모르는데.”

세이야의 귀에는 김검천이 겸손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김검천이 어떻게 괴물들을 처리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는가.

“과연! 마스터급 기사분은 실력만큼이나 예를 차리실 줄도 아시는군요. 사실 전 김검천 님이 고블린을 학살하실 때부터 알아보았습니다.”

“고블린이라 하던가. 그러고 보니 괴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은 참이었다.”

“그러면 일단 집으로 돌아가셔서 대화를 계속하도록 하지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괜히 눈에 들어오는 장소가 있었다.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집과 그 근처에 장애물로 막혀 있는 통로가 있는 곳이었다.

뭔가 음습한 기분이 들자 본능이 조심하라고 호소해왔다.

김검천이 그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뭐지?”

세이야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주술사의 집입니다. 막아둔 곳은 그가 금지구역이라고 지정한 곳이고요.”

“금지구역이라고 말했어도 안 지키는 자들도 있었을 텐데.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순순히 말을 따를 리 없을 테니까.”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금지구역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지요. 다시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술사가 식수를 제공했을 것 같군.”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때 주술사가 금지구역으로부터 나타나더니 소리쳤다.

“네 놈들! 이곳은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세이야가 대꾸했다.

“당신이 금지구역이라고 한 곳은 저쪽 아니요? 우리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요.”

김검천이 살짝 웃어 보였다.

“확실히 뭔가 숨겨져 있기는 한 모양이로군. 주술사.”

김검천의 웃는 모습에 주술사가 괜히 으르렁거렸다.

“외지인 따위가 알 바가 아니야. 빨리 이 자리에서 꺼져라!”

김검천의 눈빛이 금지구역으로 향했다.

하지말라고 하면 해줘야 하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저런 상대가 하는 말이라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