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이세계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머리 두 개 달린 괴물 얼굴이 익숙하다는 말인가.
김검천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은 머리 두 개의 괴물을 보자 놀라움에 웅성거렸다.
“헉! 트윈헤드 트롤이다! 마나를 쓰는 기사들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이길지 의문이라는!”
“우효! 과연 주술사님이야!”
“역시 촌장 따위를 믿는 게 아니었어! 주술사님을 따르는 게 정답이었어! 믿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괴물을 앞에 두고서도 미친 듯이 열광했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주술사는 품속에 있는 손가락만 한 마석을 만지며 웃었다.
원래 그의 주술의 힘은 손바닥만 한 생물을 조정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세이야가 말했듯이 주술사의 능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사람의 신체는 의외로 약해서 독충을 이용하는 식의 방법으로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 일이 발각되어 사람의 흔적도 찾기 힘든 이런 오지의 마을까지 쫓겨오게 된 것이었고.
다만 보유한 힘 정도로는 마을 근처에 있는 괴물들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것이 마을 밖에서 우연히 마석을 발견한 뒤로 달라졌다.
고블린 무리에게 습격당했는데 마석의 힘으로 그들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제물로 인간같은 걸 바치는 방법으로 트윈헤드 트롤까지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고블린 따위는 간식으로 취급하는 괴물까지 조정하게 된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주술사의 능력을 마석으로 증폭시키고 거기다 괴물의 본능까지 달래야 했으니까.
생명이 위험하다든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본능이 제어를 벗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고블린이라면 몰라도 트윈헤드 트롤을 이길만한 인간이 이런 곳에 있을 리 없었다.
주술사는 자신의 뒤로 트윈헤드 트롤이 나타나자 승리를 확신하며 웃었다.
“건방진 놈. 네 놈도 이제 끝이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고작해야 인간의 몸이니까.”
“그냥 평범한 사람의 몸은 아니지. 이 몸을 봐줘. 어떻게 생각해?”
김검천은 파워드슈츠를 장착한 몸을 내보였다.
주술사가 김검천의 여유 넘치는 모습에 화를 냈다.
“얼마나 단련하든지 간에 종족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지. 갑옷따위로 무사할 것 같으냐?”
“확실히 저건 보통은 넘더군.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눈에 보일 정도로 회복이 가능하니까.”
“그 재생력과 인간을 넘어선 괴력의 공격. 거기다 두 개의 머리는 먹이를 시야에서 놓치는 법이 없지. 그런데 네가 그건 어찌 아느냐?”
“그거? 몸으로 겪어 봤거든. 내 육체가 아니라 저 녀석 신체로.”
말을 하던 김검천은 저 트윈헤드 트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은 김검천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았다.
트윈헤드 트롤이 갑자기 괴성을 멈추더니 인상을 썼다.
괴물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 모양이었다.
이어서 김검천은 검은 몽둥이를 트윈헤드 트롤이 잘 보이게 앞에다 내려놓았다.
큰 트윈헤드 트롤을 때려잡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트윈헤드 트롤이 그 몽둥이를 보더니 얼어붙기라도 한 듯 행동을 멈추었다.
김검천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너도 참 운이 없구나. 잘도 도망갔다 싶었는데 여기서 또 보다니.”
트윈헤드 트롤에게 한 말이었지만 주술사는 그걸 자신에게 한 걸로 들은 모양이었다.
덤으로 김검천에게 손가락 욕을 먹었으니 이유는 몰라도 기분마저 나쁜 참이었다.
“누가 도망쳤다는 거냐! 이 몸은 스스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라고!”
“아니, 네가 아니라 네 뒤에 있는 녀석에게 말한 거라서.”
“트윈헤드 트롤에게?”
주술사가 고개를 돌린 순간 김검천은 검은 몽둥이를 치켜든 채 높이 뛰었다.
그리고는 주술사의 어깨를 밟았다.
- 우드득!
소리가 제법 큰 게 적어도 어깨뼈가 박살 난 건 보장된 듯했다.
