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1화 (11/250)

11화

김검천이 잠시 행동을 멈춘 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의혹 때문이었다.

수없이 죽어나간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출구를 만들어 두고 싶은 것이다.

만약 이 문이 막히기라도 하면 현재로서는 무슨 수를 써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머리 속이 복잡했지만 김검천은 세이야에게 태연히 대답했다.

“별 것 아니다. 들어가도록 하지.”

“예!”

조치를 취한 김검천은 차단문 안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1주일 정도 지났는데 10년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10년도 아니고 평생 동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을 그 사이에 겪었으니까요.]

“그렇군. 그보다 하나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미리내. 차단문은 각 블록마다 존재하지?”

[그래서 각 구역을 진입할 때마다 차단문을 조정하는 곳으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해당 블록이 모여서 구역이 되는 것이니까.”

[다만 전함 내부로 들어갈수록 가로막는 차단문도 늘어나고 열기도 더 힘들어지지요.]

“보안 레벨이 증가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안쪽일수록 중요한 것들이 많아지니까.”

[그런 만큼 일단 이곳에 있는 장비를 살펴보는 걸 추천합니다.]

김검천이 중얼거렸다.

“이곳 장비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으니 아쉬워.”

[여기는 병사들을 위한 훈련지역이니 고위 장교를 위한 시설은 더욱 진입해야 합니다.]

“그래도 바깥에 일반 사병용 파워드슈츠 정도만 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니까.”

적어도 이곳에는 병사들 중 상위 장비인 병장이나 분대장용 것이 남아 있는 것이다.

김검천이 필요한 물건을 찾으러 이동하려는데 세이야가 여러 가지를 들고 왔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의 손에 들린 나무작대기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궁금한 것이라도 있는 건가?”

“예. 김검천 님! 이건 뭔가요?”

“아아, 그건 정수기라는 거다.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지.”

“오오! 이것만 있으면 식수는 해결되는 건가요! 대단합니다! 그러면 이건 뭔가요?”

“아아, 그건 ‘단백질 바‘라는 거다. 하루에 하나만 먹어도 버틸 수 있게 해주지.”

“뭔지는 모르지만 대단한데요! 김검천 님! 이거는요?”

“큭. 그거는…”

그렇게 하나씩 설명해 준 것이 벌써 백 번째가 다 되어갔다.

이러다가는 하루 종일 설명해줘도 끝이 안 날 것 같았다.

“세이야?”

“옙! 김검천 님.”

“이제 나중에 이야기 해주면 안 될까? 지금은 당장 할 것도 있고 바빠서 말이야.”

“예…”

세이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갔다.

그제야 김검천은 해당 블록에 있는 물건들과 장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블록에 있는 건 차단문을 여는 장소를 찾아서 그때 살펴볼 생각이었다.

[김검천 함장님. 세이야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서 이쪽을 보고 있습니다.]

“나도 알아. 일이 끝나면 놀아… 아니, 알려줄 생각이라고. 넌 왜 신난 목소리냐.”

[착각이십니다. 그것보다 저쪽에 지식 주입기가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마침 잘 되었네. 원래는 사병용으로 간단한 군대 지식을 주입하는 건데 세이야에게 쓰면 되겠어. 하나씩 설명해 주려고 하니까 죽을 맛이거든. 설정을 좀 변경하면 되겠지.”

[그러면 아까 같은 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시는지요?]

“군 기밀정보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껐다 켰다 하는 일상 수준의 지식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데 함선 승무원도 아니고 행성 원주민에게 지식 주입기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바로 그거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미리내는 도저히 김검천의 생각을 짐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김검천은 자신의 계획을 약간 알려주기로 했다.

“난 이세계인을 미르의 승무원으로 받아들일 계획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너무 성급하십니다. 그 말은 그들이 지구 연방의 일원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부 다가 아니라 세이야정도라면 괜찮을 거 같지 않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말이지.”

[행성 원주민을 승무원으로 삼는 건 지구연합 우주방위군 규범에 어긋납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비상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를 얕보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든 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대충 현 상태 정보의 확인이 끝나자 미리내가 말을 바꾸었다.

미리내가 계산하기에도 현재는 인원 보충이 필수였던 것이다.

적어도 현재 이 구역에 있거나 활용 가능한 장치로는 그랬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으니까.

[하긴 아무리 자동화된 함선이라도 인력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법이지요.]

“하하, 자동화되었다고 해도 기본 인력은 필요하도록 제한되어 있었으니까.”

김검천이 미리내가 사람처럼 투정 부리는 듯한 말투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병력이 10만 명일 때도 함선 내 일을 다 처리할 수는 없었지 않은가.

인간을 보조하기 위한 자동화된 기계들이 함선 내부에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거기다 이번에 확인해 보니 그런 용도의 기계들은 다 박살 나 있는 상태였다.

모든 것을 사람이 나서서 수작업으로 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현재 개방한 공간만 해도 김검천 혼자서는 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넓었다.

앞으로는 차단문을 개방할 수록 공간은 더 넓어질테고.

그러니 세이야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함선 운용에 사람이 필요 없다면 애초에 1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탑승시키지도 않았겠지.”

[기계의 반란 같은 건 역사에 기록될 정도니까요. 완전 자동화는 그 이후로 금지되었고요.]

“지금이라면 그런 것마저 필요하다고 생각될 정도야.”

[에너지원인 주 엔진과 보조 엔진이 있는 동력실까지 가는 건 아직도 멀었으니까요.]