김검천은 하늘 높이 치솟은 자신을 멍하니 지켜보는 트윈헤드 트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발판이 좋네. 덕분에 제대로 힘이 실리겠어.”
김검천은 검은 몽둥이를 머리끝까지 들어 올려 목표물을 향해 힘껏 내려쳤다.
떨어져 내리는 몸무게로 가속된 힘을 이용해 트윈헤드 트롤의 머리통을 노린 것이다.
- 쾅!
검은 몽둥이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에 부딪혔는데 폭음이 들렸다.
모든 생명체의 시선이 한군데로 쏠렸다.
바닥에 쓰러져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주술사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검은 몽둥이는 트윈헤드 트롤의 머리통을 부수고 가슴 부근까지 파고 들어갔다.
김검천은 푸른색의 피가 묻은 검은 몽둥이를 빼낸 후 트윈헤드 트롤의 몸에 닦았다.
“이 검은 몽둥이가 쓸만하긴 하네. 단단한 정도가 나무 같지는 않은데.”
- 쿠웅.
단번에 목을 몸 속 깊이 반납한 트윈헤드 트롤이 그대로 주술사를 깔아뭉개며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마을 사람들 사이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악!”
“살려줘!”
주술사의 제어가 풀린 고블린들이 본능대로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블린들이 그들 옆에 있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마을 사람들의 불행이었다.
주술사를 너무 믿어 바로 옆에서 기습공격을 받게 된 셈이니까.
하긴 트윈헤드 트롤마저 김검천에게 쉽게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검천은 그런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사람들을 죽여왔고 거기다 나를 죽이려고 들었으니 그 대가를 받는 셈이야. 난 여기서 구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겠군.”
김검천은 고블린에게 죽거나 고블린을 죽이는 마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움직였다.
서로 싸우던 고블린이나 마을 사람들도 김검천만 다가가면 기겁을 하며 멀어져갔다.
김검천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방금 전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바다 대신 인간과 괴물의 무리를 가르며 나아가는 기적을 보인 김검천이었다.
김검천은 세이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런 곳에 더 이상 있을 필요는 없겠지. 바로 떠나도록 하자.”
“...부탁드립니다.”
김검천은 등 뒤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세이야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김검천은 여기 오는 내내 계속 고민하던 세이야에게 말했다.
“내가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요. 오히려 이번 일로 나쁜 녀석들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러면 뭘 고민하는 거지? 이제 너만 남았으니 식량이나 식수가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마을에 있는 것들은 더이상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말이지?”
“김검천 님과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니 마을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거지요.”
“남아 있는 식수, 식량만 해도 혼자라면 10년 분량은 될 텐데. 유통기한은 모르겠지만.”
“물론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당장은 편할 겁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 마을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건가.”
“뭔가 남아 있다고 해도 지금의 저에게는 소모품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간다고 해서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지. 당장은 고생만 할텐데.”
“사람은 꽃길만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인 걸 이번 일로 깨달았지요.”
“바보가 여기 있군. 그런 녀석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니까. 승낙하지.”
“감사합니다! 거절당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네요.”
“너무 좋아하지 마라. 데려간다고 해도 자기 몫은 해야 할 거야.”
“제가 김검천 님보다 무력이 약하긴 하나 다른 일을 도와드릴 수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 말에는 김검천도 동의했다.
세이야가 없다면 이세계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지금까지 보아온 세이야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김검천은 신뢰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주술사나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는 더욱 말이다.
‘혹시 나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세이야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
김검천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세이야. 내가 착용한 파워드슈츠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파워드슈츠요? 그 착용하신 마갑의 이름인가 보군요.”
“마갑이라니?”
“마석을 이용해 착용자의 신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갑옷요. 기사들이 보통 착용하지요.”
“그 마석이라는 게 혹시 이걸 말하는 건가? 마아석이라는?”
김검천은 며칠 전 세이야가 넘겨준 푸른 돌을 꺼내 들었다.
만지면 만질수록 힘이 나는 그 이상한 돌이었다.
세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석이라는 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쉬운 물건은 아니라서 챙겨드린 거였고요.”
“귀중한 소재인가 보군.”
“상위 등급 마석은 국가에서 직접 거래를 제한할 정도로 소중히 다루는 물건이니까요.”
“이세계에서의 에너지원인 셈이군. 그렇다면 내 파워드슈츠에도 사용할 수 있으려나.”
[지켜본 바로는 가능할 겁니다. 분석을 정확히 할 수는 없는 상태라 확신은 없지만요.]
“확률은?”
[현재 가능한 계산에 따르면 최소 80% 이상입니다.]
“어떻게 나온 확률인지는 몰라도 그 정도면 도전해 볼 만하겠어. 응?”
김검천이 세이야를 보니 이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나를 보고 있지? 아, 혼잣말하는 걸로 보였나 보군. 미리내. 그도 듣도록 해줘.”
[전체 대화 모드로 변경. 안녕하십니까. 세이야. 전 미리내라고 합니다.]
“헉!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거지? 설마 형체가 없는 언데드 괴물인 고스트가 이런 곳까지?”
[누가 괴물입니까. 전 지구연합우주방위군 소속 함선 미르의 AI, 미리내라고 합니다.]
“괴물이 아니라고요? 아, 지구연합우주방위군이라면 김검천 님이 말하셨던 곳 아닙니까?”
[그 말대로 전 무려 김검천 함장님과 같은 소속이랍니다.]
미리내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지구연합 우주방위군보다 김검천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았다.
미리내가 설계된 원칙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검천은 혹시 웜홀을 지나며 미리내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김검천은 신뢰하기로 결정했으면 가능한 믿어주는 성격이기에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일에 매번 반응할 수도 없었고 미리내에게 개입할 방법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미리내가 지금까지 도와준 걸 보니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았고.
“지금은 거기로 돌아갈 길이 없어졌지만. 그렇기에 에너지원으로 삼을만한 게 필요했다.”
“마석이 희귀한 소재이긴 하나 못 구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이 숲에는 괴물이 많으니까요.”
“그거 좋은 소식이군. 그런데 이건 어느 정도 수준이지?”
세이야가 김검천의 손바닥 위에 올려둔 마석을 살펴보다 말했다.
“이 정도면 최하급… 아니, 하급기사 마갑에 반년 정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겠네요.”
“미묘하게 알 듯 말듯한 기준이군. 지금은 미리내가 알아서 처리해줘.”
세이야의 말에 따르면 마갑은 20킬로 정도 나가는 것 같았다.
파워드슈츠는 40킬로 정도 나가는 장비였다.
[물론 소모되는 에너지가 차이가 있을 테니 단순히 2배 차이라고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만.]
“당장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기만 해도 충분해. 문을 열 방도로서. 일단 함선으로 돌아간다.”
마석이라는 이세계의 에너지원의 발견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마석을 이용하면 함선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김검천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세이야도 함선까지 가야 하니 필요한 걸 준비해.”
“제 짐도 김검천 님 짐을 꾸릴 때 준비했죠. 함선이든 지옥이든 어디까지나 동행하겠습니다.”
“그때부터 벌써 마음은 마을을 떠났었던 건가.”
“출입문으로 안내하면서도 같이 가자고 말을 못 한 게 후회스러울 지경이었지요.”
짐을 다 챙긴 후 마을을 바라보는 세이야였다.
감상적인 세이야의 모습에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정든 마을을 떠나니 마음이 심란한가 봐?”
“아뇨. 기왕 떠나는 거 불이라도 확 질러버려서 재로 만들어 버릴까 해서요.”
“컥. 너, 의외로 성깔 있구나.”
“사람 한 명 없는 마을을 남겨 두면 고블린 같은 작은 괴물의 거주지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일단 놔두자. 괴물들의 본거지가 되면 그때 불을 지르던가.”
“괴물 채로 말인가요? 김검천 님이 더 무서운 말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
세이야는 마을에서부터 멀어져가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