이번 차단문 개방으로 가장 좋았던 건 각 구역에 있는 부전원실의 발견이었다.

부전원실에는 각 구역을 운용 가능하도록 비상시에 쓸 수 있도록 소형 발전기도 있긴 했다.

문제라면 소형 발전기도 고장 난 상태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분류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너무 걸려. 세이야의 힘이 필요하다고.”

[결국은 승무원으로 삼아야 함선 내 도구도 사용 가능할테고요.]

“그런거지. 그리고 부전원실의 발전기 대용으로 마석이란 걸 이용해도 될까?”

[단순한 에너지원으로는 가능할 거 같습니다. 제대로 쓰려면 더 많은 마석이 필요하고요.]

“여기서 다른 에너지 팩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쓰도록 하지. 마석과 달리 다음 구역 차단문을 열기 전에는 못 구하는 거니까.”

[기계들이 부서지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추락 충격으로 이렇게 된 건가? 아니면 웜홀을 통과할 때부터 이렇게 된 건가.”

[그것에 대해서는 저도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웜홀에 들어간 때부터의 나오기 전까지의 기록은?”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웜홀에서 나온 강력한 전자기파가 함선에 영향을 미친 건지도 모르겠군. 안 되는 것에 미련 가질 건 없겠지.”

그날 저녁은 특별히 김검천이 함 내에서 발견한 식재료를 이용해 만들었다.

“오늘 이 요리는 내가 집도한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김검천 님!”

“함장, 함장이라 불러라!”

“옙! 김검천 함장님! 그런데 뜨거운 물만 부으면 음식이 된다니 굉장하군요. 이게 뭔가요?”

세이야는 라면 봉지와 전투 식량 안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물었다.

김검천이 큰소리쳤지만 정작 세이야에게 대접한 것은 라면과 전투 식량인 것이다.

그래도 김검천은 별 5개짜리 호텔 레스토랑 요리사라도 된 듯이 기세 좋게 입을 열었다.

“이건 뽀글이와 전투 식량이라는 거야. 라면은 정규식단이 아니지만 맛있으니 챙겨둔 녀석들이 있더군.”

[전식 말고는 영양분 알약을 식사라고 내놓기는 그러니까요.]

“그건 정말 최후에 살기 위해 먹는 거니까. 사실 남아 있는 게 이런 종류 밖에 없기도 했고.”

김검천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동력원이 없으니 전기사용이 불가능했기에 냉장이나 냉동된 물품들은 모두 버려야만 했다.

남은 건 상온 보관 가능한 것들이나 라면 같은 인스턴트, 건조식품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이 훈련 구역에 남아 있는 보존식만 해도 김검천과 세이야 두 명이라면 1년 넘게 먹을 수 있었다.

식당이 있는 구간은 아니지만 병사계급만 탑승 인원의 절반인 5만 명이 넘어갔다.

그중의 1%만 군것질이나 간식을 챙겨왔다고 해도 500명이 먹을 분량인 것이다.

세이야가 정신없이 먹는 걸 보며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마석을 동력원 삼아 구역 기능 일부를 가동시킬 수 있어서 식수도 정화할 수 있게 되었지.”

[역시 다른 것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에너지가 1순위로 필요하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석이라는 걸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었어.”

그 말에 입을 우물거리던 걸 삼킨 세이야가 품속에서 마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때 고블린에게서 찾아 가지고 있던 마석인 모양이었다.

“필요하시다면 이것도 써 주시기 바랍니다.”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일단 네가 가지고 있어. 마석을 구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괴물이 있는 장소까지 왕복하려면 1주일 넘게 걸린다는 아셨으면 합니다.]

“그건 일반 파워드슈츠의 이야기지. 저걸 봐.”

김검천이 가리킨 곳에는 견장이 달린 붉은 색이 도색된 파워드슈츠가 있었다.

장교용 파워드슈츠에는 뿔이 달린 기체도 있었다.

“병사들 중에서는 가장 나은 분대장급 장비지. 이제 3배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저건 에너지도 사병용에 비해 3배 정도 소모되지 않습니까?]

“그건 할 수 없지.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기동시간이 줄어드는 문제는 항상 있으니.”

[장교용 파워드슈츠나 거대 로봇인 배틀 머신 같은 강한 기체일수록 그렇긴 하지요.]

“대신 그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잖아. 속도를 안내면 에너지 소모가 심하지도 않고. 더구나 당분간이라지만 파워드슈츠 한두 개 정도는 에너지를 아낄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파워드슈츠에 내장된 장비라도 마음껏 쓸 수 있다니 다행이군요.]

“일단은. 그래도 적은 느낌이네. 저 정도로는 함선 미르의 엔진을 켜지도 못할 테니까.”

[저런 게 수십만 개가 있어도 동력실의 코어, 초신성 반응로와는 비교가 안 되니까요.]

“코어인 주 엔진이 아니더라도 부 엔진인 열핵융합 동력로만이라도 가동시킬 수 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저기 쌓여 있는 에너지 팩이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군.”

김검천은 수북이 쌓여 있는 에너지 팩을 쳐다보며 말했다.

새로 찾아낸 사용하지 않은 파워드슈츠에서 빼낸 수백 개가 넘는 에너지 팩이었다.

그것도 현재 접근 가능한 구역 전체에서 찾은 것도 아니었다.

탐색해보면 더욱 많은 양이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십 개의 빈 에너지 팩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붉은 파워드슈츠를 장착 후 저만큼을 사용하고도 다음 구역 차단문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0